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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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는 남북국시대 일본에서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에 오른 백제계 일본 승려이다. 대중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동시에, 수리 사업과 빈민 구제 등을 통해 일본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도다이지 대불 조성에 참여하면서 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일본 최초로 대승정에 임명되었다. 후대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행기 (行基)
행기는 남북국시대 일본에서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에 오른 백제계 일본 승려이다. 대중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동시에, 수리 사업과 빈민 구제 등을 통해 일본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도다이지 대불 조성에 참여하면서 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일본 최초로 대승정에 임명되었다. 후대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화엄경문의요결문답』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표원이 『대방광불화엄경』의 요의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불교서이다. 표원이 대략 8세기 초 전후에 『대방광불화엄경』의 대의를 18장으로 나누어 문답 형식으로 풀이한 서적인데, 표원에 대해서는 이 책의 기록으로부터 황룡사 승려라는 점만을 알 수 있다. 현존본은 모두 일본에만 전한다.
화엄경문의요결문답 (華嚴經文義要決問答)
『화엄경문의요결문답』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표원이 『대방광불화엄경』의 요의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불교서이다. 표원이 대략 8세기 초 전후에 『대방광불화엄경』의 대의를 18장으로 나누어 문답 형식으로 풀이한 서적인데, 표원에 대해서는 이 책의 기록으로부터 황룡사 승려라는 점만을 알 수 있다. 현존본은 모두 일본에만 전한다.
『화엄경삼보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법장의 『화엄경명법품내입삼보장』을 풀이한 불교 주석서이다. 현재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보유편에 수록되어 있는 상, 하 2권본이 현존 유일본이다. 법장으로 대표되는 중국계 화엄과 의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상계 화엄의 교설을 융섭하려는 균여의 사상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화엄경삼보장원통기 (華嚴經三寶章圓通記)
『화엄경삼보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법장의 『화엄경명법품내입삼보장』을 풀이한 불교 주석서이다. 현재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보유편에 수록되어 있는 상, 하 2권본이 현존 유일본이다. 법장으로 대표되는 중국계 화엄과 의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상계 화엄의 교설을 융섭하려는 균여의 사상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화엄일승성불묘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견등이 화엄사상에 기초하여 성불론을 논한 불교서이다. 대략 9세기 초에서 10세기 초 사이에 일본에서 저술한 불교서로서 1권이며 현존한다. 저자인 견등과 『화엄일승성불묘의』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일본에서만 관련 기록이 발견된다.
화엄일승성불묘의 (華嚴一乘成佛妙義)
『화엄일승성불묘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견등이 화엄사상에 기초하여 성불론을 논한 불교서이다. 대략 9세기 초에서 10세기 초 사이에 일본에서 저술한 불교서로서 1권이며 현존한다. 저자인 견등과 『화엄일승성불묘의』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일본에서만 관련 기록이 발견된다.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는 당나라 승려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풀이한 주석서를 고려 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이다. 전체 상, 중, 하 3권 중 상, 하 2권 2책이 현존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大乘起信論義記 卷上|下)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는 당나라 승려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풀이한 주석서를 고려 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교 서적이다. 전체 상, 중, 하 3권 중 상, 하 2권 2책이 현존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의천이 송나라에서 가져온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 목판본을 고려~조선 초에 인출한 것 중 41권 분량의 불교 서적이다. 의천이 수입한 후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여러 시기에 걸쳐서 인출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판본은 대부분 1087년에서 1424년 사이에 인출된 것이고, 41권 분량의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大方廣佛華嚴經疏)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의천이 송나라에서 가져온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 목판본을 고려~조선 초에 인출한 것 중 41권 분량의 불교 서적이다. 의천이 수입한 후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여러 시기에 걸쳐서 인출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판본은 대부분 1087년에서 1424년 사이에 인출된 것이고, 41권 분량의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입법계품초기』는 통일신라 승려 의상 또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지엄의 『입법계품초』를 풀이한 불교 서적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의 마지막 품인 「입법계품」을 풀이한 『입법계품초』에 대해서 다시 주석한 책으로 추정된다. 현존 목록에 『입법계품초기』라는 제목의 저술은 두 종류가 전하지만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첫째는 아마도 중국의 초기 화엄종 승려인 지엄이 지은 『입법계품초』에 대해서 7세기 후반 무렵 의상이 주석한 것이고, 둘째는 고려 전기 10세기 중후반 균여가 저술한 것이다.
입법계품초기 (入法界品抄記)
『입법계품초기』는 통일신라 승려 의상 또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지엄의 『입법계품초』를 풀이한 불교 서적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의 마지막 품인 「입법계품」을 풀이한 『입법계품초』에 대해서 다시 주석한 책으로 추정된다. 현존 목록에 『입법계품초기』라는 제목의 저술은 두 종류가 전하지만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첫째는 아마도 중국의 초기 화엄종 승려인 지엄이 지은 『입법계품초』에 대해서 7세기 후반 무렵 의상이 주석한 것이고, 둘째는 고려 전기 10세기 중후반 균여가 저술한 것이다.
견등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한 『화엄일승성불묘의』, 『대승기신론동현장』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9세기 중엽에 활동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에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그의 저술에 일본 화엄종 주레의 저술이 인용되어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상 계통과 상통하면서도 『대승기신론』과 원효의 사상을 아우르는 입장을 보인다.
견등 (見登)
견등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한 『화엄일승성불묘의』, 『대승기신론동현장』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9세기 중엽에 활동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에만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그의 저술에 일본 화엄종 주레의 저술이 인용되어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상 계통과 상통하면서도 『대승기신론』과 원효의 사상을 아우르는 입장을 보인다.
『십구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지엄이 지은 십구를 풀이한 『십구장』을 거듭 해석한 주석서인 불교 서적이다. 중국의 승려 지엄이 자신의 저술 첫 장에 『화엄경』의 핵심을 요악하여 써놓은 10구를 의상계 승려가 풀이한 『십구장』에 대해서 균여가 거듭 해석한 것을 기록하여 전승한 것이다.
십구장원통기 (十句章圓通記)
『십구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지엄이 지은 십구를 풀이한 『십구장』을 거듭 해석한 주석서인 불교 서적이다. 중국의 승려 지엄이 자신의 저술 첫 장에 『화엄경』의 핵심을 요악하여 써놓은 10구를 의상계 승려가 풀이한 『십구장』에 대해서 균여가 거듭 해석한 것을 기록하여 전승한 것이다.
『십지경』은 인도에서 대략 1세기~2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살의 수행 단계를 열 가지로 설명하는 대승불교 경전이다. 이 경전은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적 수행의 내용을 중심으로 보살의 이상과 실천을 제시하는데, 예로부터 대승불교 사상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십지경』은 『대방광불화엄경』 가운데 「십지품」으로 편입되어 있다.
십지경 (十地經|Dashabhūmika-sūtra)
『십지경』은 인도에서 대략 1세기~2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살의 수행 단계를 열 가지로 설명하는 대승불교 경전이다. 이 경전은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적 수행의 내용을 중심으로 보살의 이상과 실천을 제시하는데, 예로부터 대승불교 사상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십지경』은 『대방광불화엄경』 가운데 「십지품」으로 편입되어 있다.
『원돈성불론』은 고려 후기 승려 지눌이 성불론을 둘러싼 선과 화엄의 논쟁을 선의 입장과 당나라 불교학자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을 중심으로 풀이한 불교서이다. 현재 전하고 있으며, 1권 1책으로 구성되었다. 지눌 입적 후에 그의 제자 혜심이 유고를 발견하여 1215년에 간행하였다. 5개의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돈성불론 (圓頓成佛論)
『원돈성불론』은 고려 후기 승려 지눌이 성불론을 둘러싼 선과 화엄의 논쟁을 선의 입장과 당나라 불교학자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을 중심으로 풀이한 불교서이다. 현재 전하고 있으며, 1권 1책으로 구성되었다. 지눌 입적 후에 그의 제자 혜심이 유고를 발견하여 1215년에 간행하였다. 5개의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상은 삼국시대 초기 화엄교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로 존숭되어 온 신라 승려이다. 625년에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에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661년 당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문하에서 수학하며 초기 화엄교학을 확립하였다. 670년 당의 신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해 귀국하였으며, 이후 화엄 사찰 건립, 제자 교육과 대중 교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화엄교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주저인 『화엄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의상 (義想|義湘|義相)
의상은 삼국시대 초기 화엄교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로 존숭되어 온 신라 승려이다. 625년에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에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661년 당에 들어가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문하에서 수학하며 초기 화엄교학을 확립하였다. 670년 당의 신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해 귀국하였으며, 이후 화엄 사찰 건립, 제자 교육과 대중 교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화엄교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주저인 『화엄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의상화상 일승발원문』은 신라 승려 의상이 지은 발원문이다. 다만 의상의 저술을 소개하는 현존 목록 가운데 이 발원문을 의상의 저술로 소개하고 있는 목록은 없다. 총 7언 48구의 게송으로 이루어졌으며 화엄교학에 기반하여 보현행원의 실천과 연화장세계로의 왕생 등 일승보살도의 실현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다.
의상화상 일승발원문 (義相和尙 一乘發願文)
『의상화상 일승발원문』은 신라 승려 의상이 지은 발원문이다. 다만 의상의 저술을 소개하는 현존 목록 가운데 이 발원문을 의상의 저술로 소개하고 있는 목록은 없다. 총 7언 48구의 게송으로 이루어졌으며 화엄교학에 기반하여 보현행원의 실천과 연화장세계로의 왕생 등 일승보살도의 실현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기신관행법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심상이 화엄교학과 『대승기신론』에 입각한 관행에 관하여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서적이다. 『증보제종장소록』의 목록에는 심상의 저술로 『화엄기신관행법문』 1권이 기록되어 있지만 현존하지 않으며, '화엄기신관행법문'이라는 제목으로부터 그 내용이 아마도 화엄교학과 『대승기신론』을 바탕으로 한 관행에 대한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화엄기신관행법문 (華嚴起信觀行法門)
『화엄기신관행법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심상이 화엄교학과 『대승기신론』에 입각한 관행에 관하여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서적이다. 『증보제종장소록』의 목록에는 심상의 저술로 『화엄기신관행법문』 1권이 기록되어 있지만 현존하지 않으며, '화엄기신관행법문'이라는 제목으로부터 그 내용이 아마도 화엄교학과 『대승기신론』을 바탕으로 한 관행에 대한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화엄요의문답』은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 승려 지통이 스승 의상의 『화엄경』 강의를 기록한 불교 서적이다. 의상이 소백산 추동에서 진행한 『대방광불화엄경』 강의를 문답 형식으로 기록하였는데, 기존에는 이 저술이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다른 문헌에 인용된 단편을 통해서 대략의 성격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 법장의 저술로 일본에 전해져온 『화엄경문답』이 『화엄요의문답』 즉 『지통기』의 이본으로 밝혀져 이 책의 전문이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화엄요의문답 (華嚴要義問答)
『화엄요의문답』은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 승려 지통이 스승 의상의 『화엄경』 강의를 기록한 불교 서적이다. 의상이 소백산 추동에서 진행한 『대방광불화엄경』 강의를 문답 형식으로 기록하였는데, 기존에는 이 저술이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다른 문헌에 인용된 단편을 통해서 대략의 성격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 법장의 저술로 일본에 전해져온 『화엄경문답』이 『화엄요의문답』 즉 『지통기』의 이본으로 밝혀져 이 책의 전문이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화엄추동기』는 통일신라 화엄 승려 의상(義相)의 『화엄경』 강설을 그의 제자 지통(智通)이 기록한 불교서이다. 의상은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이것을 그의 제자인 지통이 집록(集錄)하여 『추동기(錐洞記)』 2권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다. 고려 말에 이르러 이장용이 이것을 윤색하였으나, 현재 이 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는 이 본과 별도로 법장(法藏)의 저술로 알려진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전해져 왔는데 근래 연구에 의하여 이 문헌이 『추동기』의 이본(異本)임이 밝혀졌다.
화엄추동기 (華嚴錐洞記)
『화엄추동기』는 통일신라 화엄 승려 의상(義相)의 『화엄경』 강설을 그의 제자 지통(智通)이 기록한 불교서이다. 의상은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이것을 그의 제자인 지통이 집록(集錄)하여 『추동기(錐洞記)』 2권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다. 고려 말에 이르러 이장용이 이것을 윤색하였으나, 현재 이 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는 이 본과 별도로 법장(法藏)의 저술로 알려진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전해져 왔는데 근래 연구에 의하여 이 문헌이 『추동기』의 이본(異本)임이 밝혀졌다.
「투사례(投師禮)」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義湘, 625~702)이 불 · 보살에게 귀명 · 경례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글이다. 그러나 의상이 참고할 수 없는 의상 후대의 문헌들을 거론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의상의 후대에 가탁된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다. 이 글은 송나라 공진선사(拱辰禪師)가 편찬한 『종문통록(宗門通錄)』을 조선시대 밀계(密契)가 요점을 골라 간추린 『통록촬요(通錄撮要)』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투사례 (投師禮)
「투사례(投師禮)」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義湘, 625~702)이 불 · 보살에게 귀명 · 경례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글이다. 그러나 의상이 참고할 수 없는 의상 후대의 문헌들을 거론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의상의 후대에 가탁된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다. 이 글은 송나라 공진선사(拱辰禪師)가 편찬한 『종문통록(宗門通錄)』을 조선시대 밀계(密契)가 요점을 골라 간추린 『통록촬요(通錄撮要)』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탐현기석』은 고려 전기의 화엄 승려 균여(均如, 923~974)가 중국 화엄종의 대성자(大成者)로 불리는 법장(法藏, 643~712)이 60권본 『화엄경』에 대해 주석한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를 풀이한 것이다. 현존하지는 않는다.
탐현기석 (探玄記釋)
『탐현기석』은 고려 전기의 화엄 승려 균여(均如, 923~974)가 중국 화엄종의 대성자(大成者)로 불리는 법장(法藏, 643~712)이 60권본 『화엄경』에 대해 주석한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를 풀이한 것이다. 현존하지는 않는다.
『화엄강목(華嚴綱目)』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686)가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 중 핵심만을 간추려 쓴 강요서(綱要書)로 보이지만 현존하지 않아 책의 자세한 내용과 구성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일본 도다이지의 승려인 엔쇼(圓超, 861∼925)가 편찬한 『화엄종장소병인명록(華嚴宗章疏并因明錄)』에 『화엄강목』이 원효의 저술로 기록되어 있어 이 책을 원효가 썼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중국 당나라 화엄 승려 법장(法藏, 643∼712)이 저술한 동일한 제목의 서적과 구분해야 한다.
화엄강목 (華嚴綱目)
『화엄강목(華嚴綱目)』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686)가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 중 핵심만을 간추려 쓴 강요서(綱要書)로 보이지만 현존하지 않아 책의 자세한 내용과 구성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일본 도다이지의 승려인 엔쇼(圓超, 861∼925)가 편찬한 『화엄종장소병인명록(華嚴宗章疏并因明錄)』에 『화엄강목』이 원효의 저술로 기록되어 있어 이 책을 원효가 썼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중국 당나라 화엄 승려 법장(法藏, 643∼712)이 저술한 동일한 제목의 서적과 구분해야 한다.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화엄경고적기 (華嚴經古迹記)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