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 능가사 ( )

불교
유적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팔영산(八影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된 사찰.
이칭
이칭
보현사(普賢寺)
유적/건물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팔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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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능가사는 고려시대 이래 보현사(普賢寺)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온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으나 1644년(인조 22)에 벽천 정현(碧川 正玄)이 재건하여 사찰명을 ‘보현사’에서 ‘능가사’로 바꾸었다. 그 후 1750년(영조 26)에 민정(敏淨) 등이 중창(重創)하고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키워드
정의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팔영산(八影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된 사찰.
역사적 변천

417년(눌지왕 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다고 전하지만 역사적인 신빙성은 없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주2』 흥양현조에 “보현사(普賢寺)는 팔전산(八巓山)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팔전산이 지금의 팔영산이므로 당시에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능가사에 관한 기록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능가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1644년(인조 22)에 벽천 정현이 주3 사찰명을 ‘보현사’에서 ‘능가사’로 바꾸었다. 정현은 지리산에서 주4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주5이 나타나서 “장부로 태어나 부처 되기는 어려우니 대공덕주가 되어 널리 주6주7.”라고 하였다. 이에 광희(廣熙) 대사와 함께 여러 산을 살피던 중 팔영산 옛 절터를 발견하고 건물을 새로 지어 능가사라고 이름하였다. 그 뒤 그의 제자 민정(敏淨), 의헌(義軒), 상기(尙機) 등이 스승의 유지를 쫓아 일주문(一柱門)주8 등을 세웠다. 능가사가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자 투명(透明)이 능가사 사적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750년(영조 26)에 춘추관수찬관 오수채(吳遂采)에게 글을 청하여 사적비를 세웠다. 사적비 음기(陰記)에 기록된 1644년~1688년 사이에 중창된 사찰의 규모는 아래와

전당(殿堂)주9 : 도원당, 대웅전(大雄殿), 팔상전, 응진당, 영산전(靈山殿), 시왕전, 향로전, 영청당, 영당, 명부전(冥府殿), 향적전, 신영당, 능인전, 승당(僧堂), 보현전, 홀영료, 원흥료, 어심전, 선당, 금화전, 법운전, 청하당, 문수전, 양진당, 공백료, 영흥료, 관풍료, 출세료, 송월료, 청심료, 도솔전, 묘적당, 태금전, 복련당, 부도전,

문루(門樓)주10 : 일주문(一柱門), 대루, 정문, 해탈문,

암자(庵子)주11 : 만경암(萬景庵), 비로암, 원각암, 중각암, 석문암, 수월암, 서부사암, 동부사암, 묘각암, 지장암

당시의 불사를 알려주는 자료로는 침굉 현변(枕肱 懸辯, 16161684)의 「능가사대웅전모연문(楞伽寺大雄殿募緣文)」과 백암 성총(栢庵 性聰, 16311700)의 「능가사팔상전권연소(楞伽寺八相殿勸緣疏)」가 전한다. 또 능가사에서 간행한 주12로 1697년의 『대장일람조상품(大藏一覽造像品)』과 1707년의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가 전한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택리지(擇里志)』에서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데 옛날 주13의 태자가 표류하여 와서 이 절 앞에서 관음보살(觀音菩薩)에게 7일 밤낮을 기도하여 고국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더니, 주14가 나타나 태자를 옆에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라고 하였다.

능가사는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각각 주15, 1993년에 응진전(應眞殿)을, 1995년에 사천왕문(四天王門)을 각각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속 암자는 20세기 초까지 만경암과 서불암(西佛庵) 등이 중수되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중요문화유산

능가사에는 보물 3점과 전라남도 유형 문화유산 3점이 지정되어 있다. 보물로는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 「대웅전」, 「동종」이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는 「사적비」, 「목조 사천왕상(木造 四天王像)」, 「추계당 및 사영당 부도(秋溪堂 및 泗影堂 浮屠)」가 있다. 이 외에 능가사에서 조성하였지만, 서울 지장암(地藏庵)에 소장된 1664년(현종 5) 조성의 「목조 지장보살 좌상(木造 地藏菩薩 坐像)」과 1683년(숙종 9) 조성의 「석조 가섭아난 입상(石造 迦葉阿難 立像)」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은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을 통해 1685년(숙종 11) 6월에 능가사 비구(比丘) 상기(尙機)가 발원하고, 조각승 색난(色難)이 수(首)조각승이 되어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색난은 서울 지장암에 소장된 「목조 지장보살 좌상」(1683)과 능가사에 주16 「십육나한상」(1685)의 조성에서도 수조각승이었다. 그리고 1698년의 능가사 동종 시주자, 1707년의 능가사 『선문염송설화』 간행 시주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웅전」은 18세기 중엽에 주17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동종」은 김애립(金愛立)의 작품 가운데 가장 뒤늦은 시기인 1698년(숙종 24)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사적비」는 1750년에 춘추관수찬관 오수채로부터 글을 받아 세운 것이다. 「목조 사천왕상」은 1666년(현종 7)에 천왕문과 함께 제작되었다. 「추계당 및 사영당 부도」는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의 부도(浮屠)이다. 능가사에는 경내에 팔각 원당형 부도 1기, 능가사 외곽의 계곡 곁에 9기 등 10기의 부도가 있는데, 9기 가운데 추계당과 사영당의 승탑은 원래의 위치로 알려져있다.

참고문헌

원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단행본

김기빈, 『고흥지명유래(高興地名由來)』 (고흥군강서회, 1982)
『능가사 대웅전 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3)
『전라남도지(全羅南道誌)』 (전라남도, 1969)
『전통사찰총서』 6 (사찰문화연구원, 1996)

논문

김희경, 「조선후기 조각승 색난의 십육나한상 연구 : 전남 고흥 능가사를 중심으로」 (『선문화연구』 8, 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0)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각 도(道)의 지리ㆍ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하였다. 특히 누정(樓亭), 불우(佛宇), 고적(古跡), 제영(題詠) 따위의 조(條)에는 역대 명가(名家)의 시와 기문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55권 25책의 활자본. 우리말샘

주3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주4

도를 닦다. 우리말샘

주5

꿈속 따위에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승려. 우리말샘

주6

한 종파의 기풍. 우리말샘

주7

널리 알리다. 우리말샘

주8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주9

높고 크게 지은 화려한 집. 우리말샘

주10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주11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주12

불교에 관한 서적. 우리말샘

주13

조선 시대에, 해안으로 침범한 ‘왜구’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14

부처나 보살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흔히 대보살을 이르는 말로도 쓴다. 우리말샘

주15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우리말샘

주16

신주(神主)나 화상(畫像)이 받들어져 모셔지다. 우리말샘

주17

절이나 왕궁 따위가 보수되거나 고쳐져 지어지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종수(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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