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 및 남북국시대 신라의 하주총관, 남천주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문무왕 2년(662) 8월에 백제의 유민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흠순(欽純) 등 19명의 장군이 이를 진압하였는데, 이때 대당총관(大幢摠管)이었던 진주(眞珠)와 당시 남천주(南川州) 총관(摠管)이었던 진흠이 거짓으로 병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방만하게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자, 마침내 죽이고 아울러 그 일족(一族)을 멸하였다. 그런데 이때 죽었다고 한 진주가 문무왕 10년(670) 12월에 반역을 도모한 한성주(漢城州) 총관 수세(藪世)의 목을 베었다는 기사가 있어 앞서의 기사를 착오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를 문무왕 15년(675)에 숙위학생(宿衛學生)이던 진주의 아들 풍훈(風訓)이 아버지의 죽음을 원망하여 당나라군의 길잡이가 되어 신라를 침공하였다는 기사와 함께 이해하면, 진주와 함께 진흠 역시 670년 이후에 사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진주 및 진흠 등을 친당파(親唐派)로 보아 당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문무왕이 이들을 숙청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문무왕 13년(673) 7월에 아찬(阿湌) 대토(大吐)가 반란을 꾀하여 당나라에 붙으려고 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어 목이 베이는 죽임을 당하고 처와 자식들을 천인(賤人)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친당파에 대한 문무왕의 태도를 알 수 있다. 한편, 이들을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대 이래 여왕 즉위에 반대한 진골 귀족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 주보돈,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지식산업사, 2018)
-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9)
논문
- 권덕영, 「비운의 신라 견당사들」(『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 15, 경주사학회, 1994)
주석
-
주1
: 신라의 군지휘관. 대당 총관은 6정(停)의 하나였던 대당 군단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었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