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대 ()

유교
인물
대한제국기 때,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시를 지어 항일의 뜻을 밝혔고, 『돈재문집』 등을 저술하며 쇠퇴하는 유학의 진흥을 위해 힘쓴 학자.
이칭
선일(善一)
돈재(敦齋), 소산(素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4년(고종 1)
사망 연도
1935년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경상남도 합천군
정의
대한제국기 때,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시를 지어 항일의 뜻을 밝혔고, 『돈재문집』 등을 저술하며 쇠퇴하는 유학의 진흥을 위해 힘쓴 학자.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선일(善一). 호는 돈재(敦齋). 아버지는 유후원(柳厚源)이며, 어머니는 초계정씨(草溪鄭氏) 정덕량(鄭德良)의 딸로, 합천 용주면(龍洲面) 가호리(佳湖里)의 세장(世庄)에서 태어났다.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유종원(柳鍾源)·전우(田愚)·정재규(鄭載奎)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약관에 과거를 보려고 상경했다가 과장(科場)의 풍기가 문란함을 보고는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1895년(고종 36) 단발령(斷髮令)이 내리자, 스승들과 거의(擧義)하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최익현과 정재규를 따라 노성(魯城)에 모여 의병을 일으키려하다가, 순창(淳昌)에서 최익현이 거의하자마자 일경(日警)에 체포되니, 유상대는 통곡하면서 시를 지어 항일(抗日)의 뜻을 밝혔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소산서당(素山書堂)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학규(學規)를 정하고 상읍례(相揖禮)를 행하면서 쇠퇴해 가는 유학의 진작에 힘을 기울였다. 유상대는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 등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성리설을 밝힌 것도 많았다. 저서에 『돈재문집(敦齋文集)』 9권이 있다.

참고문헌

『돈재문집(敦齋文集)』
『하재문집(荷齋文集)』
집필자
허호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