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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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용복 (金用福)
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윤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의 인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3월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난징과 충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10월 10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201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김윤경 (金允經)
김윤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의 인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3월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난징과 충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10월 10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201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양진실 (梁眞實)
양진실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찬성 (鄭燦成)
정찬성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후원 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12월 3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 있는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윤찬복, 최복길과 함께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하고 회계를 맡았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마련한 후원금을 통신원 차경신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1921년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태화는 일제강점기 중국 지린성에서 대동회에 가입하여 항일 선전문 배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11월에는 대동회 선전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12월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안투현 일대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장태화 (張泰嬅)
장태화는 일제강점기 중국 지린성에서 대동회에 가입하여 항일 선전문 배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1924년 11월에는 대동회 선전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12월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안투현 일대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한족동맹운동을 벌이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이일범이다. 정영은 1940년 9월 17일 성립된 한국광복군의 제3징모처에서 활동하였다.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는데, 주로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 (鄭瑛)
정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한족동맹운동을 벌이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이일범이다. 정영은 1940년 9월 17일 성립된 한국광복군의 제3징모처에서 활동하였다.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는데, 주로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시안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협조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이자 적 점령 지구였던 루안 지역의 협조자로 활동하였다. 이서룡, 차영철, 정태희, 정기주, 권혁상, 정윤희 등과 함께 후방에서 적 활동을 탐지하고 초모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 인원의 확충과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 점령 지역에서 협조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영순 (鄭英淳)
정영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협조하여 항일 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이자 적 점령 지구였던 루안 지역의 협조자로 활동하였다. 이서룡, 차영철, 정태희, 정기주, 권혁상, 정윤희 등과 함께 후방에서 적 활동을 탐지하고 초모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 인원의 확충과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 점령 지역에서 협조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최이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이며, 남편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한 박성관이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구호대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쉬저우에 특파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한인 신변 보호, 일본군 무장 해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최이옥 (崔伊玉)
최이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이며, 남편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한 박성관이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구호대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쉬저우에 특파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한인 신변 보호, 일본군 무장 해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한영애 (韓永愛)
한영애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구대장 노복선의 휘하에서 적 정보 수집, 초모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지원을 담당하였다. 1946년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함용환 (咸用煥)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 (黃金順)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5월경 하와이로 이민 갔다. 이민 후 사탕수수 농장 및 세탁업 등에 종사하다가, 1913년 대한인부인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9년 하와이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인부인구제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모집하여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마리아 (黃Maria)
황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5월경 하와이로 이민 갔다. 이민 후 사탕수수 농장 및 세탁업 등에 종사하다가, 1913년 대한인부인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9년 하와이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인부인구제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모집하여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치은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부인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대한독립부인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구호하는 활동 등을 하였다. 1921년 4월 단원들과 함께 검거되었으며, 1922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치은 (朴致恩)
박치은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부인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대한독립부인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구호하는 활동 등을 하였다. 1921년 4월 단원들과 함께 검거되었으며, 1922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애자 (安愛慈)
안애자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 회장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외 민립대학설립운동, 근우회, 신간회 등에 참여하였으며, 진남포 지역 사회사업에도 헌신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안정석 (安貞錫)
안정석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송죽회, 대한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신도로 전도 활동을 하다가 1913년 송죽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당시 숭의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석담은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의병에게 숙식과 자금을 지원하고, 임시은사금 지급을 거부한 여성 항일운동가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봉기하였을 때, 황해도 평산군에서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하였다. 평산 지역의 유서 깊은 양반가 안주인이었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한일합병 후에도 일제가 민심 수습 차원에서 지급한 임시은사금을 거부하는 등 저항 의식을 보여주었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석담 (李石潭)
이석담은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의병에게 숙식과 자금을 지원하고, 임시은사금 지급을 거부한 여성 항일운동가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봉기하였을 때, 황해도 평산군에서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하였다. 평산 지역의 유서 깊은 양반가 안주인이었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한일합병 후에도 일제가 민심 수습 차원에서 지급한 임시은사금을 거부하는 등 저항 의식을 보여주었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화숙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9월 대한애국부인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민족대표 30명에 여성 대표로 참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 부설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사 교육을 이수하기도 하였다.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화숙 (李華淑)
이화숙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9월 대한애국부인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민족대표 30명에 여성 대표로 참여하였다. 대한적십자회 부설 간호원양성소에서 간호사 교육을 이수하기도 하였다. 1920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메불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대한인국민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여자애국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동포 구제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메불 (林메불)
임메불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대한인국민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미국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여자애국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동포 구제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애실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문맹 퇴치에 힘쓴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 아오지탄광 광산촌에 야학을 설치하여 부녀자들의 문맹 퇴치에 힘썼다. 1942년 서울로 상경하였고, 교회에서 알게 된 여성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글자를 공부하도록 권유하였다. 1944년부터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조애실 (趙愛實)
조애실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문맹 퇴치에 힘쓴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 아오지탄광 광산촌에 야학을 설치하여 부녀자들의 문맹 퇴치에 힘썼다. 1942년 서울로 상경하였고, 교회에서 알게 된 여성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글자를 공부하도록 권유하였다. 1944년부터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차보석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재상해유일학생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흥사단에도 가담하였다. 이후 도미하여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성 이민 사회의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과 구제 활동, 동포 사회 계몽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차보석 (車寶錫)
차보석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재상해유일학생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흥사단에도 가담하였다. 이후 도미하여 대한여자애국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성 이민 사회의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과 구제 활동, 동포 사회 계몽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