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년에 설치된 대언사의 직제는 승추부 지신사 1명과 좌대언 · 우대언 · 좌부대언 · 우부대언 등 4명의 대언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신사와 4대언이 각각 이조 · 병조 · 호조 · 예조 · 공조의 일을 맡아 보는 이방 · 병방 · 호방 · 예방 · 공방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태종 대의 우대언은 주로 호조의 일을 맡아 보는 호방을 담당하였다. 한편, 이 시기의 형방은 대언을 두지 않고 별도로 형조도관(刑曹都官)의 장관인 지형조사(知刑曹事)가 담당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형조의 관원이 아닌 타관의 관원이 지사를 겸직하여 노비 소송을 전담하던 형조도관을 1405년(태종 5)에 형조의 속사로 편입하면서 정3품 당상관인 도관사(都官司)의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도관사는 형조 우참의(右參議)가 전적으로 개칭된 형조의 속사이다. 또한 대언사에 동부대언(同副代言) 1명을 새로 더 두어 형방으로 하여금 정비된 형조의 일을 맡도록 하였다.
태종 대의 우대언은 호조의 일을 맡아 보는 호방의 역할이었으나, 1419년(세종 1) 2월에 이르면 예조를 맡아보는 예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신사와 5대언 체제는 세종 대 중반까지 유지되다가, 1433년(세종 15) 9월에 이르러 다시 조선 건국 초의 관제에 따라 지신사를 도승지로, 모든 대언을 승지로 고쳤으며, 우대언은 우승지로 바뀌었다.
우대언은 1401년(태종 1) 7월부터 1433년(세종 15) 9월까지 대언사에 설치되어 운영하던 관직명이다. 대언사가 승정원의 기능을 담당하고, 대언은 승지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역사 자료에는 간혹 우대언과 우승지의 명칭을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대의 관직명으로는 엄연히 대언과 승지는 구별되어 사용되던 관직명이다.
한편, 실록을 통해서 우대언 관원으로 태종 대의 김과(金科) · 윤사수(尹思修) · 권완(權緩) · 이승간(李承幹) · 유사눌(柳思訥) · 한상덕(韓尙德) · 이백지(李伯持) · 홍여방(洪汝方) · 하연(河演), 세종 대 전반기의 김효손(金孝孫) · 성엄(成揜) · 김익정(金益精) · 이수(李隨) · 최문손(崔文孫) · 정초(鄭招) · 유경(柳熲) · 조서로(趙瑞老) · 곽존중(郭存中) · 김맹성(金孟誠) · 조종생(趙從生) · 정흠지(鄭欽之) · 김자(金赭) · 허성(許誠) · 정연(鄭淵) ·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金宗瑞) · 남지(南智) · 송인산(宋仁山) · 권맹손(權孟孫) 등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