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익 ()

단발령 / 이풍익(전)
단발령 / 이풍익(전)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곡(子穀)
육완당(六玩堂)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04년(순조 4)
사망 연도
1887년(고종 24)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정의
개항기 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곡(子穀), 호는 육완당(六玩堂). 아버지는 이존우(李存愚)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로 홍경안(洪景顔)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우의정 이화우(李和愚)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9년(순조 29)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되었고, 1838년(헌종 4) 병조정랑, 1847년 대사간, 1873년(고종 10) 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경상좌도의 시관으로 있을 때 감식에 밝고 공평하였으므로 영남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858년(철종 9) 어사 이건필(李建弼)의 탄핵을 받아 김제로 귀양갔으나 곧 풀려났다. 1866년(고종 3) 동지상사(冬至上使)로 연경(燕京)에 갔다. 1881년(고종 18) 예조판서로 있을 때 동궁의 풍악설치문제로 이론이 있었으나 『서전(書傳)』의 고사를 인용하여 악관의 설치를 청하여 채택되게 하였다. 그뒤로 동궁이 거동할 때나 사부(師傅)의 상견례를 행할 때는 풍악을 설치하는 것이 정식화되었다. 저서로는 『육완당집』 6권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육완당집(六玩堂集)』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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