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때, 좌사원외랑, 이부원외랑, 안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82년(명종 12) 낭장 김광유(金光裕)와 함께 금나라에 가서 방물을 바치고 만춘절(萬春節)을 하례하였다. 1200년(신종 3)에는 경주 이의민(李義旼)의 족인(族人)들이 방환(放還)되어 주리(州吏)와 더불어 틈이 생겨 서로 싸워 이의민의 족인들이 패하였다. 이 때 전원균은 안찰사(按察使)로서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여 방수(房守) · 별장(別將) · 통인(通引)이 모두 피살되고 자신도 두려워 다른 읍으로 달아나니, 부사 이적유(李迪儒)가 이를 진압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인이 다시 반역을 도모하자 최충헌(崔忠獻)이 대장군 김척후(金陟侯)를 초토처치병마중도사(招討處置兵馬中道使)로 삼고 전원균을 부사로 삼아 토벌하게 하였다. 적이 이 말을 듣고 운문산(雲門山) 및 울진(蔚珍) · 초전(草田)의 적과 규합하여 세력이 커지니 관군이 싸우지 못하였다. 다음 해에 김척후를 불러들이고 정언진(丁彦眞)으로 대신하였는데, 그 다음 해에 정언진과 함께 돌아오니 박인석(朴仁碩)으로 대신하여 진압하게 하였다.
그 뒤 늙어서 치사(致仕)한 이후 도성 서쪽의 별장에 머물면서 지내다가 1218년(고종 5) 병이 들어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이의민의 경주세력과 신라부흥운동」(김당택,『경주사학』16, 1997)
- 「고려 신종대 최충헌정권의 대민시책과 지방사회」(신안식,『사학연구』53,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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