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장 전적은 11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제작된 사경과 목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첩장본(帖藏本) · 호접장본(蝴蝶裝本) · 포배장본(包背裝本) · 선장본(線裝本) 등 책의 형태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단일 불상에서 유출된 전적으로는 양과 질이 가장 뛰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낱장 등 결실이 많은 사경(5종)과 17세기에 간행된 목판본(5종)은 문화재(현, 국가유산) 지정에서 제외되었지만, 희귀한 자료의 판본이 많아 형태서지학 연구와 불교사상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86년 문화재(현, 국가유산) 절도범들에 의하여 소조(塑造)의 비로자나불상의 복장을 뜯고 절취한 것을 수습한 것이다.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54종 71책.
(1) 고려시대 사경(寫經)
이 사경은 상지(橡紙)에 은니(銀泥)로 쓴 것이 6첩, 자색지에 은니로 쓴 것이 1첩, 백지에 금니로 쓴 것이 1첩, 감지(紺紙)에 은니로 쓴 것과 금니로 쓴 것이 각각 1첩씩이다. 그런데 이 사경들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대반야경』 권210에 ‘무자사월이십이일서(戊子四月二十二日書)’라는 기록이 있어 1348년(충목왕 4)에 이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권 머리의 경명(經名) 아래에 천자문 함차 표시가 있어 대장경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2) 고려시대 목판본
이 목판본은 제책형태가 다양하고 내용에 있어 희귀한 것이 많다. 이 중 『수능엄경』은 1309년 승통인 충온(沖縱)과 도인 각원(覺源) 등이 소자(小字)로 새긴 목판에서 1370년 또는 1430년에 임계(林桂)라는 사람이 찍어낸 것이다. 이 판본은 제책이 호접장으로 되어 있고, 1436년 흥덕사(興德寺)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각국사 의천(義天)과 친교가 있던 정원(淨源)이 주석한 것으로 의천의 부탁으로 보내 온 송판에서 찍어낸 『화엄경소』 목판본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호접장으로 제책되어 있다.
이 밖에 『부모은중경』으로 전혀 새로운 이본(異本)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이 판본은 1300년(충렬왕 26)에 간행된 『불설부모은중경』이다. 기존의 판본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과 경명(經名)에서 ‘대보(大報)’가 생략되었고, 장면 변상도(變相圖)가 없으며, 상 · 중 · 하의 3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용은 부분적으로 더 부연한 것 외에는 기존 판본과 비슷하였다.
그리고 『묘법연화경삼매참법』 · 『불설부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 · 『정본일체여래대불정백솔개총지』 · 『법화삼매참조선강의』 등도 새롭게 보는 희귀한 자료이다.
(3) 조선시대 필사본
조선시대는 초기에 사경이 상당히 성행하였으나, 고려시대에 비하면 질과 양이 매우 떨어지고 있다.
이 시대의 필사본으로는 1459년(세조 5)에 신유(信柔)가 백지에 먹으로 쓴 『지장보살본원경』 한 권이 있다. 이 필사본은 일반적인 사경과는 달리 판각을 위한 판하본(板下本)으로 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4) 조선 전기 목판본
조선시대의 판본은 초기에는 고려판에서 인출하거나 복각을 많이 하였고, 형태도 그대로 답습한 예가 많았다. 그러다가 차차 조선조의 독자적인 판본이 등장하게 된다.
기림사의 조선시대본 가운데 『수능엄경』은 조선 초기의 독자적인 판본에 해당된다. 이 판본은 1401년(태종 1) 태조가 태상왕(太上王)으로 있으면서 신총(信聰)에게 글씨를 쓰게 하여 판각한 『대자능엄경(大字楞嚴經)』이다. 그리고 세종 · 세조 · 성종 때에 새긴 『법화경』이 6종이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 많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간경도감에서 고려본을 중수하여 간행한 『선문삼가염송집』은 희귀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