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 ()

국악
개념
인류가 만든 음악문화와 음악예술을 연구하는 학문.
내용 요약

음악학은 인류가 만든 음악문화와 음악예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좁게는 음악이론 연구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음악문화와 음악예술 전반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총칭한다. 18세기 후반에 음악의 역사와 체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독립 학문으로 체계화되었다. 음악도 인간활동의 한 양상이므로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연구방법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음악학은 일제강점기에 전통음악을 연구한 음악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50년대 이후 대학의 국악과를 통해 배출된 음악학자들에 의해 활발한 연구·학술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정의
인류가 만든 음악문화와 음악예술을 연구하는 학문.
내용

좁은 의미의 음악학(musicology)은 악리(樂理), 곧 음악이론(music 주1을 뜻하지만, 악리는 주2이나 대위법(counterpoint) 등을 포함한 작곡이론(compositional theory)에 한정된 학술용어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음악학은 악리를 포함한 음악문화와 음악예술의 전반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총칭하는 학술용어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서양학문이 우리 나라에 소개되면서 비롯된 학술용어의 잘못된 사용은 오늘날에도 한국학계의 전반에 만연되어 있으니, 서양의 철학(哲學) · 역사학(歷史學) · 문학(文學) · 의학(醫學)의 용어처럼 음악학도 우리 학계의 그릇된 인식에서 예외적이지 않다.

음악학의 용어가 현재 한국에서는 서양음악학(Western musicology)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그 용어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음악문제를 연구하는 한국음악학(Korean musicology)과 구분되고 있다.

음악학의 갈래체계는 연구관점이나 연구대상, 또는 연구지역에 따라서 다양해진다. 연구관점에 따라서 음악학이 통시적(通時的) 관점(diachronic standpoint)의 음악사학(音樂史學, historical musicology)과 공시적(共時的) 차원(synchronic viewpoint)의 체계음악학(體系音樂學, systematic musicology)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것은 19세기 말 서양음악학의 대표적인 갈래체계이다.

연구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문학(人文學)의 여러 갈래, 즉 교육학 · 사회학 · 미학 · 심리학 · 인류학 등등과 관련된 음악교육학 · 음악사회학 · 음악미학 · 음악심리학 · 음악인류학 등등의 갈래체계가 가능한데, 이런 분류법은 체계음악학의 갈래체계에 든다.

그러나 전 세계의 지역을 중심으로 음악학의 갈래체계를 분류하건대, 한국음악학은 중국음악학 · 일본음악학 · 인도음악학 등을 포함한 동양음악학 또는 아시아음악학(Asian musicology)의 작은 갈래이고, 아시아음악학은 유럽음악학 · 북미음악학 · 남미음악학 등을 포함하는 세계음악학(World musicology)의 한 갈래이다.

이런 구분법은 서양의 종족음악학(種族音樂學, ethnomusicology)에서 시도될 수 있는 갈래체계이다. 이렇게 음악학의 다양한 갈래체계를 감안해서 여기서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음악학의 항목을 편의상 서양음악학과 한국음악학으로 나누어 개관하고자 한다.

서양음악학]

음악학은 영어의 musicology, 불어의 musicologie, 독어의 Musikwissenschaft의 번역어이다. 음악학이라는 학술용어는 독일음악학자 크리산더(Chrysander,K.F., 1826∼1901)가 『음악학연보 Jahrbücher für musikalische Wissenschaft』(1863)의 창간호 서문에서 최초로 사용한 Musikwissenschaft에서 유래되었다.

그 뒤 1885년 아들러(Adler,G., 주3 · 크리산더 · 슈피타(Spitta,P., 1841∼1894)가 공동집필한 <음악학의 범위 · 방법 · 목적 Umfang, Methode, und Ziel der Musikwissenschaft>이라는 논문을 『음악학계간지 Vierteljahrschrift für Musikwissenschaft』에 발표함으로써, 음악학이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자 결국 학술용어로 정착되었다.

음악학을 최초로 체계화시킨 상기 논문에 의하면, 음악학의 연구영역은 역사음악학(또는 음악사학 historical musicology)과 체계음악학의 두 갈래로 나누어 설명된다.

음악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시대로 올라갈 수 있다. 음악에 관한 철학적 사색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507 주4와 플라톤(Platon, 427∼347 주5에서 시작됐으므로, 피타고라스는 서양음악학의 시조로 알려졌다.

기원 전후의 아리스티데스 퀸티리아누스(Aristides Quintilianus, 200년경)는 이론과 실제로 구분하고서 수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리듬 · 하모니 · 미터 등을 이론 분야에 넣었고, 선율이나 리듬의 구성 및 시(詩)의 구성을 실제 분야에 넣었다.

아리스티데스 이후의 중세음악이론가로 보에티우스(Boethius,A.M.S., 주6가 있다. 음악이 도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던 그는 음악을 세 갈래로 구분하였다.

수(數)의 세계를 음악화시킨 1차원의 무지카 인스트루멘탈리스(musica instrumentalis)가 첫째 갈래이고, 둘째 갈래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2차원의 무지카 후마나(musica humana)이며, 천체의 조화를 의미하는 3차원의 무지카 문다나(musica mundana)가 셋째 갈래이다.

보에티우스와 함께 중세음악이론의 발달에 기여한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 주8는 음악이론을 하모닉스(harmonics) · 리드믹스(rhythmics) · 메트릭스(metrics)로 나누었는데, 이 이론은 이시도레(Isidore of Seville, 559∼636)에 의해서 전승되었다.

그 뒤 레지노(Regino of Prüm, 842∼915)라는 음악이론가는 자연음악과 인위음악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중세음악이론에 중요한 공헌을 남긴 이론가는 보에티우스 · 카시오도루스 · 이시도레로 알려져 있다.

보에티우스 이후 가장 뛰어난 음악이론가는 아랍 출신의 알-파라비(Al-Farabi, ?∼950)인데, 그는 무지쿠스(musicus)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무지쿠스가 음악의 이론과 실제에 모두 통달한 사람을 뜻하게 됐으므로, 이 무지쿠스의 개념에 의해서 음악가의 개념이 새롭게 나타나게 되었다. 즉 음악가는 이론가임과 동시에 작곡가라는 개념이 중세에서 르네상스시대로 넘어가는 무렵에 무지쿠스에 의하여 생겨났다.

16세기 이전 음악이론(musica theorica)이 수학 · 기하 · 천문학과 함께 4학과(quadrivium)의 하나로 중세대학에서 교육되었다. 하지만 16세기에 이르러 음악이론은 대학의 4학과에서 제외되었고, 그 대신 음악이론은 대학 밖에서 잘리노(Zarlino,G., 1517∼1590) · 라모(Rameau , 주9 등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음악에 대한 개념은 16세기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잘리노에 의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잘리노는 음악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한 음악이론가이므로, 서양음악학의 발달과정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중세음악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인식됐으나, 르네상스음악은 종교적 아이디어를 떠나 음악의 심미적(審美的)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따른 특징을 지닌다. 즉 중세적 음악관(音樂觀)이 달라짐으로써 르네상스라는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즈음 스페인의 음악이론가 안토니오 엑시메노(Antonio Eximeno, 1729∼1808)가 등장하여 새로운 음악관을 제시하였으니, 그는 음악의 논리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엑시메노의 저서와 거의 동시에 두 권의 음악사책이 출간됐으니, 버니(Burney,C., 1723∼1792)의 『음악일반사 General History of Music』와 호킨스(Hawkins,J., 1719∼1789)의 『음악과학과 실제의 일반사 General History of the Science and Practice of Music』가 그것이다. 이 두 저서에 의해서 서양음악사가 음악연구분야에서 중요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연구가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때는 18세기 후반부터였다. 음악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정착되기까지의 약사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음악이론가이자 작곡가 프램리(Framery,N.E., 1745∼1810)는 인간의 음악활동을 역사(historique) · 이론(acoustique) · 실기(practique)의 세 갈래로 분류함으로써, 작곡과 연주를 실기 갈래에 넣었고, 역사와 음향학을 이론 갈래에 넣었다.

그 후 독일의 음악학자 포르켈(Forkel,J.N., 주10은 나중에 사용된 음악학이라는 말과 다른 음악이론들(die Theorien der Musik)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론을 사고 · 관찰 · 논리화로 정의했기 때문에, 음악이론이라는 용어의 내용은 근대적 의미의 음악학(Musikwissenschaft)과 대동소이하다.

음악학의 문헌 속에 독일어의 음악(Musik)과 과학(Wissenschaft)의 두 용어가 함께 만나게 된 것은 1863년 크리산더에 의해서였고, 음악학이라는 완전한 음악용어로 사용된 때는 아들러 · 크리산더 · 슈피타에 의한 논문이 발표된 1885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음악학이 하나의 근대 학문분야로 정착한 기간은 프램리로부터 아들러에 이르는 약 100여 년간인 셈이다.

한 세기의 역사를 지닌 서양음악학의 연구영역은 아들러때부터 크게 역사음악학(혹은 음악사학)과 체계음악학으로 구분됐는데, 두 분야의 연구영역은 그 당시 학문의 분류체계를 따른 결과였다.

음악사학(또는 역사음악학)은 음악을 시간의 종적 관점 곧 통시적 견지에서 연구하는 음악학의 한 갈래이고, 체계음악학은 시간의 횡적 관점인 공시적 견지에서 연구하는 음악학의 한 갈래이다.

음악학의 두 분류체계는 학술적 논리보다는 19세기에 팽창했던 역사학의 학문 현실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다. 버니 · 호킨스 · 포르켈 등을 포함한 음악사학 분야의 여러 학자들은 역사발전이라는 진화론적 시각에서 접근을 시도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접근방법은 20세기에 들어와 종족음악학의 출현으로 인하여 주11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 서양음악학자들의 대부분이 음악사학자(historical musicologist)이고 체계음악학자(systematic musicologist)가 소수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음악문화적 뿌리인 중세나 르네상스시대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음악양식(music style)의 역사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서양음악의 발달은 세계 어느 지역의 음악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 음악사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끌게 된 또 다른 이유의 하나였다.

20세기에 이르러 음악학의 갈래체계는 여러 음악학자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시도됐는데, 프랫(Pratt,W.S., 1857∼1939) · 리만(Riemann,H., 주12 · 헤이든(Haydon,G., 1896∼1066) · 더클즈(Duckles,V.)와 같은 음악학자가 대표적 인물로 꼽힐 수 있다.

미국의 음악학자 프랫은 1915년 음악학의 연구영역을 ① 음악사학(music history), ② 음악백과사전학 혹은 분류학(musical encyclopedia or taxonomy), ③ 음악비평(musical criticism), ④ 음악교육학(musical pedagogy)으로 분류하였다.

한편 독일의 음악학자 리만은 ① 음향학, ② 음악생리학과 음악심리학, ③ 음악미학, ④ 음악이론, ⑤ 음악사학으로 구분하였다.

1941년 미국의 음악학자 헤이든은 그의 『음악학개론 Introduction to Musiclogy』에서 아들러의 2분법에 따라서 음악사학(또는 역사음악학)과 체계음악학으로 구분하였다.

즉 체계음악학의 영역에 ① 음향학(acoustics), ② 음악생리학과 음악심리학(physiology and psychology in relation to music), ③ 음악미학(musical aesthetics), ④ 음악이론의 이론(theory of music theory), ⑤ 음악교육학(musical pedagogy), ⑥ 비교음악학(comparative musicology)을 넣었다.

또한 음악사학의 영역은 ① 음악역사철학(philosophy of music tory), ② 음악사의 원전들(sources of musical history), ③ 역사연구방법론(problems and methods of musical research)으로 구성되었다.

그 이후 독일 음악학자 한스 모저(Hans Moser)는 그의 『음악사전』에서 음악학을 정신과학에 속하는 일반 예술학의 한 갈래로 보고 새로운 갈래체계를 소개하였다.

즉 ① 자연과학적 음악학(音響學 · 音樂生理學 · 音樂心理學), ② 정신과학적 음악학(音樂史 · 音樂社會學), ③ 철학적 음악학(音樂美學), ④ 민족학적 음악학(比較音樂學)이 그것이다. 그리고 독일 함브르크대학의 후스만(Husmann,H.)교수는 음악학을 ① 역사학적 음악학, ② 체계적 음악학, ③ 비교음악학의 세 갈래로 분류한 바 있다.

최근 『새 그로브음악사전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에서 더클즈는 음악학의 방법을 아홉 갈래로 분류하였다. 즉 ① 역사적 방법(historical method), ② 이론적 · 분석적 방법(theoretical and analytical method), ③ 문헌비평(text criticism), ④ 아카이브연구(archival research, ⑤ 용어(lexicography), ⑥ 악기계보학 · 도상학(organology and iconography), ⑦ 연주실제(performance practice), ⑧ 미학과 비평(aesthetics and criticism), 9) 춤과 춤의 역사(dance and dance history)가 그것이다.

그리고 홀로맨(Holoman,D.K.)과 팰리스카(Palisca,C.V.)가 공저한 『1980년대 음악학 Musicology in the 1980’s』은 아홉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고한 글모음 형태의 책인데, 내용은 ① 아카이브(archive) 연구, ② 사상사(思想史)의 적용, ③ 작곡가 스케치 연구, ④ 구조적 · 비평적 분석, ⑤ 도상학(圖像學 또는 畵像學), ⑥ 음악학자와 연주자, ⑦ 음악의 출판과 도태, ⑧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의 음악사교육, ⑨ 음악학과 비평으로 구성되었다.

근래 20여 년간 발표된 음악학 관련의 글에 나타나는 특징은 과거 음악학의 분류체계나 연구방법론으로는 현대 음악학자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80년대 이후 나타난 다양한 현상이 세 갈래로 정리된 바 있는데, 그것은 ① 신음악학(新音樂學), ② 음악의 지각과 인지, ③ 음악과 테크놀러지(technology)이다.

신음악학에서의 주장은 첫째로 지금까지의 작곡가와 작품 중심의 연구를 탈피하고 학문적 관심사를 연주나 청중의 문제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금까지 추구해 온 서양의 음악사학 위주에서 민속음악(folk music)이나 대중음악(popular music)에 대한 연구로 연구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로 여성음악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넷째로 음악연구가 음악양식 위주에서 음악을 사회문화적 맥락(socio-cultural context)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섯째로 지금까지의 역사학적 방법론의 획일성에서 탈피하여 여러 분야의 연구방법론이 음악학에 수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추구해 온 작곡가와 작품 위주의 연구로부터 탈피하여 연주와 감상자 중심의 연구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음악의 지각과 인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음악과 테크놀러지는 1980년대부터 급속히 변화하는 전기 · 전자문명, 특히 컴퓨터와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로 인한 음악문제에 대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셋째 현상이다.

음악은 결국 인간활동의 한 양상이므로, 음악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이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 이해를 위한 인간학(人間學), 즉 인류학 · 언어학 · 경제학 · 사회학 · 정치학 등과 같은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연구방법이 음악학의 연구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그러한 학문적 경향(傾向)이 서양음악학의 최근 동향에서 확인된다.

서양음악학계의 이런 최근 동향을 개관해 본 바에 의하면, 21세기 서양음악학의 연구영역이나 연구방법이 다양하게 전개되리라는 점을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서양음악학의 그런 학문적 추세가 또한 21세기 한국음악학의 성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음악학]
한국음악학의 어원과 정의

한국음악학의 역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악학(樂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악학이 최초의 독립된 학문으로 등장한 때는 1389년(공양왕 원년)이었는데, 그때 악학은 병학(兵學) · 예학(禮學) · 의학 등과 함께 십학(十學)의 하나로 14세기 말기에 설립되었다.

그 후 조선 초기 태종(1400∼1418) 때 유학(儒學) · 무학(武學) · 이학(吏學) · 역학(譯學) · 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 · 의학 · 자학(字學) · 율학(律學) · 산학(算學)과 함께 조선 초기의 악학도 역시 십학의 하나로서 음악이론과 역사를 연구하였다.

관학(官學)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악학의 관리들은 과거시험을 치르고 등용된 젊은 선비들이었는데, 세종(1418∼1450) 때 음악정비에 많은 공을 세웠던 박연(朴堧)은 악학별좌(樂學別坐)와 악학제조(樂學提調)의 관직을 지냈던 관리이다. 성종 때 성현(成俔)이 펴낸 『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은 조선 초기 악학과 관련된 대표적인 음악문헌이다.

악학은 세조 때 관습도감(慣習都監)과 더불어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통폐합됐다가 나중에 장악서(掌樂署)와 다시 합쳐서 장악원(掌樂院)으로 일원화됐기 때문에, 악학의 독자적 학문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악학이라는 독립된 학문기관이 국가기관의 하나로 따로 설립되지는 않았으나, 영조(1724∼1776) 때 출간된 『 대악후보大樂後譜』 · 『 대악전보大樂前譜』와 같은 관찬(官撰) 고악보 및 정조(1776∼1800) 때의 『 시악화성詩樂和聲』 · 『 악통樂通』 · 『 악원고사樂院故事』 등과 같은 관찬 음악이론서, 그리고 정약용(鄭若鏞)의 『 악서고존樂書孤存』 등과 같은 음악이론서는 조선 초기 악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근대학문이 우리 나라에 소개된 이후로부터 서양음악학에 대칭되는 한국음악학은 일제시대에는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일제시대로부터 광복 이후 한국음악학이 어떠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고, 그 학문의 연구영역이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지는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민족의 음악문화와 음악예술 및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음악문제에 대하여 연구하는 한국학의 한 갈래이자, 세계음악학의 한 갈래가 바로 한국음악학(Korean musicology)이다.

한국음악학은 ‘한국’과 ‘음악학’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므로, 두 합성어 사이에 어떤 종류의 토씨를 넣어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즉 ‘한국의 음악학’(Korean musicology, 또는 musicology of Korea)과 ‘한국에서의 음악학’(musicology in Korea)은 의미상으로 다음과 같이 명백히 구분된다.

‘한국의 음악학’을 뜻하는 한국음악학은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쓰면서 민족문화의 기본 동질성을 가진 한민족의 음악문화와 음악예술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시간의 종적(縱的) 측면에서 전통음악을 위주로 연구하는 소위 국악학(國樂學)이 우선 한국음악학에 포함된다.

이와 동시에 한국음악학은 시간의 횡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음악문제에 대한 연구를 포괄해야 하므로, 현재 국악과 양악을 포함한 현 사회의 여러 음악문제가 모두 한국음악학의 연구영역에 들어간다.

‘한국에서의 음악학’을 의미하는 한국음악학은 현재 한국에서 연구되는 서양음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연구활동을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그 연구영역이 ‘한국의 음악학’보다 매우 광범위하다.

예컨대 오늘날 음악대학의 석사학위논문 중 바흐(Bach,J.S., 주13의 칸타타나 오르간음악의 분석적 고찰, 베토벤(Beethoven,L.von, 주14의 교향곡이나 피아노곡에 대한 분석연구 또는 쇼팽(Chopin,F., 주15의 피아노작품이나 브람스(Brahms,J., 주16의 교향곡에 관한 연구 등과 같은 연구 모두가 ‘한국에서의 음악학’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국음악학을 논의할 때에는 ‘한국의 음악학’만이 취급될 것이고, ‘한국에서의 음악학’은 제외될 수밖에 없다.

서양음악학이 서구 여러 나라의 문화적 ·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태어났고 성장해 왔듯이, 한국음악학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탄생하여 발전해 갈 수밖에 없다.

서양음악학이나 한국음악학을 포괄하는 음악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삶과 동떨어질 수 없음은 “누구를 위한 음악학인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명백히 드러난다. 한국음악학의 연구영역이 ‘한국에서의 음악학’이 아니라 ‘한국의 음악학’이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음악학의 성장과정과 연구업적

초창기 한국음악학은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됐으므로, 흔히 국악학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음악학의 성장과정은 전통음악 분야의 연구자와 연구업적에 의거해서 시대별로 구분하여 서술될 수밖에 없다.

편의상 나누어 본 한국음악학의 제1세대는 일제시대와 광복 이후에 걸쳐서 활동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제2세대는 195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설립된 이후 배출된 음악학자들로서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국악학회(韓國國樂學會)를 중심으로 학술활동을 펴면서 제3세대의 후진양성에도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서양음악학 전공자의 일부가 음악학연구회(音樂學硏究會)의 음악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1) 일제시대와 1950년대까지

일제시대 전통음악과 관련된 업적을 남긴 학자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 소속됐던 음악인 중의 이론가 및 국학 또는 조선학운동에 동참했던 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래며 민족문화를 재인식하려는 국학운동에 힘입어 산발적으로 학문활동을 전개했으므로, 대부분의 연구업적들이 아악부(雅樂部)의 교재 같은 개설서 수준이었고, 연구서나 학술논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왕직아악부의 교재로 사용된 함화진(咸和鎭)의 『이조악제원류 李朝樂制源流』(1938), 정노식(鄭魯湜)의 판소리명창들의 열전인 『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1940), 바이올린 전공자 계정식(桂貞植)의 한국민요 관련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한국음악 Koreanische Musik』(1935),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월간지 『조선朝鮮』(1930)에 발표한 안확(安廓)의 <조선음악연구 朝鮮音樂硏究>, 『전변선생환력기념동아음악논총 田邊先生還曆記念東亞音樂論叢』(1943)에 발표된 송석하(宋錫夏)의 <현존 조선악보 現存朝鮮樂譜>와 이혜구(李惠求)의 <양금신보 사조 梁琴新譜四調>는 전통음악과 관련된 연구서 및 학술논문들이다.

이들의 연구성과는 비록 개괄적이고 단편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전통음악을 학문적 관심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한국음악학의 성장에 뿌리 구실을 했다.

한국음악학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출간된 많은 종류의 개설서 및 1948년에 설립된 국악학회(國樂學會)에 의해서 조금씩 뿌리를 내려갈 수 있었다.

성경린(成慶麟)의 『조선의 아악(雅樂)』(1947)과 『조선음악독본 朝鮮音樂讀本』(1947), 함화진의 『조선음악통론 朝鮮音樂通論』(1948), 장사훈(張師勛)의 『조선의 민요』(1949)와 『민요와 향조악기(鄕土樂器)』(1948), 고정옥(高晶玉)의 『조선민요연구 朝鮮民謠硏究』(1949)는 한국음악학의 제1세대가 이룩한 대표적인 연구업적들이다.

이혜구 · 성경린 · 장사훈 등에 의해서 설립된 국악학회(현재의 한국국악학회)의 등장은 학문적으로 한국음악학의 뿌리를 든든하게 내리도록 만든 초석이 되었다.

또한 6.25전쟁 이후 1950년대의 한국음악학 발전과정에 있어 1957년에 간행된 이혜구의 『한국음악연구 韓國音樂硏究』와 195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의 설립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음악연구』의 출간 이전 전통음악에 대한 낱개의 연구논문이 발표된 적은 있었지만, 논문집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은 『한국음악연구』가 최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한국음악학의 성장은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의 이론전공자들에 의해서 주도됐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는 전통음악 관련의 학술자료들이 비교적 많이 출간됨으로써, 한국음악학의 발전을 위한 기반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연세대 동방학연구소(東方學硏究所) 간행의 『 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1954)와 『 양금신보 梁琴新譜』(1959)라는 두 고악보, 그리고 이창배(李昌培)의 『증보가요집성 增補歌謠集成』(1959), 정광수(鄭珖秀)의 『창극조대춘향가 唱劇調大春香歌』(1954), 정경태(鄭坰兌)의 『아악보 雅樂譜』(1950)와 『국악보 國樂譜』(1955), 그리고 유세기(柳世基)의 『시조창법 時調唱法』(1957)과 이정주(李挺舟)의 『시조직해 時調直解』(1957), 김기수(金琪洙)의 『한국민요50곡집 韓國民謠50曲集』(1958) · 『악전첫걸음』(1958), 그리고 이주환(李珠煥)의 『고금시조선 古今時調選』(1958)과 같은 악보와 자료집이 한국음악사와 관련된 학술자료로서 한국음악학의 기반조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초창기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이론전공자를 지도했던 이혜구 · 장사훈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연구업적을 단행본으로 엮어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제자들을 양성함으로써 1970년대부터 한국음악학 제2세대의 시대가 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2) 1960년대와 1970년대

이 시기의 한국음악학은 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중심으로 이룩한 전통음악연구의 제1세대와 제2시대에 의해서 성장의 기틀을 잡고 발전하였다.

그리고 한양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에 1972년과 1974년에 각각 국악과가 설립되었고, 두 대학의 국악과는 이후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197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서양음악의 이론전공자들이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마련되었다.

이 기간에 주로 전통음악연구 분야에서 이루어 놓은 한국음악학의 연구성과를 편의상 학술자료 발간, 연구서 간행, 음악학술지의 등장으로 구분하여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음악사와 관련된 학술자료로 한국국악연구회(韓國國樂硏究會)가 간행한 이규경(李圭景)의 『 구라철사금자보 歐邏鐵絲琴字譜』(1962), 동국대학교 한국학연구소(韓國學硏究所)가 펴낸 이형상(李衡祥)의 『 악학편고 樂學便考』(1976)와 『 악학습령 樂學拾零』(1979)이 있다.

그리고 정간보와 율자보의 악보집으로 구윤국(具潤國)의 『현금정악 玄琴正樂』(1979) · 『거문고 여창가곡(女唱歌曲)』(1982), 김기수(金琪洙)의 『남창가곡백선 男唱歌曲百選』(1979), 김정자(金靜子)의 『정악가야금보 正樂伽倻琴譜』(1976), 서한범(徐漢範)의 『필률정악 觱篥正樂』(1979), 이상룡(李相龍)의 『대금정악 大笒正樂』(1979), 이양교(李良敎)의 『십이가사전 十二歌詞全』(1977)이 있다.

김연수(金演洙)의 『창본춘향가(唱本春香歌) · 흥보가(興甫歌) · 수궁가(水宮歌) · 적벽가(赤壁歌)』(1974), 장사훈의 『국악문헌자료집성 國樂文獻資料集成』(1978)도 판소리연구와 음악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문헌자료들이다.

이혜구의 『한국음악서설 韓國音樂序說』(1967)과 장사훈의 『국악논고 國樂論攷』(1966)는 1960년대 한국음악학의 대표적인 연구논문집이다.

그리고 이혜구의 『한국악기도록 韓國樂器圖錄』(1962), 박헌봉(朴憲鳳)의 『창악대강 唱樂大綱』(1966), 장사훈의 『한국악기대관 韓國樂器大觀』(1969) · 『국악개요 國樂槪要』(1961) · 『국악기연주법 國樂器演奏法』(1963)과 같은 업적도 한국음악학의 성과를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혜구의 『한국음악논총 韓國音樂論叢』(1976), 장사훈의 『한국전통음악(韓國傳統音樂)의 연구(硏究)』(1975) · 『여명(黎明)의 동서음악(東西音樂)』(1974) · 『한국전통무용연구 韓國傳統舞踊硏究』(1977), 성경린의 『한국음악논고 韓國音樂論攷』(1976), 박황(朴晃)의 『창극사연구 唱劇史硏究』(1976), 차주환(車柱環)의 『당악연구 唐樂硏究』(1976) 등은 제1세대에 의한 연구성과들이다.

한국음악학의 제2세대가 쓴 논문을 담은 한국국악학회의 논문집이 바로 『이혜구박사송수기념음악학논총 李惠求博士頌壽記念音樂學論叢』(1969) · 『장사훈박사회갑기념동양음악논총 張師勛博士回甲記念東洋音樂論叢』(1977)이다. 이러한 연구업적들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전반에 이룩한 한국음악학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출간된 우리 나라 최초의 영문서는 장사훈이 지은 『Glossary of Korean Music』(1961)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많은 종류의 영문서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는데, 송방송(宋芳松)의 『An Annotated Bibliography of Korean Music』(1971)과 『Korean-Canadian Folk Songs:An Ethnomusicological Study』(1974), 대한민국예술원에서 펴낸 『Survey of Korean Arts:Traditional Music』(1973), 유네스코 한국위원회(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가 펴낸 『Traditional Performing Arts of Korea』(1975)는 모두 한국음악학자들에 의해서 집필된 것들이다.

외국음악학자들이 펴낸 독문서와 영문서의 단행본으로는 독일의 엑카르트(Eckardt,A.)가 지은 『Musik, Lied, Tanz in Korea』(1968), 록크웰(Rockwell,C.)의 『Kagok, a traditional Korean vocal form』(1972), 프로봐인(Provine,R.C.)의 『Drum Rhythms in Korean Farmers' Music』(1975)이 있다.

그 밖에도 카우프만(Kaufmann,W.)의 『Musical Notations of the Orient』(1967)에는 우리 나라의 전통기보법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미국 아시아음악학회(Society for Asian Music)에서 한국음악 특집호로 펴낸 『Asian Music Vol. VIII-2』(1977)가 있다.

유종구(柳鍾九)의 『선율선가악보 旋律線歌樂譜』(1962), 김기수의 『대금교본 大笒敎本』(1961)과 이주환(李珠煥)의 『가곡보 歌曲譜』(1960) · 『가사보 歌詞譜』(1960) · 『가곡보속 歌曲譜續』(1961), 김기수의 『고가신조 古歌新調』(1967) · 『흥부가 興夫歌』(1969) · 『월하정가선 月荷正歌選』(1971), 이재숙(李在淑)의 『가야금산조 伽倻琴散調』(1971), 조위민(曺偉敏)의 『현금산조보 玄琴散調譜』(1968), 한만영(韓萬榮)의 『한국민요집 韓國民謠集』(1967) · 『범패(梵唄):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1967) · 『십이잡가 十二雜歌』(1967), 신세계레코드사의 『국악대전집 國樂大全集』(1968), 성음제작소의 『민요삼천리 民謠三千里』(1968), 유니버설레코드사의 『국악정선 國樂精選』(1968), 김정연(金正淵)과 오복녀(吳福女)의 『서도(西道)소리 대전집(大全集)』(1972), 가곡보존회(歌曲保存會)의 『운남가곡선집 韶南歌曲選集』(1971),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선집 韓國音樂選集』(1972∼현재)과 같은 악보 및 음반자료가 있는데, 이러한 학술자료들은 한국음악학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에서 시작된 『국악전집』(1975∼1994)과 『한국음악』(1968∼1987), 그리고 1979년에 시작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韓國音樂學資料叢書』라는 영인본 시리즈는 전통음악의 과거를 연구하는 한국음악사 연구의 기초자료들이다.

그 이외에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의 『 가곡원류 歌曲原流』(1973),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의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1969∼1979), 진성기(秦聖冀)의 『한국의 무악(巫歌)』(1968), 김태곤(金泰坤)의 『한국무가집 韓國巫歌集』(1971) 등과 같은 문헌도 전통음악의 특수갈래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들이자, 한국음악학의 새 분야 연구에 도움을 주는 문헌자료들이다.

창작악곡집으로 국립국악원의 『신국악보 新國樂譜』 제1집(1962) · 제2집(1965), 죽헌김기수선생송수기념작곡집(竹軒金琪洙先生頌壽記念作曲集)의 『대악 大樂』(1978), 황병기(黃秉冀)의 『침향무 沈香舞』(1974), 한국문화예술진흥원(韓國文化藝術振興院)의 『국악창작곡집 國樂創作曲集』 제1집(1974) · 제2집(1975), 『창작곡악곡집 創作曲樂曲集』 제1집(1975) · 제2집(1976), 이성천(李成千)의 『놀이터』(1977) · 『숲속의 이야기』(1977)가 있다.

새로이 양성된 한국음악학의 제2세대들은 한국국악학회에서 연구발표의 기회를 가졌지만, 1970년에 이르러 그들의 연구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음악학술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음악학술지들이 출간되었다.

1971년에 창간된 한국국악학회의 『한국음악연구』, 1976년에 창간된 한국국악교육연구회(韓國國樂敎育硏究會)의 『국악교육』, 그리고 1977년에 창건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부설 동양음악연구소(東洋音樂硏究所)의 『민족음악학 民族音樂學』이 대표적인 정기간행물의 음악학술지이다.

(3)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1980년대의 한국음악학은 서울예술전문대학(1981) 및 영남대학교 · 경북대학교 · 부산대학교 · 전남대학교(1982), 중앙대학교(1983)에 국악과가 각각 설립됨으로 인하여 발전의 새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서양음악의 이론전공자 중 일부가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동참하게 된 것도 198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상(樣相) 중의 하나였다.

여러 음악학술단체의 출현 및 새 세대들에 의한 많은 종류의 음악연구서의 출간이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새 지평을 연 이 시기의 현황을 연구자료집의 출간, 학술연구서의 발간, 학술단체와 음악학술지의 등장으로 나누어 개관하려고 한다. 1980년대 출간된 수많은 음악 관련의 단행본 중에서 개론서와 사전은 제외하고 각 분야별의 성과를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서로는 이혜구의 『한국음악논집 韓國音樂論集』(1985) · 『정간보(井間譜)의 정간(井間) · 대강(大綱) 및 장단(長短)』(1987) · 『한국음악논고 韓國音樂論攷』(1995), 장사훈의 『세종조음악연구 世宗朝音樂硏究』(1982) · 『한국의 음계』(1992) · 『한국음악과 무용에 관한 연구』(1993), 한만영의 『불교음악연구 佛敎音樂硏究』(1980) · 『한국전통음악연구 韓國傳統音樂硏究』(1991), 송방송의 『악장등록연구 樂掌謄錄硏究』(1980) · 『한국음악사연구 韓國音樂史硏究』(1982) · 『한국고대음악사연구 韓國古代音樂史硏究』(1985) · 『고려음악사연구 高麗音樂史硏究』(1988) · 『한국음악사논고 韓國音樂史論攷』(1995), 김순제(金順濟)의 『한국의 뱃노래』(1982) · 『인천 · 경기지방의 일노래』(1996), 차주환의 『고려당악(高麗唐樂)의 연구』(1983), 백대웅(白大雄)의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1982) · 『다시보는 판소리』(1996), 김해숙(金海淑)의 『산조연구』(1987), 박범훈(朴範薰)의 『피리산조』(1985), 최태현의 『해금산조연구 奚琴散調硏究』(1988), 심우성(沈雨晟)의 『남사당패연구 男社黨牌硏究』(1989), 박미경(朴美瓊)의 『한국의 무속과 음악』(1996), 박용재의 『이상조의 남도씻김굿』(1996), 전인평(全仁平)의 『비단길음악과 한국음악』(1996), 조재선(趙在善)의 『수제천 壽齊天』(1992), 조영배(趙榮培)의 『제주도무형문화재음악연구 濟州道無形文化財音樂硏究』(1995)가 있다.

논문집으로는 『정회갑교수송수기념논문집 鄭回甲敎授頌壽記念論文集』(1983), 『박흥수박사논문집(朴興洙博士論文集):도량형(度量衡)과 국악논총(國樂論叢)』(1980),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전통예술의 미의식』(198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의 『한국전통음악논구 韓國傳統音樂論究』(1990), 강태홍류가야금산조보존회(姜太弘流伽倻琴散調保存會)의 『강태홍류가야금산조연구』(1994), 국악고등학교 동창회의 『관재성경린선생팔순기념국악학논총 寬齋成慶麟先生八旬記念國樂學論叢』(1992), 음악학연구회의 『연주와 해석』(1992), 한양대학교 전통음악연구회의 『한국음악산고 韓國音樂散考』(1989∼현재), 영남대학교 한국음악학연구회의 『한국음악학논집 韓國音樂學論集』 제1집(1990) · 제2집(1994), 부산대학교의 『한국음악논문선 韓國音樂論文選』 제1집(1993) · 제2집(1995), 국립국악원의 『광복50년, 국악중흥50년』(1995), 이강숙회갑기념문집편집위원회의 『음악이 있는 마을』(1996)이 있다.

번역서로는 이혜구의 『국역악학궤범』(1979∼1980), 송방송의 『고대실크로드의 음악』(1992) · 『수당대 연악조(隋唐代 燕樂調)의 연구』(1994), 권오성(權五聖) · 김세종(金世鍾) 공역의 『역주난계선생유고 譯註蘭溪先生遺稿』(1993), 김종수(金鍾洙)의 『역주증보문헌비고 譯註增補文獻備考』(1994), 김종수 · 이숙희 공역의 『역주시악화성 譯註詩樂和聲』(1997), 송방송 · 고방자(高芳子) 공역의 『국역영조조갑자진연의궤 國譯英祖朝甲子進宴儀軌』(1998), 좌혜경 · 홍양자 공역의 『일본 전래동요연구』(1997)가 있다.

전통음악의 자료집으로는 송방송의 『한국음악학논저해제 韓國音樂學論著解題』(1981) · 『조선왕조실록음악기사색인 朝鮮王朝實錄音樂記事總索引』(1991), 최정여(崔正如)의 『동해안무가 東海岸巫歌』(1981), 뿌리깊은나무사의 『판소리 다섯마당』(1982) ·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1990) ·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거든』(1990), 박진(朴珍)의 『충남향토민요 忠北鄕土民謠』(1983), 『전라북도국악실태조사 全羅北道國樂實態調査』(1982),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의 민속음악』(1984) · 『조선왕조실록음악기사자료집 朝鮮王朝實錄音樂記事資料集』권1∼4(1996), 지춘상(池春相)의 『전남(全南)의 농요(農謠)』(1988), 국립국악원의 『국악연감 國樂年鑑』(1990∼현재) ·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와 음악인들』(1991) · 『한국음악:창작곡작품목록집』(1996), 대한민국예술원의 『한국예술총집 韓國藝術總集』 권1(1987) · 권2(1988), 『순풍에 돛달아라 갈길 바빠 돌아간다』(1994), 문화방송국의 『민요해설집』제주도(1992) · 전남(1993) · 전북(1994) · 경남(1994) · 경북(1995) · 강원도(1996) · 경기도(1996), 이소라(李素羅)의 『한국의 농요(農謠)』 전5권(1985∼1992), 김진향(金眞香)의 『선가하규일선생약전 善歌河圭一先生略傳』(1993),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의 『민속악관련자료목록』(1995),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한국전통음악자료분류법』(1997), 김성혜(金聖惠)의 『한국음악관련학위논문총목 韓國音樂關聯學位論文總目』(1998) 등이 있다.

전통음악의 영인(影印) 자료집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성과는 국립국악원 간행의 『한국음악학자료총서 韓國音樂學資料叢書』인데, 이 총서는 많은 종류의 고악보(古樂譜)와 악서(樂書)들의 영인본(facsimile edition)이다.

권1(1979)에는 『 대악후보』가 영인되었고, 권2(1980)에는 『금보신증가령 琴譜新證假令』 · 『 삼죽금보 三竹琴譜』 · 『 아금고보 峩琴古譜』 · 『 율보 律譜』 · 『 초입문금보 初入門琴譜』 · 『금보 琴譜』 · 『 서금가곡 西琴歌曲』이, 권3(1980)에는 『무자년진작의궤(戊子年進爵儀軌) · 기축년진작의궤(己丑年進饌儀軌)』가, 권4(1980)에는 『 시용무보 時用舞譜』 · 『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가, 권5(1981)에는 『 가곡원류 歌曲原流』가, 권6(1981)에는 『무신년진찬의궤 戊申年進饌儀軌』가, 권7(1981)에는 『 증보고금보 增補古琴譜』 · 『 휘금가곡보 徽琴歌曲譜』 · 『 죽취금보 竹醉琴譜』 · 『일사양금보 一蓑洋琴譜』 · 『 원객유운 園客遺韻』 · 『 흑홍금보 黑紅琴譜』가, 권8∼10(1982)에는 진양(陳暘)의 『악서 樂書』가, 권11(1983)에는 『 속악원보 俗樂源譜』가, 권12(1983)에는 『 시악화성 詩樂和聲』이, 권13(1983)에는 『풍정도감의궤 豊呈都監儀軌』 · 『 진연의궤 進宴儀軌』 · 『자경전진작정렬의궤 慈慶殿進爵定例儀軌』가, 권14(1984)에는 『 협률대성 協律大成』 · 『 양금신보』 · 『 구라철사금자보 歐邏鐵絲琴字譜』 · 『 현금오음통론 玄琴五音通論』 · 『 영산회상 靈山會象』 · 『방산한씨금보 芳山韓氏琴譜』 · 『 낭옹신보 浪翁新譜』가, 권15(1984)에는 『금보고 琴譜古』 · 『 금보정선 琴譜精選』 · 『 양금보 洋琴譜』 · 『 현금동문유기 玄琴東文類記』 · 『 유예지 遊藝志』 · 『 장금신보 張琴新譜』 · 『서금 西琴』 · 『금보 琴譜』 · 『 서금보 西琴譜』 · 『 양금곡보 洋琴曲譜』 · 『 양금주책 洋琴註冊』이, 권16(1984)에는 『 우의산수 寓意山水』 · 『 아양금보 峨洋琴譜』 · 『 칠현금보 七絃琴譜』 · 『졸옹가야금보 拙翁伽倻琴譜』 · 『 신작금보 新作琴譜』 · 『 백운암금보 白雲庵琴譜』 · 『 학포금보 學圃琴譜』 · 『여창가곡록 女唱歌曲錄』이, 권17(1985)에는 『 아양금보 峨洋琴譜』 · 『 희유 羲遺』 · 『금보단 琴譜單』 · 『고대금보 高大琴譜A』 · 『고대금보B』 · 『하바드 금보(琴譜)』 · 『 어은보 漁隱譜』가, 권18(1985)에는 『 한금신보 韓琴新譜』 · 『 남훈유보 南薰遺譜』 · 『 금은금보 琴隱琴譜』 · 『 신증금보 新證琴譜』 · 『금보 琴譜』 · 『 양금보 洋琴譜』 · 『경대금보 慶大琴譜』가, 권19(1985)에는 『 청음고보 淸音古寶』 · 『 강외금보江外琴譜』 · 『 인수금보 仁壽琴譜』 · 『 해산유음 海山遺音』 · 『 양금여민락보 楊琴與民樂譜』 · 『 가곡현금보 歌曲玄琴譜』 · 『금학입문 琴學入門』이, 권20(1986)에는 『세종실록악보 世宗實錄樂譜』 · 『세조실록악보 世祖實錄樂譜』가, 권21(1986)에는 『 악원고사 樂院故事』 · 『 악통 樂通』 · 『 난계유고 蘭溪遺稿』 · 『 악서고존 樂書孤存』이, 권22(1987)에는 『금합자보 琴合字譜』 · 『 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 · 『동대금보 東大琴譜』 · 『동대가야금보 東大伽倻琴譜』 · 『동대율보 東大律譜』가, 권23(1987)에는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 ·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 『사직악기조성청의궤 社稷樂器造成廳儀軌』가, 권24(1987)에는 『신축년진연의궤 辛丑年進宴儀軌』가, 권25(1988)에는 『조선음율보 朝鮮音律譜』 · 『아악부대금보 雅樂部大笒譜』 · 『아악부필률보 雅樂部觱篥譜』 · 『아악부당적보 雅樂部唐笛譜』 · 『아악부단소보 雅樂部短簫譜』 · 『아악부현금보 雅樂部玄琴譜』가, 권26(1988)에는 『 악학궤범 樂學軌範』이, 권27에는 『삼국사기악지 三國史記樂志』 · 『고려사악지 高麗史樂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악고(樂考)』가, 권28(1989)에는 『아악부가야금보 雅樂部伽倻琴譜』 · 『아악부해금보 雅樂部奚琴譜』 · 『아악부양금보 雅樂部洋琴譜』 · 『아악부아쟁보 雅樂部牙箏譜』 · 『아악부경종보 雅樂部磬鐘譜』가, 권29(1990)에는 『 종묘의궤 宗廟儀軌』가, 권30(1992)에는 『갑자년진연의궤 甲子年進宴儀軌』 · 『을유년수작의궤 乙酉年受爵儀軌』, 권31(1995)에는 『악학절요 琴學切要』 · 『 금가 琴歌』 · 『금곡금보 歌曲琴譜』가 각각 영인되었다.

이 영인본들은 한국음악사연구를 위한 기본 음악사료들이므로, 모두가 한국음악학의 기반조성에 크게 공헌한 자료들이다.

정간보와 율자보의 악보로 김기수의 『여창가곡(女唱歌曲) 여든여덟닢』(1980) · 『정가집 正歌集』(1983) · 『대마루108번』(1984), 성경린의 『정악거문고보』(1980), 이양교(李良敎)의 『가고선집 歌曲選集』(1982), 장사훈의 『하규일 · 임기준전창십이가사 河圭一 · 林基俊傳唱十二歌詞)』(1980), 정재국(鄭在國)의 『피리구음정악』(1983), 국립국악원의 『국악전집』(1974∼1994), 김천흥(金千興)의 『정악양금보 正樂洋琴譜』(1988), 임윤수(林允洙)의 『연정대금보 燕亭大笒譜』(1986) · 『연정현금보 燕亭玄琴譜』(1989), 강낙승의 『향제(鄕制)줄 풍류보(風流譜)』(1990), 정경태(鄭坰兌)의 『고금가곡보 古今歌曲譜』(1992), 곽태천(郭泰天)의 『세피리정악보』(1996)가 있다.

오선보로 채보된 악보로는 문재숙(文在淑)의 『가야금찬양곡집』(1987) · 『죽파가야금곡집』(1989), 최문진(崔文鎭)의 『강태홍류가야금산조』(1988), 황규일(黃奎日)의 『서용석대금산조』(1988), 김남순(金南順)의 『김병호류가야금산조』(1995), 백대웅(白大雄)의 『심청가』(1992), 백혜숙(白惠淑)의 『강태홍류가야금산조』(1993), 임재원의 『원장현류대금산조』(1991), 정달영(鄭達榮)의 『가야금산조 · 병창』(1995), 정대석(鄭大錫)의 『거문고산조 세바탕』(1990), 『증보대취타대악곡집 增補大吹打隊樂曲集』(1993)이 있다.

창작곡집으로는 김기수의 『개천부 開天賦』(1986), 이해식(李海植)의 『해동신곡 海東新曲』(1983) · 『흙담』(1983) · 『바람의 말』(1990), 황의종(黃義宗)의 『청산 靑山』(1985) · 『은하수』(1994), 『국악제초연작품집 國樂祭初演作品集』(1992), 황규일(黃奎日)의 『대금창작곡집 大笒創作曲集』(1991), 한국창작음악연구회의 『창작국악곡집 創作國樂曲集』 제1집(1991) · 제2집(1992),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초연창작곡집 初演創作曲集』제1∼4집(1988), 『한국음악창작곡집 韓國音樂創作曲集』제5집(1992), 박범훈(朴範薰)의 『찬불가집 讚佛歌集』(1994), 박상진(朴湘珍)의 『위도 띠뱃놀이를 위한 서곡』(1992) · 『박상진작품집:열반의 노래』(1994), 『전인평가야금작품집』(1987), 정대석(鄭大錫)의 『수리재』(1994), 황병기(黃秉冀)의 『밤의 소리』(1990)가 있다.

영문서로 이혜구의 『Essays on Korean Traditional Music』(1981), 송방송의 『Source Readings in Korean Music』(1980)과 『The Sanjo Tradition of Korean Kŏmun'go Music』(1986), 하워드(Howard,K.)의 『Korean Musical Instruments』(1988)와 『Bands, Songs, and Shamanistic Rituals』(1989), 프로봐인의 『Essays on Sino-Korean Musicology』(1988), 한만영의 『Kugak:Studies in Korean Traditional Music』(1991), 이병원(李秉元)의 『Buddhist Music of Korea』(1987), 국제학술재단(Korea Foundation)의 『Korean Cultural Heritage:Performing Arts』(1997), ITI한국지부(Korean Center 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의 『Korean Performing Arts:Drama, Dance and Music Theatre』(1997)는 모두 1980년대 한국음악학의 발전을 입증해 주는 학문적 성과물들이다.

그리고 국제전통음악학회(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 前IFMC:International Folk Music Council)의 한국음악 특집호 『Yearbook for Traditional Music』(1983)이 있다.

일반인들을 위해서 펴낸 평론집으로 이혜구의 『만당속문채록 晩堂續問債錄』(1985), 장사훈의 『예술과 학문의 만남』(1987) · 『하고싶은말 남기고싶은 글』(1992), 한명희(韓明熙)의 『우리가락 우리문화』(1994), 황병기의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1994), 송방송의 『한국음악학서설 韓國音樂學序說』(1989) · 『한국음악학의 방향』(1998), 신대철(申大澈)의 『우리음악, 그 맛과 소리깔』(1992)이 있다.

한국양악사(韓國洋樂史) 관련의 자료집으로 홍정수(洪正守)의 『한국교회음악사료집 韓國敎會音樂史料集』 제1집(1992) · 제2집(1993), 조선우(趙善宇)의 『한국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제1집(1995) · 제2집(1996), 한국음악협회의 『한국음악총람 韓國音樂總覽』 상권(1991) · 하권(1994)이 있다.

한국양악사의 연구서로는 이강숙(李康淑)의 『한국음악학』(1990), 노동은(魯棟銀)의 『한국민족음악현단계』(1989) · 『김순남(金順男) 그 삶과 예술』(1992) · 『한국근대음악사1』(1995), 이건용(李建鏞)의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7), 김진균(金晉均)의 『음악과 전통』(1984), 노동은 · 이건용의 『민족음악론 民族音樂論』(1991), 손태룡(孫泰龍)의 『한국음악사의 큰별』(1994) · 『대구양악사연구 大邱洋樂史硏究』(1996), 김용환(金容煥)의 『윤이상연구』 제1집(1995) · 제2집(1996), 김춘미(金春美)의 『백병동연구』(1995) · 『음악학의 시원』(1995) · 『한국음악학의 사회사적 구조』(1997) · 『한국예술학으로 가는길』(1997), 민경찬(閔庚燦)의 『홍난파자료집』(1995), 『한국창가의 색인과 해제』(1997), 우광혁의 『한국음악내수시장 형성을 위한 기초연구』(1997)가 있다.

1993년에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여러 연구보고서가 발간됐는데, 『음악실기 전문교육을 위한 기초연구』(1993) · 『교육시장 개방과 한국의 음악교육』(1994) · 『예술교육개혁을 위한 구조 및 관련법 연구』(1994) · 『교육시장 개방과 한국이 예술교육』(1994) · 『남북교류공연 분석 및 통일지향적 공연 구성안 연구』(1995) · 『미래를 향한 예술계 구조조정』(1998)이 그 실례이다.

한국예술 관련 기초연구로 『한국작곡가사전』 권1(1995) · 권2(1996) · 권3(1997)이 있고, 정책적 연구로 『교육시장 개방과 음악교육개혁의 현단계』(1996) · 『남북한 음악극 <춘향전> 비교연구』(1996) 등이 있다. 위에 적은 양악(洋樂) 관련 김춘미 · 김용환 · 민경찬 · 우광혁의 연구성과도 모두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수행했던 결과물들이다.

정기간행 음악학술지로는 한국음악학회의 『음악연구』(1982∼현재), 국립국악원의 『국악원논문집 國樂院論文集』(1989∼현재), 한국민족음악학회의 『民族音樂學報』(1987∼현재), 민족음악학회의 『음악과 민족』(1990∼현재), 한국음악사학회의 『한국음악사학보 韓國音樂史學報』(1988∼현재), 민족음악연구회의 『민족음악의 이해』(1992∼현재), 한양대학교음악연구소의 『음악논단 音樂論壇』(1984∼현재), 낭만음악사의 『낭만음악』(1988∼현재), 한국고음반연구회(韓國古音盤硏究會)의 『한국음반학 韓國音盤學』(1991∼현재), 중앙음악연구소의 『중앙음악연구 中央音樂硏究』(1990∼현재), 음악학연구회의 『음 · 악 · 학』(1988∼현재), 연세대 음악연구소의 『연세음악연구』(1989∼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의 『이화음악연구』(1997∼현재), 한국서양음악학회의 『음악과 인접학문』(1998)이 있다.

(4) 한국음악학의 연구경향과 연구방법

음악학의 연구방법에 나오는 ‘방법’이라는 말 속에는 논리적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음악학의 학문적 방법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학은 논리(論理 logic) 및 과학(science)이라는 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19세기부터 서양음악학은 독립된 분과학(分科學)의 하나로 근대 학문의 인문과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서양음악학의 이런 학문 추세에 따라서 한국음악학도 근대 학문의 한 갈래로 우리 나라의 대학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음악학은 초창기에는 이혜구 · 장사훈과 같은 제1세대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제2세대가 한국음악학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나, 1990년대부터는 제3세대의 연구활동이 활성화되면서 한국음악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강숙을 위시하여 서양음악학의 전공자 중 음악학연구회의 회원 일부가 1990년대부터 한국양악사(韓國洋樂史)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음악문제에 대한 연구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므로, 21세기 한국음악학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전통음악연구 중심으로 발전된 한국음악학의 제1 · 2세대들의 연구경향과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제1세대의 학문적 관심사는 전통음악의 전반적인 분야에 있었다. 통시적으로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의 음악사적 문제가 모두 학문대상이었으며, 공시적으로는 전통음악의 모든 갈래들이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혜구의 『 한국음악연구』(1957)라는 첫번째 연구논문집에 포함된 글에서 다룬 논제가 이에 대한 단적인 증거이다. 즉 전통기보법 · 양금신보의 4조 · 신라의 범패(梵唄) 등과 같은 음악사적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현행 가곡(歌曲)의 우조(羽調) · 아악소고(雅樂小考) · 무악(巫樂)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전통음악의 전반적인 문제들이 이혜구의 학문적 관심사였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후속 연구논문집인 『한국음악서설』(1967) · 『한국음악논총』(1976) · 『한국음악논집』(1985) · 『한국음악논고』(1995)에서도 확인되며, 같은 세대인 장사훈의 『국악논고』(1966) · 『한국전통음악의 연구』(1975) · 『국악사론』(1983) 등과 같은 연구서에서도 그런 학문적 경향이 뚜렷이 확인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음악의 한 특정 분야에 집중된 연구업적도 제1세대들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이혜구의 『한국악기도록』(1962) · 『정간보의 정간 · 대강 및 장단』(1987)이나 장사훈의 『한국악기대관』(1969) · 『시조음악론』(1973) · 『세종조음악연구』(1982)는 전통악기와 정간보(井間譜) 문제 및 시조(時調) 분야, 그리고 세종시대(1418∼1450)의 음악사라는 단일주제의 연구성과(monograph)들이다.

이렇듯 제1세대의 학문적 연구대상은 다양하고 전반적이지만, 대체로 제1세대들은 문헌 중심의 역사적 관점에서 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반해 한국음악학의 제2세대들은 차츰 전통음악의 특정분야 연구에 몰두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었고, 제1세대들에 의한 문헌 중심의 연구방법보다 현장조사방법(現場調査方法)에 관심을 기울였다.

제2세대인 한만영의 『불교음악연구』(1980)나 백대웅의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1982)는 현재의 범패(梵唄)나 판소리에 바탕을 둔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업적이다.

그리고 제1세대에 의한 문헌 중심의 연구를 계승한 송방송의 『악장등록연구』(1980)는 단일 주제에 관한 문헌적 연구결과이고, 그는 한국음악사의 연구성과를 『한국음악사연구』(1982) · 『한국고대음악사연구』(1985) · 『고려음악사연구』(1988) · 『한국음악사논고』(1995)라는 연구서로 펴내었다.

1980년대부터 양악의 이론전공자들이 한국음악학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들은 서양음악학의 방법론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음악문제와 한국양악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강숙의 『한국음악학』(1960), 노동은의 『한국민족음악현단계』(1989) · 『한국근대음악사1』(1995), 이건용의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7), 손태룡의 『대구양악사연구』(1996), 김춘미의 『백병동연구』(1995), 민경찬의 『한국창가의 색인과 해제』(1997), 김용환의 『윤이상연구』(1995) 등이 대표적인 연구업적들이다.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제1세대들의 연구방법은 우리 나라 국사학계의 전통적 실증사학(實證史學)의 연구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료 정리와 사실 고증에 학문적 초점을 맞추었다.

이 같은 제1세대의 실증사학 연구방법 및 결과를 토대로, 이제 제2세대들에게는 고증된 자료와 사실에 의한 체계적 이해라는 이론적 접근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연구자료 정리 · 사실 고증 · 이론 정립의 세 가지 연구과정 중 실증사학의 연구방법은 자료학(資料學) 단계의 자료 정리와 사실 고증에 치우쳐 있었던 반면, 이제는 이론정립을 위한 이론학(理論學)이 한국음악학의 제2 · 3세대들에 의해서 추구되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이론학의 정립문제는 전통음악 연구 위주인 소위 국악학자(國樂學者)들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서양음악학의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익힌 이론가들이 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함께 동참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음악학의 과제와 전망]
세기 한국음악학의 과제와 전망

한국음악학은 이제 시작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 대내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음악문제는 물론이고, 조국의 남북통일을 대비하는 연구작업에 학문적 관심을 기울이도록 요구되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세계음악학의 발전에 한국음악학이 공헌하도록 노력하는 학문의 세계화 작업도 한국의 음악학자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다.

지금까지 앞에서 거론한 한국음악학은 엄밀히 말해서 남한음악학(南韓音樂學), 곧 좁은 의미의 한국음악학에 불과하므로, 앞으로 북한음악학(北韓音樂學)이 넓은 의미의 한국음악학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즉, 양악 전공의 이론가와 국악 전공의 이론가라는 구분이 21세기의 한국음악학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때, 한국음악학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음악문제, 가령 바람직스런 민족음악의 모색과 같은 문제가 현재 양악 전공자들이나 국악 전공자들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기도 한 탓이다.

한국음악학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학의 작은 갈래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 민족의 현실문제는 한국음악학에서 다루어야 할 핵심 사안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한민족이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당면과제로는 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과 학문적 세계화의 문제가 있으며, 한국음악학도 이 두 가지 시대적 민족과제의 학문적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

조국의 민족통일을 위해서 한국음악학이 학문적으로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려면, 비극적 남북분단의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이 음악학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남한의 음악학자와 북한의 음악학자들이 함께 만나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는 일도 그런 대안 중 하나이다.

남북의 음악학자들이 모인 대화의 광장은 남북의 연구성과 및 새로운 음악사료(音樂史料)를 상호 교환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고, 『민족음악사전』(가칭)을 공동으로 편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음악적 독자성과 고유성이 세계의 음악적 다양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한국음악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국음악학의 세계화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세계음악의 다양성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음악들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므로, 우리의 민족음악 또한 서양음악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세계음악의 다양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음악의 다양성을 위해 한민족의 음악적 특수성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작업은 21세기 한국음악학의 세계화 작업 중 하나이다.

한국음악학의 세계화 작업이 남한의 음악학계에서만 추진된다면 북한음악학계의 소외감은 커질 것이고, 따라서 민족음악의 이질감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음악학의 세계화 작업은 북한음악학계에서도 동시에 추진하도록 공동노력해야만 한다.

남북한의 음악인이 학문적 선진국에 진입하도록 함께 공동노력을 경주할 때, 한국음악학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함과 더불어 세계음악학의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된다. 세계음악학의 발전에 한국음악학이 공헌하는 길은 남북음악계를 망라한 우리 음악학자(音樂學者)의 새 음악이론이 세계음악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때 열릴 수 있다는 이유 탓이다.

그러므로 민족통일과 세계화를 위한 한국음악학은 남한음악학과 북한음악학의 상호 학술교류를 위한 문호를 개방하도록 남북한에서 서로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의 음악학자들은 남한음악학과 북한음악학을 포괄하는 21세기의 한국음악학을 위해서 공동노력을 지금부터 전개해야만 학문적 세계화의 민족적 과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것이 민족통일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남북한 음악학자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음악학의 새로운 시각이 남북한에서 모두 필요한데, 그것은 국악학의 미시적 안목이 아니라 한국음악학의 거시적 관점에서 민족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남북한이 음악적 선진국에 들어가도록 남북의 음악학자들이 공동노력을 전개할 때, 21세기 한국음악학은 희망적이다. 결국 21세기의 한국음악학은 남한음악학과 북한음악학을 포괄하는 학문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20(Stanley Sadie(ed.),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음악과 인접학문」(이석원 -한국서양음악학회, 『음악과 인접학문 창간호』, 1998)
「음악학」(이강숙 역, 『音樂과 知識』, 민음사, 1987)
「音樂學의 槪念·範圍·方法」(金晉均, 『音樂과 傳統』, 태림출판사, 1984)
「音樂學의 本質」(李康淑, 『音樂의 方法』, 민음사, 1982)
「한국음악학의 방향」(, 도서출판 예솔, 1998)
「韓國音樂學의 成長過程과 當面問題」(宋芳松, 『韓國音樂史硏究』,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2)
「韓國音樂學의 硏究成果에 대한 檢討」(국립국악원, 『광복50주년기념대회:광복50년 국악중흥50년』, 1995)
주석
주1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한 인식을 체계화하여 설명하는 이론.    우리말샘

주2

화음을 기초로 하여 선율을 조직하는 방법.    우리말샘

주3

기도 아들러,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ㆍ음악사가(1855~1941). 빈 대학교의 음악학 교수로 있으면서 음악사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우리말샘

주4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ㆍ수학자ㆍ종교가(B.C.580?~B.C.500?). 수(數)를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하였으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발견하여 과학적 사고를 구축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하였다.    우리말샘

주5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B.C.428?~B.C.347?).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생애를 교육에 바쳤다. 대화편(對話篇)을 다수 쓰고, 초월적인 이데아가 참실재(實在)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전개하였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 국가의 사상으로 유명하다. 저서에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 고대 로마의 철학자(?~524). 플라톤ㆍ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을 중세에 전하였고, 현세적 쾌락을 버리고 덕에 의한 마음의 편안을 얻을 것을 역설하였다. 저서에 ≪철학의 위안≫이 있다.    우리말샘

주7

여러 종류의 악기를 모두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우리말샘

주8

플라비우스 마그누스 아우렐리우스 카시오도루스, 이탈리아 동고트 왕국(東Goth王國)의 역사가ㆍ정치가ㆍ수도사(490?~585?). 동고트 왕 테오도릭을 섬기며 요직을 맡았으며, 은퇴 후 역사와 신학 방면의 저작에 전념하였다. 저서에 ≪연대기(年代記)≫, ≪고트사(Goth史)≫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장 필리프 라모, 프랑스의 작곡가ㆍ음악 이론가(1683~1764). ≪클라브생 곡집≫과 많은 오페라와 발레곡을 작곡하였으며, 합리적인 기능 화성 이론의 기초를 닦았다. 작품에 오페라 <멋쟁이 인도인>, <암탉>이 있고, 저서에 ≪화성론(和聲論)≫이 있다.    우리말샘

주10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 독일의 음악학자(1749~1818). 음악사학(音樂史學)의 선구자로, 바흐의 전기를 처음으로 저술하였다. 저서에 ≪일반 음악사≫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자기가 속한 집단의 문화만 우월하고 다른 집단의 문화는 열등하다고 보는 태도나 관점. 또는 그런 태도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평가하려는 경향.    우리말샘

주12

후고 리만, 독일의 음악학자ㆍ이론가(1849~1919). 음악학 연구소를 창설하고, 과학적인 음악 이론을 연구하여 음악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저서에 ≪음악 사전≫이 있다.    우리말샘

주1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독일의 작곡가(1685~1750). 많은 종교곡, 기악곡 소나타, 협주곡, 관현악 모음곡 따위를 썼고, 대위법 음악을 완성하여 바로크 음악의 정상에 올랐다. 작품으로 <마태 수난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부활제>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4

루트비히 판 베토벤, 독일의 작곡가(1770~1827).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과 루돌프 대공(大公) 등의 도움으로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고전파 말기에 나와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가 되었다. 작품에 아홉 개의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곡 <라주모브스키>, 피아노 소나타 <열정(熱情)>, <월광(月光)>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5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폴란드의 작곡가ㆍ피아니스트(1810~1849). 섬세하고 화려한 피아노곡을 지어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렸다. 작품에 수많은 협주곡과 소나타곡이 있다.    우리말샘

주16

요하네스 브람스, 독일의 작곡가(1833~1897). 1868년 <독일 레퀴엠>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고전파 음악의 중후한 작품으로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우리말샘

집필자
송방송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