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한인들은 처음에 일이 없었는데, 점차 편물의 일종인 요코를 짜는 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이 삯일은 초기 아르헨티나 한인들의 삶을 지탱해준 원천이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한인들은 처음에 농업에 종사하기로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 뒤 도시로 이주하였는데, 특히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북동부의 레티로(Retiro), 비자 솔다티(Visa Soldati) 등의 빈민촌에서 한인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한인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파는 행상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 나갔지만, 1966년부터는 백구촌(百九村)에서 요코와 편물 삯일을 시작하였다. 편물 삯일은 주로 여자가 맡았던 반면, 요코 삯일은 힘이 필요하였기에 대부분 남자들이 담당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한인들은 봉제 삯일도 하였는데, 대체로 1975년까지는 요코와 편물 삯일이 여전히 한인들의 주업이었다.
백구촌에 살았던 한인 280세대는 대부분 요코, 편물, 봉제 삯일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좁은 아파트 안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이웃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고, 정전으로 인해 작업을 자주 중단해야 하였다. 요코, 편물, 봉제 작업은 수월한 편이 아니었다.
1973년부터 아르헨티나 정부는 백구촌을 포함한 빈민 판자촌을 철거한 뒤, 아파트나 주택단지를 조성하려고 하였다. 한인들은 백구촌 주변의 시우다델라(Ciudadela) 아파트단지로 이주하였고, 이곳은 점차 한인 봉제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7년부터 한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대 상가인 온세(Once) 지역으로 진출하여 의류 도·소매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유대인들이 개척한 아르헨티나 최대의 의류 도매상가 중심지인 아베야네다(Avellaneda) 지역에 진출하여, 1만여 명의 한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1984년에는 원단만을 도매로 거래하는 한인 상점이 들어서기도 하였다.
현재 아르헨티나 한인들은 원단 생산, 원단 도매, 의류 생산, 의류 도매 및 소매 등 수직적인 체계를 갖춘 의류업을 주도하고 있다. 요코 삯일은 이러한 분업화된 구조를 구축하는데 바탕이 된 일이자, 한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시작한 매우 힘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