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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李瑋)

고려시대사인물

 고려전기 수태위 상주국,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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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수태위 상주국,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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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수주(樹州)이며, 자는 직청(直淸)이다. 개국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시중 이정공(李靖恭)의 아들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숙(李璹)의 동생이며, 인종의 비(妃)이자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문과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을 거쳐, 1087년(선종 4)에 상서병부원외랑(尙書兵部員外郎)으로 경상도에 파견되어 백성을 구제하게 했으나 잘못해 파면되었다. 이어 황주목부사가 되어서는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백성을 보살폈으므로 임기가 만료되기 전인 1096년(숙종 1) 상서우사원외랑(尙書右司員外郎)에 발탁되었다.
이듬 해 전내(典內)를 거쳐 1100년 급사중(給事中)이 되고, 1104년에 직문하(直門下)로서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에 임명되어 임간(林幹)과 함께 여진 정벌에 나섰다. 이어 비서감 지상서이부사(秘書監知尙書吏部事), 1107년(예종 2) 검교사공(檢校司空)에 오르고, 이듬 해 예부상서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평장사(平章事) 최홍사(崔弘嗣)·김경용(金景庸), 참지정사 임의(任懿)와 함께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임언(林彦)의 패전을 극론했으며, 그 해에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형부상서 중서시랑 판호부사 겸 서경유수사(刑部尙書中書侍郎判戶部事兼西京留守使), 1113년 수태위 상주국(守太尉上柱國)에 오르고,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1116년서경 행차 때 판행종사(判行從事)가 되어 수행했고, 이어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가 되었다. 이듬 해 태부(太傅)가 되고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에 봉해진 뒤 치사(致仕)주 01)했으며, 그 뒤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되었다.
1122년인종이 즉위해 광국공신 계양공(匡國功臣桂陽公)에 봉해졌으며, 1126년(인종 4) 외손녀인 임씨(任氏)가 태몽대로 인종의 비로 책봉되어 의종·명종·신종 등을 낳았는데, 바로 이 사람이 공예태후이다. 이듬 해 중서령에 올라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가 내려졌으며, 그 뒤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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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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