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평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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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회는 1956년 8월 이형록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사진가 17명이 리얼리즘사진을 기치로 모여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회원들은 해방 이전까지 한국사진의 주도적 경향이었던 이른바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자연 풍경 위주였던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신선회는 리얼리즘의 길을 걷고자 했다. 신선회의 리얼리즘은 임응식이 주장한 '생활주의'와 유사하며, 각종 공모전을 통해 창작 활동을 펼쳐나갔다.
신선회 (新線會)
신선회는 1956년 8월 이형록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사진가 17명이 리얼리즘사진을 기치로 모여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회원들은 해방 이전까지 한국사진의 주도적 경향이었던 이른바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자연 풍경 위주였던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신선회는 리얼리즘의 길을 걷고자 했다. 신선회의 리얼리즘은 임응식이 주장한 '생활주의'와 유사하며, 각종 공모전을 통해 창작 활동을 펼쳐나갔다.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살롱사진 (―寫眞)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스트레이트사진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진 개념이며, 순수사진을 추구한 형식주의 사진의 사진 방법론이다. 스트레이트사진은 본래 미국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고안한 용어로, 모더니즘 사진의 핵심 원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 용어가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사진과 미술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사진 촬영 이후 수작업을 통해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고자 했던 이른바 '메이킹 포토'와 구분되는 사진을 뜻한다.
스트레이트사진 (―寫眞)
스트레이트사진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진 개념이며, 순수사진을 추구한 형식주의 사진의 사진 방법론이다. 스트레이트사진은 본래 미국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고안한 용어로, 모더니즘 사진의 핵심 원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 용어가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사진과 미술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사진 촬영 이후 수작업을 통해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고자 했던 이른바 '메이킹 포토'와 구분되는 사진을 뜻한다.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예술사진 (藝術寫眞)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박필호 (朴弼浩)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사진학회 카메라루시다는 1987년 한정식을 중심으로 설립된 사진학회이다. 학회 회원에는 대학교수 및 사진 교육자, 이론 연구자, 작가 등이 참여했으며, 학회지는 사진 관련 논문과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초대 회장 한정식이 총 5권의 학회지를 낼 때까지 회장직을 맡았으며, 다양한 주제의 논문과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진 전문 학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사진학회 카메라루시다 (寫眞學會―)
사진학회 카메라루시다는 1987년 한정식을 중심으로 설립된 사진학회이다. 학회 회원에는 대학교수 및 사진 교육자, 이론 연구자, 작가 등이 참여했으며, 학회지는 사진 관련 논문과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초대 회장 한정식이 총 5권의 학회지를 낼 때까지 회장직을 맡았으며, 다양한 주제의 논문과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진 전문 학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최승희 초상」은 1930년 신낙균이 경성사진사협회 회원들과 함께 무용가 최승희를 초대하여 찍은 사진이다. 사진술을 서양의 신문물로 수용했던 조선의 사진인들은 신문화 운동과 연계해 연극이나 무용 장면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1930년 최승희의 무용 공연을 계기로 신낙균이 촬영한 것으로, 무용가가 촬영 모델로 등장한 첫 사례이자 근대 무용가 최승희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승희 초상 (崔承喜 肖像)
「최승희 초상」은 1930년 신낙균이 경성사진사협회 회원들과 함께 무용가 최승희를 초대하여 찍은 사진이다. 사진술을 서양의 신문물로 수용했던 조선의 사진인들은 신문화 운동과 연계해 연극이나 무용 장면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1930년 최승희의 무용 공연을 계기로 신낙균이 촬영한 것으로, 무용가가 촬영 모델로 등장한 첫 사례이자 근대 무용가 최승희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낙균 자화상」은 1926년 신낙균이 동경사진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찍은 사진 자화상이다. 일반적인 자화상과 달리 약 45도 각도의 측면에서 촬영했으며, 상반신을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예술사진의 전통에 따라 회화적 효과를 가미하여 약간 흐릿한 상태의 모습으로 촬영되었으며, 특수인화법으로 제작되었다. 신낙균의 청년기 모습을 담고 있는 진귀한 사진이다.
신낙균 자화상 (申樂均 自畵像)
「신낙균 자화상」은 1926년 신낙균이 동경사진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찍은 사진 자화상이다. 일반적인 자화상과 달리 약 45도 각도의 측면에서 촬영했으며, 상반신을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예술사진의 전통에 따라 회화적 효과를 가미하여 약간 흐릿한 상태의 모습으로 촬영되었으며, 특수인화법으로 제작되었다. 신낙균의 청년기 모습을 담고 있는 진귀한 사진이다.
싸롱 아루스는 1960년 이형록과 정범태가 신선회 탈퇴 후 창립한 조형주의 사진 단체이다. 이형록은 신선회가 리얼리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한국 사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피사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조형성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싸롱 아루스는 195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편향성에 맞서 모더니즘 사진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런 시도는 현대사진연구회로 계승된다.
싸롱아루스 (―)
싸롱 아루스는 1960년 이형록과 정범태가 신선회 탈퇴 후 창립한 조형주의 사진 단체이다. 이형록은 신선회가 리얼리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한국 사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피사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조형성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싸롱 아루스는 195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편향성에 맞서 모더니즘 사진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런 시도는 현대사진연구회로 계승된다.
사회사진연구소는 1987년 이기원을 중심으로 사진을 통한 민족 민주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사진분과로 출범하였으며, 노동운동 중심의 사회변혁 운동과 사진작업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소장 이기원과 분과장 원종란을 중심으로 많은 사진가들이 연대하여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을 기록했다. 1990년대 사회운동의 방향성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계속해 왔다.
사회사진연구소 (社會寫眞硏究所)
사회사진연구소는 1987년 이기원을 중심으로 사진을 통한 민족 민주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사진분과로 출범하였으며, 노동운동 중심의 사회변혁 운동과 사진작업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소장 이기원과 분과장 원종란을 중심으로 많은 사진가들이 연대하여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을 기록했다. 1990년대 사회운동의 방향성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해선 (李海善)
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임석제는 리얼리즘 사진을 기치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이다. 1948년 8월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인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천항에서 수입 식량을 운반하는 부두 노동자, 소작농, 광부 등 기층 민중을 대상으로 삼았다. 공모전 중심의 예술 사진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 1950년대를 풍미한 생활주의 사진과 더불어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대표한다.
임석제 (林奭濟)
임석제는 리얼리즘 사진을 기치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이다. 1948년 8월 서울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해방 후 최초의 개인 사진 전람회인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의 작품은 인천항에서 수입 식량을 운반하는 부두 노동자, 소작농, 광부 등 기층 민중을 대상으로 삼았다. 공모전 중심의 예술 사진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 1950년대를 풍미한 생활주의 사진과 더불어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대표한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 (朝鮮寫眞藝術硏究會)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민식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제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1928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진집 『인간가족』에 감명을 받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귀국 후 부산에 거주하며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집 『휴먼』 시리즈를 14권까지 출간하였으며, 국내외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였다. 휴머니즘을 사상적 배경으로 평생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였다. 사망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민식 사진상이 제정되었다.
최민식 (崔敏植)
최민식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제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1928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진집 『인간가족』에 감명을 받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귀국 후 부산에 거주하며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집 『휴먼』 시리즈를 14권까지 출간하였으며, 국내외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였다. 휴머니즘을 사상적 배경으로 평생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였다. 사망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민식 사진상이 제정되었다.
한국민족사진가협의회는 1993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분과로 창립된 사진 단체이다. 아마추어 사진가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사진작가협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출범하였다. 1999년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여 민족사진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표로 삼고 관련 전시와 출판물 발간 사업을 진행해 왔다.
한국민족사진가협의회 (韓國民族寫眞家協議會)
한국민족사진가협의회는 1993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분과로 창립된 사진 단체이다. 아마추어 사진가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사진작가협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출범하였다. 1999년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여 민족사진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표로 삼고 관련 전시와 출판물 발간 사업을 진행해 왔다.
'관점과 중재'는 1993년, 기획자 박주석이 주명덕과 현일영의 1960년대 사진을 '관점'과 '중재'라고 하는 두 개념틀과 그 전범들을 통해 스트레이트 사진의 개념을 공론화한 사진전이다. 사진가가 대상을 보는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과, 대상과 사진 사이의 중재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구분하여 한국 현대사진을 해석한 기획전이다.
관점과 중재 (觀點―仲裁)
'관점과 중재'는 1993년, 기획자 박주석이 주명덕과 현일영의 1960년대 사진을 '관점'과 '중재'라고 하는 두 개념틀과 그 전범들을 통해 스트레이트 사진의 개념을 공론화한 사진전이다. 사진가가 대상을 보는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과, 대상과 사진 사이의 중재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구분하여 한국 현대사진을 해석한 기획전이다.
『사진을 말한다』는 1982년 사진 평론가 박필호의 육필 원고와 자료를 정리해 엮은 사진 이론서이다. 한국 사진 이론과 평론의 1세대인 박필호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여 최인진이 출간하였다. 총 5개 장으로 구분하여 저자의 사진론, 사진 비평, 예술적 표현 방법, 인상 사진, 사진의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예술사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 사진사에 대한 개략적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2003년 복간되었다.
사진을?말한다 (寫眞을 말한다)
『사진을 말한다』는 1982년 사진 평론가 박필호의 육필 원고와 자료를 정리해 엮은 사진 이론서이다. 한국 사진 이론과 평론의 1세대인 박필호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여 최인진이 출간하였다. 총 5개 장으로 구분하여 저자의 사진론, 사진 비평, 예술적 표현 방법, 인상 사진, 사진의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예술사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 사진사에 대한 개략적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2003년 복간되었다.
『사진기술개론』은 1966년 8월 유만영이 저술한 사진 기술서이다. 1966년 8월 첫 출간하여 2012년 마지막 판이 나올 때까지 한국 사진 역사상 최고의 장기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렸다. 아날로그 사진 시대를 지배했던 사진 기술의 원리를 망라하고 있는 기술 관련 서적의 고전이다. 카메라와 렌즈, 셔터 등 사진 기계학부터 촬영법, 필름 현상과 인화 등 암실 기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적 문제들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기술개론 (寫眞技術槪論)
『사진기술개론』은 1966년 8월 유만영이 저술한 사진 기술서이다. 1966년 8월 첫 출간하여 2012년 마지막 판이 나올 때까지 한국 사진 역사상 최고의 장기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날렸다. 아날로그 사진 시대를 지배했던 사진 기술의 원리를 망라하고 있는 기술 관련 서적의 고전이다. 카메라와 렌즈, 셔터 등 사진 기계학부터 촬영법, 필름 현상과 인화 등 암실 기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술적 문제들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선회 제1회 발표전은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결성한 신선회가 1957년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한 창립 전시회이다. '시장의 생태'를 공동 주제로 한 회원들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다수의 사진가들이 리얼리즘을 한국 사진의 새로운 흐름으로 받아들였음을 상징하는 전시로 평가받는다.
신선회제1회발표전 (新線會第1回發表展)
신선회 제1회 발표전은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결성한 신선회가 1957년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한 창립 전시회이다. '시장의 생태'를 공동 주제로 한 회원들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다수의 사진가들이 리얼리즘을 한국 사진의 새로운 흐름으로 받아들였음을 상징하는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 (林奭濟第1回藝術寫眞個人展)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