잡가는 상층문화권의 정통가요인 가곡이나 시조에 비해서 정제되지 못한 노래로, 잡스럽거나 속된 하층문화권의 노래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것은 경기체가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한몫을 차지하던 장르의 잡가와는 다른 용어로 조선 후기 광대나 사당패 등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창출된 잡가를 지칭한다. 현재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한 남도잡가가 전승되면서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진도군 의신면 거주 강송대(姜松代)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원래 잡가는 조선 말기에 형성되고 번창하다가 1830년을 전후하여 유행가 등 서양풍의 노래에 밀려난 노래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남도잡가는 고종 때 전라도 옥과에서 풍류하던 율객 신방초가 「화초사거리」를 만들었고, 그 가락에 많은 소리꾼이 나오게 되었다. 한말에는 장판개 · 조진영 · 김정문 등이 남도잡가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들은 원각사 · 광무대 등을 중심으로 「보렴」 · 「화초사거리」 · 「남도산타령」 · 「새타령」 · 「성주풀이」 등의 남도잡가를 하였다. 1920년대에는 김정문 · 조상선 · 강남중 · 송기덕 · 신옥란 · 신정옥 · 신연옥 · 김금화 등이 남도잡가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고, 김추월 · 신금흥 · 김녹주 · 이화중선 같은 판소리 명창들도 잡가를 불렀다. 193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는 협률사 · 창극단 · 연예단 등을 중심으로 많은 창극과 잡가가 연주되었으며, 광복 후 현재까지 판소리 창자들이 대개 남도잡가를 겸하여 부르고 있다.
현재 남도잡가는 「보렴」 · 「화초사거리」 · 「육자배기」 · 「자진육자배기」 · 「흥타령」 · 「개구리타령」 · 「새타령」 · 「성주풀이」 등을 지칭하며, 진도 출신으로 무계를 잇고 있는 강송대를 중심으로 보존 전승되고 있다.
잡가는 조선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학 장르라는 데 문학사적 의미가 있으며, 남도잡가가 지금까지 전승되면서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장르로 자리매김하면서 문학사적 의미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