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관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대중국 사행로인 황해도 서흥도호부(瑞興都護府) 내에 설치된 객사.
목차
정의
조선시대 대중국 사행로인 황해도 서흥도호부(瑞興都護府) 내에 설치된 객사.
내용

용천참 또는 용천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역(驛)의 명칭이 참(站) 또는 관이라고 불린 데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관은 사신 숙소로서의 의미를 지닌 ‘관사(館舍)’에서 유래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에는 몽고 역참제도의 영향을 받아 참이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역으로 통일되었다. 용천관은 황해도 서흥도호부 내에 설치된 역참으로서, 용천의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府)의 남쪽 22리에 있다. 산기슭에서 물이 솟아 나와 내[川]를 이루었는데 이름을 용천이라 한다.”라고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용천관(참)은 고려시대부터 설치되어 황해도 지방의 중요한 역로의 하나인 금교도(金郊道)에 속하는 역참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참로찰방(站路察訪)의 관할 아래 강음(江陰)의 금교역(金郊驛)-우봉(牛峯)의 흥의(興義)-평산(平山)의 금암(金巖)-평산의 보산(寶山)-평산의 안성(安城)-서흥(瑞興)의 용천(龍泉)-봉산(鳳山)의 검수(劍水)-봉산의 절령(岊嶺)-서흥의 동선(洞仙)-황주(黃州)의 경천(敬天)역까지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황해도읍지(黃海道邑誌)』
집필자
조병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