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명제"
검색결과 총 16건
경상북도 경주시 황룡사(皇龍寺)에 있었던 삼국시대 가섭불의 받침대. 좌대석.
가섭불 연좌석 (迦葉佛 宴坐石)
경상북도 경주시 황룡사(皇龍寺)에 있었던 삼국시대 가섭불의 받침대. 좌대석.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었던 오갑사(五岬寺) 가운데 하나인 사찰.
운문산 가슬갑사 (雲門山 嘉瑟岬寺)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었던 오갑사(五岬寺) 가운데 하나인 사찰.
동리산문은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의 한 산문이다. 선종은 당나라에서 8세기 후반에 부각되었으며, 9세기 중반 신라로 돌아온 유학승들에 의해 특정 사찰을 중심으로 산문(山門)이 형성되었다. 동리산문은 827년 혜철이 동리산 태안사에서 선법을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문성왕의 귀의를 받으며 왕실의 자문에 응했다. 혜철의 제자 여선사가 혜철의 선풍을 계승하였고, 광자 윤다에 의해 산문이 확산되었다. 『태안사지』를 통해 당시 태안사의 경제 규모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독립적인 산문으로 자리 잡은 태안사에 동리산문이 형성되었다.
동리산문 (桐裡山門)
동리산문은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의 한 산문이다. 선종은 당나라에서 8세기 후반에 부각되었으며, 9세기 중반 신라로 돌아온 유학승들에 의해 특정 사찰을 중심으로 산문(山門)이 형성되었다. 동리산문은 827년 혜철이 동리산 태안사에서 선법을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문성왕의 귀의를 받으며 왕실의 자문에 응했다. 혜철의 제자 여선사가 혜철의 선풍을 계승하였고, 광자 윤다에 의해 산문이 확산되었다. 『태안사지』를 통해 당시 태안사의 경제 규모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독립적인 산문으로 자리 잡은 태안사에 동리산문이 형성되었다.
가지산문은 도의(道義)의 법통을 중심으로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 산문이다. 특정 조사의 법통을 계승한 문도들은 사찰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산문을 형성하였다. 가지산문의 개창조인 도의는 784년(선덕왕 5)에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와서 설악산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도의의 법통은 염거로 이어지고 다시 이관과 체징으로 이어졌다. 체징은 859년에 헌안왕의 명으로 전남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에 머물렀다. 체징이 가지산 보림사에 있었을 때 가지산문은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후삼국을 고려가 통일하면서 선종은 점차 세력을 잃었다.
가지산문 (迦智山門)
가지산문은 도의(道義)의 법통을 중심으로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 산문이다. 특정 조사의 법통을 계승한 문도들은 사찰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산문을 형성하였다. 가지산문의 개창조인 도의는 784년(선덕왕 5)에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와서 설악산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도의의 법통은 염거로 이어지고 다시 이관과 체징으로 이어졌다. 체징은 859년에 헌안왕의 명으로 전남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에 머물렀다. 체징이 가지산 보림사에 있었을 때 가지산문은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후삼국을 고려가 통일하면서 선종은 점차 세력을 잃었다.
삼국시대 때, 양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승려.
각덕 (覺德)
삼국시대 때, 양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승려.
남북국시대 때, 통일신라의 해인사에서 활동하였던 화엄종의 승려.
관혜 (觀惠)
남북국시대 때, 통일신라의 해인사에서 활동하였던 화엄종의 승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당나라로 건너가 유학하여 화엄학을 배운 승려.
범수 (梵修)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당나라로 건너가 유학하여 화엄학을 배운 승려.
삼국시대 고구려 밀사로 백제에 파견된 승려.
도림 (道琳)
삼국시대 고구려 밀사로 백제에 파견된 승려.
삼국시대 고구려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며 『일본세기』를 저술한 승려.
도현 (道顯)
삼국시대 고구려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며 『일본세기』를 저술한 승려.
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원측(圓測)의 기일 축원문.
고번경증의대덕원측화상휘일문 (故飜經證義大德圓測和尙諱日文)
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원측(圓測)의 기일 축원문.
신인종은 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존재하였던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이다. 신라의 밀교는 선덕여왕 때 명랑과 혜통 등에 의해 당나라로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명랑은 금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사천왕사를 창건하여 신인종의 기틀을 만들었다. 『삼국유사』에 밀교 관련 편목이 따로 있을 만큼 신라 중대에는 불교계에서 밀교가 차지하는 위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시대의 신인종은 종파로서 뚜렷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고려시대에도 신인종은 화엄종 같은 주요 종파에 비해 소수 종파로 존재하다가 1424년(세종 6)에 교종으로 통합되었다.
신인종 (神印宗)
신인종은 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존재하였던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이다. 신라의 밀교는 선덕여왕 때 명랑과 혜통 등에 의해 당나라로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명랑은 금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사천왕사를 창건하여 신인종의 기틀을 만들었다. 『삼국유사』에 밀교 관련 편목이 따로 있을 만큼 신라 중대에는 불교계에서 밀교가 차지하는 위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시대의 신인종은 종파로서 뚜렷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고려시대에도 신인종은 화엄종 같은 주요 종파에 비해 소수 종파로 존재하다가 1424년(세종 6)에 교종으로 통합되었다.
봉림산문은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의 한 산문이다. 8세기 후반 당나라 불교계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된 선종은 특정 사원이 한 사람의 스승과 특정 일파에 의해 계승되는 경향이 강했다. 9세기 중반 이 영향을 받은 유학승들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수백·수천의 제자들이 특정 사원을 중심으로 대집단을 이루었다. 또한 왕실, 중앙귀족, 호족의 후원을 받아 경제적 기반도 갖추었다. 대표적으로 원감대사 현욱의 제자인 심희가 봉림사를 창건하여 봉림산문을 개창하였다. 번창하던 봉림산문은 923년 심희의 입적과 927년 후백제의 경주 침공 여파로 지역의 호족세력이 몰락하면서 함께 쇠락하였다.
봉림산문 (鳳林山門)
봉림산문은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의 한 산문이다. 8세기 후반 당나라 불교계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된 선종은 특정 사원이 한 사람의 스승과 특정 일파에 의해 계승되는 경향이 강했다. 9세기 중반 이 영향을 받은 유학승들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수백·수천의 제자들이 특정 사원을 중심으로 대집단을 이루었다. 또한 왕실, 중앙귀족, 호족의 후원을 받아 경제적 기반도 갖추었다. 대표적으로 원감대사 현욱의 제자인 심희가 봉림사를 창건하여 봉림산문을 개창하였다. 번창하던 봉림산문은 923년 심희의 입적과 927년 후백제의 경주 침공 여파로 지역의 호족세력이 몰락하면서 함께 쇠락하였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주 남산에서 아미타불을 염송한 무명의 승려.
염불사 (念佛師)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주 남산에서 아미타불을 염송한 무명의 승려.
고려 초에 형성된 선종(禪宗)의 한 산문(山門).
수미산문 (須彌山門)
고려 초에 형성된 선종(禪宗)의 한 산문(山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
낭산 중생사 (狼山 衆生寺)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
고구려 이불란사 (高句麗 伊弗蘭寺)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