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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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31일~11월 2일 멕시코 한인이 참여하는 멕시코의 민족축제. 해외한인·의식행사.
망자의 날 (亡者의 날)
매년 10월 31일~11월 2일 멕시코 한인이 참여하는 멕시코의 민족축제. 해외한인·의식행사.
중앙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공화국.
멕시코 (Mexico)
중앙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공화국.
에네켄 농장은 멕시코 유카탄(Yucatan) 일대에 있는 해외한인 관련 농장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하였던 농장으로, ‘에네켄 아시엔다(henequen Hacienda)’라고 부른다.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섬유의 원료이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에네켄 농장 (Henequén 農場)
에네켄 농장은 멕시코 유카탄(Yucatan) 일대에 있는 해외한인 관련 농장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하였던 농장으로, ‘에네켄 아시엔다(henequen Hacienda)’라고 부른다. 에네켄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섬유의 원료이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한인 이민을 다룬 김영하의 장편 소설.
검은 꽃
멕시코 한인 이민을 다룬 김영하의 장편 소설.
일제강점기 때, 노동 이민으로 온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하였고,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고문, 민성국어학교 교장, 신한민보 통신원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언론인·독립운동가.
임천택 (林千澤)
일제강점기 때, 노동 이민으로 온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하였고,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고문, 민성국어학교 교장, 신한민보 통신원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언론인·독립운동가.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Mexico 韓人 移民 百年史)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김익주는 일제 강점기 때, 멕시코로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고, 식당 경영으로 번 수입을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873년에 태어나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으며,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섰다. 특히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다. 1930년에 『신한민보』에 실린 기사로 인하여 묵경[멕시코]지방회를 해산하고 한인자성단을 조직하여 흥사단을 후원하였다. 1935년에 한인의 단결과 합작을 위해 한인자성단과 멕시코지방회를 통합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김익주 (金益周)
김익주는 일제 강점기 때, 멕시코로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고, 식당 경영으로 번 수입을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873년에 태어나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으며,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섰다. 특히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다. 1930년에 『신한민보』에 실린 기사로 인하여 묵경[멕시코]지방회를 해산하고 한인자성단을 조직하여 흥사단을 후원하였다. 1935년에 한인의 단결과 합작을 위해 한인자성단과 멕시코지방회를 통합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멕시코 이민 한인이 만든 한인회.
멕시코 한인회 (Mexico 韓人會)
멕시코 이민 한인이 만든 한인회.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메리다 지방회 (Merida 地方會)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2004년에 멕시코 한인 이민자의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
멕시코 한인후손회 (Mexico 韓人後孫會)
2004년에 멕시코 한인 이민자의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에 있는 한인 이민박물관.
메리다 한국박물관 (Merida 韓國博物館)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에 있는 한인 이민박물관.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 (Mexico 移住民 救出運動)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선전위원, 멕시코국립대학교 역사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독립운동가.
한종원 (韓宗源)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선전위원, 멕시코국립대학교 역사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독립운동가.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낸 최병덕이 자신의 멕시코 이민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교포역설 (僑胞歷說)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낸 최병덕이 자신의 멕시코 이민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메리다지방회 회장,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교민. 지도자.
이근영 (李根永)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메리다지방회 회장,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교민. 지도자.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메리다 한인학교 (Merida 韓人學校)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묵경 지방회 (墨京 地方會)
묵경 지방회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의 지방회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들은 1909년 ‘묵경(墨京)’이라고 부른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묵경지방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한때 회무가 정지되었으나, 1915년 새 회장과 임원진을 임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묵경지방회는 언론계와 종교계를 통해 독립선언의 내용을 알렸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묵경지방회는 멕시코 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여 한인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인들은 ‘자유 한인’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황보영주는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서 1917년에 숭실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 강계 지역 3.1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후 상해 흥사단 단원으로 멕시코로 이주하여 멕시코 한인 사회의 형성을 주도했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일 선전포고의 입장을 강조하여 멕시코 한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도록 했다. 멕시코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이 인정되어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황보영주 (皇甫永周)
황보영주는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서 1917년에 숭실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 강계 지역 3.1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후 상해 흥사단 단원으로 멕시코로 이주하여 멕시코 한인 사회의 형성을 주도했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일 선전포고의 입장을 강조하여 멕시코 한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도록 했다. 멕시코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이 인정되어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베라크루스주(Veracuruz州) 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Oaxaqueno) 지역으로 이주한 약 3백 여명의 한인들이 1911년 12월 17일에 조직하였다. 회장은 서현우가 맡았고, 부회장에 이종대, 총무에 이원석, 서기에 이기종 등이 선임되었다. 1913년 6월에는 노동소를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지방회를 유지하려고 ‘재정출납에 대한 세칙’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하였다. 1917년 6월 1일에 멕시코 혁명군의 노략질에 모두 코아트사코알코스로 도망하여 해산되고 말았다.
오학기나 지방회 (Oaxaqueños 地方會)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베라크루스주(Veracuruz州) 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Oaxaqueno) 지역으로 이주한 약 3백 여명의 한인들이 1911년 12월 17일에 조직하였다. 회장은 서현우가 맡았고, 부회장에 이종대, 총무에 이원석, 서기에 이기종 등이 선임되었다. 1913년 6월에는 노동소를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지방회를 유지하려고 ‘재정출납에 대한 세칙’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하였다. 1917년 6월 1일에 멕시코 혁명군의 노략질에 모두 코아트사코알코스로 도망하여 해산되고 말았다.
멕시코 한인 이민이 조직한 묵경지방회의 청년 단체이다.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 거주한 한인들이 1911년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묵경지방회(墨京地方會)를 설립하였고, 1928년에 그 아래에 묵경한인청년회를 조직하였다. 강령에는 대중운동 후원, 본국정신 고양, 지식 개발, 실업 증진 등 모두 7개의 목표가 담겨 있다. 서윤이 회장을 맡았고, 총무에는 김동필, 서기에는 이순녀, 회계에는 김홍식 등이 선임되었다. 1920년대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청년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 말까지 줄곧 큰 활동을 하였다.
묵경 한인청년회 (墨京 韓人靑年會)
멕시코 한인 이민이 조직한 묵경지방회의 청년 단체이다.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 거주한 한인들이 1911년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묵경지방회(墨京地方會)를 설립하였고, 1928년에 그 아래에 묵경한인청년회를 조직하였다. 강령에는 대중운동 후원, 본국정신 고양, 지식 개발, 실업 증진 등 모두 7개의 목표가 담겨 있다. 서윤이 회장을 맡았고, 총무에는 김동필, 서기에는 이순녀, 회계에는 김홍식 등이 선임되었다. 1920년대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청년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 말까지 줄곧 큰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