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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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아관파천 (俄館播遷)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대동단결선언 (大同團結宣言)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홍범십사조는 갑오개혁 때 종묘서고문과 함께 발표된 개혁 강령이다. 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선포된 「홍범 14조」는 한문, 한글, 국한문 혼용체의 3가지로 관보에 실렸다. 청으로부터 자주 독립, 근대적인 정부 운영, 왕실 사무와 국정의 분리, 조세법정주의, 재정 일원화와 예산 제도의 확립, 지방 관제 개정, 인재 등용 확대, 죄형법정주의와 인민의 생명 · 재산 보호 등 근대적인 통치 방침의 근간을 세운 개혁 강령이다.
홍범 14조 (洪範 十四條)
홍범십사조는 갑오개혁 때 종묘서고문과 함께 발표된 개혁 강령이다. 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선포된 「홍범 14조」는 한문, 한글, 국한문 혼용체의 3가지로 관보에 실렸다. 청으로부터 자주 독립, 근대적인 정부 운영, 왕실 사무와 국정의 분리, 조세법정주의, 재정 일원화와 예산 제도의 확립, 지방 관제 개정, 인재 등용 확대, 죄형법정주의와 인민의 생명 · 재산 보호 등 근대적인 통치 방침의 근간을 세운 개혁 강령이다.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순종 (純宗)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대한국국제 (大韓國國制)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은 1907년 7월 24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전체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조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 등 일체의 사무에 대해 승인권을 장악함으로써 입법, 사법 및 고등 관리의 임면 등 대한제국의 내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일신협약 (韓日新協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은 1907년 7월 24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전체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조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 등 일체의 사무에 대해 승인권을 장악함으로써 입법, 사법 및 고등 관리의 임면 등 대한제국의 내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대장경판이다.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다.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대장경판을 새기게 되었다. 판각의 매수가 8만여 판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1237년 판각을 시작하여 1248년에 대장 목록을 마지막으로 새겼다. 대장경 가운데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62년에 국보, 1995년 세계문화유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대장경판이다.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다.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대장경판을 새기게 되었다. 판각의 매수가 8만여 판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1237년 판각을 시작하여 1248년에 대장 목록을 마지막으로 새겼다. 대장경 가운데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62년에 국보, 1995년 세계문화유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650년(진덕여왕 4) 신라 진덕여왕이 당나라 고종에게 보낸 한시.
치당태평송 (致唐太平頌)
650년(진덕여왕 4) 신라 진덕여왕이 당나라 고종에게 보낸 한시.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 전각.
덕수궁 함녕전 (德壽宮 咸寧殿)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 전각.
개항기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서화가·문신.
지운영 (池雲英)
개항기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서화가·문신.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궁내부 (宮內府)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내무부 (內務府)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법규교정소는 1899년(광무 3), 대한제국의 법규 개정을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와 구제도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1897년에 설치한 교전소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된 후 1899년 6월,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었다. 8월 17일 법규교정소에서 마련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가 반포되었다.
법규교정소 (法規校正所)
법규교정소는 1899년(광무 3), 대한제국의 법규 개정을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와 구제도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1897년에 설치한 교전소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된 후 1899년 6월,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었다. 8월 17일 법규교정소에서 마련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가 반포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 이성계 관련 궁궐터.
오목대 이목대 (梧木臺 梨木臺)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 이성계 관련 궁궐터.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 (光武)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황제 관련 기념비.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황제 관련 기념비.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황제 (皇帝)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홍릉 (洪陵)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