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선원(善源). 할아버지는 나계종(羅繼宗)이고, 아버지는 참봉 나세걸(羅世傑)이며, 어머니는 조익정(趙益貞)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진사시에 합격, 152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1540년 부교리, 이듬해 헌납을 거쳐 1543년 장령·교리·전한이 되었다. 1544년 시강관·직제학·승지·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545년(인종 1) 당시 문란한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과격한 상소를 올려 귀양가게 되었으나 곧 부제학에 등용되었다. 명종이 즉위하자 외척 윤원로(尹元老)의 전횡을 탄핵하여 유배되었다.
이때 임금의 부름을 받고 이언적(李彦迪)과 충순당(忠順堂)에서 대좌하여 충효의 선후·경중을 논하여 이언적을 놀라게 하였다. 그해 윤원형(尹元衡) 등이 일으킨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철원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경원에 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형인 나식(羅湜)과 그해 동시에 사사되었으므로 세상에서 이를 애석하게 여기고, ‘두 나씨[二羅]’라 하였다. 을사명현의 한 사람이다. 1568년(선조 1)에 신원되고 직첩과 몰수된 재산을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