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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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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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개념
조선시대에 창작된 소설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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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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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창작된 소설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고전소설.
내용

그 당시에는 소설을 패설(稗說)·고담(古談) 등으로도 일컬었으며, 국문으로 된 것은 언패(諺稗)·언서고담(諺書古談) 등으로 지칭하였다. 우리말 명칭은 고담과 같은 뜻인 이야기책이었다.

신소설이 나오게 되자 이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소설을 고대소설이라 칭하게 되었다. 학술적인 용어로서 고대소설·고소설·고전소설·이조소설 등도 함께 쓰이는데, 그 가운데 고소설을 표준으로 삼을 수 있다.

소설사의 단계가 고소설·신소설·현대소설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면, 고소설은 첫 단계의 소설이다. 고소설은 산문으로 기록된 서사문학이라는 점에서 고전설화나 서사무가와 구별된다.

주인공이 상대역이나 주위 상황과의 관계에서 상호우위에 입각하여 심각하게 대결을 벌이는, 구체적인 경험에 입각한 이야기로서 비교적 길게 이어지므로 문헌설화와도 다르다.

현실생활에서 생겨나는 갈등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와 교훈을 찾을 수 있는 서사문학의 읽을거리를 요구하게 되자 소설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고소설은 신소설 이후의 소설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문본과 국문본이 공존하고, 대다수가 필사본으로 유통되었으며, 중국을 무대로 한 것이 국내를 무대로 한 것보다 많다. 현실적 경험을 다루되 초경험적인 전제를 개입시키기 일쑤이고, 사실적인 표현의 성장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고소설은 15세기 후반에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金鰲新話>에서 시작되었다. <금오신화>는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죽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꿈에서 소원을 이루는 것 같은 초경험적인 요소를 지닌 이야기를 한문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고독하고 불우한 주인공이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심각하게 그리고 있어 비슷한 유형의 설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의미를 지녔다.

국문소설은 허균(許筠)이 17세기 초에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홍길동전>에서 시작되었다. 서자로서 받는 설움에 불만을 품고 출가한 홍길동이 도둑의 무리를 이끌고 나라에 반역하다가 섬나라 왕이 된다는 이 작품은 영웅소설의 연원을 이루었다. 그 뒤 국내를 무대로 한 영웅소설로는 <임진록 壬辰錄> 등이, 중국을 무대로 한 영웅소설로는 <조웅전 趙雄傳> 등이 다수 나타나 널리 읽혔다.

17세기 후반 김만중(金萬重)이 <구운몽 九雲夢>과 <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를 내놓아 소설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이 두 작품은 내용에서나 문체에서나 사대부 취향의 고급문화가 소설과 접합될 수 있게 하고, 소설은 허황되고 난잡하므로 금해야 한다는 주장을 누그러뜨리는 논거를 제공하였다.

이 두 작품을 비롯한 중국 무대, 사대부 취향의 작품들 중의 상당수는 국문본과 한문본이 함께 있어 두 층의 독자를 가깝게 하는 구실을 하였다.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옥린몽 玉麟夢>·<옥루몽 玉樓夢> 등 국문본도 있으면서 작자를 알 수 있는 것들이 그런 계열을 이룬다.

그런데 <숙향전 淑香傳>·<운영전 雲英傳> 같은 것들은 국문본과 한문본이 공존하지만, 사대부 가문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고독한 여주인공의 운명을 다루었으며, 작자는 알 수 없다. 국문본과 한문본이 서로 번역되어 함께 읽힌 작품군이 고소설의 중심을 이루었다 하겠으나, 거기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한문소설이기만 한 것은 실제 인물의 행적을 다룬 전(傳)과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서술방법에서도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아 범위를 정하기 어렵다. 그런 작품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가운데 18세기 후반 박지원(朴趾源)의 작품이 독특하여 높이 평가된다.

<허생전 許生傳>에서는 남산골 샌님이 장사꾼으로 나서서 나라의 형편을 진단하였다 하고, <양반전 兩班傳>에서는 시골 양반의 몰락을 그리면서 양반의 허실을 문제삼았다. 그 밖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당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풍자하였는데, 김려(金鑢)와 이옥(李鈺)도 이와 상통하는 작품을 다수 남겼다.

전이나 야담에 의거한 한문소설은 세태를 풍자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중국을 무대로 하지 않고, 유교 도덕을 표방할 필요가 없던 점이 국문소설과 달랐다. <오유란전 烏有蘭傳> 같은 것은 작자를 알 수 없는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는데, 그런 작품의 풍을 이은 세태풍자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한문소설 고유의 성격에서 벗어나 국문소설이라야 어울릴 수 있는 복잡한 사건을 초경험적인 요소를 곁들여 다룬 한문소설도 있다. <구운기 九雲記>는 <구운몽>을 개작하면서 분량을 갑절이나 늘리고, 도가적인 내용을 갖추었다.

19세기 초 김소행(金紹行)이 지은 <삼한습유 三韓拾遺>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여 자결한 여인의 사건을 신라시대에 있었던 일이라고 꾸미고, 초경험적인 상상을 동원하여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서유영(徐有英)은 <육미당기 六美堂記>에서 신라의 태자가 일본에 원정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는 해외원정 영웅소설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작품은 작자의 지식과 상상력을 과시하는 데 머무르고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기 어렵다.

국문소설이기만 한 작품은 분량에 따라서 두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기만 하고 한 책으로 끝나는 것은 ‘―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 일쑤여서 전책(傳冊)이라 하였다.

한 대 또는 여러 대에 걸쳐 가문의 흥망을 다룬 작품은 분량이 길어지게 마련이고 ‘○○○록(錄)’이라는 제목이 흔하여 녹책(錄冊)이라 이름한다.

전책에는 영웅소설이 많고,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것도 적지 않았다. <옥단춘전 玉丹春傳> 같은 애정소설, <진대방전 陳大房傳> 같은 교훈소설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비교적 하층 독자들에게 읽혔다.

이보다 격조가 높다고 인정되어 사대부 부녀자들이 애독한 녹책은 국문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 한문본과 공존하는 것보다 분량이 더 늘어나 대장편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을 무대로 하는 관례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무척 흥미롭고 복잡한 사건을 전개하면서 초경험적인 설정을 계속 활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장편 가운데 <완월회맹연 玩月會盟宴>은 180책이나 되어 고소설 중에서 가장 길다. <명주보월빙 明珠寶月聘>은 100책이며, 연쇄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두 작품까지 합치면 전체 분량이 235책에 이른다.

이와 비슷한 분량을 가진 작품이 몇 가지 더 있어서, 19세기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사대부 부녀자들이 길고 흥미로운 작품을 열망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내용에 있어서는 높은 지체를 자랑하는 몇 가문의 남녀가 여러 대에 걸쳐서 벼슬하고, 혼인하고, 자손을 두고 하면서 겪는 시련을 자세하게 다루는 데 그친다. 보수적인 가치관도 전과 다름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 비슷한 계열인 것 같으면서도 10책 전후의 분량인 <천수석 泉水石>·<보은기우록 報恩奇遇錄> 등은 가문의 질서가 무너지고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이 대두하여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는 양상을 거짓없이 다루어 주목된다.

<천수석>에서는 서술적 역전, 인과관계의 다각적 추적, 내면심리의 표출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인물이 관여해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을 다루는 수법은 양 계열에서 모두 크게 발전되었다.

판소리계 소설은 이와 같은 대장편류와 대조적인 위치에 섰다. 두 계열 모두 19세기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발전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유래와 성격이 판이하다.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 사설이 정착되어 이루어졌으며, 판소리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판소리와의 관련 때문에 생동하는 구어문체를 지니고 있으며, 하층의 광대가 경험을 통하여 인식한 당대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면서도 상층 취향의 표현과 사고방식도 아울러 지녀, 작품 속에서 대립을 일으키게 하였기에 폭이 더 넓어졌다.

여러 작품이 판소리를 통해서나 소설로 읽히면서 여러 작품이 전국에 널리 알려진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판소리계 소설은 위에서 전책이라 한 저급소설을 쇄신하여, 국내를 무대로 한 사실적 작품의 발전을 가속화하였다는 의의를 가진다.

판소리는 모두 열두마당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소설만으로 전하고, 일부는 판소리와 소설이 공존한다. <옹고집전 雍固執傳>과 <배비장전 裵裨將傳>이 판소리는 없어지고 소설만 남은 대표적인 예인데, 탐욕과 허세를 풍자한 작품이다.

판소리와 소설이 공존하는 것들인 <춘향전>·<심청전>·<흥부전>·<토끼전>은 주제와 수법이 더욱 흥미롭다. 각기 정절·효성·우애·충성 등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표면에 내세우고서, 그런 것들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생동하는 구어에 의한 문체가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춘향전>은 고소설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서, 기생의 딸 춘향이 신분적인 제약을 벗어나 사랑을 성취하고 인간적인 해방을 이룩한다는 내용이다. <흥부전>에서는 농촌사회의 변화를 실감나게 다루어 전통적 가치관에 매달리는 아우와 돈을 모으기에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형을 대립시켜 문제삼았다.

세태풍자의 한문소설, 대장편인 국문소설, 판소리계 소설이 고소설에서 이룩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주제의식·전개방식·현실감각에서 각기 두드러진 장점을 가지고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하였으며, 서로 교류하고 융합될 기회가 없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그런 단계에 이르러서 새로운 단계의 발전이 요망될 때 나타난 신소설은 고소설의 전통을 협소하고 왜곡되게 계승하였다. 신소설과 현대소설이 외래적인 영향에 민감해 있는 동안 고소설의 소중한 유산은 대부분 잊혀졌다가, 근래의 연구에 힘입어 재발견, 재인식되고 있다.

고소설은 아직 총괄적인 목록이 정확하게 작성되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600여종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한문소설 대부분과 국문본과 한문본이 공존하는 소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문소설 중에는 작자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특히, 국문소설의 경우 소설을 짓는 일이 명예롭지 않다고 여겨 이름을 숨겼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영리적으로 유통될 작품을 제공해도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은 작가는 사대부일 수도 있고 그 이하 신분일 수도 있는데, 소설의 영리적 유통이 확대되면서 시민층 출신의 직업적 작가가 많아졌으리라고 짐작된다.

소설 유통의 일반적인 방법은 필사본으로 전달되어 읽히는 것이었다. 필사본은 독자가 늘어나면서 거듭 필사되었는데, 필사자가 개작을 할 수 있어서 인기의 정도에 비례해서 이본(異本)이 늘어났다. 읽을 때는 소리내어서 낭독하면 여러 사람이 듣는 경우가 흔하였다.

장터 등 행인의 내왕이 많은 곳에서는 자리잡고 돈을 버는 직업적인 낭독자도 있었다. 서울에서 영업을 하는 직업적 낭독자인 전기수(傳奇叟)는 흥미로운 대목에 이르면 소리를 멈추고 청중이 돈을 던져주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필사본 소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장편류를 많이 모아놓고 빌려주면서 돈을 버는 세책가(貰冊家)의 영업도 서울에서 번창했다. 이는 새로운 작품이 다수 창작되게 하는 구실을 하였다.

18세기에는 민간 출판업자가 목판으로 책을 출판하는 이른바 방각본(坊刻本)으로 소설이 출판되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 그 영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방각본 소설은 서울의 경판본(京板本), 전주의 완판본(完板本), 그리고 안성판본(安城板本)의 세 가지로 출판되었다. 종수가 60여종에 이르렀는데, 분량이 얼마 되지 않고, 특히 인기가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였다.

191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활자본에 의한 고소설 출판이 시작되어 200여종이 나왔다. 그 가운데는 활자본으로 출판하기 위해서 창작한 신작 고소설도 있어, 고소설시대가 끝난 다음에 신소설이나 현대소설이 바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참고문헌

『한국고전소설연구』(김기동, 교학사, 1981)
『고소설통론』(소재영, 이우출판사, 1983)
『한국고소설입문』(김동욱·황패강, 1985)
『한국고전소설연구의 방향』(한국고전문학연구회, 새문사, 1985)
古代小說 Kodae Sos○l-A Survey of Korean Traditional Style Popular Novels-(Skillend, W.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 1968)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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