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국사(慶國寺)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고려 후기 율사(律師)인 정자(淨慈)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때 지공(指空)이 주석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 경국사라고 개칭하였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원찰로 조선 후기까지 사세를 크게 유지하였다. 20세기에 보경(寶鏡)과 지관(智冠) 등이 주석하였다.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각산(三角山)에 있는 고려 후기 율사(律師)인 정자(淨慈)가 창건한 사찰.
건립 경위
변천
1693년(숙종 19)에 승성(昇誠)이 건물을 중수하고 천태성전(天台聖殿)을 신축하였는데, 당시 지은 ‘천태성전 상량문’이 남아 있다. 1737년(영조 13)에 의눌(義訥)이 주지에 취임하였고, 1793년(정조 17)에 태흘(泰屹)이 크게 중수하였다. 1842년(헌종 8)에 한국 불교 계맥(戒脈)의 중흥조인 낭오(朗旿)가 관음전을 신축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왕의 등위축재(登位祝齋)를 열었고, 1868년 호국 대법회 개설과 함께 삼성보전과 산신각을 신축하였으며, 왕실에서는 종을 희사하기도 하였다. 1878년에 치능(致能)이 예조의 도움으로 각 요사를 중수하고 김대비(金大妃)의 사십구재를 지냈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팔상탱 등 여러 불화를 봉안하였다.
1914년에는 석찰(錫察)이 극락보전을 중수하였다. 1932년에 이원우(李元雨)의 시주로 반야교(般若橋)를 중수하였고, 1921년에는 단청과 탱화의 대가인 보경(寶鏡)이 주지에 취임한 뒤, 1979년까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여 한국 불교의 모범 사찰로 변모시켰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보경 스님과의 교유가 이어졌다. 1963년 11월에는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였을 때 이 절을 안내하기도 하였다. 1979년부터는 보경의 뒤를 이어 32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학승(學僧)으로 평가받는 지관(智冠)이 머무르며 여러 당우들을 중수하고 단청을 새로 하는 등 가람을 일신했다.
형태와 특징
경국사의 시방 선원에서는 매주 일요일에 일요 선방이 개설되고 있다. 주변 산세가 묘하고 약수가 있어 참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서울 주위의 대표적인 사찰로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 시절 자주 찾던 곳이며, 부통령 시절에 방한했던 미국의 닉슨(Nixon,R.M.)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 절에 참배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과 함께 사진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상(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寺刹文化硏究院, 『서울』(寺刹文化硏究院, 1994)
-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일제조사 서울특별시』(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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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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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왕의 등극을 축하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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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부처나 보살이 도를 얻는 곳. 또는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 여러 가지로 뜻이 바뀌어, 불도를 수행하는 절이나 승려들이 모인 곳을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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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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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계율에 정통한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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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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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건축물의 완공을 축하하는 의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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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계법(戒法)을 전하여 받은 계통. 석가모니 이후 마하가섭, 아난 등을 거쳐 현재의 수계사에 이르기까지의 계보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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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쇠퇴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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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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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경전이나 교리 및 속학을 널리 아는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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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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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나무판을 깎아 새겨 만든 탱화.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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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말하는 바로 이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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