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초, 개국 3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듬해에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이 되고, 1392년(공양왕 4) 좌부대언(左副代言)을 거쳐 좌대언(左代言)에 올랐다. 그 해에 이성계(李成桂)가 왕위에 오르는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중추원(中樞院) 도승지(都承旨)가 되고 개국공신이 책봉될 때 3등 공신이 되었다. 1393년(태조 2)에는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 겸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보문각(寶文閣) 학사(學士)에 올랐고, 같은 해에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로 나아갔으며 이듬해에 흥녕군(興寧君)으로 봉해졌다.
1406년(태종 6)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에 임명되었다가 곧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옮겼으며, 1410년(태종 10)에는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다. 그 이듬해 정탁(鄭擢) · 유창(劉敞) · 조견(趙狷) · 한상경(韓尙敬) · 조온(趙溫) 등의 개국공신들과 더불어 1398년(태조 7)의 ‘왕자의 난’ 때 주살된 정도전(鄭道傳)과 남은(南誾)의 죄를 감해 주도록 요청했다가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1416년(태종 16)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에 특별 임명되고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으로 봉작되었다. 고려, 조선조의 전환기에 신왕조 개창에 부응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동문선(東文選)』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목은시고(牧隱詩稿)』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연구』(일지사, 1990)
논문
- 박천식, 「조선 개국공신에 대한 일고찰: 책봉과정과 대우를 중심으로」(『전북사학』 1, 전북대학교 사학회, 1977)
- 유주희, 「왕자난을 전후한 조선 개국공신의 정치적 동향」(『조선시대사학보』 11, 조선시대사학회, 199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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