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8책. 필사본. 목록과 권9·10·13의 3책만이 남아 있는 영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필사연대를 알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336수, 권3에 반교문(頒敎文) 1편, 교서(敎書) 2편, 치사(致詞) 3편, 왕실만장(王室輓章) 3수, 상량문 1편, 서(序) 2편, 전문(箋文) 5편, 악장문(樂章文) 1편, 왕실제문 14편, 사제문 각 7편, 발(跋) 2편, 권4·5에 소(疏) 49편, 소비(疏批) 1편, 의(議) 9편, 계(啓) 1편, 전(箋) 51편, 권6·7에 행장 2편, 시장(諡狀) 4편, 지(誌) 7편, 비문 3편, 묘표 1편, 권8·9에 제문 21편, 서(序) 22편, 기(記) 8편, 발(跋) 7편, 명(銘) 3편, 권10에 시제(試製) 11편, 강설(講說) 1편, 서(書) 39편, 권11∼14는 모두 강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결본이 많아서 전체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강설」은 저자가 1871년(고종 8)에서 1874년까지 경연관(經筵官)으로 있을 때, 다른 경연관들과 함께 입시(入侍)하여 경서의 강론과 시사(時事)를 대화체로 엮어서 일기형식으로 기록해놓은 것이다.
이 글은 경연의 성격과 임무 등을 알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된다. 그 중 「만재기(晩齋記)」는 젊어서 관계에 나가 학문을 할 여가가 없었음을 한탄하고, 퇴관 후 비록 늦었지만 학문에 뜻을 두고 다시 시작한다는 뜻에서 호를 지었음을 밝혀놓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