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의 파평(坡平). 자는 유직(幼直). 좌의정 윤개(尹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비(尹棐)이다. 아버지는 윤담휴(尹覃休)이며, 어머니는 원순보(元純輔)의 딸이다. 윤담연(尹覃衍)에게 입양되었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관(史官)으로 일을 보았으나 계속 파산(罷散)상태로 있다가 이듬해 예문관검열에 제수된 뒤, 대교·겸설서·봉교를 지냈다. 1614년(광해군 6)에는 세자시강원사서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한달 뒤 병조좌랑에 올랐다.
병조좌랑에 재직 시 『선조실록』 편수관을 지냈으며, 1617년(광해군 9)에는 비변사에서 유장(儒將)으로 천거하기도 했다. 전란 후 당시 피폐되었던 지방을 부흥하기 위해 명망있는 대간이나 시종(侍從) 등의 문관을 수령으로 파견하는 시책에 따라 중화부사(中和府使)로 파견되었고, 마음으로 백성들을 돌보아 온 경내가 편안하였다는 이조의 추천으로 가자(加資: 정3품 당상관 이상에 오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