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상 ()

고종의 국상
고종의 국상
유교
의례·행사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 시행하는 상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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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국상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 시행하는 상장례이다. 피장자는 빈전에서 혼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재궁에서 신주로 머무는 공간이 전환된다. 상주인 왕세자는 국왕으로 신분이 바뀌고, 천명의 승계자로서 단계별로 적절한 의례를 수행한다. 관원과 전체 신민은 상복을 입고 일상이 중단되었다가 졸곡, 상제, 담제의 기간을 거치면서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조선의 국상은 엄격한 유교적 지향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절제된 의례와 5개월 이내로 한정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역 동원 등, 백성의 부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가 사망했을 때 시행하는 상장례.
연원 및 변천

유교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몸[體]과 혼(魂) · 백(魄)이 통합된 상태인데, 죽음은 혼과 백이 몸에서 분리되어 각각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교적 상장례는 매장을 통해 몸과 백을 땅에 돌려보내고, 혼이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적절한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다. 이는 살아 있는 사람이 귀신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어서 단계적으로 전환을 반영한 의식이 진행된다. 국상(國喪)은 이러한 과정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피장자는 국왕, 혹은 왕비이고, 상주는 왕세자가 되며, 관련 의례의 주관은 국가 기관이 맡고, 전체 신민에게 애통과 존중을 강제한다.

조선이 제정한 유교 국가례는 길례(吉禮) · 가례(嘉禮) · 빈례(賓禮) · 군례(軍禮) · 흉례(凶禮)오례로 구성되었다. 국상은 흉례에 해당하는 의례로 국왕과 왕비의 죽음이 발생했을 때 전개되는 상장례 절차이다. 길례가 귀신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례이고, 가례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의례인데, 흉례는 의례의 전개상 의례의 대상이 가례에서 길례로 전환하는 절차를 담고 있다. 고려에도 유교적 국상이 설정되어 있지만, 불교식 상장례가 깊숙하게 반영되어 있으므로, 조선에서는 유교식 국상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여 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국상에서 피장자인 국왕과 왕비는 전체 신민이 스스로 신하로 자처하는 칭신(稱臣)의 대상이었다. 국왕과 왕비의 상장례에서, 상주는 왕위 계승자이거나 국왕으로 상정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상장례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국왕과 왕비가 사망한 경우, 해당 의례를 수행하기 위해, 빈전도감(殯殿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 등 세 개의 임시 관청이 설치되었다.

예조에서 주장하는 빈전도감은 빈전(殯殿)을 설치 운영하고 산릉이 조성된 이후에는 혼전도감(魂殿都監)으로 전환하였다. 호조가 담당하는 국장도감은 장례 절차를 진행하였고, 공조가 책임을 맡는 산릉도감은 산릉을 조성하는 작업을 주관하였다.

국상의 절차는 조선이 모델로 삼은 중국에서도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적절한 참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난제였다. 또한 태종(太宗) 때부터 길례 의례에서 당 · 송의 고제(古制)를 수용할지, 시왕(時王)으로 인정한 명의 시제(時制)를 채택할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1419년(세종 1) 정종(定宗), 1420년 원경왕후(元敬王后), 1422년 태종의 국상이 연이어 전개되면서, 조선의 국상 의례는 고제를 채택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1440년(세종 22) 시제를 반영한 길례의 개정이 단행되었고, 1446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국상 의례는 시제를 수용한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1444년부터 오례 정비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때의 성과를 수록한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 흉례는 국왕과 왕비의 국상을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15세기에 국상의 경험이 다수 축적되면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흉례는 국왕과 왕비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례의 사례를 수용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국왕이 상주가 되는 국상은 국정 운영의 공백을 우려하여 단기간에 실시하는 관례가 있었다. 삼년상의 형식만 수용하여 27일, 혹은 3일로 단축한 기간에 진행되었는데, 태종의 국상에서 상주가 된 세종(世宗)은 27개월의 상기(喪期)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삼년상을 실제로 수행하는 조선의 원칙이 정립되었다. 국왕의 삼년상이 실천되면서, 산릉을 미리 준비하는 관행도 소멸되어, 조선에서는 국상 발생 이후 5개월 동안 산릉을 준비하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의 국상을 정비하는데, 국가례로서 주1주2을 주요 자료로 활용하면서, 당의 『원릉의주(元陵儀注)』 등이 참조되었고, 염습의 절차와 상복의 제도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규정이 적용되었다. 국상이 진행되는 세부적인 사항은 부분적으로 조정되었지만, 3년 상의 준수, 27개월 동안 빈전과 혼전(魂殿)의 운영, 음택풍수(陰宅風水)를 적용한 능지의 선택과 5개월 내의 산릉 조성 등의 방식은 대체로 준수되었다.

조선의 국상은 통치자가 상주가 되는 상장례로서는 드물게 27개월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는 조선 나름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5·16세기의 일부 국상에서는 피장자의 성향에 따라 불교식 의례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의례는 유교식으로 진행하였고, 점차 불교식 요소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의례 절차가 확립되었다.

절차

국장 대상자가 사망하면,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염습을 실시한다. 염습한 시신은 관에 안치하는데, 안치된 관을 재궁(梓宮)이라 한다. 재궁은 산릉이 준비될 때까지, 궁궐 안에 마련된 빈전에 두고, 빈전 의식의 대상이 된다. 통상의 경우에는 왕세자가 상주가 된다. 왕세자는 국왕의 승하 후 5일째 상복을 입는다.

빈전에서는 주3, 주4 등 일상식을 제공하는 절차를 시행하고, 빈전에서 산릉에 이르기까지 염습 · 성빈 · 계빈 · 안릉 등 특별한 의식을 모두 전례(奠禮)의 형식으로 거행한다. 전례는 일상식을 준비하여 의식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전의 모습으로 섬긴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유교 경전에서 일상식을 지향하는 전례의 상차림은 주5을 포함하지만, 『국조오례의』는 주6을 사용하는데, 이를 불교의 영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피장자는 대행왕, 대행왕비로 지칭하다가, 새로운 이름으로 시호(諡號) · 능호(陵號)가 작성되고, 생전의 업적을 평가하여 종묘에서 사용할 묘호(廟號)를 결정한다. 중국에 상을 알리고, 시호를 요청하는 절차도 진행된다. 상주인 왕세자는 주7 의식을 통해 국왕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일반 관원도 빈전이 유지되는 동안 상복을 입고, 진향(進香) 의식에 참여한다.

산릉의 장소가 선택되고 관련 준비가 이루어지면, 재궁을 옮겨서 매장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흉장과 길장으로 구성된 성대한 발인반차가 동원되는데, 흉장은 재궁에 있는 주8을 위한 것이고, 길장은 혼령을 모시고 돌아오는 반혼(返魂)에 수행하는 의장이다. 재궁을 내리는 자리를 현궁(玄宮)이라 한다. 재궁을 두는 석실을 조성하지 않고, 회격을 사용했기 때문에 석실을 장식할 수 없었고, 사치스러운 부장품을 두지도 않았다. 조선의 산릉은 빈전이 조성된 5개월 동안 조성하였다. 정자각(丁字閣)을 비롯한 각종의 석물은 통치자로서는 매우 소박하게 제작되었는데, 백성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재궁을 현궁에 내려 체백을 매장하는 절차가 종료되면, 혼을 모시고 돌아오는 과정이 시작된다. 우주(虞主)를 제작하는데, 몸을 잃은 혼이 머물도록 준비된 장치이다. 궁에는 빈전을 대신하여 제향의 공간으로서 혼전이 마련되고, 우주를 대상으로 우제(虞祭)를 시행한다. 우제는 천간으로 음에 해당[乙, 丁, 己, 辛, 亥]하는 유일(柔日)에 6회 하고, 일곱 번째는 천간이 양에 해당[甲, 丙, 戌, 庚, 壬]하는 강일(剛日)에 시행한다.

우제 이후 강일을 만나면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졸곡 이후에는 정해진 시간에만 곡을 하는 것으로 전환되고, 점차 길례 제사의 형식이 도입된다. 첫 기일이 되면 연제(練祭)를 지낸다. 연제는 소상(小祥)으로도 지칭하는데, 점차 길제로 전환되는 것을 상징한다. 연제에서는 우주를 대신하여 밤나무로 제작한 연주(練主)가 마련된다. 연주는 종묘에서 신주(神主)로 사용된다. 연제를 실시하며 주9주10으로 갈아입는다.

두 번째 기일에 대상(大祥)으로 지칭되는 상제(祥祭)를 시행하고, 상주는 참복으로, 관원은 주11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상제 후 천도의 변화를 상징하는 3개월이 경과하면 담제(禫祭)를 지내고, 국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이후 신주가 종묘에 부묘되면 길례가 시작된다.

국상은 단순히 국왕과 관원이 의례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의례였다. 국상이 시작되면, 국가 제사가 중단되고 음악 사용을 멈춘다. 빈소가 준비된 이후에는 사직 제사만 시행하고, 졸곡 이후에 국가 제사를 속행한다. 제사 음악은 국상 기간에 중단하지만, 사직은 졸곡 이후에 사용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행사도 졸곡까지는 중단된다. 관원을 선발하는 일체의 절차가 중단되고, 재판 등의 일상적인 사법 업무도 멈추게 된다. 5일 동안은 시장도 장소를 옮겨서 개장하였다. 일반인의 혼례는 졸곡까지 금지되고, 관원은 기년까지 혼례를 진행할 할 수 없었다.

왕비의 국장은 국왕의 국장 절차에 준하지만, 국왕 생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상기가 단축되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의 상장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조선에서는 원경왕후가 사망한 후, 세종은 삼년상을 희망했으나 태종에 의해 짧게 상을 마무리하였다.

국왕보다 왕비가 먼저 사망하면, 기년으로 상을 단축하되, 삼년을 심상(心喪)하는 것이 제도화되었다. 왕비의 신주는 혼전에 모셨다가 국왕의 국상을 거친 이후 국왕과 함께 종묘에 부묘하였다. 왕비가 국왕보다 늦게 사망하면, 왕비의 삼년상이 종료된 후, 남편의 신실에 함께 부묘하였다.

관련 풍속

태조(太祖)신덕왕후(神德王后), 정종의 국상에서는 재도감(齋都監)이 설치되어 불교 행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칠일 단위로 불교식 재를 지내고, 49일, 백일 단위의 의례는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의례 시점이었다. 기신(忌晨)도 불교에서 의례를 독점하였다가, 이를 유교 의례로 대체하면서,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문소전(文昭殿)이, 경복궁 문소전이 소실된 이후에는 산릉이 기신의 의식을 유교식으로 시행하는 공간이 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의 국상은 27개월 동안 수행되는 삼년상 제도로 실천되었다. 삼년상은 장기간의 통치 공백을 유발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를 준수하는 것은 통치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통치자의 삼년상은 통치 공백을 우려하여 시행하지 않았던 것인데, 조선은 오백 년 지속되는 동안 상제에 의한 불안정보다는, 애통해하는 의례상의 실천이 국왕 유고의 특수한 상황에서 정치적 안정을 가져온 것으로 이해한다.

조선의 국상은 전체적으로 엄격한 유교적 지향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는데, 절제된 의례와 규모가 크지 않은 산릉 조성과 일을 위해 5개월 이내로 한정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노역 동원 등, 백성의 부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된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원전

『통전(通典)』
『문헌통고(文獻通考)』
『주자가례(朱子家禮)』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이욱,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 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민속원, 2017)

논문

강제훈, 「조선초기 국가의례 정비의 지향과 원칙: 길례·흉례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민족문화연구』 68,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5)
주석
주1

중국 고대로부터 남송 영종(寧宗) 때까지의 제도와 문물사(文物史)에 관한 책. 1319년에 중국 원나라의 마단림(馬端臨)이 당나라 두우의 ≪통전≫을 본떠서 엮었으며 ≪통전≫, ≪통지≫와 더불어 ‘삼통’이라 이른다. 348권. 우리말샘

주2

중국 당나라의 두우(杜佑)가 편찬한 정서(政書). 상고로부터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변천, 정치의 대요(大要) 따위를 연대순으로 9개 부문으로 분류하고 기술하였다. 200권. 우리말샘

주3

장사에 앞서 아침저녁으로 영전에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4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5

고기붙이로 만든 반찬. 우리말샘

주6

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아니한 반찬. 우리말샘

주7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음. 우리말샘

주8

죽은 지 오래된 송장. 또는 땅속에 묻은 송장. 우리말샘

주9

아들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의 상중에 입는 상복. 우리말샘

주10

상례(喪禮)에서, 소상(小祥) 뒤로부터 담제(禫祭) 전까지 입는 상제의 옷. 우리말샘

주11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이 담제 뒤 길제 전에 입는 옷. 흰색과 옥색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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