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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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미국 국민회가 멕시코 한인을 돕기 위해 멕시코로 파견한 위원.
견묵위원 (見墨委員)
1909년 미국 국민회가 멕시코 한인을 돕기 위해 멕시코로 파견한 위원.
1918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멕시코 한인의 단결과 지식을 넓하기 위해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단계 (檀界)
1918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멕시코 한인의 단결과 지식을 넓하기 위해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Mexico 韓人 移民 百年史)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신광희 (申光熙)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멕시코 국민회 치와와지방회 회장을 역임한 교민.
채등진
일제강점기 멕시코 국민회 치와와지방회 회장을 역임한 교민.
네덜란드 덴하흐(Den Haag, 헤이그) 에이컨다위넌(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있는 대한제국기 헤이그특사 이준 관련 묘역.
이준 열사 구 묘역 (李儁 烈士 舊 墓域)
네덜란드 덴하흐(Den Haag, 헤이그) 에이컨다위넌(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있는 대한제국기 헤이그특사 이준 관련 묘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북쪽 묘지(Северное кладбище)에 있는 대한제국기 주러시아공사 이범진 관련 묘역.
이범진 공사 묘역 (李範晉 公使 墓域)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북쪽 묘지(Северное кладбище)에 있는 대한제국기 주러시아공사 이범진 관련 묘역.
이한응 열사 순국지는 영국 런던 얼스코트 트레버로드에 있는 대한제국 주영국대리공사 이한응이 순국한 대한제국공사관건물이다. 이한응은 1901년 주영국공사관 참서관으로 영국에 상주하였다. 1903년 11월 주영국공사 민영돈이 해임되자 이한응이 대리공사로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1904년 1월 이한응은 한반도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벌어진 것을 예상하고,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영국 정부가 이한응의 요구를 거절하자 주영공사관에서 자결 순국을 하였다. 이한응이 순국한 주영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은 당시 모습이 남아있지만, 현재는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한응 열사 순국지 (李漢應 烈士 殉國址)
이한응 열사 순국지는 영국 런던 얼스코트 트레버로드에 있는 대한제국 주영국대리공사 이한응이 순국한 대한제국공사관건물이다. 이한응은 1901년 주영국공사관 참서관으로 영국에 상주하였다. 1903년 11월 주영국공사 민영돈이 해임되자 이한응이 대리공사로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1904년 1월 이한응은 한반도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벌어진 것을 예상하고,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영국 정부가 이한응의 요구를 거절하자 주영공사관에서 자결 순국을 하였다. 이한응이 순국한 주영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은 당시 모습이 남아있지만, 현재는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다.
1920년 10월 26일 영국에서 결성된 한국 독립운동 후원 단체.
영국한국친우회 (英國韓國親友會)
1920년 10월 26일 영국에서 결성된 한국 독립운동 후원 단체.
『구주의 우리 사업』은 1920년 12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통신국이 유럽의 독립운동을 정리한 역사서이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파리 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파리위원부 통신국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구주의 우리 사업』을 발간했다. 이 책자는 본문 62쪽의 국한문 혼용의 유인물 형태이다.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제1년(1919)과 제2년(1920)으로 구분하여 외교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정의의 친우」, 「구주유학생정형」 등의 제목으로 유럽외교와 관련된 주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구주의 우리 사업 (歐洲의 우리 事業)
『구주의 우리 사업』은 1920년 12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통신국이 유럽의 독립운동을 정리한 역사서이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파리 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파리위원부 통신국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구주의 우리 사업』을 발간했다. 이 책자는 본문 62쪽의 국한문 혼용의 유인물 형태이다.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 제1년(1919)과 제2년(1920)으로 구분하여 외교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정의의 친우」, 「구주유학생정형」 등의 제목으로 유럽외교와 관련된 주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 1920년 4월부터 1912년 5월까지 프랑스어로 발행한 월간잡지이다. 1920년 4월호부터 1921년 5월호까지 총 13호가 발행되었다. 표지에는 태극기를 그리고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표어를 적었다. 창간사에 “이 월간지의 제목이 밝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투쟁 목표는 조국의 독립에 있다. 자유한국!”이라고 발행 목적을 밝혔다. 내용은 소식, 한국의 활약, 외국의 여론, 한국에 관한 참고문헌, 삽화 등의 항목 아래 필요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마지막 호인 제11·12·13호 합집에 재정부족으로 더 이상 발간이 어렵다는 것을 언급했다.
자유한국 (自由韓國)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 통신국에서 1920년 4월부터 1912년 5월까지 프랑스어로 발행한 월간잡지이다. 1920년 4월호부터 1921년 5월호까지 총 13호가 발행되었다. 표지에는 태극기를 그리고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표어를 적었다. 창간사에 “이 월간지의 제목이 밝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투쟁 목표는 조국의 독립에 있다. 자유한국!”이라고 발행 목적을 밝혔다. 내용은 소식, 한국의 활약, 외국의 여론, 한국에 관한 참고문헌, 삽화 등의 항목 아래 필요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마지막 호인 제11·12·13호 합집에 재정부족으로 더 이상 발간이 어렵다는 것을 언급했다.
1919년에 결성된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재법한국민회 (在法韓國民會)
1919년에 결성된 프랑스 최초의 한인 단체.
1929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외교 기관.
고려통신사 (高麗通信社)
1929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외교 기관.
유덕고려학우회는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유럽 최초의 유학생 단체이다. 김갑수 등 11명이 학생 자체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고 한인의 자치와 외교에 관한 활동을 주관하기 위해 창립하였다. 『회보(Heba)』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으며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 대외선전활동, 유럽에서 개최되는 민간 차원의 국제대회 참가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때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고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 (留德高麗學友會)
유덕고려학우회는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유럽 최초의 유학생 단체이다. 김갑수 등 11명이 학생 자체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고 한인의 자치와 외교에 관한 활동을 주관하기 위해 창립하였다. 『회보(Heba)』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으며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 대외선전활동, 유럽에서 개최되는 민간 차원의 국제대회 참가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때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고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1923년 10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민족대회. 교민단체.
재독한인대회 (在獨韓人大會)
1923년 10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한 민족대회. 교민단체.
독일 뮌헨의 한인 유학생 단체.
퇴수회 (退修會)
독일 뮌헨의 한인 유학생 단체.
1963년 10월 27일에 결성된 독일의 한인 단체.
재독한인회 (在獨韓人會)
1963년 10월 27일에 결성된 독일의 한인 단체.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는 1974년 3월에 독일 본에서 조직된 한인 민주화 운동 단체이다. 독일 유학생들과 거주 한인들은 1974년 5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군부독재와 유신 체제 타도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며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1979년 3월 1일에는 통일 문제를 포함한 반독재 민주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두 번째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74년 기관지 『광장』을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민주한국』을 발간하였다. 1984년~1985년 경부터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 (在獨民主社會建設協議會)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는 1974년 3월에 독일 본에서 조직된 한인 민주화 운동 단체이다. 독일 유학생들과 거주 한인들은 1974년 5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군부독재와 유신 체제 타도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며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1979년 3월 1일에는 통일 문제를 포함한 반독재 민주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두 번째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74년 기관지 『광장』을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민주한국』을 발간하였다. 1984년~1985년 경부터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1984년 11월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서 결성된 독일 유학생 단체.
재유럽민주청년연합 (在Europe民主靑年聯合)
1984년 11월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서 결성된 독일 유학생 단체.
1975년 11월 30일에 결성된 독일의 한인 노동자 단체.
재독한인노동자연맹 (在獨韓人勞動者聯盟)
1975년 11월 30일에 결성된 독일의 한인 노동자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