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학생동맹(在日韓國學生同盟)
이후 우파가 1950년 재일한국학생동맹(이하 한학동)이라는 조직을 결성했고, 민단의 산하 조직이 되었다. 『민주신보』에 따르면, 한학동은 1951년 10월 29·30일 양일 동안 제6회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1. 대일본 태도문제, 2. 민족문화 앙양에 관한 문제, 3. 조직의 강화, 4. 생활보장에 관한 문제 등에 관하여 진지한 토의를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6항목을 결의했다. 첫째, 재일학도로서 본국에서 싸우는 국군에 대한 격려문 발송, 둘째, 위문문 발송, 셋째, 본국 학생에 대한 서적 발송, 넷째, 본국에 학도사절단 파견, 다섯째, 회담진행기간 중 학생동맹 임시대회를 개최함, 여섯째, 공가(公家)로 된 오사카(大阪) 소재 극동경제부흥사업단의 기술연구소를 학생동맹에서 사용하기로 함 등이다. 한학동은 한국전쟁 시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