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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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화중앙은 소련 말기 소련 각지의 지역단위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고려인 문화자치 단체이며, 고려인협회 지방조직 명칭이다. 개별 민족단위의 독자성이 인정되던 시기에 소련 고려인의 입지 확보 및 정체성 공고화를 위해 조직되었다. 소련 말기 고려인들의 문화중앙(문화센터) 설립 움직임은 타슈켄트, 알마티, 모스크바 및 여러 도시에서 나타났다. 소련 붕괴이후 위치하고 있는 개별 국가에서 고려인을 대표하는 단체로 확대 및 발전되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국가와 역사적인 모국인 한국간의 관계 발전에 있어서 매개체로써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고려문화중앙 (高麗文化中央)
고려문화중앙은 소련 말기 소련 각지의 지역단위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고려인 문화자치 단체이며, 고려인협회 지방조직 명칭이다. 개별 민족단위의 독자성이 인정되던 시기에 소련 고려인의 입지 확보 및 정체성 공고화를 위해 조직되었다. 소련 말기 고려인들의 문화중앙(문화센터) 설립 움직임은 타슈켄트, 알마티, 모스크바 및 여러 도시에서 나타났다. 소련 붕괴이후 위치하고 있는 개별 국가에서 고려인을 대표하는 단체로 확대 및 발전되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국가와 역사적인 모국인 한국간의 관계 발전에 있어서 매개체로써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1917년 6월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이르쿠츠크 이동의 각지 대표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로한족대표회의에 참가한 러시아 국적자 이주한인(원호인)들의 주도로 형성된 시베리아 임시정부 지지성향의 반볼세비키 성격 한인모임.
고려족중앙총회 (高麗族中央總會)
1917년 6월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이르쿠츠크 이동의 각지 대표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로한족대표회의에 참가한 러시아 국적자 이주한인(원호인)들의 주도로 형성된 시베리아 임시정부 지지성향의 반볼세비키 성격 한인모임.
선봉 콜호즈는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 칠리구역에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콜호즈)이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아방가르드(선봉)’ 콜호즈는 설립초기부터 벼농사에서 경이적인 생산량 증가를 보여주었다. 이 결과 소련정부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고, 김만삼 등 많은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들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선봉 콜호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농업생산 및 인구의 공백을 메우고 카자흐스탄을 소련 벼농사의 중심지대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봉 콜호즈 (先鋒 kolkhoz)
선봉 콜호즈는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 칠리구역에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콜호즈)이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 중심으로 결성된 ‘아방가르드(선봉)’ 콜호즈는 설립초기부터 벼농사에서 경이적인 생산량 증가를 보여주었다. 이 결과 소련정부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고, 김만삼 등 많은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들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선봉 콜호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농업생산 및 인구의 공백을 메우고 카자흐스탄을 소련 벼농사의 중심지대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7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채정학을 대표자로 설립한 고려인 집단농장이다. 1938년 ‘제삼인터네셔널 ’로 개명되었다. 고려인들을 공동체로 결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이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 농업 뿐만 아니라 축산업 분야까지 갖춘 대형 콜호즈로 변모했고, 농장 기반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부터 고려인 젊은 세대들의 이농현상이 점점 심화됨에 따라 현재는 토착민족인 카자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동체로 변모되어 있는 상황이다. 고려인 노동영웅들이 다수 배출된 농장으로 유명하다.
제3인터네셔널 콜호즈 (第三International kolkhoz)
1937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채정학을 대표자로 설립한 고려인 집단농장이다. 1938년 ‘제삼인터네셔널 ’로 개명되었다. 고려인들을 공동체로 결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벼농사 전문 집단농장이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 농업 뿐만 아니라 축산업 분야까지 갖춘 대형 콜호즈로 변모했고, 농장 기반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부터 고려인 젊은 세대들의 이농현상이 점점 심화됨에 따라 현재는 토착민족인 카자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동체로 변모되어 있는 상황이다. 고려인 노동영웅들이 다수 배출된 농장으로 유명하다.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알마티(Almty)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글-러시아어 신문.
고려일보 (高麗日報)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알마티(Almty)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글-러시아어 신문.
김준은 해방 이후 소련에서 『십오만원사건』, 『땅의 향기』 등을 저술한 작가로, 고려인이자 언론인이다. 1900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동학원을 졸업한 뒤, 『선봉』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문학가의 길을 걸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으며, 1946년부터는 한인신문사 『레닌기치』에서 근무했다. 그의 소설과 시는 당시 소련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을 배경으로 독립군의 활동이나 지주 계급을 타파한 사회주의를 다루어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김준
김준은 해방 이후 소련에서 『십오만원사건』, 『땅의 향기』 등을 저술한 작가로, 고려인이자 언론인이다. 1900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동학원을 졸업한 뒤, 『선봉』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문학가의 길을 걸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으며, 1946년부터는 한인신문사 『레닌기치』에서 근무했다. 그의 소설과 시는 당시 소련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을 배경으로 독립군의 활동이나 지주 계급을 타파한 사회주의를 다루어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고려말은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등지에서 고려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고려인은 1863년 이후 함북에서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하였다. 1937년 러시아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옮겼다. 현재는 소수 노년층이 함경도 방언에 기층을 두고 구사하는 한국어를 고려말이라고 한다. 고려말은 한국어 방언의 일종으로 동북 방언과 가장 가깝다. 한국어와 교류가 적어 현재도 옛말을 꽤 보존하고 있다. 고려말은 러시아어의 지배적인 영향을 받아 왔으며, 현실적인 이유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고려말 보존과 육성을 위한 학문적인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고려말 (高麗말)
고려말은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 등지에서 고려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고려인은 1863년 이후 함북에서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하였다. 1937년 러시아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옮겼다. 현재는 소수 노년층이 함경도 방언에 기층을 두고 구사하는 한국어를 고려말이라고 한다. 고려말은 한국어 방언의 일종으로 동북 방언과 가장 가깝다. 한국어와 교류가 적어 현재도 옛말을 꽤 보존하고 있다. 고려말은 러시아어의 지배적인 영향을 받아 왔으며, 현실적인 이유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고려말 보존과 육성을 위한 학문적인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자유시사변은 1921년 러시아 자유시에서 독립군 부대와 러시아 적군이 교전한 사건이다. 흑하사변이라고도 한다. 소련은 차르 정권이 몰락한 혼란을 틈타 시베리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협상을 통해 철수시키려 했다. 그러자 일제는 소련 영내에 집결해 있던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소련은 대한독립군을 볼셰비키로 흡수하여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무장해제 명령을 내렸다. 상해 고려공산당의 입장을 따르던 독립군이 이에 불응하자 공격을 감행하여 사망자 272명 등 6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었다.
자유시사변 (自由市事變)
자유시사변은 1921년 러시아 자유시에서 독립군 부대와 러시아 적군이 교전한 사건이다. 흑하사변이라고도 한다. 소련은 차르 정권이 몰락한 혼란을 틈타 시베리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협상을 통해 철수시키려 했다. 그러자 일제는 소련 영내에 집결해 있던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소련은 대한독립군을 볼셰비키로 흡수하여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무장해제 명령을 내렸다. 상해 고려공산당의 입장을 따르던 독립군이 이에 불응하자 공격을 감행하여 사망자 272명 등 6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설립되어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로 이전되어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인 공연예술(연극, 음악, 무용) 단체 및 극장.
고려극장 (高麗劇場)
러시아 연해주에서 설립되어 강제이주 이후 카자흐스탄로 이전되어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인 공연예술(연극, 음악, 무용) 단체 및 극장.
소련에서 강제이주를 당할 때, 고려극장 운영에 관여하며 연출가, 희곡작가, 작곡가, 배우 등으로 활동한 {고려인 예술가}.
연성용
소련에서 강제이주를 당할 때, 고려극장 운영에 관여하며 연출가, 희곡작가, 작곡가, 배우 등으로 활동한 {고려인 예술가}.
김만삼은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아들 김홍빈과 함께 선봉 콜호즈를 세웠으며, 벼농사 확산 및 품종 개발에 기여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28년∼1929년에 소련은 산업 집단화를 추진하였는데, 이 때 김만삼은 연해주에 설치된 벼농사 콜호즈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37년 카자흐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한 뒤에는 종자와 종업기술 개선, 물 대는 방법, 광물비료 사용 등으로 수확량을 늘려 농업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 공로로 1947년 국가상을 받았으며, 1948년에는 '사회주의 노력영웅'으로 불려졌다.
김만삼
김만삼은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아들 김홍빈과 함께 선봉 콜호즈를 세웠으며, 벼농사 확산 및 품종 개발에 기여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28년∼1929년에 소련은 산업 집단화를 추진하였는데, 이 때 김만삼은 연해주에 설치된 벼농사 콜호즈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37년 카자흐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한 뒤에는 종자와 종업기술 개선, 물 대는 방법, 광물비료 사용 등으로 수확량을 늘려 농업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 공로로 1947년 국가상을 받았으며, 1948년에는 '사회주의 노력영웅'으로 불려졌다.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다반군대 (다반軍隊)
다반군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주의 한인 마을인 다반에서 조직된 한인 빨치산부대이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조직되고 산하에 적위군이 편성되었다. 적위군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함락·해산되었다. 이후 하바롭스크 동쪽 다반이라는 한인 마을에서 조직된 부대가 다반군대이다. 1919년 이후 러시아 빨치산부대와 협력해 하바롭스크 해방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0년 4월참변 이후 블라고베센스크로 이동해 러시아 인민혁명군 8연대에 배속되었다. 다반군대는 한인사회당이 볼셰비키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전한군사위원회는 1921년 3월 15일 러시아 아무르주 마사노프시에서 열린 전한의병대의회에서 조직된 한인 최고 군사조직이다. 1921년 러시아 자유시(스바보드니)에 약 4,500명의 한인 무장부대가 집결했다. 대한국민의회의의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했던 자유대대와 아무르주 한인공산당의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했던 사할린의용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무장부대 통합을 위해 전한의병대회를 열고 전한군사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르쿠츠크에서 고려혁명군정의회가 설립되면서 전한군사위원회와 대립하였다. 결국 1921년 6월 양 세력이 충돌하는 자유시사변이 발생하였다.
전한군사위원회 (全韓軍事委員會)
전한군사위원회는 1921년 3월 15일 러시아 아무르주 마사노프시에서 열린 전한의병대의회에서 조직된 한인 최고 군사조직이다. 1921년 러시아 자유시(스바보드니)에 약 4,500명의 한인 무장부대가 집결했다. 대한국민의회의의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했던 자유대대와 아무르주 한인공산당의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했던 사할린의용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무장부대 통합을 위해 전한의병대회를 열고 전한군사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르쿠츠크에서 고려혁명군정의회가 설립되면서 전한군사위원회와 대립하였다. 결국 1921년 6월 양 세력이 충돌하는 자유시사변이 발생하였다.
1918년에 이동휘(李東輝)가 중심이 돼 조직한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韓人社會黨)
1918년에 이동휘(李東輝)가 중심이 돼 조직한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으며, 「나의 가르노」, 「밭 갈던 아씨에게」 등의 시, 단편, 수필을 저술한 {고려인 문인}.
강태수
소련에서 카자흐공화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으며, 「나의 가르노」, 「밭 갈던 아씨에게」 등의 시, 단편, 수필을 저술한 {고려인 문인}.
김세일은 해방 이후 레닌기치 기자를 역임한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1912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연해주에 있었던 조선사범대를 졸업하고,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레닌기치』의 기자가 되었다. 소련의 대일전쟁에 참전하였으며, 평양에서 소련군 신문기자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1954년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1968년부터 2년간 소련에서 발행된 한글신문 『레닌기치』에 연재한 장편소설 「홍범도」는 고려인 전체의 역사와 현재적 삶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고려인의 뿌리찾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고려인 한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세일
김세일은 해방 이후 레닌기치 기자를 역임한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1912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연해주에 있었던 조선사범대를 졸업하고,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레닌기치』의 기자가 되었다. 소련의 대일전쟁에 참전하였으며, 평양에서 소련군 신문기자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1954년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1968년부터 2년간 소련에서 발행된 한글신문 『레닌기치』에 연재한 장편소설 「홍범도」는 고려인 전체의 역사와 현재적 삶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고려인의 뿌리찾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고려인 한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고려인빨치산은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에 소련 극동 지역에서 활동한 한인 무장 투쟁 단체이다. 연해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한인 독립운동 세력은 볼셰비키를 지지하며 적군에 가담해 일본을 지지하는 반혁명 세력인 백군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연해주가 백군에 점령되자 빨치산 부대를 조직해 저항하였다. 아무르주에서 박 일리야, 최 니콜라이, 연해주에서 최호림, 김하정이 부대를 조직했다. 상당수는 소련 정규 군대에 편입되어 적군의 중급 및 고급 지휘관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뒤에는 중앙아시아 한인 사회 형성에 기여하였다.
고려인 빨치산 (高麗人 ←partizan)
고려인빨치산은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에 소련 극동 지역에서 활동한 한인 무장 투쟁 단체이다. 연해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한인 독립운동 세력은 볼셰비키를 지지하며 적군에 가담해 일본을 지지하는 반혁명 세력인 백군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연해주가 백군에 점령되자 빨치산 부대를 조직해 저항하였다. 아무르주에서 박 일리야, 최 니콜라이, 연해주에서 최호림, 김하정이 부대를 조직했다. 상당수는 소련 정규 군대에 편입되어 적군의 중급 및 고급 지휘관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뒤에는 중앙아시아 한인 사회 형성에 기여하였다.
소련 연해주 공산당 당위원회의 기관지로 1923년에 창간한 신문.
선봉 (先鋒)
소련 연해주 공산당 당위원회의 기관지로 1923년에 창간한 신문.
『십오만원사건』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작가인 김준이 연변지역 항일독립운동인 ‘15만원 탈취 사건’을 소재로 1964년에 저술한 장편소설이다. 연변 지역 항일독립운동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15만 원 탈취사건은 1920년대 무장독립조직인 ‘북로군정서’ 소속 철혈광복단 단원 6명이 조선총독부가 수송하는 15만 원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 사건이다. 실제 사건의 주도자였던 최봉설의 증언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당시 소련(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인 독자들이 접할 수 있었던 한글 소설이다. 고려인의 역사복원 의지와 자존심 회복을 문학작품을 통해 표출한 작품이다.
십오만원사건 (十五萬圓事件)
『십오만원사건』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작가인 김준이 연변지역 항일독립운동인 ‘15만원 탈취 사건’을 소재로 1964년에 저술한 장편소설이다. 연변 지역 항일독립운동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15만 원 탈취사건은 1920년대 무장독립조직인 ‘북로군정서’ 소속 철혈광복단 단원 6명이 조선총독부가 수송하는 15만 원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 사건이다. 실제 사건의 주도자였던 최봉설의 증언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당시 소련(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인 독자들이 접할 수 있었던 한글 소설이다. 고려인의 역사복원 의지와 자존심 회복을 문학작품을 통해 표출한 작품이다.
「홍범도」는 김세일이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사와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모스크바 거주 고려인 작가 김세일(김 세르게이 표도르비치)이 홍범도가 직접 쓴 「홍범도 일기」와 이인섭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레닌기치』에 ‘소설 홍범도’의 제목으로 연재하였다. 이 작품은 홍범도와 허구의 인물을 드러내지만, 현실에 대한 투철한 상황인식이 작품에 내포되어 있는 실증적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세일의 「홍범도」는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적 삶의 과정이 응축되어 있으며, 고려인들의 뿌리찾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고려인 한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홍범도 (洪範圖)
「홍범도」는 김세일이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사와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모스크바 거주 고려인 작가 김세일(김 세르게이 표도르비치)이 홍범도가 직접 쓴 「홍범도 일기」와 이인섭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레닌기치』에 ‘소설 홍범도’의 제목으로 연재하였다. 이 작품은 홍범도와 허구의 인물을 드러내지만, 현실에 대한 투철한 상황인식이 작품에 내포되어 있는 실증적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세일의 「홍범도」는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적 삶의 과정이 응축되어 있으며, 고려인들의 뿌리찾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고려인 한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