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군자금"
검색결과 총 18건
1920년 서울에서 무장계획단과 보합단(普合團)이 합동하여 일본경찰을 살해한 사건.
관철동 의거 (貫鐵洞 義擧)
1920년 서울에서 무장계획단과 보합단(普合團)이 합동하여 일본경찰을 살해한 사건.
나병삼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모험단에 참여하여 순사 총살, 독립운동문서 배포,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소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마음을 품고 1920년대 초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맹산지단의 조신성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문서의 배포, 친일파의 처단과 군자금 모금 활동에 주력하였다.
나병삼 (羅炳三)
나병삼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모험단에 참여하여 순사 총살, 독립운동문서 배포,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소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마음을 품고 1920년대 초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맹산지단의 조신성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문서의 배포, 친일파의 처단과 군자금 모금 활동에 주력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사령부 재무사장,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백기준 (白基俊)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사령부 재무사장,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참모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병욱 (李丙旭)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참모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오창선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진위군 출신으로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에 안구현, 이택화 등과 함께 두 차례 나섰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오창선 (吳昌善)
오창선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진위군 출신으로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에 안구현, 이택화 등과 함께 두 차례 나섰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
이근배 (李根培)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
손기혁은 대한제국기 경상남도 하동군 가종면(지금의 옥종면) 출신의 의병장으로, 김용이 등 다수의 청년과 의병진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2년 형을 받고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손기혁 (孫琪赫)
손기혁은 대한제국기 경상남도 하동군 가종면(지금의 옥종면) 출신의 의병장으로, 김용이 등 다수의 청년과 의병진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2년 형을 받고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창철은 일제강점기 중국 광둥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1920년대 중반 참의부에 참여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외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동하였다. 일본 경찰과 교전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에도 옥중 항의를 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창철 (朴昌鐵)
박창철은 일제강점기 중국 광둥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1920년대 중반 참의부에 참여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외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조선혁명군 등에서 활동하였다. 일본 경찰과 교전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에도 옥중 항의를 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상완은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불교계의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강원도 특파원, 철원애국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신상완 (申尙玩)
신상완은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불교계의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강원도 특파원, 철원애국단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정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5년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고향 청도에서 온명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정희 (李庭禧)
이정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5년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고향 청도에서 온명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중화는 일제강점기 만주와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이후 러시아 빨치산 대장 메리코포스코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교유하였으며,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이중화 (李重華)
이중화는 일제강점기 만주와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이후 러시아 빨치산 대장 메리코포스코의 통역관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과 교유하였으며,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임득산은 일제강점기 대한적십사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 통신원, 구국모험단원 ,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병인의용대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임득산 (林得山)
임득산은 일제강점기 대한적십사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한편,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 통신원, 구국모험단원 ,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병인의용대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현상건은 한말, 일제강점기 의병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기도 개성군 조사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현상건 (玄尙健)
현상건은 한말, 일제강점기 의병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기도 개성군 조사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이형우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의 의사원으로 행정 활동을 하는 한편, 군대 훈련, 사무 연락, 무기 구입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내 함경남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이형우 (李亨雨)
이형우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의 의사원으로 행정 활동을 하는 한편, 군대 훈련, 사무 연락, 무기 구입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내 함경남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임기홍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 지역과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독립을 표방한 천마대(천마산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와 참의부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강조한 독립운동가이다.
임기홍 (林基弘)
임기홍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 지역과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독립을 표방한 천마대(천마산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와 참의부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강조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익록(康益祿)은 일제강점기 1924년 12월 대한통의부 부원 이진무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선천 삼봉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 뒤 일본 도쿄에서 은신 중 1925년 5월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하였으나 체포되어 1926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41년 출옥하였다.
강익록 (康益祿)
강익록(康益祿)은 일제강점기 1924년 12월 대한통의부 부원 이진무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선천 삼봉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 뒤 일본 도쿄에서 은신 중 1925년 5월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하였으나 체포되어 1926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41년 출옥하였다.
송중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에서 파견된 윤응념과 함께 1923년 인천 앞 도서 지역과, 1925년 황해도 송화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각각 징역 6년과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이다.
송중직 (宋重稙)
송중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에서 파견된 윤응념과 함께 1923년 인천 앞 도서 지역과, 1925년 황해도 송화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각각 징역 6년과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이다.
장관주는 일제강점기 1919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3·1운동에 참여하여 태형 90대를 맞았다. 이후 대한독립단 단원들과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1920년 국외로 망명하려다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1921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
장관주 (張觀柱)
장관주는 일제강점기 1919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3·1운동에 참여하여 태형 90대를 맞았다. 이후 대한독립단 단원들과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1920년 국외로 망명하려다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1921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