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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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에 소련의 페트로그라드에 설립된 고려인 노동자 단체.
고려인 동맹 (高麗人 同盟)
1918년에 소련의 페트로그라드에 설립된 고려인 노동자 단체.
고려인 정착촌은 19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형성된 거주지이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른 언어, 경제적 궁핍, 민족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들의 일부가 연해주 지역으로 재이주하였다. 이주 환경은 생각보다 나빠서 직장, 주택, 자녀 교육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재정에 의존하였다. 열악한 이주 상황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은 거의 없다.
고려인 정착촌 (高麗人 定着村)
고려인 정착촌은 1990년대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형성된 거주지이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다른 언어, 경제적 궁핍, 민족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인들의 일부가 연해주 지역으로 재이주하였다. 이주 환경은 생각보다 나빠서 직장, 주택, 자녀 교육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재정에 의존하였다. 열악한 이주 상황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은 거의 없다.
1930~1940년대에 작성된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문서를 엮어 1992년과 1997년에 간행한 자료집. 해외한인문헌.
고려인강제이주백서 (高麗人强制移住白書)
1930~1940년대에 작성된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관련 문서를 엮어 1992년과 1997년에 간행한 자료집. 해외한인문헌.
벨라루스 거주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벨라루스 고려인협회 (Belarus 高麗人協會)
벨라루스 거주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1991년 11월에 설립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단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문화협회 (Uzbekistan 高麗人文化協會)
1991년 11월에 설립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단체.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전 러시아 고려인연합회 (全 Russia 高麗人聯合會)
1999년에 러시아 고려인들이 만든 단체.
러시아의 고려인 백과사전은 최 브로냐 등이 러시아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등을 정리하여 2003년에 발간한 사전이다. 이 백과사전은 고려인 학자들이 러시아 이주 140주년인 2003년 12월 26일에 발간하였다. 84☓108㎝ 크기의 16판으로 3,000부를 발행하였다. 총 1,44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항목에 관한 해설식 설명보다는 주요 논문과 인명록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러시아 고려인의 이주 과정과 문화를 담고 있으며, 주요 고려인 인물에 관한 이력도 실려 있다. 고려인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하여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의 고려인 백과사전 (Russia의 高麗人 百科辭典)
러시아의 고려인 백과사전은 최 브로냐 등이 러시아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 등을 정리하여 2003년에 발간한 사전이다. 이 백과사전은 고려인 학자들이 러시아 이주 140주년인 2003년 12월 26일에 발간하였다. 84☓108㎝ 크기의 16판으로 3,000부를 발행하였다. 총 1,44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항목에 관한 해설식 설명보다는 주요 논문과 인명록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러시아 고려인의 이주 과정과 문화를 담고 있으며, 주요 고려인 인물에 관한 이력도 실려 있다. 고려인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하여 주목받고 있다.
고려 후기에, 낭장,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김위량 (金位良)
고려 후기에, 낭장,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신한촌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한인 집단 거주지이다. 1870년(고종 8)대부터 한국인이 정착하였고, 1893년(고종 31)부터 러시아 당국에서 한국인 집단 거주지로 설정할 정도로 한인의 수가 늘어났다. 신한촌에는 자치단체, 독립운동단체 등이 생겨났고,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몰려들어 국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항일운동은 제정 러시아의 압박을 받았고, 러시아 혁명 후 일제의 시베리아 파병, 1920년 ‘4월참변’으로 민족운동의 중심지는 북간도로 옮겨졌다.
신한촌 (新韓村)
신한촌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한인 집단 거주지이다. 1870년(고종 8)대부터 한국인이 정착하였고, 1893년(고종 31)부터 러시아 당국에서 한국인 집단 거주지로 설정할 정도로 한인의 수가 늘어났다. 신한촌에는 자치단체, 독립운동단체 등이 생겨났고,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몰려들어 국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항일운동은 제정 러시아의 압박을 받았고, 러시아 혁명 후 일제의 시베리아 파병, 1920년 ‘4월참변’으로 민족운동의 중심지는 북간도로 옮겨졌다.
심왕은 고려 후기 심주(瀋州)·요양(遼陽)의 고려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원에서 고려의 왕족에게 수여한 봉호(封號)이다.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심주와 요양 일대에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가 설치되었다. 1307년에 원 무종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충선왕이 심양왕에 분봉되고 이곳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1310년에 심왕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313년 고려의 국왕과 심왕을 겸하였던 충선왕이 고려왕위는 충숙왕에게, 심왕위는 왕고에게 양위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심왕이 고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심왕옹립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려 국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심왕 (瀋王)
심왕은 고려 후기 심주(瀋州)·요양(遼陽)의 고려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원에서 고려의 왕족에게 수여한 봉호(封號)이다.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심주와 요양 일대에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가 설치되었다. 1307년에 원 무종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충선왕이 심양왕에 분봉되고 이곳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1310년에 심왕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313년 고려의 국왕과 심왕을 겸하였던 충선왕이 고려왕위는 충숙왕에게, 심왕위는 왕고에게 양위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심왕이 고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심왕옹립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려 국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재외동포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크게 재외국민(在外國民)과 한국계 외국인(韓國系 外國人)으로 나뉘며, 미국,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재미 교포, 재중 동포, 재일 교포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밖에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식민지 시기까지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지역,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재외동포 (在外同胞)
재외동포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크게 재외국민(在外國民)과 한국계 외국인(韓國系 外國人)으로 나뉘며, 미국, 중국, 일본에 거주하는 재미 교포, 재중 동포, 재일 교포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밖에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식민지 시기까지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지역,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제강점기 마전교회 부설 신명학교 교장, 주일학당위원회 대표 및 서기 등을 역임한 목사.
장덕로 (張德櫓)
일제강점기 마전교회 부설 신명학교 교장, 주일학당위원회 대표 및 서기 등을 역임한 목사.
해방 이후 『화전민』, 『승리자의 군상』 등을 저술한 작가. 극작가.
한태천 (韓泰泉)
해방 이후 『화전민』, 『승리자의 군상』 등을 저술한 작가. 극작가.
고본질은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이다.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말이다.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영농방식이다. 기본 운용 단위는 ‘브리가다’라고 불리는 40~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고본질 (股本질)
고본질은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이다.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말이다.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영농방식이다. 기본 운용 단위는 ‘브리가다’라고 불리는 40~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1927년 5월에 소련의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설립된 조선인 사범학교.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조선인사범학교 (Nikolsk-Ussurysk 朝鮮人師範學校)
1927년 5월에 소련의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설립된 조선인 사범학교.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고려인 사범대학.
원동고려사범대학 (遠東高麗師範大學)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고려인 사범대학.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지 않은 채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여호 (餘戶)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지 않은 채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고서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원호 (元戶)
19세기 말에 러시아 국적을 갖고서 극동 지역에 살았던 고려인.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중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한민족문화축제. 해외한인축제.
까레야다 (Koreyada)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주관으로 매년 9월~10월 중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한민족문화축제. 해외한인축제.
1997년 9월 20일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 창간한 민족 신문.
고려신문 (高麗新聞)
1997년 9월 20일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 창간한 민족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