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주(樹州)이며, 자는 직청(直淸)이다. 개국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시중 이정공(李靖恭)의 아들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숙(李璹)의 동생이며, 인종의 비(妃)이자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과거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을 거쳐, 1087년(선종 4) 12월에 상서병부원외랑(尙書兵部員外郎)으로 경상주도(慶尙州道)에 파견되어 백성을 구제하게 했으나 잘못해 파면되었다. 이어 황주목부사가 되어서는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백성을 보살폈으므로 임기가 만료되기 전인 1095년(숙종 즉위년) 12월 상서우사원외랑(尙書右司員外郎)에 발탁되었다.
1098년(숙종 3) 3월 태자를 세우고 관원을 둘 때 전내(典內)가 되었고, 1100년 12월 급사중(給事中)이 되고, 1104년 정월 직문하성(直門下省)으로서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에 임명되어 임간(林幹)과 함께 여진 정벌에 나섰다. 1105년(숙종 10) 윤2월 비서감 지상서이부사(秘書監知尙書吏部事), 같은 해(예종 즉위년) 11월 형부상서 지제고(刑部尙書知制誥)를 거쳐 , 1106년 8월 예부상서로서 중군병마사가 되었고, 11월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이듬해 12월 검교사공(檢校司空)에 오르고, 이듬해 5월 예부상서로서 예부시를 주관하였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평장사(平章事) 최홍사(崔弘嗣)·김경용(金景庸), 참지정사 임의(任懿)와 함께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임언(林彦)의 패전을 극론했으며, 10월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6월 이부상서, 12월 중서시랑 판호부사 겸 서경유수사를 거쳐 1112년 2월 수사도 수국사(守司徒修國史), 9월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후 1113년 12월 수태위 상주국(守太尉上柱國)에 오르고, 1114년 12월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1116년 3월 서경 행차 때 판행종사(判行從事)가 되어 수행했고, 이어 6월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12월 태부(太傅)가 되고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에 봉해진 뒤, 1118년(에종 13) 3월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하였다.
1122년(인종 즉위년) 5월 광국공신 계양공(匡國功臣桂陽公)에 봉해졌으며, 1126년(인종 4) 외손녀인 임씨(任氏)가 태몽대로 인종의 비로 책봉되어 의종·명종·신종 등을 낳았는데, 바로 이 사람이 공예태후이다. 이듬해 8월 중서령에 올라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가 내려졌으며, 1133년(인종 11) 9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