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황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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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보는 1945년 12월 17일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창간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부한 한글 신문이다. 타블로이드판 4면 주간지로서 창간 당시 80만부를 발간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격주 또는 월간으로 발간되기도 했으며, 부수도 1947년 들어서 30만부로 축소되었고 1948년 2월부터는 평균 7만 5천부 정도가 발행되었다. 지면 구성은 미군정의 주요 활동, 한국 및 한국 관련 국제뉴스, 정치교육, 영농교육, 가정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농민주보 (農民週報)
농민주보는 1945년 12월 17일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창간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부한 한글 신문이다. 타블로이드판 4면 주간지로서 창간 당시 80만부를 발간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격주 또는 월간으로 발간되기도 했으며, 부수도 1947년 들어서 30만부로 축소되었고 1948년 2월부터는 평균 7만 5천부 정도가 발행되었다. 지면 구성은 미군정의 주요 활동, 한국 및 한국 관련 국제뉴스, 정치교육, 영농교육, 가정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리버티 뉴스는 1952년부터 1967년까지 주한미공보원이 주도하여 만든 뉴스 영화이다. 제2차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어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열시켰다. 이에 미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 홍보와 심리전을 강화했으며 주한미공보원 역시 리버티 뉴스를 제작하여 상영하게 되었다. 국내외 뉴스 및 미국과 서방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문화냉전의 도구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 영화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리버티 뉴스 (Liberty News)
리버티 뉴스는 1952년부터 1967년까지 주한미공보원이 주도하여 만든 뉴스 영화이다. 제2차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어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열시켰다. 이에 미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 홍보와 심리전을 강화했으며 주한미공보원 역시 리버티 뉴스를 제작하여 상영하게 되었다. 국내외 뉴스 및 미국과 서방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문화냉전의 도구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 영화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문예지 『상황』은 1969년 8월 15일 임헌영, 구중서, 백승철 등을 중심으로 범우사에서 창간한 문예비평 계간지이다. 1960년대 문학계는 4·19혁명 이후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었다. 이에 임헌영, 구중서 등이 기존 문예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본격적인 민족문학 추구를 내세우고 창간하였다.
문예지 상황 (狀況)
문예지 『상황』은 1969년 8월 15일 임헌영, 구중서, 백승철 등을 중심으로 범우사에서 창간한 문예비평 계간지이다. 1960년대 문학계는 4·19혁명 이후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었다. 이에 임헌영, 구중서 등이 기존 문예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본격적인 민족문학 추구를 내세우고 창간하였다.
『반공독본』은 1954년과 1956년, 박문출판사와 이문당에서 간행된 문교부 추천 혹은 문교부 인정의 국민학교용 반공 교육 교재이다. 6·25전쟁 휴전 직후 이승만 정권은 반공 교육 강화를 통한 국민형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한 교재로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발간되었다. 주된 내용은 공산주의 침략과 이에 맞선 투쟁이 필요함을 반공주의 시각에서 서술한 것이다.
반공독본 (反共讀本)
『반공독본』은 1954년과 1956년, 박문출판사와 이문당에서 간행된 문교부 추천 혹은 문교부 인정의 국민학교용 반공 교육 교재이다. 6·25전쟁 휴전 직후 이승만 정권은 반공 교육 강화를 통한 국민형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한 교재로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발간되었다. 주된 내용은 공산주의 침략과 이에 맞선 투쟁이 필요함을 반공주의 시각에서 서술한 것이다.
『새한민보』는 1947년 6월, 설의식, 백남교, 장인갑, 정규현, 문철민 등 중간파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창간한 신문의 성격을 띠는 잡지이다.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서 남북분단을 막고자 하는 중간파의 활동도 고무되었다. 이에 친좌익적이라는 비난 속에 1947년 3월 동아일보를 퇴사하게 된 설의식을 중심으로 과거 동아일보 동료였던 백남교, 정규현 등 중간파 성향의 인사들이 모여 창간한 것이다. 남북협상 지지 등 중간파적 보도 성향을 띠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종간되었다.
새한민보 (民報)
『새한민보』는 1947년 6월, 설의식, 백남교, 장인갑, 정규현, 문철민 등 중간파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창간한 신문의 성격을 띠는 잡지이다.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서 남북분단을 막고자 하는 중간파의 활동도 고무되었다. 이에 친좌익적이라는 비난 속에 1947년 3월 동아일보를 퇴사하게 된 설의식을 중심으로 과거 동아일보 동료였던 백남교, 정규현 등 중간파 성향의 인사들이 모여 창간한 것이다. 남북협상 지지 등 중간파적 보도 성향을 띠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종간되었다.
『새힘』은 1958년 주한미공보원이 한국 농민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발간해 무료로 배포한 월간지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전세계적으로 선전하고자 하였고 이에 주한미공보원은 당시 가장 많은 인구 비중을 점하고 있던 농민을 대상으로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된 내용은 영농 관련 기사와 함께 미국에 대한 홍보, 반공 관련 글들이었다. 당시 농민 대상 잡지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힘
『새힘』은 1958년 주한미공보원이 한국 농민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발간해 무료로 배포한 월간지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전세계적으로 선전하고자 하였고 이에 주한미공보원은 당시 가장 많은 인구 비중을 점하고 있던 농민을 대상으로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된 내용은 영농 관련 기사와 함께 미국에 대한 홍보, 반공 관련 글들이었다. 당시 농민 대상 잡지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애국독본』은 1955년 3월 한국교육문화협회가 애국과 반공주의 강화를 목적으로 우종사에서 발행한 중등교육용 교재이다. 저자로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선근을 비롯해 손진태, 박철, 박태호 등이 참여하였다. 경상북도에서만 50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배포되었으며, 전후 반공교육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주된 내용은 침략과 항거의 민족사와 함께 북한의 실상, 소련의 외교정책 등을 통해 반공주의를 고취하는 것이었다.
애국독본 (愛國讀本)
『애국독본』은 1955년 3월 한국교육문화협회가 애국과 반공주의 강화를 목적으로 우종사에서 발행한 중등교육용 교재이다. 저자로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선근을 비롯해 손진태, 박철, 박태호 등이 참여하였다. 경상북도에서만 50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배포되었으며, 전후 반공교육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주된 내용은 침략과 항거의 민족사와 함께 북한의 실상, 소련의 외교정책 등을 통해 반공주의를 고취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는 1949년 3월 주한미공보원이 홍보와 선전을 위해 한국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미소 간의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미 국무부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과 홍보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에 주한미공보원도 미 국무부로부터 자료와 사진을 제공받아 이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다. 발간 1년 만에 6만 부가 넘는 발행 부수를 기록하여 큰 인기를 끌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폐간되었다.
아메리카 (America)
『아메리카』는 1949년 3월 주한미공보원이 홍보와 선전을 위해 한국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미소 간의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미 국무부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과 홍보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에 주한미공보원도 미 국무부로부터 자료와 사진을 제공받아 이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다. 발간 1년 만에 6만 부가 넘는 발행 부수를 기록하여 큰 인기를 끌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폐간되었다.
『주간신보』는 1945년 10월 15일 미군정 공보부가 정책 홍보를 위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주간 신문이다. 타블로이드 2면의 9단 지면으로 제작되었으며 창간호 40만부에 이어 1946년부터는 80만부를 발행해 전국으로 배포하였다. 1947년부터는 서울판을 따로 제작할 정도로 도시민에 집중하였다. 미군정의 기관지 성격이었기에 주로 미군정의 정책과 활동을 중심으로 세계 뉴스를 비롯해 다양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1947년 4월 용지 부족을 이유로 정간되었으나, 이후 재발행되지 않아 사실상 폐간된 셈이었다.
주간신보 (週刊新報)
『주간신보』는 1945년 10월 15일 미군정 공보부가 정책 홍보를 위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주간 신문이다. 타블로이드 2면의 9단 지면으로 제작되었으며 창간호 40만부에 이어 1946년부터는 80만부를 발행해 전국으로 배포하였다. 1947년부터는 서울판을 따로 제작할 정도로 도시민에 집중하였다. 미군정의 기관지 성격이었기에 주로 미군정의 정책과 활동을 중심으로 세계 뉴스를 비롯해 다양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1947년 4월 용지 부족을 이유로 정간되었으나, 이후 재발행되지 않아 사실상 폐간된 셈이었다.
한극전용법은 1948년 10월 9일, 제헌국회에서 제정하여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쓸 것을 규정한 법률이다. 제헌국회는 제정 이유를 신생 독립국가로서 자주독립의 정신을 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방 이후부터 최현배 등에 의해 한자 사용 폐지와 한글 전용이 추진되었고, 이러한 노력으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자 교육의 필요성도 꾸준하게 제기되어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2005년 1월 법률 제7368호로 폐지되고 대신 국어기본법이 제정되었다.
한글전용법 (한글專用法)
한극전용법은 1948년 10월 9일, 제헌국회에서 제정하여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쓸 것을 규정한 법률이다. 제헌국회는 제정 이유를 신생 독립국가로서 자주독립의 정신을 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방 이후부터 최현배 등에 의해 한자 사용 폐지와 한글 전용이 추진되었고, 이러한 노력으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자 교육의 필요성도 꾸준하게 제기되어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2005년 1월 법률 제7368호로 폐지되고 대신 국어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김상진 (金相眞)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리영희 (李泳禧)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박종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대학 생활 동안 동아리 활동과 농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박종철 (朴鍾哲)
박종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대학 생활 동안 동아리 활동과 농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박현채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진보적 경제학자이다. 광주서중학교에 재학 중 빨치산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여 경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재야 경제학자로서 많은 논문과 책을 집필하였으며, 1971년 박현채가 집필을 주도한 『대중 경제론 백문백답』은 김대중의 ‘대중 경제론’에 영향을 끼쳤다.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95년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박현채 (朴玄埰)
박현채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진보적 경제학자이다. 광주서중학교에 재학 중 빨치산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여 경제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재야 경제학자로서 많은 논문과 책을 집필하였으며, 1971년 박현채가 집필을 주도한 『대중 경제론 백문백답』은 김대중의 ‘대중 경제론’에 영향을 끼쳤다.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95년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이한열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한 인물이다. 1966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출생하여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동아리 '만화사랑'을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집회에 참가해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7월 5일 사망하였다.
이한열 (李韓烈)
이한열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한 인물이다. 1966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출생하여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동아리 '만화사랑'을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집회에 참가해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7월 5일 사망하였다.
남북조절위원회는 「7·4남북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을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며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설립된 남북한 당국 간의 정치적 협의기구이다.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 남북 간의 정치적 교류, 경제·문화·사회교류 및 협력, 긴장완화·군사적 충돌방지 및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 대외활동에서의 공동보조 및 민족적 긍지 선양 등 5개 항을 협의·결정·실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공동위원장 회의 3회, 본회의 3회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입장 대립으로 성과 없이 끝났고 북한측의 일방적 회의 중단선언으로 활동이 종료되었다.
남북조절위원회 (南北調節委員會)
남북조절위원회는 「7·4남북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을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며 통일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설립된 남북한 당국 간의 정치적 협의기구이다.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 남북 간의 정치적 교류, 경제·문화·사회교류 및 협력, 긴장완화·군사적 충돌방지 및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 대외활동에서의 공동보조 및 민족적 긍지 선양 등 5개 항을 협의·결정·실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10월부터 6개월 동안 공동위원장 회의 3회, 본회의 3회가 개최되었으나 양측의 입장 대립으로 성과 없이 끝났고 북한측의 일방적 회의 중단선언으로 활동이 종료되었다.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 점령군에 의하여 1946년에 설치되었던 공동위원회.
미소공동위원회 (美蘇共同委員會)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 점령군에 의하여 1946년에 설치되었던 공동위원회.
민족주의는 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이다. 기독교에 기반을 둔 중세유럽의 보편주의적 세계의 해체, 신분제도의 차별을 배제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나타난 근대적 이데올로기 담론이다. 국민국가의 형성에는 다른 국가와는 구별되는 국민경제라는 생활공동체의 재생산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내적 봉합과 국가적 통합을 주창하는 민족주의라는 담론이 강력히 요청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3.1운동을 통해 단일한 민족 구성원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했고 이후 혈통과 언어, 문화와 관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
민족주의 (民族主義)
민족주의는 민족을 구성하고 통합하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을 위한 정치사상이다. 기독교에 기반을 둔 중세유럽의 보편주의적 세계의 해체, 신분제도의 차별을 배제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나타난 근대적 이데올로기 담론이다. 국민국가의 형성에는 다른 국가와는 구별되는 국민경제라는 생활공동체의 재생산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내적 봉합과 국가적 통합을 주창하는 민족주의라는 담론이 강력히 요청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3.1운동을 통해 단일한 민족 구성원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했고 이후 혈통과 언어, 문화와 관습을 강조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한국 관련 결정 사항을 신탁통치로 규정하여 일어난 우익 세력의 반대운동.
신탁통치 반대운동 (信託統治 反對運動)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한국 관련 결정 사항을 신탁통치로 규정하여 일어난 우익 세력의 반대운동.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 기구.
좌우합작위원회 (左右合作委員會)
좌우 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6년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