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송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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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은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이다. 현재 사용되는 ‘국악’ 용어 및 개념의 직접적인 뿌리는 대한제국기 국가 음악 기관에 양악이 도입된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통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외래 음악의 상대 개념으로 사용되어 온 ‘향악’이 ‘국악’으로 대체되었고, 향악은 국악의 한 갈래로 수렴되었으며, 국악이 외래 음악인 양악의 반대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국악 (國樂)
국악은 한민족 문화권에 전승되어 온 고유의 음악 및 이를 바탕으로 변화, 창작된 한국음악의 총칭이다. 현재 사용되는 ‘국악’ 용어 및 개념의 직접적인 뿌리는 대한제국기 국가 음악 기관에 양악이 도입된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통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외래 음악의 상대 개념으로 사용되어 온 ‘향악’이 ‘국악’으로 대체되었고, 향악은 국악의 한 갈래로 수렴되었으며, 국악이 외래 음악인 양악의 반대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영안지곡」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전래 아악곡명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에서,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 및 원구제례의 송신 절차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황종궁의 선율이다.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악곡인 「영안지악」과는 별개의 곡이다.
영안지악 (寧安之曲)
「영안지곡」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전래 아악곡명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에서,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 및 원구제례의 송신 절차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황종궁의 선율이다.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악곡인 「영안지악」과는 별개의 곡이다.
풍류는 이상적인 풍속과 문화, 자연과 사람, 사물, 예술, 또는 이를 향유하며 멋스럽고, 즐겁고, 자유롭게 사는 일 등을 아우르는 미적 개념이다. 고유의 전통사상을 이르는 풍류정신부터 옛 성현들의 예의와 도덕이 지켜지는 풍속이나 사람의 인품, 예술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 현실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흥, 쾌 등을 표현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용되어 왔다. 한편, 조선 후기 사전 및 한글 문헌에서는 음악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현재 풍류는 악곡의 갈래 및 악곡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풍류 (風流)
풍류는 이상적인 풍속과 문화, 자연과 사람, 사물, 예술, 또는 이를 향유하며 멋스럽고, 즐겁고, 자유롭게 사는 일 등을 아우르는 미적 개념이다. 고유의 전통사상을 이르는 풍류정신부터 옛 성현들의 예의와 도덕이 지켜지는 풍속이나 사람의 인품, 예술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 현실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흥, 쾌 등을 표현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용되어 왔다. 한편, 조선 후기 사전 및 한글 문헌에서는 음악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현재 풍류는 악곡의 갈래 및 악곡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풍안지곡」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전하는 제례아악 중의 하나이다. 음식을 올리는 절차를 위한 곡이다. 고려시대에는 친제와 유사 섭사의 진찬 절차에서 모두 「풍안지곡」이 연주되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진찬례는 친제에서만 주악을 갖춰 헌가에서 연주하고, 무무가 수반되었다. 4언 1구, 8구 1장에 1자1음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시대 「풍안지곡」의 선율과 악장은 알 수 없고 조선조의 『세종실록』 「악보」 소재 임우 『대성악보』에서 고선궁의 선율과 악장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현행 문묘제례악 악보의 「풍안지곡」과는 다르다.
풍안지곡 (豊安之曲)
「풍안지곡」은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전하는 제례아악 중의 하나이다. 음식을 올리는 절차를 위한 곡이다. 고려시대에는 친제와 유사 섭사의 진찬 절차에서 모두 「풍안지곡」이 연주되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진찬례는 친제에서만 주악을 갖춰 헌가에서 연주하고, 무무가 수반되었다. 4언 1구, 8구 1장에 1자1음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시대 「풍안지곡」의 선율과 악장은 알 수 없고 조선조의 『세종실록』 「악보」 소재 임우 『대성악보』에서 고선궁의 선율과 악장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현행 문묘제례악 악보의 「풍안지곡」과는 다르다.
함재운은 근대에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이다. 1908년에 장례원의 제2대 국악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 장례원의 업무가 이왕직으로 이관되고 악원의 조직이 아악부로 변경되었을 때 초대 아악사장을 맡았다. 인원 감축 혹은 해산 논의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전래의 황실 제례와 연향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함재운 (咸在韻)
함재운은 근대에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이다. 1908년에 장례원의 제2대 국악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 장례원의 업무가 이왕직으로 이관되고 악원의 조직이 아악부로 변경되었을 때 초대 아악사장을 맡았다. 인원 감축 혹은 해산 논의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전래의 황실 제례와 연향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악기장은 악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다. 악기 제작자는 전통적으로 ‘풍물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나,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42호가 ‘악기장’으로 지정되며 공식 명칭이 확립되었다. 이후 북메우기와 편종·편경 제작 등이 통합·추가되었고, 2024년에는 국가무형유산 ‘악기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악기장은 재료 선별부터 가공·조립·조율까지 전통 악기의 소리를 완성하는 종합 기술을 갖추며, 현악기·관악기·북·편종·편경 제작 과정에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악기장 (樂器匠)
악기장은 악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다. 악기 제작자는 전통적으로 ‘풍물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나,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42호가 ‘악기장’으로 지정되며 공식 명칭이 확립되었다. 이후 북메우기와 편종·편경 제작 등이 통합·추가되었고, 2024년에는 국가무형유산 ‘악기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악기장은 재료 선별부터 가공·조립·조율까지 전통 악기의 소리를 완성하는 종합 기술을 갖추며, 현악기·관악기·북·편종·편경 제작 과정에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악기장은 악기 만드는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풍물장의 동의어로 조선시대의 문헌 일부에서 명칭의 용례가 확인되며 1971년에 현악기 제작 기술을 국가무형유산 종목으로 지정할 때 해당 종목의 장인을 악기장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현악기 제작과 별도로 북 만드는 기술인 ‘북메우기’ 종목이 1980년에 신규로 지정되었다가 1995년에 악기장으로 통합되었고, 2012년에는 편종·편경 제작 기술이 추가 지정되었다. 현재는 국악기 제작 기술자를 뜻하는 대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악기장 (樂器匠)
악기장은 악기 만드는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풍물장의 동의어로 조선시대의 문헌 일부에서 명칭의 용례가 확인되며 1971년에 현악기 제작 기술을 국가무형유산 종목으로 지정할 때 해당 종목의 장인을 악기장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현악기 제작과 별도로 북 만드는 기술인 ‘북메우기’ 종목이 1980년에 신규로 지정되었다가 1995년에 악기장으로 통합되었고, 2012년에는 편종·편경 제작 기술이 추가 지정되었다. 현재는 국악기 제작 기술자를 뜻하는 대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악기조성청은 조선 후기 궁중 의례에 필요한 악기 및 의물, 복식 등을 제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되었던 기구이다. 악기조성청은 일반 명칭으로도 불리었지만, 설치 목적에 따라 대보전 악기조성청(1741), 인정전 악기조성청(1744), 경모궁 악기조성청(1776), 사직 악기조성청(1803) 등으로 명명되었다.
악기조성청 (樂器造成廳)
악기조성청은 조선 후기 궁중 의례에 필요한 악기 및 의물, 복식 등을 제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되었던 기구이다. 악기조성청은 일반 명칭으로도 불리었지만, 설치 목적에 따라 대보전 악기조성청(1741), 인정전 악기조성청(1744), 경모궁 악기조성청(1776), 사직 악기조성청(1803) 등으로 명명되었다.
호드기는 물오른 나무껍질이나 갈대로 만들어 부는 민속 생활 악기이다. 주로 버드나무에서 벗겨낸 껍질을 대롱〔管〕처럼 다듬어 입에 물고 소리를 내므로 버들피리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유피피리(柳皮觱栗), 유행(柳笙), 유적(柳笛), 유가(柳笳), 춘가(春笳) 등으로 표기되었다. 넓은 의미의 풀피리〔草笛〕에 속하나 나뭇잎을 이용하는 엽적(葉笛)류와는 구분된다.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수피를 벗겨 내기 쉬운 봄날에 어린이들이 피리를 만들어 노는 ‘호드기 불기’ 놀이가 세시풍속의 하나로 전해 왔다.
호드기
호드기는 물오른 나무껍질이나 갈대로 만들어 부는 민속 생활 악기이다. 주로 버드나무에서 벗겨낸 껍질을 대롱〔管〕처럼 다듬어 입에 물고 소리를 내므로 버들피리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유피피리(柳皮觱栗), 유행(柳笙), 유적(柳笛), 유가(柳笳), 춘가(春笳) 등으로 표기되었다. 넓은 의미의 풀피리〔草笛〕에 속하나 나뭇잎을 이용하는 엽적(葉笛)류와는 구분된다.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수피를 벗겨 내기 쉬운 봄날에 어린이들이 피리를 만들어 노는 ‘호드기 불기’ 놀이가 세시풍속의 하나로 전해 왔다.
요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의 일종으로 금요(金鐃)이다. 팔음분류상으로는 금부에,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상으로는 체명 악기에 속한다. 형태는 요령처럼 종신과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종신 안에 형〔舌〕이 없어 채로 종신을 쳐서 소리를 낸다. 중국과 한국의 고대 행악(行樂) 중 '단소요가(短簫鐃歌)' 편성에 드는 악기 중의 하나였으며, 고려 이후 조선 전기까지 아악의 일무(佾舞) 중 무무(武舞)를 출 때 무구(舞具)로도 사용되었다.
요 (鐃)
요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의 일종으로 금요(金鐃)이다. 팔음분류상으로는 금부에,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상으로는 체명 악기에 속한다. 형태는 요령처럼 종신과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종신 안에 형〔舌〕이 없어 채로 종신을 쳐서 소리를 낸다. 중국과 한국의 고대 행악(行樂) 중 '단소요가(短簫鐃歌)' 편성에 드는 악기 중의 하나였으며, 고려 이후 조선 전기까지 아악의 일무(佾舞) 중 무무(武舞)를 출 때 무구(舞具)로도 사용되었다.
장구는 모래시계 모양의 북통 양면에 가죽을 대어 만든 타악기이다. 넓은 의미의 북에 속한다.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로는 막명(膜鳴)악기에 속한다. 10세기 전 서역 문물과 함께 수용된 이래 궁중 및 민간의 무속 의례 및 농악을 포함한 민간 연희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한자로는 장고로 표기하고, 장구로 발음하며 제주 무속에서는 장귀라고 부른다. 장구를 연주할 때는 양쪽의 북면을 채 또는 손바닥으로 쳐서 소리를 낸다.
장구
장구는 모래시계 모양의 북통 양면에 가죽을 대어 만든 타악기이다. 넓은 의미의 북에 속한다.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로는 막명(膜鳴)악기에 속한다. 10세기 전 서역 문물과 함께 수용된 이래 궁중 및 민간의 무속 의례 및 농악을 포함한 민간 연희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한자로는 장고로 표기하고, 장구로 발음하며 제주 무속에서는 장귀라고 부른다. 장구를 연주할 때는 양쪽의 북면을 채 또는 손바닥으로 쳐서 소리를 낸다.
징은 놋쇠로 만든 금속타악기이다. 농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궁중음악에 두루 사용된다. 진동 원리에 따른 악기 분류상으로는 체명(體鳴) 악기에 속한다. 징은 한자로 금(金)이라 하며, 크기에 따라 작은 쇠인 소금(小金)과 구분하여 대금(大金)이라 불렸다. 이 밖에도 다양한 한자와 한글 이칭이 있다. 징은 몸체와 끈, 징을 치는 채로 구성되며, 맥놀이라는 독특한 배음구조를 통해 고유의 음색을 낸다. 여러 의례에 징이 편성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되며, 현재까지 여러 갈래의 음악에서 고유의 역할을 맡고 있다.
징
징은 놋쇠로 만든 금속타악기이다. 농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궁중음악에 두루 사용된다. 진동 원리에 따른 악기 분류상으로는 체명(體鳴) 악기에 속한다. 징은 한자로 금(金)이라 하며, 크기에 따라 작은 쇠인 소금(小金)과 구분하여 대금(大金)이라 불렸다. 이 밖에도 다양한 한자와 한글 이칭이 있다. 징은 몸체와 끈, 징을 치는 채로 구성되며, 맥놀이라는 독특한 배음구조를 통해 고유의 음색을 낸다. 여러 의례에 징이 편성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확인되며, 현재까지 여러 갈래의 음악에서 고유의 역할을 맡고 있다.
「취풍형」은 조선 세종이 창작한 궁중악무 「봉래의(鳳來儀)」 구성곡 중의 하나로 「용비어천가」 한글본을 노래한 곡이다. 세종이 조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작한 노래와 정재로 구성한 「봉래의」 중 한 곡이다. ‘전인자-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로 이루어진 모음곡 구성에서, 시작 악구인 전인자와 한문본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여민락」, 한글본 가사를 노래하는 「치화평」에 이어 부르는 향악곡이다. 『세종실록』 악보와 『대악후보』에 악보가 실려 있고, 국가 연례에 연주된 바 있으나,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취풍형 (醉豊亨)
「취풍형」은 조선 세종이 창작한 궁중악무 「봉래의(鳳來儀)」 구성곡 중의 하나로 「용비어천가」 한글본을 노래한 곡이다. 세종이 조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작한 노래와 정재로 구성한 「봉래의」 중 한 곡이다. ‘전인자-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로 이루어진 모음곡 구성에서, 시작 악구인 전인자와 한문본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여민락」, 한글본 가사를 노래하는 「치화평」에 이어 부르는 향악곡이다. 『세종실록』 악보와 『대악후보』에 악보가 실려 있고, 국가 연례에 연주된 바 있으나,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치화평」은 조선시대 세종이 창작한 궁중악무 「봉래의(鳳來儀)」 구성곡 중의 하나로 「용비어천가」 한글본을 노래한 곡이다. 조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작한 노래와 정재로 구성한 「봉래의」 중 한 곡이다. '전인자-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로 이루어진 모음곡 구성에서, 시작 악구인 전인자와 한문본 「용비어천가」 가사를 노래하는 「여민락」 에 이어 한글본 가사를 부르는 향악곡이다. 『세종실록』 「악보」와 『대악후보』에 악보가 실려있고, 국가 연례에 연주된 바 있으나,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치화평 (致和平)
「치화평」은 조선시대 세종이 창작한 궁중악무 「봉래의(鳳來儀)」 구성곡 중의 하나로 「용비어천가」 한글본을 노래한 곡이다. 조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창작한 노래와 정재로 구성한 「봉래의」 중 한 곡이다. '전인자-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로 이루어진 모음곡 구성에서, 시작 악구인 전인자와 한문본 「용비어천가」 가사를 노래하는 「여민락」 에 이어 한글본 가사를 부르는 향악곡이다. 『세종실록』 「악보」와 『대악후보』에 악보가 실려있고, 국가 연례에 연주된 바 있으나,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토고는 흙을 빚어 울림통을 만들고, 울림통에 가죽을 씌워 만든 타악기를 이르는 총칭이다. 울림통을 나무로 만드는 목고와 구별된다. 토고의 형태는 울림통 모양에 따라 술통 모양의 북, 모래시계 모양의 장구, 화로 모양의 부(缶) 등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와고(瓦鼓), 도고(陶鼓)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 세종 때 『주례(周禮)』에 따라 선농(선農)의 아악 연주에 토고가 편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민간의 민속과 무속 음악 관련 문장에서 연주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 예가 있다.
토고 (土鼓)
토고는 흙을 빚어 울림통을 만들고, 울림통에 가죽을 씌워 만든 타악기를 이르는 총칭이다. 울림통을 나무로 만드는 목고와 구별된다. 토고의 형태는 울림통 모양에 따라 술통 모양의 북, 모래시계 모양의 장구, 화로 모양의 부(缶) 등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와고(瓦鼓), 도고(陶鼓)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 세종 때 『주례(周禮)』에 따라 선농(선農)의 아악 연주에 토고가 편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민간의 민속과 무속 음악 관련 문장에서 연주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 예가 있다.
대고는 북의 일종으로 큰 북을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작은 북(소고, 행고)에 비해 큰 북을 가리키며, 궁중과 군례, 농악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궁중음악에 사용된 대고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의 기록에서 확인되며, 건고나 진고, 교방고와 같은 의례용 북과 동일시된 예가 많다. 군례에 사용된 대고는 용무늬를 넣어 화룡대고로 불리었고, 농악에서는 작은 원형 공명통을 가진 소고보다 큰 북을 대고, 또는 대북이라고 불렀다.
대고 (大鼓)
대고는 북의 일종으로 큰 북을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작은 북(소고, 행고)에 비해 큰 북을 가리키며, 궁중과 군례, 농악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궁중음악에 사용된 대고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의 기록에서 확인되며, 건고나 진고, 교방고와 같은 의례용 북과 동일시된 예가 많다. 군례에 사용된 대고는 용무늬를 넣어 화룡대고로 불리었고, 농악에서는 작은 원형 공명통을 가진 소고보다 큰 북을 대고, 또는 대북이라고 불렀다.
북은 두드려 소리 내는 타악기의 총칭이자 둥근 나무통에 가죽을 씌워 가죽 막을 울려 소리 내는 타악기를 말한다. 울림통의 재료와 형태, 크기에 따라 세분된다. 대체로 가죽 막의 울림에서 소리를 얻기 때문에 분류상으로는 혁부(革部)의 막명악기(膜鳴樂器)에 속한다. 이밖에 나무와 흙, 금속 등 몸체를 직접 두드려 소리 내는 북도 있다. 울림통의 형태에 따라 술통 모양의 ‘북류’, 모래시계 모양의 ‘장구류’, 작은 원형의 ‘소고류’, 작은 북통을 막대에 끼워 흔들어 소리 내는 ‘도’ 종류 등이 있다.
북
북은 두드려 소리 내는 타악기의 총칭이자 둥근 나무통에 가죽을 씌워 가죽 막을 울려 소리 내는 타악기를 말한다. 울림통의 재료와 형태, 크기에 따라 세분된다. 대체로 가죽 막의 울림에서 소리를 얻기 때문에 분류상으로는 혁부(革部)의 막명악기(膜鳴樂器)에 속한다. 이밖에 나무와 흙, 금속 등 몸체를 직접 두드려 소리 내는 북도 있다. 울림통의 형태에 따라 술통 모양의 ‘북류’, 모래시계 모양의 ‘장구류’, 작은 원형의 ‘소고류’, 작은 북통을 막대에 끼워 흔들어 소리 내는 ‘도’ 종류 등이 있다.
아악은 아정(雅正)한 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정성(正聲)과 간성(姦聲)으로 구분할 때, 아악은 음악(淫樂), 사악(邪樂)과 대비되는 음악으로 정의되어 왔다. 중국 고대 주 시대의 유교 의례 음악을 아악이라 하였으며, 음악 양식 면에서 아악은 궁중의 향악, 당악과 차별화된 악기 편성과 선율 진행, 연행 방식을 갖춘 고유의 음악 갈래로 고려 예종 때에 중국에서 수용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아악이라 일컬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통칭하는 관행이 있었다.
아악 (雅樂)
아악은 아정(雅正)한 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정성(正聲)과 간성(姦聲)으로 구분할 때, 아악은 음악(淫樂), 사악(邪樂)과 대비되는 음악으로 정의되어 왔다. 중국 고대 주 시대의 유교 의례 음악을 아악이라 하였으며, 음악 양식 면에서 아악은 궁중의 향악, 당악과 차별화된 악기 편성과 선율 진행, 연행 방식을 갖춘 고유의 음악 갈래로 고려 예종 때에 중국에서 수용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아악이라 일컬었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궁중음악을 ‘아악’으로 통칭하는 관행이 있었다.
아쟁은 중국에서 전래된 지더(zither)형 찰현 악기(擦絃樂器)이다. 장방형의 공명통에 현을 걸어 활로 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에서는 현명악기(絃鳴樂器)에 속한다. 중국 고대 악기인 알쟁(軋箏)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아쟁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주로 당악 계통의 궁중 음악 연주에 편성되다가 조선 전기부터는 향악도 연주하였다, 20세기 전반에 민속악 연주용 산조아쟁이 만들어졌고, 1960년 이후로 여러 가지 개량 아쟁들이 만들어져 창작곡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아쟁 (牙箏)
아쟁은 중국에서 전래된 지더(zither)형 찰현 악기(擦絃樂器)이다. 장방형의 공명통에 현을 걸어 활로 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진동 원리에 따른 분류에서는 현명악기(絃鳴樂器)에 속한다. 중국 고대 악기인 알쟁(軋箏)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아쟁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주로 당악 계통의 궁중 음악 연주에 편성되다가 조선 전기부터는 향악도 연주하였다, 20세기 전반에 민속악 연주용 산조아쟁이 만들어졌고, 1960년 이후로 여러 가지 개량 아쟁들이 만들어져 창작곡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악기는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이다. 넓은 의미로는 소리를 낼 수 모든 물체를 포함한다. 악기의 유형은 소리를 내는 방법 및 진동 원리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전에 음악을 연주해 온 악기를 근원을 기준으로 아악기·당악기·향악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재료를 기준으로 한 팔음 분류 체계도 있다. 국악기의 범주에는 궁중 및 민간의 음악가들이 연주해 온 악기와 일상에서 노래와 춤에 수반되어 온 생활 악기가 있고, 이밖에 주악에 사용된 의물도 악기로 간주되었다.
악기 (樂器)
악기는 음악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모든 도구이다. 넓은 의미로는 소리를 낼 수 모든 물체를 포함한다. 악기의 유형은 소리를 내는 방법 및 진동 원리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전에 음악을 연주해 온 악기를 근원을 기준으로 아악기·당악기·향악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재료를 기준으로 한 팔음 분류 체계도 있다. 국악기의 범주에는 궁중 및 민간의 음악가들이 연주해 온 악기와 일상에서 노래와 춤에 수반되어 온 생활 악기가 있고, 이밖에 주악에 사용된 의물도 악기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