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

현대문학
개념
어떤 사람이 강력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갈등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일 목적으로 대사로 쓴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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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희곡은 어떤 사람이 강력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갈등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일 목적으로 대사로 쓴 문학작품이다. 희곡은 독자보다는 관객을 상대로 한 문학형태로, 극작가가 제공하는 창조적인 힘과 연출자·배우·무대장치 등이 만들어내는 해석적인 힘이 어우러져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플롯(구성)·인물(성격)·대사(언어)·주제(사상)가 희곡의 요소이며, 크게 비극과 희극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고전 희곡은 자연발생적이어서 특정한 극작가도, 희곡 형식도 없이 광대들의 전승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정통 희곡은 근대 이후에 전래되어 정착하였다.

정의
어떤 사람이 강력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갈등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일 목적으로 대사로 쓴 문학작품.
개설

희곡은 독자보다는 관객을 상대로 한 문학형태라는 점에서 시나 소설과 차이가 난다. 즉,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을 기술하는 데 그치나 희곡에서는 주인공이 기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대사를 가지고 무대에서 스스로 사건을 만들고, 성격을 구축하며 최후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희곡의 대사는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방향을 잡게 하고, 사건을 만들고 해결하게 하는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희곡은 문학의 한 장르인 동시에 연극의 한 요소라는 점에서 이원성을 지니고 있는 특수양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희곡은 두 개의 힘, 즉 극작가가 제공하는 창조적인 힘과 연출자 · 배우 · 무대장치, 그 밖의 모든 극장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해석적인 힘을 합친 하나의 살아 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희곡은 압축이라는 측면에서 시와 동질성을 지니지만 구체적 형상화를 내재하고 있는 점에서 시와 거리가 있고, 줄거리를 요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비슷하지만 구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서술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차이가 있다.

희곡에서는 작가가 개입하는 설명이나 묘사 없이 등장인물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희곡에서는 소설에서처럼 작가가 자기의 인생관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설파할 수 없고 오로지 구조 속에 유기적으로 용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희곡에서의 등장인물들의 심리는 소설에서처럼 작가가 묘사하고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배우가 연기로써 표현하게 되어 있다. 극작가는 이야기의 골격만 앙상한 뼈대처럼 제공할 뿐이므로 연출가나 배우 등 연극 창조자나 독자 및 관객 등 연극 수용자는 희곡의 빈틈들을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채워 넣으면서 입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희곡에서 구성이 아주 중요시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며, 똑같은 희곡이라 해도 연출자나 배우들에 따라 아주 다른 공연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희곡을 읽을 때나 연구할 때는 무대적 형상화를 염두에 두고 접근하여야 하므로 시나 소설 이상의 상상력과 연극적 관점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줄거리만 좇아 평이하게 읽지 못하는 난점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쓰여진 특수형태의 문학양식이다.

기원

희곡은 연극과 뗄 수 없는 문학양식이므로 그 기원도 연극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극은 어느 민족에서나 제천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고, 실제로도 제의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것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가령 기원전 5세기경에 발생하였다는 그리스극만 하더라도 그 기원은 디오니소스(Dionysos)를 예배하기 위한 노래의 형식인 디티램(dithyramb)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디티램은 50명의 합창단이 불렀고, 내용은 디오니소스나 그 밖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었으며 합창단의 지휘자는 독창자로서 따로 서 있었다. 그리스비극에서 합창단이 독특한 특징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그리스비극이 디티램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드라마(drama)의 어원도 그리스어 드로메논(dromenon)에서 온 것인데, 드로메논은 제천의식이라는 뜻과 연관된다. 즉,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의는 무엇인가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제의는 행사 즉 모의무용이나 그와 비슷한 일들을 행하는 것을 뜻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방하는 데에서 제의와 예술은 시작되지만 그것은 단순히 모방을 위한 모방이나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기원이 이미 응답된 모습, 성스러운 일(things done)로 집행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드로메논이라고 불렀으며 드라마의 어원은 바로 이 드로메논이며 다같이 ‘성스러운 일’을 뜻한다.

거기에 인간의 유희본능이 가미됨으로써 제의는 연극예술로 바꾸어진 것으로, 희곡 또는 연극이라는 말이 모두 ‘놀다(play, spiel, 戱 등)’라는 뜻과 통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학의 한 장르이고 연극의 요소가 되는 희곡이라는 형태는 연극보다 조금 뒤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연극의 원시적 형태는 대사보다는 동작과 노래, 그리고 하나의 분위기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연극의 최고형이라는 그리스극만 하더라도 노래와 동작과 시적인 것이 먼저 생겼고, 희곡은 아이스킬로스(Aeschylos)라든가 소포클레스(Sophocles)와 같은 극작가들이 등장한 뒤에 비로소 완성된 형태의 희곡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의 희곡은 관습적으로 신화를 소재로 삼았다.

동양의 민속적인 고전극의 경우에도 희곡은 연극이 생긴 뒤에 삽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양처럼 극작가들이 생겨나서 희곡이라는 양식을 창조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한국 고전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제의 형태와 연극이 미분화상태로 혼융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자연발생인 설화가 기본이 됨으로써 작자 미상이 많다.

희곡은 역시 서양에서 일찍 발달하였고, 따라서 동양의 제의적인 성격을 일찍 탈피하여 인간 중심의 희곡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서양희곡은 소설이나 시와 마찬가지로 동양에 없었던 고전주의 · 낭만주의 · 사실주의라고 하는 문예사조의 변천과정에 따라 형식의 변화를 밟으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희곡은 시나 소설 등 문학형식과는 달리 무대공연을 전제로 해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매우 까다롭고 또 많은 제약을 받는다.

희곡은 단순한 줄거리를 지리하게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이 일관된 플롯의 전개가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전체가 동작의 끊임없는 전개라고 볼 수 있는 그 극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구성적인 단일성이 특히 요구되는 형식이다. 따라서, 희곡의 요소라면 역시 플롯 · 인물(성격) · 대사(언어) · 주제(사상) 등이 될 것이다.

① 플롯:구성이라 번역되는 것으로서 일종의 이야기 줄거리이다. 그런데 스토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스토리가 시간순서에 따른 이야기 줄거리라면, 플롯은 이야기의 각 부분을 인과적이고 논리적인 상호관련과 질서 아래 배열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플롯은 한 건물의 골조와 같은 뼈대인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그의 『시학(詩學)』에서 플롯이야말로 희곡의 생명이고 혼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플롯은 3부5단설이라 하여 도입, 전개, 절정, 파국(또는 재귀), 대단원(종결)의 순차적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 고전적 학설이다.

도입부란 작품의 시작을 의미한다. 대체로 도입부에서는 앞으로 등장할 주요 인물을 선보이고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리라는 것을 암암리에 제시해 주는 사건의 실마리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소와 시간의 제시도 이 도입부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작품의 승패는 이 도입부에서 결판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입부는 매우 중요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전개란 명칭 그대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려나가는 전반부라 하겠다. 논문의 경우 본론 부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뒤얽힌다. 여기서 희곡의 핵이라 할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진다. 따라서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줄달음쳐 가는 이 부분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대부분 등장하게 되고 이야기도 가지를 침으로써 복선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인 동시에 이야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곳이 바로 절정이다. 주인공과 적대자가 맞부딪쳐서 그 동안에 조성되어 온 위기가 폭발하는 부분이다. 즉, 얼기설기 뒤엉킴으로써 조성되었던 위기가 점점 강렬해져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첨예화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적대자에 의하여 쓰러지게 되면 비극이라 불리고, 화해로 끝나면 희극이라 불리게 된다.

네 번째 부분인 파국 또는 재귀는 마치 태풍(절정)이 몰아친 뒤의 잔잔한 바다처럼 그 동안에 벌어졌던 이야기가 정리되는 과정이다. 이 부분은 종결 직전의 과정으로서 떠나갈 사람은 떠나가고 죽어야 할 사람은 죽게 되며, 화해도 이때 이루어진다.

다섯 번째 부분인 종결은 용어 그대로 대단원으로서 막이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종결 부분은 사건 전체를 총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착잡하였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원시시대의 제천의식에서 진혼장면의 후반부와 비교될 수 있겠다.

그런데 모든 희곡이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밟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단막극의 경우만 하더라도 공연의 길이가 짧고 시간도 장막극에 비하여 짧기 때문에 다섯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된다. 그리고 현대극의 경우도 이러한 다섯 단계의 엄격한 구성을 거부한다. 서사극이나 부조리극 계열은 갈등을 배제하거나 위기나 긴장 중심으로 사건을 쌓아올리는 전통적인 희곡 구성법을 배격한다. 즉 그리스극 이래의 이른바 정통적인 형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② 인물(성격):희곡에서의 인물(성격)은 플롯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희곡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중심으로 그 행동과 정서, 욕망과 의도의 엇갈림 속에서 빚어지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성격과 행동 없이는 희곡 자체가 성립조차 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근대극 이후의 희곡은 어떠한 의미에서 한 인물의 성격분석 내지 성격변천사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물성격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를 따른다. 그 첫 번째는 유형적 타입인데, 이를테면 무능한 남편이라든가 보편적인 인물, 즉 아첨형 · 사장족 등 외양이나 행동거지가 관객에게 쉽게 이해되는 형의 인물을 말한다. 두 번째는 개성적 인물이다. 가령, 셰익스피어(Shakespeare, W.)의 「햄릿(Hamlet)」이라든가 스트린드베리(Strindberg, A.) 작품 속의 줄리, 「세일즈맨의 죽음」(Miller, A.)에서의 윌리 로만 같은 인물이다.

극작가는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데 있어 신체적 조건에서부터 사회적 조건, 심리적 조건, 도덕적 조건 등을 염두에 두고 창조하며 각 등장인물에게 이러한 요소들을 차이가 나게 부여하여 등장인물들의 차별성을 만든다. 그래야만 각 등장인물들이 개성 있고 생동감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성격이 다른 인물들로 살아 움직이게 되므로 연극무대가 실제 인생을 방불케 되기 때문이다.

③ 대사(언어):희곡에 있어서의 대사는 인물의 성격을 규정해 주면서 동시에 사건교류의 매개체의 기능을 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희곡에서의 대사란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 이해되어야 하며 배우들에 의해 연기되어야 하므로 소설과는 달리 간결하고 흥미로워야 하며 구어체여야 한다. 따라서, 희곡에서의 언어는 청각적 효과와 발성적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④ 주제:주제란 작가가 희곡작품을 통해서 말하려는 삶에 대한 견해라 볼 수 있다. 조금 고답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사상성이다. 희곡의 궁극적 목적이 교육과 각성에 있다고 볼 때, 사상성이란 곧 과일 속의 자양분에 해당되는 것인 만큼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희곡에 있어서의 사상성은 작자의 인생관이고 사회관이며 세계관이기도 하다. 위대한 작가란 사실 위대한 사상가 또는 철학가라 불릴 만큼 작품의 주제는 중요한 것이고, 작품의 위대성은 작품에 표현된 사상에 의해 평가되기도 한다. 한편 희곡에 있어서의 사상성은 작자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 한 사회의 종합적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종류

희곡을 비극과 희극 둘로 나누는 양분법은 그리스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엄격한 극형식을 따랐던 고전극에서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류일 뿐, 근대극에서까지 적용되는 구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입센(Ibsen, H.)이후의 근대극의 경우에서는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형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희곡형식에는 비극과 희극이라는 양대 장르와, 그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는 멜로드라마와 소극(笑劇)이 있다.

비극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는 그리스어 ‘tragoidia’에서 유래하였는데, 그것은 ‘goatsong’이라는 뜻이다. 디오니소스제전에서 산양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 비극은 대체로 고양된 내용을 지니고 불행하게 끝나는 매우 진지한 극을 말한다. 따라서, 비극을 최초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공포와 애련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으로서 이를 통하여 정서의 정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비극이 되려면 대체로 반전 · 발견 · 고통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며, 비극의 주인공은 보통사람보다 퍽 고결한 인물이지만 완벽한 인물은 아니고 도덕적 · 인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성격적 결함 때문에 마지막에 불행한 몰락을 맞게 된다.

이처럼 주인공의 불행은 비천한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격적인 결함이나 판단착오, 아니면 큰 이상을 좇다가 일어나는 것이다.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와 몰락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분도 고귀한 가문이거나 왕후장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고전극에서이고, 주인공이 서민으로 내려온 근대극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희극

희극이라는 영어 ‘comedy’의 어원도 ‘comos(시골축제에 참가한 흥겨운 놀이꾼들의 행렬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결말을 짓는 것이 비극이고, 그 반대로 행복한 결말을 짓는 것이 희극이라는 정의는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희극의 경우, 공격이나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희극의 등장인물이 끝에 가서 회개하거나 화해하므로 불행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비극의 목적이 정서의 정화 내지 순화에 있다고 한다면, 희극의 목적은 웃음과 풍자를 통한 약점의 시정(是正)과 허위의 광정(匡正)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극은 어째서 사람들을 웃기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웃음의 대상이 될 만큼 주인공의 외양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럽거나 균형이 맞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기계화된 인형과 같이 자연에 위배되고 생명을 결여한 동작이 되었을 때 웃음은 나오게 마련이다. 희극에는 그 성격에 따라 지적 희극, 정적 희극, 풍습희극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멜로드라마

흔히 멜로드라마를 비극의 타락된 형태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독립된 장르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멜로드라마가 대체로 불행한 사건을 골간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비극과 같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다. 즉, 비극이 진지하게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비하여 멜로드라마는 흥미 위주의 사건만을 추구하며, 비극이 영원한 선과 아름다움을 부각하고자 하는 반면에 후자는 오히려 인생으로부터의 도피를 꾀한다.

그리고 비극이 영원한 인간정신을 파고 들어가는 데 반하여 멜로드라마는 오히려 순간적인 사건을 포착한다. 전자가 궁극적으로 감정의 정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비하여 후자는 호기심이나 공포 또는 애수를 일으킨다. 멜로드라마가 감상적이고 권선징악적이며 눈물을 유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극

소극은 희극의 일종이라고도 하지만 정통적인 희극에 들어갈 수 없는 특수성도 지니고 있다. 즉, 소극은 순전히 웃음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일관된 논리가 없고 과장된 인물과 사건이 그 중요한 수법이 된다. 그리고 사건이나 극적 상황이 인물의 성격보다 위에 있으며 또한 지배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연이 많은 것도 소극의 특징이다.

형식

희곡도 다른 문학장르처럼 고전주의 · 낭만주의 · 사실주의 · 자연주의 · 표현주의 등의 사조적 변화를 거치면서 발전하여 왔다.

고전주의 희곡

고전주의 희곡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발생된 것으로서 그것이 하나의 사조로 불린 것은 대체로 17세기 프랑스에서였다. 고전주의극은 그리스인 · 로마인들이 이성을 중시한 것처럼 엄격한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가령 그들이 내세운 시간 · 장소 · 행동의 삼일치법은 그 좋은 예이다. 그만큼 고전주의 희곡은 엄격한 제약을 특징으로 한다.

낭만주의 희곡

낭만주의 희곡은 고전주의의 엄격한 제약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된 형식인만큼 자유분방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낭만주의 극작가들은 삼일치법이라는 제약을 깨고 장소와 시간과 사건을 자유롭게 확대하였다. 장소도 자유자재로, 또 시간도 수년에 걸친 이야기로 가져갔으며, 사건도 다채롭게 끌고 갔다. 이처럼 낭만주의 희곡은 자유, 다양성, 상상, 괴이한 아름다움이 주요한 요소였다.

사실주의 희곡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사실주의 희곡은 유럽에서 봉건제도가 완전히 붕괴되고 소시민사회가 형성될 때 발전한 형식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평범한 서민이 되었고, 대사도 일상에서 쓰는 말 그대로 산문으로 바뀌었으며, 무대지시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밑바닥 삶을 사설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과장이나 우연을 배제했다. 한편,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와 창작방법에 있어서 궤를 같이하였지만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절대시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표현주의 희곡

제1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일어난 표현주의는 과거 문예사조와는 달리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춘 희곡형식이다. 표현주의를 가리켜 존재의 통증을 표출한 사조라고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대극이라는 것도 사실은 표현주의 희곡형식부터라고 볼 수 있다.

발달

동양의 대부분의 민족들이 그렇듯 우리 나라도 문학의 중요한 장르로서 희곡형식을 가지지 못하였다. 가령 개화기 전까지의 우리 고유의 연극양식이라 할 가면극 · 인형극 · 판소리 · 그림자 극본이 작자가 없다는 것은 그러한 점을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서양극의 원조라 할 그리스극에서처럼 극작가가 일찍부터 탄생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고전희곡은 자연발생적이고, 동시에 역사 속에서 많은 광대들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 가령 가면극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부지방에 퍼져 있는 송파 · 양주 산대놀이라든가 해서지방의 봉산 · 강령 · 은율 탈춤, 그리고 영남지방의 가락 · 고성 · 통영 오광대동래 · 수영 야류 같은 것이 그러하다. 이는 꼭두각시 인형극본이라든가 판소리 <춘향가> · <심청가> · <흥부가> · <토별가>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고전희곡은 자연발생적이기 때문에 서양처럼 일정한 작가가 없었으며, 따라서 서양과 같은 엄격한 형식을 갖춘 희곡도 아니다. 구비문학 형식으로 전승되어 왔으므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희곡대본이 없고, 자연발생적이고 광대들의 공동창작의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서양희곡같은 막과 장의 격식도 없다. 적어도 한국 고전희곡에서는 3부5단과 같은 형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령 가면극의 경우만 보더라도 몇 가지 이야기가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면극과 내용이 비슷한 꼭두각시극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꼭두각시 인형극본은 한 가족 이야기가 골조를 이루기 때문에 몇 가지의 다른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가면극과 차이를 이룬다. 한편, 판소리만은 대체로 설화가 바탕이 되어 있어서 일관된 플롯을 지니고 있다.

고전 희곡의 주제는 극양식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토속신앙과 불교와의 갈등, 불교의 심원한 세계, 봉건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흔히들 파계승 풍자라든가 양반비판, 처첩갈등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민중이 삶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현실을 초월하는 것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우리 나라의 고전희곡은 탁월하다.

이러한 민중의 생존권을 향한 몸부림은 서양 희곡을 수용한 근대희곡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전통극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신극, 즉 1911년부터 시작된 신파극과 정통적 신극의 희곡형식은 일본 신파와 서양 근대희곡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것이다.

가령 초창기 신파극시대라 할 1910년대의 희곡은 거의가 일본 작품의 번안이고, 조중환(趙重桓)이 처음으로 쓴 근대희곡인 <병자삼인(病者三人)>(1912)도 신파 스타일의 소극형식이다.

그후 윤백남(尹白南)이라든가 이광수(李光洙) 등이 희곡을 몇 편씩 썼으나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고, 1920년 대 초의 조명희(趙明熙) <金英一의 死> (1921) · 조춘광(趙春光) · 김정진(金井鎭) · 김영팔(金永八) · 박승희(朴勝喜) 등의 희곡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려 한 이들에게서 근대 사실주의 희곡의 싹이 터간 것이다.

다만 1920년대 한국 희곡에서 특기할 점은 표현주의 희곡을 실험한 김우진(金祐鎭)의 짤막한 활동이다. 표현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독일에서 일어난 획기적 문예사조로서 전통을 부정하고 인간 내부에 초점을 맞춘 문학형식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첨단적인 희곡 형식을 동시대에 김우진이 실험했는 바, <난파>(1926) · <산돼지>(1926) 같은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김우진이 자살함으로써 표현주의는 지속적 영향을 남기지 못하고 실험으로만 끝났고, 한국희곡은 본래의 사실주의의 수용으로 진척되어 갔다.

1930년대 초에 유치진(柳致眞)<토막>(1931) · <소>(1935) 등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실주의 희곡시대가 열리게 된다. 유치진이 이끌었던 극단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활동한 김진수(金鎭壽)라든가 이광래(李光來) · 이서향(李曙鄕) · 함세덕(咸世德) 등이 바로 그러한 계열의 작가들이다.

사실주의 희곡이 희곡사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주제도 크게 바뀌었다. 즉, 1920년대까지의 희곡 주제가 계몽성이 강한 전통인습과 서구적 근대모럴의 갈등이었다고 한다면, 1930년대의 주제는 농촌을 배경으로 식민지시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러한 사회고발적인 내용은 그 뒤 대부분의 극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한 특성이 되었는 바, 광복 이후에도 정치적 압박에 대한 항거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항적인 사실주의는 한때 사회주의의 풍미와 함께 이데올로기 희곡을 낳기도 하였다. 프로희곡은 1920년대 후반의 송영(宋影)으로부터 김영팔 · 박영호(朴英鎬) 등으로 이어졌고, 광복 직후에 잠시 절정을 이루다가 6 · 25를 전후하여 북한지역으로 사라져 갔다.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프로희곡은 연극을 선전도구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프로희곡이 자취를 감추면서 이른바 민족극으로 일컫는 정통 사실주의가 뿌리를 내려갔다. 1950년 전쟁을 겪으면서 신진 극작가들이 여러 명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치진 · 이광래 · 김진수 · 김영수(金永壽) · 오영진(吳泳鎭) 등으로 대변되던 희곡계에 임희재(任熙宰) · 차범석(車凡錫) · 이용찬(李容燦) · 하유상(河有祥) · 이근삼(李根三) 등의 신인들이 가세하였다. 이들은 주로 전쟁이 남긴 상처와 전후의 정치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사실주의로 일관하였다.

그 중 임희재는 시청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서정적 사실주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 1956)를 시도하였고, 차범석은 로컬리즘이 물씬 풍기는 사실주의극, 또는 신구세대의 갈등을 그린 리얼리즘극 <밀주>(1955) · <불모지>(1957) 등을 발표하였고, 이용찬은 플래시백 수법을 활용하는 수정 사실주의기법을 사용한 <가족>(1958)을 발표하여 연극무대의 혁신을 가져오기도 했다.

시나리오로는 일제 말엽에 등장한 오영진이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맹진사댁 경사>(1943) · <살아 있는 이중생각하>(1949) · <허생전>(1970)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민속이나 소설 등에 소재의 원천을 두고, 그것의 재창조를 통한 한국적 희곡의 정립을 꾀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전통적인 희극정신을 오늘에 되살렸던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윤대성(尹大星) · 노경식(盧炅植) · 오태석(吳泰錫) · 이재현(李載賢) · 이강백(李康白) · 이현화(李鉉和) · 최인훈(崔仁勳) 등 젊은 작가들에게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 동인제 극단활동이 활발해지고 서구의 부조리극들도 공연됨에 따라, 한국희곡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사실주의가 주조로 흐르면서도 부조리극 계통의 작품도 일부 발표되면서 모더니즘 연극이 시작되었다.

1960년에 표현주의 수법의 희극 <원고지>로 등장한 이근삼은 정치풍자극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0), 희극 <국물 있사옵니다>(1966) 등을 발표하며 희극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오태석 · 윤대성 · 최인훈 등이 등장하여 주목할 만한 희곡들을 발표했다. 오태석은 부조리극 <환절기>(1968) · <교행>(1969)을 비롯한 모더니즘 계열의 희곡으로 출발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면 한국의 토속문화와 전통에 뿌리를 대고 있으면서도 서구적 총체극 양식을 접목시킨 <초분>(1973) · <태>(1974) 등을 연달아 발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한국희곡의 커다란 특징은 ‘전통의 현대적 수용’이라 할 수 있다. 윤대성은 탈춤을 도입한 <망나니>(1969) · <노비문서>(1973) 등을 발표하였고, 최인훈은 전통 설화와 고전에서 소재를 가져와 한국인의 원형적 삶을 그린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 · <둥둥 낙랑둥>(1978) 등을 발표했다.

1970년대 초에 등장한 이강백과 이현화는 특이한 작품세계를 구축함으로써 현대희곡의 지평을 넓혔다. 이강백은 우의적 기법에 능한 작가로, 억압적 정치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린 <파수꾼>(1974), 전통 소재에 서사적 기법을 가미한 <봄날>(1984) 등을 발표하였고, 이현화는 현대적인 주제와 부조리적 상황을 그린 <쉬 쉬 쉬잇>(1976), 잔혹극적 스타일의 사극 <카덴자>(1978) 등으로 참신한 현대성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에 이어 전통을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희곡들이 많이 발표되며 동시에 탈춤의 비판정신과 미학을 활용한 마당극이 정립을 보게 된다. 연극의 놀이성, 총체적 표현 등이 강조되면서 리얼리즘 희곡은 퇴조를 보이고, 대신 복잡한 현실을 다양하게 그릴 수 있는 서사극 스타일, 그리고 강압적 정치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린 역사극들이 많이 발표된다.

이 시기 윤조병(尹朝炳)의 <농토>(1981)가 유치진을 잇는 리얼리즘 희곡으로 주목을 모았고, 현대인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배우의 연극 만들기란 메타연극적 형식으로 그린 이현화의 사극 <불가불가>(1882), 그리고 마당극으로 김명곤의 <갑오세 가보세>(1988) 등이 주목을 끌었다.

1990년대의 희곡은 1980년대 희곡의 역사의식이나 무거운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탈이념,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메타연극 기법, 실험극 등 형식과 주제의 다양성을 보인다.

오태석은 전통의 현대화와 한국인의 원형을 추구하는 희곡 <백마강 달밤에>(1994)를 발표했고, 이강백은 현실을 상징적, 은유적으로 그리 메타드라마 <영월행 일기>(1996)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신인 이윤택과 이만희(李萬喜)가 등장하여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였다.

이윤택은 한국의 상례와 죽음의식을 그린 토속적 희극 <오구, 죽음의 형식>(1989)으로, 이만희는 불교적 깨달음과 재치있는 대사감각을 보여준 <피고지고 피고지고>(1993)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희곡의 세계는 형식이나 주제, 스타일 등에서 매우 다양해진 것이다.

참고문헌

『희곡론(戱曲論)』(여석기, 신구문화사, 1964)
『연극의 정론』(이근삼, 서서출판사, 1970)
『한국연극사』(이두현, 민중서관, 1973)
『한국현대희곡사』(류민영, 홍성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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