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신평군은 황해북도 북동부에 자리 잡은 군이다. 평안남도 회창군·양덕군·강원도 법동군·판교군·황해북도 곡산군 등에 둘러 싸여 있다. 1952년 봉명면의 동촌리와 동촌면의 오륜리를 통합하여 신설되었다. 신평은 개간한 벌과 들이 많음을 나타낸다. 주로 산악 지대로, 강동산맥, 서백년산맥 등 높은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경제는 광업과 임업이 중심이다. 채굴된 광석 운반을 위한 도로망이 발달해 있다. 조선 태조가 기마 훈련을 했던 치마대와 정조의 친필로 쓰여진 '치마구기비'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방어했던 문성진의 성문터와 진영터가 남아있다.
정의
황해북도 북동부에 자리 잡고 있는 군.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지형은 북쪽과 동쪽이 높고 남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지형을 따라 대동강의 지류이자 신평군 안에서 시작되는 남강(南江)과 그 지류들이 이 방향을 따라 흐르고 있다. 길이가 5㎞ 이상인 하천이 19개 군 내로 흐르고 있으며, 주요 하천은 추전강, 평촌천, 선암천, 미송천, 두무강, 화암천, 봉명천 등이다.
기반암은 화강암 · 화강편마암 · 석회암 · 점판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양은 대부분 지역이 갈색삼림토이 분포되어 있으며 높은 산지대에는 표백화갈색토양이, 남강 연안에는 충적토와 논토양이 약간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중석, 납, 아연, 금 등 유색금속광물과 석회석, 린 등 비금속자원 및 이탄, 초무연타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산림은 군 면적의 83%이며 주요 수종은 신갈나무 · 피나무 · 사시나무 · 자작나무 · 참나무 · 소나무 · 박달나무 · 다릅나무 등이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전나무와 잣나무 등이 반점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해발 1,000m 이상 지역에는 북부아한대성 식물요소들인 전나무 · 가문비나무 · 사스래나무 · 눈잣나무 · 좀참꽃 · 답자리참꽃 등이 자라고 있다.
기후는 신평군의 위치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조건으로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보인다. 황해북도에서 연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으로 9℃, 1월 평균기온은 -8.5℃, 8월 평균기온은 23.7℃이다. 그리고 연평균강수량 역시 황해북도에서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1,3963㎜인데, 연강수량의 56.4%가 7∼8월에 내린다.
형성 및 변천
현황
군 전체면적의 5.9%를 차지하는 농경지는 황해북도에서 농경지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에 속하지만, 산지에 도토리, 머루, 다래를 비롯한 산과일과 삽주, 삼지구엽초, 천남성, 만삼 등의 약초가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고사리, 도라지, 두릅, 버섯 등의 산나물이 많이 산출된다. 그리고 가축업도 발달되어 있어 돼지, 소, 양, 염소, 닭, 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소의 사육량은 황해북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채굴된 광석 운반이 중요한 신평군의 교통은 도로운수가 기본을 이룬다. 평양∼원산 간 관광도로와 신계∼평안남도 양덕 간 도로가 있으며, 신평읍과 인접해 있는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광복 전에는 소학교밖에 없었던 신평군에 현재는 광업전문학교를 비롯하여 21개의 중학교와 21개의 소학교, 20개의 분교가 있으며, 군문화회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신평군에서 가장 높은 하람산 아래에는 조선 태조가 기마 훈련을 했었던 치마대(馳馬臺)와 그 때 마시던 물인 수라천(水刺泉)이 있다. 이곳에는 정조의 친필로 ‘馳馬舊基碑(치마구기비)’라 적힌 비가 있다. 그리고 멱미면 마하리 문성동의 검암령(檢巖嶺)에는 문성진(文城鎭)의 성문터와 진영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길이 험하고 진의 방어시설이 완벽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방어했던 곳으로, 『곡산읍지』에 따르면, 진에는 첨사 통솔하에 장교 8명, 이속 6명, 나졸 8명, 아병(牙兵) 440명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2008년 인구조사』(조선중앙통계국, 2009)
- 『조선향토대백과』7(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3)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 「곡산읍지」(이북오도위원회, 『이북5도30년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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