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수태위 상주국,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098년(숙종 3) 3월 태자를 세우고 관원을 둘 때 전내(典內)가 되었고, 1100년 12월 급사중(給事中)이 되고, 1104년 정월 직문하성(直門下省)으로서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에 임명되어 임간(林幹)과 함께 여진정벌에 나섰다. 1105년(숙종 10) 윤2월 비서감 지상서이부사(秘書監知尙書吏部事), 같은 해(예종 즉위년) 11월 형부상서 지제고(刑部尙書知制誥)를 거쳐 , 1106년 8월 예부상서로서 중군병마사가 되었고, 11월 동지중추원사(중추원의 동지사)를 거쳐 이듬해 12월 검교사공(檢校司空)에 오르고, 이듬해 5월 예부상서로서 예부시를 주관하였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평장사(平章事) 최홍사(崔弘嗣) · 김경용(金景庸), 참지정사 임의(任懿)와 함께 윤관(尹瓘) · 오연총(吳延寵) · 임언(林彦)의 패전을 극론했으며, 10월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6월 이부상서, 12월 중서시랑 판호부사 겸 서경유수사를 거쳐 1112년 2월 수사도 수국사(守司徒修國史), 9월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후 1113년 12월 수태위 상주국(守太尉上柱國)에 오르고, 1114년 12월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1116년 3월 서경 행차 때 판행종사(判行從事)가 되어 수행했고, 이어 6월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12월 태부(太傅)가 되고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에 봉해진 뒤, 1118년(에종 13) 3월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하였다.
1122년(인종 즉위년) 5월 광국공신 계양공(匡國功臣桂陽公)에 봉해졌으며, 1126년(인종 4) 외손녀인 임씨(任氏)가 태몽대로 인종의 비로 책봉되어 의종 · 명종 · 신종 등을 낳았는데, 바로 이 사람이 공예태후이다. 이듬해 8월 중서령에 올라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가 내려졌으며, 1133년(인종 11) 9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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