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보살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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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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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백제시대의 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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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백제시대의 보살상.
내용

높이 12.5㎝.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정면관(正面觀 : 앞면에서 바라보는 모습) 위주의 엄격한 직립의 자세로 서 있는 이 보살상은 두 팔과 광배를 잃고 군데군데 마멸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삼국시대 말기의 보살상 양식이 잘 나타나 있고, 도금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한 둥근 모습으로 백제 보살상의 공통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코는 비교적 크게 표현된 반면, 눈과 입은 작게 표현되어 동안(童顔)의 표정을 짓고 있다. 이목구비는 평면적이다.

머리 위의 보관은 낮은 삼면관(三面冠)으로 그 가운데에 머리를 틀어 올린 발계(髮髻 : 상투머리)가 우뚝하게 솟아 있다. 그러나 보살상에 흔히 보이는 수발(垂髮 : 뒤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은 표현되지 않았다.

얼굴에 비하여 신체는 길고 가늘다. 특히 허리가 잘록하여 율동감이 있다. 천의(天衣)와 영락(瓔珞)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상체는 나형(裸形)이며, 목걸이가 상체에 비하여 과대하게 표현되었다. 그 가운데에 영락이 늘어져 있다. 그 밖의 세부 장식은 확인할 수 없다.

하체의 군의(裙衣)는 허리에서 복잡하게 묶여서 두 다리의 윤곽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몸 좌우로 늘어져 있다. 두 다리 위에는 V자형의 얕은 음각선의 옷주름이 중첩되어 있다. 몸 좌우로 벌려진 군의 자락 일부는 결손되었다.

대좌는 당시의 보살상에 일반적인 복련좌(覆蓮座)와는 달리 두 줄의 단판앙련(單瓣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홑잎의 연꽃)으로 이루어진 반구형(半球形)이다.

내부는 비었고 밑부분에 구멍이 있다. 이곳에 촉이 달려 있어, 이 상이 협시상(脇侍像)일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뒷면은 평판적이며, 하반신에 V자형으로 중첩된 간단한 옷주름만 음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둥근 조형성과 살이 올라 통통한 둥근 얼굴, 동안의 표정, 늘씬한 신체 비례와 곡선적인 윤곽선 등에서 부여 규암면 출토 금동보살입상, 공주 의당면 출토 금동보살입상(국보, 1989년 지정)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중국의 북제(北齊)·북주(北周) 및 수(隋)나라 초기 조각 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조성 시기는 7세기 초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삼국시대불교조각론(三國時代佛敎彫刻論)』(강우방, 국립중앙박물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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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곽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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