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궁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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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박문원 (博文院)
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관리서는 1902년(광무 6)에 전국의 사찰 · 산림 · 성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이다. 갑오개혁기에 전국 사찰의 관리체계가 해체되어 사찰의 재산이 침탈 위험에 처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궁내부 경위원(警衛院) 산하에 만들어진 사찰 관리 관서이다. 역할은 국내의 산림, 성보(城堡), 사찰에 관한 사무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전국 사찰의 현황 조사와 사찰 관련 규칙 제정 등을 시행하였다. 1904년 1월에 그다지 필요가 없는 관서로 지목되어 폐지되었다.
관리서 (管理署)
관리서는 1902년(광무 6)에 전국의 사찰 · 산림 · 성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이다. 갑오개혁기에 전국 사찰의 관리체계가 해체되어 사찰의 재산이 침탈 위험에 처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궁내부 경위원(警衛院) 산하에 만들어진 사찰 관리 관서이다. 역할은 국내의 산림, 성보(城堡), 사찰에 관한 사무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전국 사찰의 현황 조사와 사찰 관련 규칙 제정 등을 시행하였다. 1904년 1월에 그다지 필요가 없는 관서로 지목되어 폐지되었다.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관제이정소 (官制釐整所)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경연원 (經筵院)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계천기원절 (繼天紀元節)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대한제국기 비서감에서 국왕의 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비서감일기 (秘書監日記)
대한제국기 비서감에서 국왕의 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어공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버려진 제언(堤堰)이나 어장(漁場)을 관리해서 어공(御供)에 바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된 관서이다.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어업권 침탈에 맞서 궁내부가 이들 재원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5월 19일 신설하였으나, 7월 30일에 곧 폐지되었다.
어공원 (御供院)
어공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버려진 제언(堤堰)이나 어장(漁場)을 관리해서 어공(御供)에 바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된 관서이다.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어업권 침탈에 맞서 궁내부가 이들 재원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5월 19일 신설하였으나, 7월 30일에 곧 폐지되었다.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영선사 (營繕司)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수륜원(水輪院)은 대한제국기에 수륜(水輪), 제언(堤堰) 등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진황지(陳荒地)를 개간하는 업무를 맡은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899년(광무 3) 1월에 궁내부 내장사 소속 수륜과로 설치되었으나, 8월에 내장사가 내장원이 되면서 독립하여 궁내부 직속이 되었다. 1902년(광무 6) 4월에 수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904년(광무 8) 1월 11일에 폐지되었다.
수륜원 (水輪院)
수륜원(水輪院)은 대한제국기에 수륜(水輪), 제언(堤堰) 등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진황지(陳荒地)를 개간하는 업무를 맡은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899년(광무 3) 1월에 궁내부 내장사 소속 수륜과로 설치되었으나, 8월에 내장사가 내장원이 되면서 독립하여 궁내부 직속이 되었다. 1902년(광무 6) 4월에 수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904년(광무 8) 1월 11일에 폐지되었다.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수민원 (綏民院)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조선 말기 전각의 수리와 수호를 맡아보던 관청.
전각사 (殿閣司)
조선 말기 전각의 수리와 수호를 맡아보던 관청.
조선 말기 친왕부의 관직.
전독 (典讀)
조선 말기 친왕부의 관직.
1895년(고종 32) 종래의 사옹원(司饔院)을 고쳐 궁중내의 음식·잔치와 그 기구를 보관하는 일을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 관서.
전선사 (典膳司)
1895년(고종 32) 종래의 사옹원(司饔院)을 고쳐 궁중내의 음식·잔치와 그 기구를 보관하는 일을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 관서.
1900년 설치된 궁내부(宮內府) 산하 친왕부(親王府) 소속의 관직.
전위 (典衛)
1900년 설치된 궁내부(宮內府) 산하 친왕부(親王府) 소속의 관직.
조선 말기 제실제도의 정리를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제실제도정리국 (帝室制度整理局)
조선 말기 제실제도의 정리를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직.
정리부사 (整理副使)
조선 말기 궁내부의 관직.
평식원은 1902년에 미터법을 기반으로 하는 도량형을 정비하기 위해 궁내부에 신설된 부서이다. 미터법은 파리과학아카데미가 제안한 길이와 이를 통해 유도한 부피, 무게의 단위를 근간으로 한다. 평식원은 이 미터법 도량형의 관리를 총괄하는 새로운 부서였다. 평식원 총재는 원기 보관의 의무가 있으며, 도량형기는 평식원 제조소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하였다. 1904년에 폐지되었으며, 소관 업무는 농상공부 평식과로 이관되었다.
평식원 (平式院)
평식원은 1902년에 미터법을 기반으로 하는 도량형을 정비하기 위해 궁내부에 신설된 부서이다. 미터법은 파리과학아카데미가 제안한 길이와 이를 통해 유도한 부피, 무게의 단위를 근간으로 한다. 평식원은 이 미터법 도량형의 관리를 총괄하는 새로운 부서였다. 평식원 총재는 원기 보관의 의무가 있으며, 도량형기는 평식원 제조소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하였다. 1904년에 폐지되었으며, 소관 업무는 농상공부 평식과로 이관되었다.
종백부는 갑오개혁기에 종묘나 각 궁 · 능 · 원 · 묘 등을 관리하고 제사나 의시(議諡)를 관장하던 왕실의 관서이다. 궁내부(宮內府)와 함께 설치된 왕실 관련 기관으로, 휘하에 종묘서, 사직서 등의 관서 및 여러 능 · 원 · 묘가 소속되어 왕실 관련 제사나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1895년 4월, 을미개혁 당시 폐지되었고 관할 업무는 장례원으로 이관되었다.
종백부 (宗伯府)
종백부는 갑오개혁기에 종묘나 각 궁 · 능 · 원 · 묘 등을 관리하고 제사나 의시(議諡)를 관장하던 왕실의 관서이다. 궁내부(宮內府)와 함께 설치된 왕실 관련 기관으로, 휘하에 종묘서, 사직서 등의 관서 및 여러 능 · 원 · 묘가 소속되어 왕실 관련 제사나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1895년 4월, 을미개혁 당시 폐지되었고 관할 업무는 장례원으로 이관되었다.
조선 말기에 설치되었던 관청.
종정부 (宗正府)
조선 말기에 설치되었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