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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부(樂府)

한문학개념용어

 우리나라의 역사와 풍속을 묘사한 시·시조·소악부·죽지사·의고악부 등을 총칭하는 한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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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집 / 대동속악부
분야
한문학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우리나라의 역사와 풍속을 묘사한 시·시조·소악부·죽지사·의고악부 등을 총칭하는 한시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악부 중에서도 17세기 이후 특히 대량으로 산출된 악부집은 대체로 표제를 해동·동국·대동 등으로 하여 중국의 것과 다른 우리 나라의 것임을 명시하고 있거나, 관서·영남·탐진 등의 우리 나라의 어느 특정지역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이들 악부집에 실린 작품들을 해동악부체(海東樂府體)로 부르는 학자도 있다. 보통, 악부시라 할 때는 조선 후기에 나온 이들 영사악부(詠史樂府)나 기속악부(紀俗樂府)를 의미한다.
악부는 본래 중국 한대(漢代) 무제(武帝) 때에 세워진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의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차차 이곳에서 관장한 음악을 수반한 문학양식이 악부로서 불렸다. 이때의 악부는 제사지낼 때 쓰이는 교사악(郊祀樂)과 조회연향(朝會宴饗)을 위하여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같은 당시의 문인들이 음악에 협률(協律)하여 지은 시, 그리고 민간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채집한 민간시가(民間詩歌)로 나누어진다. 특히, 민간시가는 그 내용이 주로 민간의 풍정(風情)과 사회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백을 비롯한 후대문인들의 애호를 받아왔고, 그들에 의하여 악부의 소재가 다시 새롭게 창작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악부는 한대가 지나면서 악부의 음악적 요소들은 점차 탈락되었고, 위진남북조 시기를 거치면서 음악에 맞추지 않은 작품과 고악부의 제목을 그대로 따서 문인들이 창작한 악부의 모의 작품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당송 때에 새로이 출현한 신흥 음악과 결합된 사(詞)와 같은 문학양식도 넓은 의미에서의 악부라고 부른다.
악부문학이 우리 나라에 수용된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 고려 중엽 이후 악부라는 명칭이 문헌에 산견된다. 그러므로 이제현(李齊賢)의 「소악부」 이외는 대체로 송사(宋詞)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현의 「소악부」는 칠언절구의 짧은 시이나 그 소재가 민간에 유행되는 가요의 한역시라는 점에서 중국 악부시와 공통성을 지닌다. 이러한 종류의 소악부로는 이제현과 같은 시대인 민사평(閔思平)의 「소악부」가 있으며, 조선 후기에 시조를 한역한 신위(申緯)의 「소악부」, 이유원(李裕元)·이유승(李裕承)의 「소악부」가 있다.
악부라고 명제(命題)된 작품이 산출된 것은 조선 세조 때에 김종직(金宗直)의 「동도악부 東都樂府」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는 「회소곡 會蘇曲」·「우식곡 憂息曲」·「달도가 怛忉歌」·「양산가 陽山歌」·「대악 碓樂」·「황창랑 黃昌郎」 등의 『삼국사기』·『삼국유사』 소재의 사실(史實)과 설화적인 이야기를 주내용으로 하는 7편의 노래를 읊고 있다. 「동도악부」 이후에 악부는 거의 1세기 이상 동안 계승자를 가지지 못하였다.
17세기 초에 심광세(沈光世)가 「해동악부 海東樂府」(1617)라는 제명 하에 44편의 시를 저술한 이후, 김만중(金萬重)의 「서포악부 西浦樂府」(3편), 임창택(林昌澤)의 「해동악부」(35편), 이익(李瀷)의 「해동악부」(199편), 이광사(李匡師)의 「동국악부 東國樂府」(30편), 신광수(申光洙)의 「관서악부 關西樂府」(108수), 안정복(安鼎福)의 「순암악부 順菴樂府」(5편), 홍양호(洪良浩)의 「청구단곡 靑丘短曲」(26편)·「북새잡요 北塞雜謠」(48편), 정약용(丁若鏞)의 「탐진악부 耽津樂府」·「탐진촌요 耽津村謠」(20수)·「탐진농가 耽津農歌」(5수)·「탐진어가 耽津漁歌」(10장)가 저술되었다.
그리고 이학규(李學逵)의 「영남악부 嶺南樂府」(68편)·「해동악부」(56편), 김려(金鑢)의 「사유악부 思牖樂府」(상 147수, 하 143수), 조현범(趙顯範)의 「강남악부 江南樂府」(151수), 박치복(朴致馥)의 「대동속악부 大東續樂府」(28편), 윤달선(尹達善)의 「광한루악부 廣寒樓樂府」(108첩, 1852), 이유원의 「가오악부 嘉梧樂府」(264편)가 계속하여 나타났다.
악부문학의 전환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심광세는 김종직이 「동도악부」에서 민간설화의 문학화를 시도한 것과는 다르게 악부를 영사시의 형태로 체계를 세운 것이 특징이다.
그의 「해동악부」에는 기자조선이 위만에게, 마한왕이 백제왕에게 땅을 빌려주었다가 오히려 망한 사실을 쓴 「차지한 借地恨」으로부터 신라·고려를 거쳐 조선조 중종반정의 공신 김수동이 벼슬을 사양한 사실을 노래한 「상공래 相公來」까지 실려 있다.
심광세의 작품 중에서 삼국 중에 고구려의 것은 1편, 백제의 것은 2편뿐이고, 박제상·선덕여왕·최치원 등 신라중심으로 주제를 선택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성계의 역성혁명과 세조의 찬위시(임금의 자리를 빼앗을 때)에 선비들의 지절(志節)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밖에 고려의 것으로 팔관회·쌍기·최충헌·삼별초·만권당·최영·정몽주, 조선조의 것으로 한명회·신숙주 등이 망라되어 있어 악부체의 유형을 암시해준다. 그뒤에 나타난 악부들도 이와 유사하다.
이익은 그 주제가 시대적으로 신라 유리왕부터 조선조 광해군까지 나오고 있다. 역사적 사실 이외에도 고구려의 「황조가」, 신라의 「도솔가」, 백제의 「정읍사」, 고려의 「대동강」·「총석정」과 이제현이 「소악부」에서 취급하였던 속요들을 변형하여 재창조하였다. 그리고 연산군 당시의 사화도 적지 않게 취급하고 있다. 이광사의 「동국악부」는 단군신화로부터 시작하여 고려 말의 두문동(杜門洞)까지 취급하였다.
이학규의 「영남악부」는 신라로부터 고려 말까지 대개 영남지방에 관계되는 일이나 인물을 다루었다. 그 중에는 고려 말의 탐관오리를 묘사한 작품도 있다. 이학규의 「해동악부」는 「차지한」부터 조선조 한명회를 읊은 「한갱랑 寒羹郎」까지를 다루고 있다. 박치복의 「대동속악부」는 조선시대의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 이들 악부들은 영사 위주의 것이다.
신광수의 「관서악부」, 김려의 「사유악부」는 풍속과 세태를 중심으로 읊은 기속악부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정약용은 「탐진농가」·「탐진어가」·「탐진민요」 등을 합쳐 「탐진악부」라고 부르고 있어 악부가 후대로 오면서 점점 민속적이고 민가적인 형태로 변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사악부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에 악부집은 대체로 각 시 앞에 원시(原詩)의 소재가 되는 소서(小序)가 있다. 각 시는 편년체로 열거되어 있고, 각 편 사이에 사적 긴밀성은 보여주지 않고 있으나 논자 중에는 이들 각 편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사(史)로서의 연속성도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악부시의 형식은 1구의 자수가 3언·5언·7언으로 되어 있는 것이 가장 많고, 4언시도 있다. 그러나 한편이 일정한 자수로 이루어진 제언체시(齊言體詩) 외에 한편의 구법이 3언·5언·7언 등 잡언(雜言)으로 된 것이 역시 적지 않다. 각 작품의 행수도 일정하지 않아 4행시부터 300행에 가까운 장시도 있다. 운(韻)은 대체로 고체시의 형태를 취하여 자유롭게 환운한 경우가 많고 대구형식도 엄밀하지 않다.
조선 후기에 악부시의 출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무엇보다 이들이 과거 우리 나라의 역사·풍속·민요에서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비록 한시를 통해서나마 민족적인 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심광세가 「해동악부서」에서 우리 나라 호학자(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국의 ‘상하 수 천년간의 선악흥망의 일’에 너무 무식함을 분개하고,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기리고 노래하고 감상하며 경계할만한 것(贊詠鑑戒者 찬영감계자)’을 선택하여 후세의 어린이에게 교육이 될만한 사실을 시작(詩作)하였다고 말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악부의 소재에 나타난 중화중심의 세계관에서의 이탈은 형식면에서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악부는 한시의 여러 가지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함으로써 한시의 규범을 파괴하고 있어 주목된다.
둘째, 악부가 수용하고 있는 민가적 시정신이다. 이것은 기속악부·민요취향의 한시 등의 후대에 나타난 악부에 더욱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는 민중의 살아가는 현장이 사실풍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악부시는 비록 조선 후기의 선비계층에 의하여 저작되었으나, 그들이 서민사회에 접근하여 서민의 의식을 표출하려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엿볼 수 있다.
셋째, 악부를 통해서 조선조 후기 지식인들의 정신사를 추적할 수 있다. 고려 말에 선비들의 지절관을 다룬 심광세(17세기)를 통하여 명청교체기에 처해 있던 지식인의 심각한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연산군 때의 사화를 소재로 택한 이익(18세기)에게서 당쟁에 시달리던 당시 선비들의 심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 탐관오리를 풍자한 이학규(19세기)에게서 정치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만이 가능했을 날카로운 사회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다.
악부에서 엿보이는 민족에 대한 자각과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중화중심적 세계관과 귀족문학적 전통성, 형식주의적 규범성을 그 특성으로 하는 한문학을 국문학과 접맥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문학이 근대문학으로 진입하는 예비적 단계에서 악부시가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한문학사  (이가원, 민중서관, 1961)

  • 「신자하(申紫霞)의 소악부연구(小樂府硏究)」(손팔주,『부산녀자대학교논문집』 6,1978)

  • 「해동악부체연구(海東樂府體硏究)」(심경호,『국문학연구』 54,서울대학교,1981)

  • 「한국악부시연구(韓國樂府詩硏究)」 Ⅰ(이혜순,『논총』 39,이화여자대학교,1981)

  • 「한국악부시연구(韓國樂府詩硏究)」 Ⅱ(이혜순,『동양학』 12,단국대학교동양문화연구소,1982)

  • 「조선후기소악부연구(朝鮮後期小樂府硏究)「(황위주,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대학원석사학위논문,1983)

  • 「신상촌악부시연구(申象村樂府詩硏究)」(김주백,단국대학교석사학위논문,1984)

  • 「성호(星湖)의 해동악부(海東樂府)연구」(문유배,영남대학교석사학위논문,1986)

  • 「조선시대영사악부연구(朝鮮時代詠史樂府硏究)」(김영숙,영남대학교석사학위논문,1988)

  • 「형성기의 한국학부시연구(韓國樂府詩硏究)」(박혜숙,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198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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