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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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김녕굴은 김녕사굴 또는 사굴로도 불렸다. 동굴 모양이 S자형의 구불구불한 형태로 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과 동굴에 주민들을 괴롭혀온 거대한 구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제주판관 서린이 이를 퇴치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원래는 이웃한 만장굴과 하나의 동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동굴계 중간 지점이 함몰되면서 나누어졌다. 총 길이는 705m이다. 동굴 내부 천장이 높고 폭이 넒어 대규모 동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녕굴 (金寧窟)
김녕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김녕굴은 김녕사굴 또는 사굴로도 불렸다. 동굴 모양이 S자형의 구불구불한 형태로 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과 동굴에 주민들을 괴롭혀온 거대한 구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제주판관 서린이 이를 퇴치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원래는 이웃한 만장굴과 하나의 동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동굴계 중간 지점이 함몰되면서 나누어졌다. 총 길이는 705m이다. 동굴 내부 천장이 높고 폭이 넒어 대규모 동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덕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용암 동굴이다. 덕천굴은 과거 학술보고서에서 길이 232m의 만장굴 동굴 시스템 일부로 보고되었으나, 풍화와 낙반으로 훼손이 심하고 입구가 노출된 상태로 기록되었다. 2003년과 2020년 조사에서 입구를 확인하지 못했고, 해당 지역은 현재 함몰 지형으로 나타난다.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는 웃산전굴, 북오름굴 등 상류 동굴군이 분포한 지역으로, 덕천굴이 붕괴로 소실되었거나 북오름굴 등과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덕천굴 (德泉窟)
덕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용암 동굴이다. 덕천굴은 과거 학술보고서에서 길이 232m의 만장굴 동굴 시스템 일부로 보고되었으나, 풍화와 낙반으로 훼손이 심하고 입구가 노출된 상태로 기록되었다. 2003년과 2020년 조사에서 입구를 확인하지 못했고, 해당 지역은 현재 함몰 지형으로 나타난다.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는 웃산전굴, 북오름굴 등 상류 동굴군이 분포한 지역으로, 덕천굴이 붕괴로 소실되었거나 북오름굴 등과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만장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만쟁이거멀’이라는 지명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의 대표 동굴이다. 총 길이 약 7.4㎞의 다층 구조를 이루며, 약 8,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 높이는 약 23m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7.6m의 용암석주를 비롯해 다양한 용암 생성물이 발달해 있다. 1946년 김녕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 제2입구에서 약 1㎞ 구간만 개방되어 있다. 1962년 김녕굴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만장굴 (萬丈窟)
만장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만쟁이거멀’이라는 지명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의 대표 동굴이다. 총 길이 약 7.4㎞의 다층 구조를 이루며, 약 8,0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 높이는 약 23m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7.6m의 용암석주를 비롯해 다양한 용암 생성물이 발달해 있다. 1946년 김녕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 제2입구에서 약 1㎞ 구간만 개방되어 있다. 1962년 김녕굴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미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미천이마루’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현재는 ‘천 가지 아름다움을 지닌 동굴’로도 소개된다. 총 길이 약 1.7㎞의 수평형 용암 동굴이며, 이 중 0.4㎞ 구간이 개방되어 있다. 우기에는 지하수와 빗물이 많이 유입되며, 용암선반과 용암교 같은 독특한 지형이 잘 발달해 있다. 2002년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었으나, 인위적 시설물 설치로 동굴 원형의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미천굴 (美千窟)
미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미천이마루’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현재는 ‘천 가지 아름다움을 지닌 동굴’로도 소개된다. 총 길이 약 1.7㎞의 수평형 용암 동굴이며, 이 중 0.4㎞ 구간이 개방되어 있다. 우기에는 지하수와 빗물이 많이 유입되며, 용암선반과 용암교 같은 독특한 지형이 잘 발달해 있다. 2002년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었으나, 인위적 시설물 설치로 동굴 원형의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소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소천굴은 ‘밝게 비추는 하늘의 동굴’이라는 뜻으로, 제2입구 주변의 양치식물 군락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 동굴은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에 속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총 길이 약 4.2㎞에 달하는 대형 용암 동굴로, 3개의 수직 입구와 다양한 지형지물 및 동굴 생성물이 발달해 있다. 약 700m에 걸쳐 형성된 ‘튜브 인 튜브’ 지형은 동굴 내부에 또 다른 동굴이 형성된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조로 주목받는다.
소천굴 (昭天窟)
소천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소천굴은 ‘밝게 비추는 하늘의 동굴’이라는 뜻으로, 제2입구 주변의 양치식물 군락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 동굴은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에 속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총 길이 약 4.2㎞에 달하는 대형 용암 동굴로, 3개의 수직 입구와 다양한 지형지물 및 동굴 생성물이 발달해 있다. 약 700m에 걸쳐 형성된 ‘튜브 인 튜브’ 지형은 동굴 내부에 또 다른 동굴이 형성된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조로 주목받는다.
수산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평탄한 용암대지 위 초지에 형성된 수산굴은 북북서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흐른 용암이 지형에 부딪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만들어졌다. 총 길이 약 4.85㎞로, 제주 용암 동굴 중 천장 붕락과 낙반 현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곳이며, 2~3층 구조도 일부 구간에서 확인된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주석, 용암폭포, 튜브 인 튜브 구조 등 다양한 미지형이 발달해 있고, 최상류에서는 규암 포획암도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수산굴 (水山窟)
수산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평탄한 용암대지 위 초지에 형성된 수산굴은 북북서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흐른 용암이 지형에 부딪혀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만들어졌다. 총 길이 약 4.85㎞로, 제주 용암 동굴 중 천장 붕락과 낙반 현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곳이며, 2~3층 구조도 일부 구간에서 확인된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주석, 용암폭포, 튜브 인 튜브 구조 등 다양한 미지형이 발달해 있고, 최상류에서는 규암 포획암도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상명리, 금능리 일대에 분포하는 용암 동굴 시스템이다. 표선리현무암 위에 탄산염 패각층이 덮여 있어 독특한 지질구조를 이룬다. 특히 협재 지역의 모래층은 일반 사구층과 달리 해저 기원이 강한 ‘협재 고해빈-내만사층’으로 분석된다. 이 지역에는 협재굴, 쌍룡굴, 황금굴, 소천굴 등 천연기념물이 다수 분포하며, 일부는 인위적 훼손으로부터 보호되고 있으나, 낙반·붕괴 우려가 있는 동굴도 존재해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필요하다.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소천굴, 황금굴, 협재굴) (濟州 翰林 熔岩洞窟地帶(昭天窟|狹才窟)|黃金窟)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상명리, 금능리 일대에 분포하는 용암 동굴 시스템이다. 표선리현무암 위에 탄산염 패각층이 덮여 있어 독특한 지질구조를 이룬다. 특히 협재 지역의 모래층은 일반 사구층과 달리 해저 기원이 강한 ‘협재 고해빈-내만사층’으로 분석된다. 이 지역에는 협재굴, 쌍룡굴, 황금굴, 소천굴 등 천연기념물이 다수 분포하며, 일부는 인위적 훼손으로부터 보호되고 있으나, 낙반·붕괴 우려가 있는 동굴도 존재해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필요하다.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빌레못굴은 인근에 위치한 빌레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주굴보다 지굴이 복잡한 망상형 미로굴이다. 일부는 다층구조로, 함몰과 낙반이 산재해 지반 안정성이 낮다. 동굴 길이는 약 9~11㎞로 추정되며, 정확한 측량이 필요한 상태다. 1971년 제주산악회가 처음 탐사했고, 1973년에는 구석기 유물과 동물 화석이 발견되었다. 내부에는 용암석순, 규산질 석주, 용암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며, 198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 (濟州 於音里 빌레못洞窟)
제주 어음리 빌레못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빌레못굴은 인근에 위치한 빌레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주굴보다 지굴이 복잡한 망상형 미로굴이다. 일부는 다층구조로, 함몰과 낙반이 산재해 지반 안정성이 낮다. 동굴 길이는 약 9~11㎞로 추정되며, 정확한 측량이 필요한 상태다. 1971년 제주산악회가 처음 탐사했고, 1973년에는 구석기 유물과 동물 화석이 발견되었다. 내부에는 용암석순, 규산질 석주, 용암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며, 198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초깃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북서–북동 방향의 함몰 지형에 발달한 복잡한 미로형 용암 동굴로, 총 길이는 약 1.29㎞에 달하고 입구는 15개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주석, 용암유선 등 다양한 용암 지형과 생성물이 잘 발달해 있다. 과거에는 젓갈 숙성, 버섯 배양 등으로 이용되며 훼손되었고, 현재는 원형이 많이 손상된 상태다.
초깃굴 (초깃窟)
초깃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북서–북동 방향의 함몰 지형에 발달한 복잡한 미로형 용암 동굴로, 총 길이는 약 1.29㎞에 달하고 입구는 15개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주석, 용암유선 등 다양한 용암 지형과 생성물이 잘 발달해 있다. 과거에는 젓갈 숙성, 버섯 배양 등으로 이용되며 훼손되었고, 현재는 원형이 많이 손상된 상태다.
협재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립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태생은 용암 동굴이지만, 천장에 종유관, 종유석, 석순 등이 밀집해 있어 석회동굴처럼 보이는 독특한 경관을 지닌다. 이는 동굴 상부의 사구층에서 녹아든 탄산염 성분이 빗물과 함께 침투한 결과이다. 길이 101m로 쌍룡굴과 연결되어 있으며, 만장굴과 함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대표하는 개방 동굴이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중이다.
협재굴 (狹才窟)
협재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립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태생은 용암 동굴이지만, 천장에 종유관, 종유석, 석순 등이 밀집해 있어 석회동굴처럼 보이는 독특한 경관을 지닌다. 이는 동굴 상부의 사구층에서 녹아든 탄산염 성분이 빗물과 함께 침투한 결과이다. 길이 101m로 쌍룡굴과 연결되어 있으며, 만장굴과 함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대표하는 개방 동굴이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중이다.
황금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1969년 한림공원 일대에서 발견되었고, 천장에 매달린 종유관과 종유석이 황금빛 궁전을 연상시킨다 하여 황금굴로 명명되었다. 조개껍질 등으로 이루어진 사구층 아래에 위치해 탄산염 생성물이 발달했으며, 태생은 용암 동굴이나 석회동굴의 특징을 함께 지닌다. 길이 약 180m로, 협재굴·쌍룡굴·소천굴과 함께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를 이루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며 일반에는 비공개 상태다.
황금굴 (黃金窟)
황금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용암 동굴이다. 1969년 한림공원 일대에서 발견되었고, 천장에 매달린 종유관과 종유석이 황금빛 궁전을 연상시킨다 하여 황금굴로 명명되었다. 조개껍질 등으로 이루어진 사구층 아래에 위치해 탄산염 생성물이 발달했으며, 태생은 용암 동굴이나 석회동굴의 특징을 함께 지닌다. 길이 약 180m로, 협재굴·쌍룡굴·소천굴과 함께 제주 한림 용암동굴지대를 이루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며 일반에는 비공개 상태다.
곶자왈은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다. 1만 년 전후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곶자왈은 제주 전체 면적의 약 5%를 차지하며, 생물다양성과 지하수 함양 기능으로 인해 ‘제주의 허파’로 불린다. 특히 세계 유일의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로서 생태학적 가치가 높다. 개발로 인한 훼손 우려에 대응해, 2007년부터 곶자왈 공유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곶자왈
곶자왈은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다. 1만 년 전후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곶자왈은 제주 전체 면적의 약 5%를 차지하며, 생물다양성과 지하수 함양 기능으로 인해 ‘제주의 허파’로 불린다. 특히 세계 유일의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로서 생태학적 가치가 높다. 개발로 인한 훼손 우려에 대응해, 2007년부터 곶자왈 공유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용천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용암 동굴이다. 조개껍질 등 탄산염 퇴적층 위에 형성된 용암 동굴로, 총 길이 약 3.4㎞에 이른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종유, 동굴호수, 스파이크형 종유석 등 다양한 미지형과 탄산염 생성물이 화려하게 발달해 있다. 2005년 전신주 공사 중 발견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통일신라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도 크다.
제주 용천동굴 (濟州 龍泉洞窟)
용천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용암 동굴이다. 조개껍질 등 탄산염 퇴적층 위에 형성된 용암 동굴로, 총 길이 약 3.4㎞에 이른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종유, 동굴호수, 스파이크형 종유석 등 다양한 미지형과 탄산염 생성물이 화려하게 발달해 있다. 2005년 전신주 공사 중 발견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통일신라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도 크다.
신장은 조선 태종~세종 대의 문신이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고, 세종 대 창설된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조~성종 대 중요한 대신인 신숙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신장 (申檣)
신장은 조선 태종~세종 대의 문신이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고, 세종 대 창설된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조~성종 대 중요한 대신인 신숙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 (燕山君)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자는 조선 전기 홍문관 정자·저작·박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연산군 때 홍문관 정자·저작·박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폭정을 자행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경연에서 강력히 간언하다가 외직인 함창현감(咸昌縣監)으로 보임되었다. 거기서 여씨향약(呂氏鄕約)[^1]을 보급해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개선하였다고 한다.
이자 (李滋)
이자는 조선 전기 홍문관 정자·저작·박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연산군 때 홍문관 정자·저작·박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폭정을 자행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경연에서 강력히 간언하다가 외직인 함창현감(咸昌縣監)으로 보임되었다. 거기서 여씨향약(呂氏鄕約)[^1]을 보급해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개선하였다고 한다.
박삼길은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대에 예조좌랑,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나, 아버지의 권고로 학업에 매진해 29세 때인 1471년(성종 2) 진사시에 입격하고, 147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문신 가운데 무재(武才)가 있는 인물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연산군이 폐출되게 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청빈하게 생활하며 교육에 힘썼다.
박삼길 (朴三吉)
박삼길은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대에 예조좌랑,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나, 아버지의 권고로 학업에 매진해 29세 때인 1471년(성종 2) 진사시에 입격하고, 147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문신 가운데 무재(武才)가 있는 인물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연산군이 폐출되게 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청빈하게 생활하며 교육에 힘썼다.
사림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뜻으로 유교적 지식을 갖춘 지배층을 이르던 말이다. 문무 관원, 특히 삼사(三司) 등의 청요직(淸要職)에 재직한 문반과 유생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사림파'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조선 전기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사림 (士林)
사림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뜻으로 유교적 지식을 갖춘 지배층을 이르던 말이다. 문무 관원, 특히 삼사(三司) 등의 청요직(淸要職)에 재직한 문반과 유생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사림파'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조선 전기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사림파 (士林派)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사화는 조선 전기 조신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이다. 발생한 해의 간지를 따라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불린다. 1970년대 이후 현대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勳舊派)’가 ‘사림파(士林派)’를 탄압한 사건으로 평가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대간(臺諫)의 활동과 위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사화 (士禍)
사화는 조선 전기 조신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이다. 발생한 해의 간지를 따라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불린다. 1970년대 이후 현대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勳舊派)’가 ‘사림파(士林派)’를 탄압한 사건으로 평가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대간(臺諫)의 활동과 위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