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산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굴식돌방무덤 · 가마터 관련 생활유적.
이칭
이칭
월산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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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굴식돌방무덤 · 가마터 관련 생활유적.
개설

경주 월산리유적은 경주분지의 최남단, 경주에서 언양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유적 뒤쪽 서편에 솟아 있는 준주봉에서 동으로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위치한다. 이 유적 주변에는 고인돌군[支石墓群], 민무늬토기[無文土器]산포지 등이 분포하며 울산 봉계리 집터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화물주차장 건설을 위해 1998∼1999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집터 46동과 구덩[竪穴] 2기, 삼국∼통일신라시대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과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墓] 등 무덤 180여기, 숯가마[炭窯] 29기, 제사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내용

집터는 A지구 7동, B지구 39동으로 산사면을 파고 조성하였는데, 대체로 평면 세장방형과 긴네모모양[長方形]의 형태를 띤다. 이 중 A-6호 집터는 평면 세장방형으로 크기는 길이 14.4m, 너비 230㎝, 깊이 50∼70㎝이고, B-14호 집터는 평면 긴네모모양으로 크기는 길이 410㎝, 너비 200㎝, 깊이 45㎝이다. 내부시설은 벽도랑[壁溝], 기둥구멍[柱穴], 화덕자리[爐址], 고상부(高床部), 저장구덩이[貯藏孔] 등이 조사되었다. 벽도랑은 일부 집터에서 나타나는데 내부에 기둥구멍이 있는 것도 있다. 배수구는 벽도랑을 따라 집터 밖으로 연결되며 벽도랑 없이 배수구만 시설된 것도 있다. 집터 내부에서 기둥구멍이 발견되는 것은 소수이며 기둥구멍이 있는 경우에도 일정한 규칙성은 없다. 화덕자리는 구덩식[竪穴式], 무시설식(無施設式), 돌두름식[圍石式], 흙두름식[圍土式]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주로 단벽 쪽에 치우쳐 있다. 집터 내 고상부는 별도의 공간이 되도록 집터 내의 바닥을 단(段)이 지게 판 것인데 특별한 용도를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저장구덩이는 지름 50㎝, 깊이 17㎝ 내외로 판 것과 토기를 묻은 것 두 종류가 있다.

출토된 유물은 골아가리무늬토기[口脣刻目文土器],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 짧은빗금무늬토기[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돌끌[石鑿], 간돌검[磨製石劍], 돌도끼[石斧],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배모양돌칼[舟形石刀], 긴네모모양돌칼[長方形石刀], 반달돌칼[半月形石刀], 숫돌[砥石], 갈돌[碾石棒], 갈판[碾石]등의 무기와 연장, 그리고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紡錘車], 그물추[漁網錘]등이 출토되었다.

집터의 평면형태와 토기의 문양구성으로 볼 때, 집터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 전반∼후반경으로 편년된다.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서기전 1530∼1070년과 서기전 970∼540년이 산출되어 그러한 편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고분군은 신라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고분군의 분포는 A지구에서 덧널무덤 2기, 독무덤[甕棺墓] 7기, 구덩식돌덧널무덤 134기, 앞트기식돌덧널무덤[橫口式 石槨墓] 14기 등 모두 157기의 무덤과 제사유구 10기가 조사되었다. 한편 B지구에서는 구덩식돌덧널무덤 15기, 앞트기식돌덧널무덤 2기, 굴식돌방무덤 11기, 독무덤 1기 등 모두 29기의 무덤과 제사유구 3기가 조사되었다. A지구는 구덩식돌덧널무덤이 중심을 이루고 B지구는 앞트기식돌덧널무덤과 굴식돌방무덤이 주요 묘제이다. 이를 통해 좁은 구릉 사면인 A지구에 무덤들이 조성되다가 비교적 넓은 B지구로 묘역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로는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 · 굽다리주발[臺附椀] ·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 뚜껑접시 · 곧은입항아리[直口壺] · 긴목항아리 · 굽다리곧은입항아리[臺附直口壺] · 손잡이달린항아리[把手附壺]등이 있다. 또한 철기류도 소량 출토되었는데, 쇠손칼 · 쇠낫[鐵鎌] · 쇠화살촉[鐵鏃] 등이 일반적이다.

A지구 제127호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일단장방형투창고배(一段長方形透窓高杯)가 황남대총(皇南大塚) 남분(南墳)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양식을 보이므로 고분군의 상한연대는 5세기 중엽으로 판단된다. 한편 B지구 제1호 굴식돌방무덤에서 출토된 은제 띠고리는 당(唐) 초기 양식이므로 제1호 무덤은 7세기 중엽의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B지구 제4호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뚜껑굽다리접시는 인화문토기가 뚜껑으로 사용되었는데, 두겹의 원무늬가 그려져 있는 점을 볼 때 8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B지구의 출토 유물을 통해서 고분군의 하한연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8세기대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월산리유적은 경주지역에서 조사된 비교적 이른 시기의 대규모 청동기시대 마을과 삼국∼통일신라시대의 무덤 등이 복합적으로 조성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집터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 청동기시대 전기라는 구체적인 연대를 제시했다는 점과 고분군의 경우 각 시대별 구릉의 공간활용 양상 및 묘제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 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경주 월산리유적』(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3)
집필자
배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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