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정 ()

장계유고
장계유고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장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명중(明仲)
장계(藏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9년(광해군 11)
사망 연도
1655년(효종 6)
본관
나주(羅州)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후기에, 『장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장계(藏溪). 아버지는 도승지에 증직된 오희도(吳希道)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도사 김복흥(金復興)의 딸이다.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9년(인조 17)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고, 1640년 고두강(高斗綱)·정한(鄭漢)을 찾아 산사로 가서 함께 『주역』을 강론하였다. 1650년(효종 1) 태학(太學)에 들어가 이듬 해 정시(庭試)에 응하였으나 자급(資級)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력하였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기예(技藝)에도 능하였는데, 거문고는 사악한 생각을 금한다 하여 특히 좋아하였다. 1653년 어머니가 죽자 장사와 제사의 모든 절차를 주자의 『가례』에 따라 행하였고, 1655년 병에 걸려 37세에 요절하였다. 저서로는 『장계유고(藏溪遺稿)』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장계유고(藏溪遺稿)』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종덕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