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류승민"
검색결과 총 20건
김건종은 조선 후기에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178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화업에 종사한 주요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호리건곤도」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김건종 (金建種)
김건종은 조선 후기에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178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화업에 종사한 주요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호리건곤도」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김기서는 조선 후기 「단발령도」를 그린 화가, 문신이다. 1766년에 태어나 1822년에 사망했다. 명필 배와 김상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상복에게 입적됐다. 당쟁으로 낙향하여 고향인 충청도 홍성에서 주로 생활했다. 서화에 관심이 많았고, 문집 『화초만고』를 남겼다.
김기서 (金箕書)
김기서는 조선 후기 「단발령도」를 그린 화가, 문신이다. 1766년에 태어나 1822년에 사망했다. 명필 배와 김상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상복에게 입적됐다. 당쟁으로 낙향하여 고향인 충청도 홍성에서 주로 생활했다. 서화에 관심이 많았고, 문집 『화초만고』를 남겼다.
김덕하는 조선 후기 「사계산수도권」, 「목동오수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보류를 통해 전통적 도상을 습득하여 화원으로서의 기량을 갖추었다. 아버지 김두량과 함께 대작 「춘하도리원호흥경도」와 「추동전원행렵승회도」를 제작하였고, 숙종 어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김덕하 (金德夏)
김덕하는 조선 후기 「사계산수도권」, 「목동오수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보류를 통해 전통적 도상을 습득하여 화원으로서의 기량을 갖추었다. 아버지 김두량과 함께 대작 「춘하도리원호흥경도」와 「추동전원행렵승회도」를 제작하였고, 숙종 어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김두량 (金斗樑)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김수규 (金壽奎)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김수증은 조선 후기에 『곡운집』, 『곡운구곡도첩』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전서와 예서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여 예서에서 독특한 서풍을 이루었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정치·문화에 영향력이 컸던 안동 김씨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이 그의 아우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일찍 물러나 강원도 화천에서 은거하였고,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추구한 은거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김수증 (金壽增)
김수증은 조선 후기에 『곡운집』, 『곡운구곡도첩』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전서와 예서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여 예서에서 독특한 서풍을 이루었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정치·문화에 영향력이 컸던 안동 김씨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이 그의 아우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일찍 물러나 강원도 화천에서 은거하였고,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추구한 은거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김양신은 조선 후기에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이다. 1765년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응리, 큰아버지는 김응환이다. 형인 김득신과 김석신, 아들 김순종과 김은종, 손자 김제무까지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사실로 보아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김양신 (金良臣)
김양신은 조선 후기에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이다. 1765년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응리, 큰아버지는 김응환이다. 형인 김득신과 김석신, 아들 김순종과 김은종, 손자 김제무까지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사실로 보아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김영은 조선 후기에 「우후산수도」, 「산수십곡병풍」 등의 작품을 그린 여항 시인이자 화가이다. 1837년에 태어나 1917년경 사망했다. 1863년부터 칠송정시사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나 '삼절'로 불리기도 했다.
김영 (金瑛)
김영은 조선 후기에 「우후산수도」, 「산수십곡병풍」 등의 작품을 그린 여항 시인이자 화가이다. 1837년에 태어나 1917년경 사망했다. 1863년부터 칠송정시사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나 '삼절'로 불리기도 했다.
김유성은 조선 후기에 통신사를 수행하여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1757년에 수종화사로서 어진을 중수한 기록이 있고, 1763년에 참여한 계미통신사행에는 정3품 절충장군으로 차출되어 조선 문화를 선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본 현지의 지식인들에게 회화의 정통을 지녔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금강산도」가 있다.
김유성 (金有聲)
김유성은 조선 후기에 통신사를 수행하여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1757년에 수종화사로서 어진을 중수한 기록이 있고, 1763년에 참여한 계미통신사행에는 정3품 절충장군으로 차출되어 조선 문화를 선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본 현지의 지식인들에게 회화의 정통을 지녔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금강산도」가 있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학자, 서화가이다. 어려서 박제가와 같은 석학에게 배웠고, 24세에 참여한 사행 때 청의 학자들과 만난 후 학문에 진전을 크게 이루어 조선의 금석학을 일신하고 서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1840년에는 제주 유배객이 되어 9년 동안 위리안치형을 당했지만, 유배 생활도 그의 내공으로 작용하여 걸작 「세한도」를 그렸다. 세속과 무관한 자가풍의 글씨와 학술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김정희 (金正喜)
김정희는 조선 후기에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학자, 서화가이다. 어려서 박제가와 같은 석학에게 배웠고, 24세에 참여한 사행 때 청의 학자들과 만난 후 학문에 진전을 크게 이루어 조선의 금석학을 일신하고 서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1840년에는 제주 유배객이 되어 9년 동안 위리안치형을 당했지만, 유배 생활도 그의 내공으로 작용하여 걸작 「세한도」를 그렸다. 세속과 무관한 자가풍의 글씨와 학술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박기준 (朴基駿)
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박유성은 조선 후기에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우가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도해를 맡았으며, 정조 국장에는 산릉도감에 속하여 석각을 담당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인문, 김홍도와 교유하였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박유성 (朴維城)
박유성은 조선 후기에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우가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도해를 맡았으며, 정조 국장에는 산릉도감에 속하여 석각을 담당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인문, 김홍도와 교유하였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백은배는 조선 후기에 「신선도」, 「해상군선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을 여러 명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조선 철종부터 고종 시대까지 도화서에서 활동하였다. 도화서 자비대령화원으로 30여 년 동안 봉직하면서 녹취재에 꾸준히 응시하였고, 국장도감, 어진 도사 등에 참여했다.
백은배 (白殷培)
백은배는 조선 후기에 「신선도」, 「해상군선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을 여러 명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조선 철종부터 고종 시대까지 도화서에서 활동하였다. 도화서 자비대령화원으로 30여 년 동안 봉직하면서 녹취재에 꾸준히 응시하였고, 국장도감, 어진 도사 등에 참여했다.
변박은 조선 후기에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도화서에 소속되지 않은 동래부 지역 화가였다. 1760년에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로 조엄의 인정을 받아 1763년 통신사행에 참여하였다. 일본에도 그가 그린 작품이 몇 점 남아 있다.
변박 (卞璞)
변박은 조선 후기에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도화서에 소속되지 않은 동래부 지역 화가였다. 1760년에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로 조엄의 인정을 받아 1763년 통신사행에 참여하였다. 일본에도 그가 그린 작품이 몇 점 남아 있다.
심정주는 조선 후기 「산수도」, 「묵포도도」 등의 작품을 그린 사대부 화가이다. 아버지 심익창이 연잉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관료로 나아갈 수 없었다. 포도 그림으로 유명했던 장인 정유점의 영향을 받아 「묵포도도」로 이름이 났다. 아들이 18세기 문인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심사정이다.
심정주 (沈廷胄)
심정주는 조선 후기 「산수도」, 「묵포도도」 등의 작품을 그린 사대부 화가이다. 아버지 심익창이 연잉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관료로 나아갈 수 없었다. 포도 그림으로 유명했던 장인 정유점의 영향을 받아 「묵포도도」로 이름이 났다. 아들이 18세기 문인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심사정이다.
유한준은 조선 후기 『저암집』을 저술한 문장가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경화세족인 기계 유씨 출신이다. 문과에 응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문학 창작과 이론 연구에 매진하였다. 당대의 서화가 및 수장가들과 교유하였으며, 김광국의 『석농화원』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유한준 (兪漢雋)
유한준은 조선 후기 『저암집』을 저술한 문장가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경화세족인 기계 유씨 출신이다. 문과에 응시하지 않고 자유로운 문학 창작과 이론 연구에 매진하였다. 당대의 서화가 및 수장가들과 교유하였으며, 김광국의 『석농화원』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윤덕희는 조선 후기 「동경산수도」, 「마상부인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윤두서의 맏아들로 태어나 서울과 해남을 오가며 활동했다.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화법을 충실히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데에 이르렀다. 정형산수화부터 진경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말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윤덕희 (尹德熙)
윤덕희는 조선 후기 「동경산수도」, 「마상부인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윤두서의 맏아들로 태어나 서울과 해남을 오가며 활동했다.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화법을 충실히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데에 이르렀다. 정형산수화부터 진경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말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윤두서는 조선 후기 「자화상」, 「채애도」, 「오성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해남 윤씨 종손이며, 윤선도의 증손자이다. 당쟁의 풍파 속에서 관직에 나갈 생각을 버리고 서울에서 활동하며 당대의 명류들과 교유하였다. 초상화, 산수화, 말 그림, 풍속화 등의 화목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기호 남인의 근기 실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새로운 전적도 폭넓게 섭렵하였다.
윤두서 (尹斗緖)
윤두서는 조선 후기 「자화상」, 「채애도」, 「오성도」 등을 그린 문인화가이다. 해남 윤씨 종손이며, 윤선도의 증손자이다. 당쟁의 풍파 속에서 관직에 나갈 생각을 버리고 서울에서 활동하며 당대의 명류들과 교유하였다. 초상화, 산수화, 말 그림, 풍속화 등의 화목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기호 남인의 근기 실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새로운 전적도 폭넓게 섭렵하였다.
윤인걸은 조선시대 「거송관폭도」를 그린 화가이다. 본관은 파평이며, 그 외 생애와 행적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거송관폭도」가 대표작이며, 전칭작으로 「어가한면도」도 있다.
윤인걸 (尹仁傑)
윤인걸은 조선시대 「거송관폭도」를 그린 화가이다. 본관은 파평이며, 그 외 생애와 행적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거송관폭도」가 대표작이며, 전칭작으로 「어가한면도」도 있다.
이건필은 조선 후기 「강자기상」, 「두강승유도」 등을 그린 문신, 서화가이다. 1846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9년 식년시에서는 을과 4위로 합격하였다. 의주 부윤을 거쳐 형조 참판까지 지냈으며,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도 잘 썼다. 남양주 두물머리에서의 뱃놀이 장면을 그린 「두강승유도」 2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건필 (李健弼)
이건필은 조선 후기 「강자기상」, 「두강승유도」 등을 그린 문신, 서화가이다. 1846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9년 식년시에서는 을과 4위로 합격하였다. 의주 부윤을 거쳐 형조 참판까지 지냈으며,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도 잘 썼다. 남양주 두물머리에서의 뱃놀이 장면을 그린 「두강승유도」 2점이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