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산 개운사 ( )

불교
유적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산(安巖山)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무학 대사 자초가 창건한 사찰.
이칭
이칭
영도사(永導寺)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박한영|탄허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개운사길 73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개운사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산(安巖山)에 있는 사찰로, 조선 전기 승려 무학 대사가 창건하였다. 원래 이름은 영도사였으나, 조선 후기에 현재 이름인 개운사로 불리게 되었다. 박한영과 탄허가 주석하며 강의하고 역경 사업을 펼쳤으며, 중앙 승가 대학이 김포로 옮기기 전까지 교육 도량으로 사용되었다. 직할 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산(安巖山)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무학 대사 자초가 창건한 사찰.
내용

건립 경위

1396년(태조 5)에 무학(無學)이 안암산(安岩山) 기슭에 영도사(永導寺)를 창건했는데, 이것이 개운사의 전신이라는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779년(정조 3)에 정조의 후궁인 홍빈(洪嬪)의 명인원(明仁園)이 옆에 들어서자 인파(仁波)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개운사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서는 1779년이 아니라 1730년(영조 6)에 이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의 주축이 된 인파는 이 절에 소장된 1870년에 조성된 신중탱화지장탱화에 증명(證明)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또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서는 영도사에서 개운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를 1863년이라고 한다. 영도사에서 개운사로 개칭된 것은 확인이 되지만 그 시기는 불분명한데, 『동사열전』과 인파 스님 관련 기록에 따라 19세기 중‧후반의 개칭 사실을 전하고 있는 『동사열전』의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변천

1845년에 우기(祐祈)가 대원암(大圓庵)을 창건하였다. 이후 1873년(고종 10)에 명부전을, 1880년에 이벽송(李碧松)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29년에 권범운(權梵雲) · 신영산(申靈山)이 독성전을 중건하였다. 1932년에 이벽봉(李碧峰)이 노전을 짓고, 1935년에 권범운이 칠성각을 지었다. 이후 1993년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1912년 일제의 사찰령 시행에 따라 봉은사의 수반 말사(首班末寺)로 지정되었고, 김현암(金玄庵)이 제1대 주지로 부임하였다. 1926년에는 김동봉(金東峰)이 강원을 개설하였고 근대 불교 석학인 박한영(朴漢永)이 머물며 강원을 이끌었다. 1970년대 부속 암자인 대원암(大圓庵)에 탄허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 사업에 종사하였다. 1980년 이전에는 조계종 종정의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총무원이라는 간판을 걸었고, 1981년부터 중앙 승가 대학교가 김포로 옮기기 전까지 교육 도량으로 사용되었다.

형태와 특징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 지장전(地藏殿) · 칠성전 · 독성각(獨聖閣) · 종각 · 선방(禪房) · 자비관 등이 있다. 산내 암자로는 동쪽 200m 지점에 대원암과 칠성암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에는 조선 후기 조성된 아미타불 좌상과 팔상도를 비롯해 아미타회상도(1930년 제작), 지장시왕도가 소장되어 있다. 아미타불 좌상은 200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팔상도와 지장시왕도는 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명부전에는 지장시왕도(1875년 제작), 신중도, 감로도 등의 불화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신중도와 감로도는 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장전에는 아미타여래상과 지장상 등이 봉안되어 있고 지장탱화와 현왕탱화가 소장되어 있다. 지장탱화와 현왕탱화는 1870년에 제작되었는데 시주자 명단에 상궁들이 수록되어 있어 왕실과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다.

미타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아미타여래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원문(發願文)과 많은 복장품(腹藏品)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알려진 고려시대 불상 복장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1274년)의 것이다. 발원문을 통해 아미타여래 좌상은 본래 충남 아산의 축봉사(鷲峯寺)에 봉안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발원문은 보물 제1649호로, 복장 전적은 보물 제1650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복장 유물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개운사는 근대의 고승인 박한영이 불교 전문 강원을 개설하여 불교계 석학들을 배출하였고, 1970년대에는 탄허가 주석하면서 역경 사업에 종사한 곳이자 1981년부터 중앙 승가 대학의 교육장으로 한국 근‧현대 불교사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또 개운사에서 소장 중인 아미타여래 좌상은 한국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단일 불복장으로는 최대인 전적류 28점과 문서류 13점이 발견되었는데, 복장 전적은 통일신라~고려 초기에 간행된 것들을 포함하고 있어 학술 연구에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단행본

권상노, 『한국사찰전서』 상(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이고운·박설산, 『명산고찰을 따라』(우진관광문화사, 1982)
寺刹文化硏究院, 『서울』(寺刹文化硏究院, 1994)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찰문화재 : 전국사찰문화재일제조사 서울특별시』(문화재청 : 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논문

송일기, 「開運寺 阿彌陀佛 腹藏本 「華嚴經」 硏究」(『서지학연구』 47, 한국서지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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