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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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용상에 앉아 정면을 향하여 있는 초상화.
고종황제 어진 (高宗皇帝 御眞)
고종이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용상에 앉아 정면을 향하여 있는 초상화.
고종 황제가 조복(朝服)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초상화.
고종 어진 (高宗 御眞)
고종 황제가 조복(朝服)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초상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황제 관련 기념비.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황제 관련 기념비.
조선 고종이 사용하던 것으로 전하여지는 패옥.
전 고종 패옥 (傳 高宗 佩玉)
조선 고종이 사용하던 것으로 전하여지는 패옥.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조 말기 백관의 조복에 속한 의복.
적초의 (赤綃衣)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조 말기 백관의 조복에 속한 의복.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공조판서, 광주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민치구 (閔致久)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공조판서, 광주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궁내부 (宮內府)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대동단결선언 (大同團結宣言)
1917년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등이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제창한 문서.
1907년 6월 서울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동우회 (同友會)
1907년 6월 서울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내무부 (內務府)
내무부(內務府)는 1885년 개화 · 자강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 설치한 관청이다. 통리군국사무아문(통리내무아문)의 후신으로, 의정부 · 6조 체제와는 별도로 각종 근대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1880년대 후반 국정 운영을 총괄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정부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1894년 폐지되었다.
강석호는 조선 후기~대한제국기에 국왕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에 관여하였던 내시이다. 1875년 벼슬길에 오른 이후 갑오개혁 이후에 민영환과 함께 친미파로 활동하는 등 복잡다단하였던 이 시기 정치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장악하고 내시부가 해체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사라졌다.
강석호 (姜錫鎬)
강석호는 조선 후기~대한제국기에 국왕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에 관여하였던 내시이다. 1875년 벼슬길에 오른 이후 갑오개혁 이후에 민영환과 함께 친미파로 활동하는 등 복잡다단하였던 이 시기 정치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장악하고 내시부가 해체되면서 그의 영향력도 사라졌다.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 (光武)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대한국국제 (大韓國國制)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
만수성절 (萬壽聖節)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 전각.
덕수궁 함녕전 (德壽宮 咸寧殿)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에 있는 대한제국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 전각.
기로과는 조선시대 노인을 우대하여 실시한 특별 과거다. 나이 제한은 60세 이상을 기본으로 하되 과거 때마다 시행하였다. 영조 대에 처음 실시할 때부터 철종 대까지는 문·무과를 모두 시행하다가, 고종 대는 유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응제로 시행하여 우수자에게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린 후, 직부전시자는 곧이어 급제자로 알렸다.
기로과 (耆老科)
기로과는 조선시대 노인을 우대하여 실시한 특별 과거다. 나이 제한은 60세 이상을 기본으로 하되 과거 때마다 시행하였다. 영조 대에 처음 실시할 때부터 철종 대까지는 문·무과를 모두 시행하다가, 고종 대는 유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응제로 시행하여 우수자에게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린 후, 직부전시자는 곧이어 급제자로 알렸다.
1216년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의 호를 제수한 교지.
혜심 고신제서 (慧諶 告身制書)
1216년 진각국사 혜심에게 대선사의 호를 제수한 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