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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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미술교육을 도입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과명이다. 조선 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도화서’에서 차용한 말이다. 1899년에 설립된 상공학교에서 처음으로 ‘도화’가 교과로 채택되었다. 1907년에 발간된 『도화임본』이 첫 도화 교과서이다. 도화 교과에서는 임모화·자유화·기억화·사생화 등을 화가들이 가르쳤다. 초기에는 임모가 많았으나 점차 사생의 학습 비중이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실시된 도화는 ‘미술’로 교과명이 바뀔 때까지 사용되었다. 도화 교과를 통해 근대적 미술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도화 (圖畵)
도화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미술교육을 도입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던 교과명이다. 조선 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도화서’에서 차용한 말이다. 1899년에 설립된 상공학교에서 처음으로 ‘도화’가 교과로 채택되었다. 1907년에 발간된 『도화임본』이 첫 도화 교과서이다. 도화 교과에서는 임모화·자유화·기억화·사생화 등을 화가들이 가르쳤다. 초기에는 임모가 많았으나 점차 사생의 학습 비중이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실시된 도화는 ‘미술’로 교과명이 바뀔 때까지 사용되었다. 도화 교과를 통해 근대적 미술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왕가미술관은 일제강점기 1938년부터 덕수궁에서 한국 고미술품과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하였던 기관으로 이왕가박물관의 후신이다. 일제가 문화가 없는 조선에 미술을 진작한다는 목적으로 설치했다. 실제로는 일본 근대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당대 일본 문화를 보여주는 데 사용되었다. 창경궁의 이왕가박물관의 조선고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와 전시해 조선은 과거의 문화를, 일본은 당대의 문화를 보여주었다. 해방과 더불어 덕수궁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어 소장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왕가미술관 (李王家美術館)
이왕가미술관은 일제강점기 1938년부터 덕수궁에서 한국 고미술품과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하였던 기관으로 이왕가박물관의 후신이다. 일제가 문화가 없는 조선에 미술을 진작한다는 목적으로 설치했다. 실제로는 일본 근대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당대 일본 문화를 보여주는 데 사용되었다. 창경궁의 이왕가박물관의 조선고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와 전시해 조선은 과거의 문화를, 일본은 당대의 문화를 보여주었다. 해방과 더불어 덕수궁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어 소장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왕가박물관은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박물관이다. 1907년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자, 순종을 위무한다는 목적으로 창경궁에 식물원, 동물원과 함께 이왕직에서 설립을 추진했다. 1909년 일반 공개 이후 대중의 교육과 관람에 이바지했다. 황실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불상·도자·회화 등을 수집해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1938년 소장품 가운데 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 가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왕가박물관 (李王家博物館)
이왕가박물관은 1909년 대한제국기 황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박물관이다. 1907년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자, 순종을 위무한다는 목적으로 창경궁에 식물원, 동물원과 함께 이왕직에서 설립을 추진했다. 1909년 일반 공개 이후 대중의 교육과 관람에 이바지했다. 황실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불상·도자·회화 등을 수집해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1938년 소장품 가운데 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 가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9년 경복궁에 세워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미술관.
조선총독부미술관 (朝鮮總督府美術館)
조선총독부에서 1939년 경복궁에 세워 주로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미술관.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건물을 세우고 설립한 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朝鮮總督府博物館)
1915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건물을 세우고 설립한 박물관.
전람회는 일정한 공간에 미술작품을 진열해 놓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모임으로 전시회라고도 한다. 1900년 이후 나타난 미술 감상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에 열린 경성박람회에서 파노라마관을 꾸며놓고 사진과 유화 전시회를 열었다. 1916년 김관호, 1921년 나혜석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1921년부터 서화협회전람회, 1938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등이 열렸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되었다. 전람회는 일반인에게도 미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차츰 미술시장이 상업화됨에 따라 전람회도 상업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
전람회 (展覽會)
전람회는 일정한 공간에 미술작품을 진열해 놓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모임으로 전시회라고도 한다. 1900년 이후 나타난 미술 감상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에 열린 경성박람회에서 파노라마관을 꾸며놓고 사진과 유화 전시회를 열었다. 1916년 김관호, 1921년 나혜석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1921년부터 서화협회전람회, 1938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등이 열렸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되었다. 전람회는 일반인에게도 미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차츰 미술시장이 상업화됨에 따라 전람회도 상업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
경성박람회는 1907년 경성에서 처음 열린 박람회이다. 한국인들에게 한일 간 산업발달의 우열을 보여줌으로써 통감부 시기에 일제가 한일병합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또한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의 양위가 추진되던 시기에 한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박람회장은 본관과 1∼5호관까지 총 6개의 전시관을 두었고, 연예원·식물원·사랑·요리점이 따로 개설되었다. 출품물은 94.3%가 일본인들의 상품으로 채워졌고 관람객의 73%는 한국인들이었다. 이 박람회는 대한제국의 경제에 일본 자본이 들어오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성박람회 (京城博覽會)
경성박람회는 1907년 경성에서 처음 열린 박람회이다. 한국인들에게 한일 간 산업발달의 우열을 보여줌으로써 통감부 시기에 일제가 한일병합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또한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의 양위가 추진되던 시기에 한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박람회장은 본관과 1∼5호관까지 총 6개의 전시관을 두었고, 연예원·식물원·사랑·요리점이 따로 개설되었다. 출품물은 94.3%가 일본인들의 상품으로 채워졌고 관람객의 73%는 한국인들이었다. 이 박람회는 대한제국의 경제에 일본 자본이 들어오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운동이다. 민중미술은 기존의 심미주의적 형식주의가 판치는 미술계에 대한 반성으로,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노동운동의 걸개그림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해 나갔으며 사실적 묘사, 콜라주, 사진, 전통미술 도상 차용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를 표현했다. 1980년대에 한국미술의 새 흐름을 형성하여,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
민중미술 (民衆美術)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운동이다. 민중미술은 기존의 심미주의적 형식주의가 판치는 미술계에 대한 반성으로,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노동운동의 걸개그림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해 나갔으며 사실적 묘사, 콜라주, 사진, 전통미술 도상 차용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를 표현했다. 1980년대에 한국미술의 새 흐름을 형성하여,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온 한국의 관전이다. 약칭으로 ‘국전’이라고도 한다.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 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창설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과 수상작 선정이 파벌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규정 개정과 공모 부분의 변화에도 관전식 아카데미즘을 고수하여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大韓民國美術展覽會)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온 한국의 관전이다. 약칭으로 ‘국전’이라고도 한다. 해방 이후 낙후된 미술 문화를 국가 주도로 일으키고자 창설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선정 과정과 수상작 선정이 파벌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규정 개정과 공모 부분의 변화에도 관전식 아카데미즘을 고수하여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있다. 1981년 제30회로 국전이 막을 내리고 민간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