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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국악개념용어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한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唱, 노래)와 아니리(白, 말)로 엮어 발림(몸짓)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창악적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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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도 / 모홍갑판소리도
평양성도 / 모홍갑판소리도
분야
국악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개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한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唱, 노래)와 아니리(白, 말)로 엮어 발림(몸짓)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창악적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하였던 구비서사문학의 독특한 발전형인 동시에, 한민족이 지녀온 갖가지 음악언어와 표현방법이 총결집된 민속악의 하나이며, 현장연희에서는 일부 연극적인 표현요소까지도 구사하는 종합적 예술이다.
판소리는 전통적으로 광대라고 불려진 하층계급의 예능인들에 의하여 가창·전승되어 왔다. 그들은 때로는 농촌이나 장터에서 노래했고, 때로는 양반·부호들의 내정(內庭)에서 연희하기도 하였다.
판소리사의 진행과정을 통해 청중의 구성은 점차 상향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으나, 대체적으로 판소리는 평민예술의 바탕을 지니면서도 탈춤, 남사당놀이 등과 달리 다양한 계층의 청중들을 포용할 수 있는 폭과 유연성을 지녔다고 하겠다.
‘판소리’라는 말의 어원과 의미에 대하여는 아직 일치된 결론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판’과 ‘소리’의 합성어임은 분명하나, 문제는 ‘판’의 의미이다.
우리말에서 ‘판’의 일반적 의미는 ‘상황·장면’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취할 경우 판소리라는 이름은 ‘다수의 청중들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한 소리판에서 불려진 창악에는 판소리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이를 판소리의 어원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와 다른 또 하나의 견해는 ‘판’을 ‘악조(樂調)’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이를 취할 경우 판소리라는 이름은 ‘변화 있는 악조로 구성된 노래’라는 의미가 되는데, 판소리 관계문헌에 이를 지지할 만한 용례가 더러 보인다.
따라서 후자의 견해가 좀더 큰 설득력을 띤다고 할 수 있으나, 판소리가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한 소리판에서 연창되는 현장예술이며, 방법상으로는 작중상황에 따라 다양한 악조와 장단을 구사하는 창악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어원설은 그 나름의 통용가치를 가진다.
영역닫기영역열기판소리의 음악
  1. 1. 판소리의 구성
    판소리는 소리광대가 서서 소리도 하고 아니리도 하고 발림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고수는 앉아서 추임새를 하며 북장단을 치는 판놀음의 한 가지이다.
    그래서 판소리란 ‘판놀음으로 벌이는 소리’라는 뜻이다. 소리라는 말에는 음향(音響)이라는 뜻도 있지만 선소리·김매기소리·짓소리에서 볼 수 있듯이 노래라는 뜻도 있다.
    판놀음이란 널찍한 마당을 놀이판으로 하여 음악·춤·연극·곡예 따위의 놀음을 순서대로 짜서(판을 짠다고 한다) 벌이는 놀음을 가리키며, 판놀음으로 벌이는 놀음에는 흔히 ‘판’자를 붙이는데, 줄타기는 판줄, 춤은 판춤, 굿(農樂)은 판굿, 염불은 판염불, 소고놀음은 판소고, 소리는 판소리라 한다.
    옛 문헌에서는 판소리를 본사가(本事歌)·타령(打令)·잡가(雜歌)·극가(劇歌)·창가(倡歌)로 적기도 하였으나 이두식으로 적은 본사가라는 말을 빼고는 판소리를 가리키는 고유명칭이 아니다. 타령·잡가는 속악(俗樂)이라는 뜻이며 극가는 극적인 노래라는 뜻이고 창가란 광대가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광대는 한편 창우(倡優)주 01)·창부(倡夫) 또는 노릇바치라 이르는데, 판놀음에서 소리·춤·재담·곡예 따위를 섞어 놀음을 벌이는 연희자(演戱者)를 뜻하는바, 그 장기에 따라 소리광대·줄광대·어릿광대·대광대·탈광대로 나눈다.
    이 가운데 소리광대가 가장 대우를 받았다. 솜씨가 뛰어난 소리광대를 명창(名唱)이라 하고 또 이를 예우하여 가객(歌客)이라 이른다. 가객은 본디 정가(正歌)를 부르는 이를 뜻하였다. 광대는 청창옷에 초립을 쓰는 것이지만, 명창으로 꼽힌 가객은 창의를 걸치고 통영갓을 쓰고 갓신을 신었다.
    판소리에서 노래로 부르는 것을 소리라 하고 말로 하는 것을 아니리라 하지만 선율로 하든, 말로 하든 장단(長短)을 치지 않고 자유리듬으로 하는 것을 아니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말로 하는 아니리는 말조아니리, 선율로 하는 아니리를 소리조아니리라고 갈라 부르는 이도 있다. 명창 가운데는 소리조를 잘 하는 소리광대가 있고 아니리를 잘 하는 아니리광대가 있었으나 모두 능한 이를 대명창으로 꼽는다.
    판소리에서 광대가 소리나 아니리로 이야기를 엮으며 몸짓하는 것을 발림이라 하고 그 밖에 너름새 또는 사체라고도 이른다. 발림이란 춤이나 놀이에서 벌이는 몸짓을 뜻하는 것으로, 판소리에서 발림은 소리에 따른 춤가락스러운 몸짓, 소리가락을 강조하기 위한 몸짓, 사설의 극적 내용을 그리는 몸짓을 포함한다.
    발림은 하는 법이 있어 명창 가운데에는 김창환(金昌煥)과 같이 발림을 많이 한 명창이 있고 송만갑(宋萬甲)과 같이 발림을 아껴서 한 명창이 따로 있지만 모두 발림하는 법에 따르는 것은 같다. 고수는 취고수(吹鼓手) 또는 고인이라 하여 삼현(三絃)재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판소리에서 고수는 북장단치는 재비를 뜻한다.
    판소리에서 고수는 광대의 소리에 따라 장단을 치는 한편 광대에게 소리의 한 배를 잡아주고 장단과 박(拍)을 가늠하게 하며 추임새로 극적 상대자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소리의 맺고 푸는 것을 알아서 북의 통과 가죽을 가려 치므로 고수의 구실이 무겁다 하여 일고수(一鼓手) 이명창(二名唱)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판소리에서 광대의 소리에 흥이 나면 고수나 관중이 ‘좋다’·‘얼씨구’ 따위의 감탄사를 질러 흥을 돋우는 소리를 추임새라 한다.
    고수의 추임새는 광대의 소리를 추어 흥을 돋우는 구실, 소리의 공간을 메워주는 구실, 장단의 박을 대신하는 구실, 광대의 상대역으로써 연극성을 돋우는 구실, 광대 소리의 음악 또는 극적 요소를 돋우어주는 구실 따위가 있다.
    판소리는 관아나 마을 또는 사가(私家)의 잔치에서 불렸다. 판소리를 벌이는 놀이판을 소리판 또는 소리청이라 하였는데, 소리판은 관아·마을·사가의 마당이나 큰 대청마루에서 벌어졌다.
    줄타기·땅재주·무동춤과 함께 판놀음으로 벌이기도 하고 또 판소리 홀로 소리판놀음으로 벌이기도 하며 조선 말기에는 방안놀음으로 벌이는 경우도 많았다.
    소리청의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광대는 창의를 입고 통영갓을 쓰고 갖신을 신고 부채를 들고 상석(上席)을 향하여 서서 갖가지 소리도 하고 아니리도 하고 사설(辭說)과 소리에 따라 발림도 하며 구경꾼을 웃기고 울리고, 고수는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북을 앞에 놓고 비껴 앉아 광대의 소리에 북을 치고 추임새도 한다.
    조선 중기에는 소리광대가 여러 이야기를 판소리로 짜서 불렀던 가운데 열둘을 골라 판소리 열두마당이라 부르니 그것이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와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 보인다.
    『관우희』에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장끼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왈자타령」·「가짜신선타령」이 나왔다.
    『조선창극사』에는 『관우희』와 같되, 「왈자타령」을 「무숙(武淑)이타령」이라 하였고 「가짜신선타령」 대신에 「숙영낭자전」을 들고 있다.
    판소리 열두마당은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 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다.
  1. 2. 판소리의 유파
    판소리 전승지역은 전라도·충청도 서부와 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이르므로, 판소리는 지역적 특성과 전승 계보에 따른 파가 생겼다. 전라도 동북지역의 소리제를 동편제(東便制)라 하고, 전라도 서남지역의 소리제를 서편제(西便制)라 하며, 경기도·충청도의 소리제를 중고제(中高制)라 한다.
    1. 2.1. 동편제
      동편제는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의 이쪽 즉, 전라도 동북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를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宋興祿)의 소리제에서 송광록(宋光祿)·박만순(朴萬順)·송우룡(宋雨龍)·송만갑(宋萬甲)·유성준(劉聖俊)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한다.
      그 밖에 김세종(金世宗)·장자백(張子伯), 정춘풍(鄭春風)·박기홍(朴基洪)으로 전해지는 소리제 또한 동편제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동편제 소리는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1. 2.2. 서편제
      서편제는 보성·광주·나주 저쪽, 즉 전라도 서남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철종 때의 명창 박유전(朴裕全)의 소리제에서 이날치(李捺致)·김채만(金采萬)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하고, 그 밖에 정창업(丁昌業)·김창환(金昌煥)·김봉학(金奉鶴)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로 큰 줄기를 이루었다.
      서편제 소리는 비교적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1. 2.3. 중고제
      중고제는 경기도·충청도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순조 때의 명창 김성옥(金成玉)·김정근(金定根)·황호통(黃浩通)·김창룡(金昌龍)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와 또한, 순조 때의 명창 염계달(廉季達)·고수관(高壽寬)·한송학(韓松鶴)·김석창(金碩昌)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중고제 소리는 동편제 소리에 가까우며 고박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1. 3. 판소리의 장단
    판소리의 음악은 시나위권(圈)의 향토음악 가운데 패개성음에 토대를 둔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가 시나위권의 의식음악(儀式音樂)에서 창부(倡夫)가 부르던 패개성음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형태에서 고도의 예술음악으로 발전함에 따라 다른 분야의 음악적 어법(音樂的語法)을 빌려 써서 장단과 조(調)가 확대되고 붙임새와 시김새가 다양하고 정교하여졌고, 또 광대의 성질(聲質)에 따라 여러 가지 성(聲)과 목이 분화된 것 같다.
    오늘날 판소리는 여러 가지 조·장단·붙임새·시김새·발성(發聲)에 있어서 음악적으로 다채롭고 정교한 표현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판소리 사설에 나타난 여러 극적 상황에 따른 음악적 표출을 할 수 있어서 훌륭한 극적 음악으로 꼽히고 있다.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에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가 쓰이는데,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장단이 기본장단이었던 것 같다.
    판소리에는 느린 장단인 진양, 보통 빠른 중모리, 조금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 빠른 휘모리, 이렇게 느리고 빠른 여러 장단이 있어 사설에 나타난 긴박하고 한가한 여러 극적 상황에 따라 가려 쓴다.
    1. 3.1. 진양
      진양은 3분박 느린 6박자를 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에 따라 3∼6단위를 주기(週期)로 북의 변주가 있다. 진양에서 이 단위를 각(刻)이라 하는데, 흔히 4각을 주기로 하여 소리가 맺고 풀리므로 4각 24박 한 장단이라는 말이 나왔다.
      진양은 한배에 따른 매우 느린 느진진양, 느린 평진양, 좀 느린 자진진양으로 나누는데, 자진진양을 판소리에서는 ‘세마치’라 부르기도 한다.
      진양은 느린 장단이므로 판소리에서 사설의 극적 상황이 한가하고 이완(弛緩)되어 서정적인 장면에 많이 쓰인다. 진양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적성가(赤城歌)’·‘긴 사랑가’, 「심청가」에서 ‘범피중류’·‘추월만정(秋月滿庭)’ 따위가 있다.
    1. 3.2. 중모리
      중모리는 일명 중머리라 이르며 2분박 보통 빠른 12박자로, 이를 몇 개의 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 따라 북을 변주하여 친다. 중모리는 한배에 따라 느린 느진중모리, 보통 빠른 평중모리, 조금 빠른 자진중모리 등으로 나누는데 자진중모리를 단중모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모리장단은 보통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서정적인 장면이나 서술하는 대목에 많이 쓰인다. 중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쑥대머리’·‘옥중상봉’, 「흥보가」에서 ‘가난타령’, 「심청가」에서 ‘선인(船人) 따라가는 대목’ 따위가 있다.
    1. 3.3. 중중모리
      중중모리는 3분박 좀 느린 4박자이나 좀 빠른 12박자로 느끼기도 한다. 이를 3∼8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 따라 북을 변주하여 친다.
      중중모리는 한배에 따라 느진중중모리, 자진중중모리 장단으로 나누기도 한다. 중중모리는 춤추는 느낌의 한배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춤추거나 활보하거나 통곡하는 장면에 많이 쓴다.
      중중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천자(千字)풀이’·‘자진 사랑가’·‘어사(御史)와 장모’, 「심청가」에서 ‘꽃타령’, 「흥보가」에서 ‘제비노정기(路程記)’·‘비단타령’, 「수궁가」에서 ‘토끼화상’, 「적벽가」에서 ‘장승타령’ 따위를 들 수 있다.
    1. 3.4. 자진모리
      자진모리는 3분박 보통 빠르거나 조금 빠른 4박자인데, 이를 몇 개의 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 따라 북을 변주하여 친다. 보통 빠른 것을 느린 자진모리라 하고 조금 빠른 것을 자진 자진모리라 하는데, 산조(散調)에서는 이것을 휘모리라 하기도 한다.
      느진 자진모리는 빠른 장단이므로 사설의 극적 상황이 어떤 일을 길게 서술하거나 나열하는 대목, 또는 어느 일이 차례로 길게 벌어지는 대목에 많이 쓰이며, 자진 자진모리는 극적이고 긴박한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자진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신연(新延)맞이’·‘어사출도’, 「심청가」에서 ‘임당수 바람부는데’ 「적벽가」에서 ‘자룡(子龍)이 활 쏘는데’·‘적벽화전(赤壁火戰)’ 따위를 들 수 있다.
    1. 3.5. 휘모리
      휘모리는 2분박 매우 빠른 4박자이며 이를 몇 개의 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 따라 북을 변주하여 친다. 산조나 농악에서는 휘모리를 단모리 또는 세산조시라 이른다.
      휘모리는 매우 빠른 장단이므로 흔히 사설의 극적 상황이 매우 분주하게 벌어지는 대목에서 쓰인다. 휘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춘향 끌어내리는데’, 「심청가」에서 ‘심청이 물에 빠지는데’, 「흥보가」에서 ‘돈과 쌀 퍼나르는 대목’을 들 수 있다.
    1. 3.6. 엇모리
      엇모리는 3+2+3+2로 혼합된 혼합박자로 매우 빠른 10박자로 느끼기도 한다. 이를 몇 개의 단위로 하여 소리의 맺고 푸는 데 따라 북을 변주하여 친다. 엇모리는 사설의 극적 상황이 신비한 인물의 거동이나 신비한 장면에 쓰인다.
      엇모리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심청가」에서 ‘중타령’, 「흥보가」에서 ‘중타령’, 「수궁가」에서 ‘도사(道士) 내려오는데’·‘범 내려오는 대목’을 들 수 있다.
    1. 3.7. 엇중모리
      엇중모리는 2분박 보통 빠른 6박자로 자진 도드리장단에 맞는다. 엇중모리 장단은 판소리의 뒤풀이에 흔히 쓰인다. 옛날에는 엇모리와 엇중모리 장단을 바꾸어 부르는 이도 있었다.
    1. 3.8. 붙임새
      판소리에서 말이 장단 또는 박에 어긋나게 붙는 기교에는 엇붙임·잉어걸이·완자걸이·교대죽·도섭 등 여러 가지가 있는바, 이러한 리듬적인 기교를 붙임새라 하며 이러한 붙임새를 쓰지 않는, 즉 말이 장단 및 박에 어긋나지 않게 붙는 기교를 대마디대장단 또는 대머리대장단·대마치대장단이라 부른다.
      엇붙임은 말 몇 마디가 장단 머리에서 시작하지 않고 중간에서 시작하여 다음 장단 중에서 끝나는 붙임새이며, 잉어걸이는 말이 주박(主拍)에 놓이지 않고 약간 지나서 붙는 붙임새이다.
      완자걸이는 여러 말이 주박에 각각 놓이지 않고 앞으로 당겨 붙고 뒤로 당겨 붙여지는 붙임새이며, 교대죽은 3분박 장단에 말을 촘촘히 엮어 놓되 2분박으로 붙여 헤미올라(hemiola)가 일어나는 붙임새이다 (혹은 말을 몇 박을 뛰어넘어 몰아붙이는 붙임새라고 하는 이도 있다).
      도섭은 말을 장단과 박에 어긋나게 자유리듬으로 붙이는 붙임새이다. 붙임새를 쓰면 리듬이 아주 생동감 있고 다채로워지는데 자연스럽지 못하고 음악적이 아닌 어거지로 붙인 붙임새를 생자붙임이라고 하여 좋지 않게 본다.
      이러한 판소리 붙임새의 용어는 음악적 특징이 비슷한 산조·시나위·농악에서 쓰이고 있고, 또, 민속춤에서도 춤사위(춤가락) 용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 4. 판소리의 선율
    판소리의 기본선율은 의식에서 창부들이 부른 패개성음에 토대를 두고 발생하였다고 보이며 판소리가 고도로 예술화됨에 따라 다른 분야의 음악적 어법이 차용되어 오늘날에는 계면조·우조·평조·경드름·설렁제 등 여러 조(調)가 쓰이게 되었다.
    판소리에서 조라는 것은 선법(旋法)·선율형(旋律形)·시김새·감정표현·발성(發聲) 등 여러 음악 특징으로 구분되는 선율적 특징이라 하겠다.
    판소리에는 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 밝고 화평한 느낌을 주는 평조, 웅장한 느낌을 주는 우조,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경드름, 씩씩한 느낌을 주는 설렁제, 그 밖에 추천목·강산제·석화제·메나리조 등 슬프고 즐거운 여러 조가 있어 사설에 나타난 여러 극적인 정황에 따라 가려서 쓴다.
    1. 4.1. 계면조
      판소리에서 계면조는 전라도·충청도·경기도 남부의 살풀이 무가(巫歌), 또 이 지역의 육자배기토리의 민요가락 등에서 보이는 향토토리를 토대로 판소리를 선율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가곡(歌曲)의 계면조와는 다른 점이 있다. 계면조라는 말은 가곡에서 쓰던 용어만 빌려 쓴 것이고, 슬픈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서름제 또는 애원성(哀怨聲)이라고도 부르며, 사설의 극적 정황이 슬프고 여성적인 장면에 흔히 쓰인다.
      근래에는 사설의 내용에 따라 음구조(音構造)·시김새·발성에 차이가 있는 것을 가려 계면조에서 진계면·평계면·우계면·단계면 따위로 갈라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계면조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이별가’·‘옥중가’, 「심청가」에서 ‘심청모 유언’·‘추월만정’, 「흥보가」에서 ‘가난타령’, 「적벽가」에서 ‘고당상(高堂上)’·‘새타령’ 따위가 있다.
    1. 4.2. 우조
      판소리에서 우조는 정가적(正歌的)인 특징을 가지는 조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가의 선율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판소리에서 우조는 웅장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호령조라고도 부르며 사설의 극적 정서가 웅장하고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대목에 흔히 쓴다.
      우조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만첩청산(萬疊靑山)’(구조 사랑가)·‘신연맞이’, 「적벽가」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와 같은 대목을 들 수 있다.
    1. 4.3. 평조
      판소리에서 평조 또한 정가적인 특징을 갖는 조의 하나이다. 이것도 정가선율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판소리 평조에서 평조는 화평스럽고 명랑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설의 극적 정서가 화창하고 즐거운 대목에 흔히 쓰인다. 평조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천자풀이’, 「적벽가」에서 ‘장승타령’ 따위를 들 수 있다.
    1. 4.4. 경드름
      경드름은 「창부타령」·「도라지타령」과 같은 서울민요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서울토리와 비슷하여 경조(京調)·경제(京制)·경(京)토리라고도 부른다.
      경드름은 경쾌하고 서울토리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판소리 사설의 극적 정황이 서울사람이나 한량(閑良)들이 나오는 대목에 흔히 쓰인다. 경드름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남원골 한량’·‘이도령 춘향 달래는 대목’을 들 수 있다.
    1. 4.5. 설렁제
      설렁제는 권마성(勸馬聲)가락을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높은 소리로 길게 빼는 선율과 도약적인 선율이 많아서 경쾌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데, 덜렁제·드렁조·권마성제·중고조라고도 부른다.
      사설의 극적 상황이 무사적(武士的)인 인물이 거드럭거리면서 호기 있게 나오거나, 떠드는 대목에 흔히 쓰인다. 설렁제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에서 ‘군노사령(軍奴使令)’, 「심청가」에서 ‘남경선인(南京船人)’, 「흥보가」에서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들 수 있다.
    1. 4.6. 기타 조
      추천목은 순조 때 명창 염계달이 낸 소리제로 「오봉산타령」, 「한강수타령」과 같은 서울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이며, 「춘향가」에서 ‘네그른 내력’·‘자진 사랑가’에서 보인다.
      강산제는 순조 때 명창 모흥갑(牟興甲)이 낸 소리제로 「춘향가」에서 ‘이별가’·‘날 다려가오’에서 보인다. 석화제는 가야금병창제와 비슷한 소리제이며 순조 때 명창 김제철(金齊哲)·신만엽(申萬葉)이 낸 소리제이며, 「수궁가」에서 ‘토끼 고향에 돌아오는 대목’에서 볼 수 있다.
      메나리조는 「강원도아리랑」·「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강원도·경상도 민요의 메나리토리를 판소리화시킨 것으로 매우 드물게 보인다.
      정응민(鄭應珉)제 「심청가」에서 ‘뺑덕이네 길소리’에 보인다. 판소리는 통성(通聲)이라 하여 힘차게 나오는 발성을 하되 성대를 약간 스쳐 좀 쉰듯한 목소리를 좋은 소리로 꼽는다.
      그러나 부르는 이마다 목소리의 음질과 발성법에 따라 광대의 목소리를 여러 가지로 가르는데, 약간 걸걸한 수리성, 맑고 우렁찬 천구성, 단단한 철성 따위는 좋은 목소리로 꼽으며, 가는 세성, 되바라진 양성, 발발 떠는 발발성, 콧소리 나는 비성, 깨어진 소리나는 파성 따위는 좋지 않은 소리로 꼽힌다.
      또, 발성과 시김새에 따라 여러 가지 목으로 가리는데, 공력이 없이 내는 생목, 목 안에서 내는 속목, 틔지 못한 떡목 따위는 음질과 발성에 따라 가르는 것이며, 굴려내는 방울목, 모가 나게 깎는 목, 높이 찔러 내는 찌른목 따위는 발성과 시김새에 따라 가르는 것이다.
  1. 5. 판소리 음악사
    판소리에 관한 최고(最古)의 문헌은 조선 영조 30년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 晩華集』의 「춘향가」를 넘지 못하지만, 판소리가 재인 광대들이 벌이는 판놀음에서 여러 놀음 틈에 끼여 한 놀이로 구실을 하던 것은 훨씬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짐작된다.
    큰 마을굿에는 흔히 창우(倡優)주 01)의 판놀음이 딸렸고 창우 가운데 소리광대가 벌이는 놀음이 판소리였던바, 민속적인 소리와 재담조 아니리와 발림으로 서민적인 이야기를 엮어 판놀음으로 공연하면서 판소리가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판소리는 마을굿에 딸린 판놀음에서 생겨나서 여러 놀이 틈에 끼여 놀이구실을 하다가 판놀음이 마을굿과 떨어져 따로 벌이는 놀음으로 발전하면서 순조 때 송만재의 『관우희』에 보이듯이 열두마당이나 생겨 다른 놀음보다 가장 인기있는 놀이로 자랐다고 본다.
    판소리가 사대부들로부터도 인기를 얻게 되자 민중의 판놀음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방안놀음으로도 끼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판소리는 사설과 음악이 민중의 소박하고 솔직한 것에 세련되고 어려운 것이 덧붙여져 복합적인 모습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사설은 유식한 한문구(漢文句)가 많이 끼이게 되고 아니리보다 소리에 무게를 두며 소리에는 사대부들이 즐기는 정가풍(正歌風)의 가조(歌調)가 끼이고 복잡하고 세련된 시김새와 붙임새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판소리 가운데 「강릉매화가」·「변강쇠타령」과 같이 서민적인 재담으로 된 것은 도태되고 「적벽가」·「심청가」·「춘향가」와 같이 사대부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것은 계속 발달하여 오늘날과 같이 방대한 모습으로 된 것이라 하겠다.
    판소리 최고(最古) 명창으로 이름이 전하여지는 이는 영조∼정조 때 우춘대(禹春大) 및 하은담(河殷譚)·최선달(崔先達)이다. 그러나 이들의 판소리 음악사 자료는 전하여지는 것이 없다.
    순조 무렵에는 권삼득(權三得)·송흥록·염계달·모흥갑·고수관·신만엽·김제철·황해천(黃海天)·주덕기(朱德基)·송광록·박유전·방만춘(方萬春) 등 뛰어난 명창들이 나와서 판소리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들의 더늠이 지금까지 전하여지는데, 이들의 더늠에 나타나는 소리제가 이들 명창들이 판소리에 처음 짜넣은 것들이라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판소리의 음악을 확대시킨 것을 엿볼 수 있다.
    판소리 명창들의 출신지는 남한강 이남 소백산맥 이서(以西)로 이 지방의 향토음악이 육자배기토리나 시나위토리가 주가 되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의 토대가 되는 것은 계면조를 비롯한 패개성음으로 된 가조에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장단이었던 것 같다.
    8명창은 이러한 판소리음악을 토대로 하여 여러 가조와 장단을 확대시켰으니 권삼득은 설렁제를, 염계달과 고수관은 경드름과 추천목을, 신만엽과 김제철은 석화제를 판소리에 짰고, 송흥록은 계면조·우조를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짰고, 진양을 판소리에 집어넣어 소리를 짰다.
    8명창 때에 명창들의 지역에 따른 음악적 특성 그대로 전승되어 동편제·서편제·중고제 등 여러 파가 생겨 전승하게 되었다. 동편제는 송흥록 소리제에서, 서편제는 박유전 소리제에서, 중고제는 김성옥과 염계달의 소리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철종 때에는 박만순·이날치·정창업·김세종·한송학·송우룡·정춘풍·장자백·김정근 등 많은 명창들이 나와서 판소리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들은 또 8명창의 파에 나타난 특징을 전승해 주었다.
    송흥록의 소리제는 박만순과 송우룡에게 전하여졌고 김세종·장자백·정춘봉도 동편제 소리를 새로 발전시킨 명창이다. 박유전의 소리제는 이날치에게 전해졌고 따로 정창업도 서편제 소리를 발전시킨 명창이다. 김성옥의 소리제는 김정근에게 전해졌고 김정근과 한송학도 중고제 소리를 발전시킨 명창이다.
    이 무렵에 신재효(申在孝)가 명창들에게 판소리 이론을 지도하였고 그 나름대로 여섯마당 판소리 사설을 다듬었다. 고종 때에는 황호통·이창윤(李昌允)·김찬업(金贊業)·김창환·박기홍·김석창·유공렬(柳公烈)·이동백(李東伯)·송만갑·김창룡·김채만·정정렬(丁貞烈)·유성준 등 많은 명창들이 나서서 판소리 내용을 충실하게 닦았던바, 이들 명창들에 의하여 판소리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 손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정교한 판소리가 완성되었다. 또, 판소리의 각 파에 나타난 특징은 이들에 의하여 판을 마쳤고 또 이들에 의하여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황호통·김석창 등은 중고제 소리의 판을, 김찬업·박기홍·유성준은 동편제 소리의 판을, 김창환·김채만은 서편제 소리의 판을 막았다 하며, 송만갑·이동백·정정렬에 이르면 지역적 교류에 의하여 판소리 각 파의 특징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섯마당 밖의 다른 마당의 전승 또한 이들에 의하여 판을 막았다. 한말에 나라가 기울어지면서 판소리 또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말과 일제시대에 판소리를 이어놓은 명창들로는 장판개(張判介)·박중근(朴重根)·박봉래(朴奉來)·김정문(金正文)·정응민·공창식(孔昌植)·김봉학(金奉鶴) 등이 있었으며, 임방울(林芳蔚)·김연수(金演洙)·강장원(姜章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광대노릇은 본디 남자들만이 하는 것이었으나 고종 때 신재효에 의하여 진채선(陳彩仙)이 최초 여명창(女名唱)이 되었고, 이어 나온 허금파(許錦坡)와 함께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한말과 일제시대에는 강소춘(姜笑春)·김녹주(金綠珠)·이화중선(李花中仙)·김초향(金楚香)·배설향(裵雪香)·박녹주(朴綠珠) 등 수많은 여류명창들이 나왔고, 김여란(金如蘭)·김소희(金素姬)·박초월(朴初月)이 뒤를 이었다.
    한말에 원각사(圓覺社)가 생기고 판소리 명창들이 창극(唱劇)을 처음 꾸며 공연한 뒤 창극이 성행하였고, 일제 때에는 협률사(協律社)·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를 거치는 동안 많은 창극이 공연되어 판소리 명창들이 여기에 휩쓸리게 되어 판소리가 쇠퇴하는 원인이 되었다.
    광복 뒤에는 한때 여성창극이 성행하여 판소리는 더욱 쇠미(쇠잔하고 미약함)하게 되고 1960년대에는 창극도 기울어졌다.
    1960년대에는 판소리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박동진(朴東鎭)이 판소리 다섯마당의 전판 공연을 시도한 것을 계기로, 박초월·김소희·오정숙(吳貞淑)·성우향(成又香)·박초선(朴初仙)이 판소리 전판 공연을 가진 바 있어 판소리 명창의 수는 극소수로 줄었으나 한때 판소리는 부흥되어 가는 듯하였다.
    1960년대에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정광수(丁珖秀)·오정숙(吳貞淑)·박동진·성창순(成昌順)·조상현(趙相賢)·한승호(韓承鎬)·김성권(金成權)·정철호(鄭哲鎬)가 보유자로 인정되어 사라져가는 판소리 전수에 진력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판소리의 문학적 특질
판소리 사설의 기본 골격은 거의 대부분이 전승설화 등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사의 전 과정을 통해 창자들은 전승적 이야기의 골격을 근간으로 하여 그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확장·부연하는 방식으로 사설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이렇게 기존 전승에 첨가된 문학적·음악적 새로움을 가진 창작 부분을 ‘더늠’이라고 한다. 현전하는 판소리는 이들 더늠이 무수히 집적된 결과이다.
따라서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구성의 긴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각 대목·장면을 확장하면서 부분적인 흥미와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판소리에서 앞뒤의 내용이 잘 맞지 않거나 때로는 뚜렷이 모순되기까지 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그러면서도 판소리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원리를 가지고 있다.
비장한 대목과 골계적(滑稽的)인 장면, 재담을 교체적으로 배치하여 청중들을 작중현실에 몰입시켰다가 해방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정서적 긴장과 이완이 반복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매우 특이한 심리적·미학적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다채로울 뿐 아니라 각별히 생생한 입체감과 현실성을 띠고 있다. 판소리에서 설정되는 사건 공간은 대개 당대의 생활현실이거나 그 우화적(寓話的)인 투영이며, 이 속에 움직이는 인물들 역시 허구화된 재자가인(才子佳人)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상을 반영하는 범인적(凡人的)인 존재들로 나타난다.
판소리에서는 비록 우월한 능력을 갖춘 선인(善人)이라 해도 완벽한 영웅상으로 그려지지 않고, 흔히 풍자·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부정적인 인물들이라 해서 철저한 악의 표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방자(房子)·애랑(愛娘)·정욱(程昱)·매화(梅花) 등 봉건적 예속관계 아래 있으면서 상전의 위선과 약점을 폭로하고 희롱하는 장난꾼의 존재들이 발달한 점과, 평민층의 인물 군상(群像)들이 생생한 구체성을 띠고 살아 있다는 사실도 판소리의 인물형에서 주목되는 특징이다.
판소리 사설은 운문과 산문이 혼합된 서사문학인데다가 여러 계층의 청중들을 상대로 하여 누적적으로 발달한 까닭으로 문체와 수사(修辭)가 매우 다채롭다.
그 속에는 전아(典雅)한 한학(漢學) 취미의 대목이 있는가 하면 극도로 익살스럽고 노골적인 욕설과 속어가 들어 있으며, 무당의 고사나 굿거리 가락이 유장(悠長)한 시조창과 나란히 나오기도 한다.
이 밖에 민요·무가·잡가·사설시조·선소리·십이가사 등 각종 민간가요가 삽입가요(揷入歌謠)로서 판소리 속에 다수 채용되어 있다. 판소리 문체의 특징적 현상으로는 ‘문체의 분리’라는 경향성을 지적할 수 있다.
문체의 분리란 등장인물의 신분·성격·분위기·서술자의 태도 등에 따라 문체가 판이하게 바뀌는 현상인바, 판소리에서는 장단(長短)·조(調)의 빈번한 교체와 함께 문체면에서도 이러한 변이가 나타난다.
존귀하고 품위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음률이 우아할 뿐 아니라 사설 역시 많은 한문구(漢文句)와 전고(典故)를 담은 장중한 문체로 된다. 반면에, 신분이 낮거나 비속한 인물 및 풍자적 대상이 등장할 때, 그리고 반드시 부정적인 인물은 아니더라도 희극적 맥락에서 다루어질 때 그 문체는 소박하고 발랄한 평민적 속어의 색채를 띤다.
판소리의 사회적 성격 및 판소리에 투영된 사회의식은 판소리사의 전개과정에 따라 일정하지만은 않으나, 창자들 자신이 천민이며 19세기 초 이전까지 평민 청중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므로 평민적 세계관과 미의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판소리에 있어서 중세적 윤리의식과 가치질서는 대체로 희극적 조롱의 대상이며, 평민적 경험에 기반한 세속적 현실주의가 삶의 근본으로 생각되어진다.
다만, 이와 같은 성격은 그 자체가 아직 중세적 세계관을 대체할만큼의 충분한 성숙에 도달하지 못하였던데다가 19세기 초기 이래의 판소리가 양반층의 청중을 주요 고객으로 의식하면서 일부 약화 또는 수정되었다.
그 결과 판소리에는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 사이의 갈등이라는 양면성 내지 이원성이 나타나는 예가 많으며, 특히 19세기를 살아 남은 전승 5가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실전된 일곱마당까지를 포함하여 해석할 때 판소리 전반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탈중세적 현실주의의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판소리에 관한 연구는 1930년대에 시작된 이래 1960년대까지 문학과 음악 양면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적 연구는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계 소설을 조선 후기 소설사의 맥락에서 다루는 데 치중하여 여러 이본(異本)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주력하였고, 판소리의 기원·발생·근원설화(根源說話)·장르적 성격이 아울러 논의되었다.
1970년대 이래로는 앞 시기의 문제들을 재론하면서 판소리의 사회적 성격, 서사적 구조, 미의식 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판소리의 문학적 특질을 현장 연희(演戱)의 입체성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연구 동향이 전개되었다.
판소리의 현장연희적 측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요청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나, 판소리에 관한 문학적·음악적 연구가 상보적(相補的)으로 통합되면서 이에 관한 해명에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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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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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5년)
김흥규|이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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