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종린"
검색결과 총 27건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철 (金哲)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김태수는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후 영동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사상운동 단체 칠월회 회원이었으며, 적우동맹 책임비서를 지냈다. 영동 지역 대표적인 활동가로, 민주주의민족전선 충북지부 조직부장과 영동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김태수 (金台洙)
김태수는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후 영동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사상운동 단체 칠월회 회원이었으며, 적우동맹 책임비서를 지냈다. 영동 지역 대표적인 활동가로, 민주주의민족전선 충북지부 조직부장과 영동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김하구 (金河球)
김하구는 일제강점기에 『한인신보』 주필,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위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한북학회, 신민회 등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권업신문』을 발행하고, 『한인신보』와 『선봉』의 주필을 지냈다.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상해파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남공선 (南公善)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독고전은 조선공산당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코르뷰로 국내부, 조선공산당, 국제선공산주의그룹에 참여한 신의주를 대표하는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32년경 변절하여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하였다.
독고전 (獨孤佺)
독고전은 조선공산당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코르뷰로 국내부, 조선공산당, 국제선공산주의그룹에 참여한 신의주를 대표하는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32년경 변절하여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하였다.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마준 (馬駿)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문갑송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시로 ‘간도 5·30봉기’를 지휘하였다.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장 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문갑송 (文甲松)
문갑송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시로 ‘간도 5·30봉기’를 지휘하였다.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장 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윤세 (朴允世)
박윤세는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분열된 만주의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을 통일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박진순 (朴鎭淳)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 겸 제2비서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테러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배치문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신간회 목포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배치문 (裵致文)
배치문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신간회 목포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신철은 북풍파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르뷰로의 국내 공작원으로 입국하여 코르뷰로 국내부를 조직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의 책임비서가 되었다. 김약수 등과 까엔당이라는 공산주의 그룹을 조직하였다. 북풍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철 (辛鐵)
신철은 북풍파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르뷰로의 국내 공작원으로 입국하여 코르뷰로 국내부를 조직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의 책임비서가 되었다. 김약수 등과 까엔당이라는 공산주의 그룹을 조직하였다. 북풍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안광천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월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정우회선언'을 기초하여 방향전환론과 민족협동전선 결성을 주장하였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조선공산당 정치부장으로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논강」을 작성하였다. 김원봉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조직하고, 『레닌주의』를 발행하였다.
안광천 (安光泉)
안광천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일월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정우회선언'을 기초하여 방향전환론과 민족협동전선 결성을 주장하였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조선공산당 정치부장으로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논강」을 작성하였다. 김원봉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조직하고, 『레닌주의』를 발행하였다.
윤덕병은 노동운동가이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노동공제회 서무부 간사,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위원 등 노동운동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중립당), 코르뷰로 국내부, 조선공산당 등 비밀결사에서 활동하였다.
윤덕병 (尹德炳)
윤덕병은 노동운동가이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노동공제회 서무부 간사,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위원 등 노동운동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중립당), 코르뷰로 국내부, 조선공산당 등 비밀결사에서 활동하였다.
이문홍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남만청년총동맹의 교육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공동 투쟁을 전개하였다. 8·15광복 후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고,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이문홍 (李文弘)
이문홍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남만청년총동맹의 교육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공동 투쟁을 전개하였다. 8·15광복 후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고,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이백초는 일제강점기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극동공화국 소속 인민혁명군과 러시아공산당원으로 활동하였다. 하바롭스크에서 발행되던 한글 신문인 『선봉』의 주필로 노동운동 및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백초 (李百草)
이백초는 일제강점기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극동공화국 소속 인민혁명군과 러시아공산당원으로 활동하였다. 하바롭스크에서 발행되던 한글 신문인 『선봉』의 주필로 노동운동 및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성태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상해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 신생활사그룹과 민중사 등에서 활동하면서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당 기관지로 지정된 『조선지광』의 책임자를 겸하였다. 소련으로 망명한 후 스파이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이성태 (李星泰)
이성태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상해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 신생활사그룹과 민중사 등에서 활동하면서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당 기관지로 지정된 『조선지광』의 책임자를 겸하였다. 소련으로 망명한 후 스파이 혐의로 총살되었다가 복권되었다.
이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국권피탈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으로 군사부를 담당하였으며, 광주봉기에 군사고문으로 참여하였다. 봉기 실패 후 해륙풍 근거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8·15광복 후 북한 정권에서 초대 도시경영상을 역임하였다.
이용 (李鏞)
이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국권피탈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한인사회당의 중앙위원으로 군사부를 담당하였으며, 광주봉기에 군사고문으로 참여하였다. 봉기 실패 후 해륙풍 근거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8·15광복 후 북한 정권에서 초대 도시경영상을 역임하였다.
이우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와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대중신문』과 『이론투쟁』의 기자이자, 『대중신문』과 『현계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 일본부 선전부장과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우적 (李友狄)
이우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와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대중신문』과 『이론투쟁』의 기자이자, 『대중신문』과 『현계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 일본부 선전부장과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
이정윤 (李廷允)
이정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전진』을 발행하였고, 북성회에서 활동하였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로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위해 레닌주의동맹에 참가하였다. 8·15광복 전후 영등포를 거점으로 하는 적기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 운영에 반대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사회노동당에 참여하였다.
이청원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고,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과 일본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냈다. 8·15광복 후 좌파 이론가로 활약하다가 월북하여 '조선력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0년대 후반 교조주의, 수정주의로 비판받고 숙청되었다.
이청원 (李淸源)
이청원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고,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과 일본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냈다. 8·15광복 후 좌파 이론가로 활약하다가 월북하여 '조선력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0년대 후반 교조주의, 수정주의로 비판받고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