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현대문학개념용어

 전적인 사랑과 사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송강가사 / 사미인곡
분야
현대문학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전적인 사랑과 사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
영역닫기영역열기임이라는 말
우리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다. 이 때의 ‘임’의 뜻은 ‘그리던 사람’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매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용운(韓龍雲)은 시집 『님의 침묵』「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임을 밝히고 있다.
통념으로서의 ‘임’을 전제하고 이를 부정하면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임’의 개념을 연인이나 애인쯤으로 속단해버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임’의 어원적 고찰을 통해 그 개념을 밝히기로 한다. ‘임’이라는 말은 명사와 접미사로 쓰이는데 신기철(申琦澈)·신용철(申瑢澈)이 엮은 『새 우리말 큰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님 (옛) ① 임금. *數萬里△ 니미어시니(數萬里主)(龍歌 31章). 고ᄫᆞ니 몯 보아 ᄉᆞᆯ읏 우니다니 님하 오ᄂᆞᆳ나래 넉시라 마로리어다(月釋 8. 102). ② 임 *님 쥬(主)(訓蒙 中1). 셜온 님 보내ᄋᆞᆸ노니 가시ᄂᆞᆫᄃᆞᆺ 도셔오쇼셔(樂章, 가시리). 이몸이 삼기실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思美人曲).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ᄒᆞᆫ가마ᄂᆞᆫ(續美人曲).
‘-님’ □접미 [남의 이름이나 어떠한 명사 뒤에 붙여]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말. *주시경∼, 과장∼, 선생∼, 별∼, 따∼. ×-임.
‘님’을 옛말로 본 것은 현대어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임’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시가에서는 이 ‘님’이 빈번히 나타나는데, 흔히 미인과 더불어 통용되기도 한다. 정철(鄭澈)의 「사미인곡」·「속미인곡」,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등의 가사 작품을 보면 그 시제(詩題)에는 미인이 붙어 있으나 본문에는 그대로 ‘님’을 쓰고 있다.
박노준(朴魯埻)은 “임이란 결국 어느 특정한 존재에 한해서 붙이는 고유한 명사가 아니라 지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말로서, 환언하면 어느 누구든지 자기가 사랑하고 연모하고 사모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어떠한 ‘임’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임’의 본질로서 제시해주고 있다.
“첫째로 ‘임’은 항상 가치성을 소유하고 있다. 좀더 높고 귀하고 무궁한 가치, 이것이 바로 ‘임’의 본질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의 하나가 된다. ……(중략). 둘째로 ‘임’은 위대한 힘, 즉 동력을 가지고 있다. ‘임’에게 있어서 거대한 힘이 없을 때 그것은 이미 ‘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높다랗게 위치하여 묵직이 누르고 있는, 그리하여 그 힘에 억눌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러한 힘, 이것이 또한 ‘임’의 본질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된다.”(韓龍雲硏究, 1960)
그가 말하는 ‘임’은 신격화되고 우상화된 ‘임’이요, 무궁한 동력을 지닌 시혜자적 ‘임’이다. 신이 아니면 적어도 절대권력을 지닌 임금 정도는 됨직한 ‘임’이다. ‘임’은 사랑을 전제로 한 정신적인 반응의 표적이요 사랑은 객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것이다. ‘임’ 자체가 지닌 가치나 힘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체자의 마음 바탕과 반응의 강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임이 무엇을 상징 또는 표상하든, 임이란 시인에게 있어 감정의 집중적인 표상”이요, “감정의 가장 고열적인 절정”으로 본 조연현(趙演鉉)의 견해가 더 많이 수긍된다. 그는 또다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임은 그것이 단순한 임금이나 애인의 상징인 데에만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모든 것을, 즉 자기의 생명과 영혼을 다 바칠 삶의 집중적 초점이 되어 있었다는 데 더 큰 뜻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삶의 집중적 초점이란 ‘임’이라는 대상 자체가 가지는 의미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주체자의 반응방식에 관련되는 것이다. ‘임’은 사랑과 사모의 대상이되, 평범한 사랑과 사모의 대상이 아니라 전 생명적인 사랑과 사모의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를 문헌에서 찾아보면 접미사로서의 ‘님’은 「서동요(薯童謠)」·「우적가(遇賊歌)」·「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에서 찾아지나, 명사로서의 ‘님’은 「도이장가(悼二將歌)」에 와서야 나타난다. 『고금주(古今注)』에 한역되어 있는 「공후인(箜篌引)」에 ‘임(公)’의 용례가 있기는 하나 한역 자체가 얼마나 정확하게 옮겨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기는 데는 고조선시대의 언어의 재생이 앞서야 할 것이므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후인」의 ‘공(公)’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일본측 자료(日本書紀 卷十六 武烈天皇 四年條)에 ‘主嶋(故百濟人號爲主嶋)’를 ‘nirim sema’라 주기(註記)한 것이 있으나, 이로써 ‘님’은 ‘니림’에서 축약된 것이고 체언이 선행하는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성조상 상성(上聲)인 ‘님’의 발성을 ‘nirim’으로 잘못 기록하였을 가능성도 있고 주(主)의 훈을 명사가 아닌 접미사에서도 따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접미사로서의 ‘님(主)’이 신라의 향가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체언으로서의 ‘님’은 보이지 않다가 고려의 「도이장가」에 와서야 나타나고, 고려속요에 두루 쓰인다는 사실에서 접미사로서 쓰이던 ‘님’이 명사로 분화, 전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황희영(黃希榮)이 본 대로 “존경한다는 ‘님’과 사랑하고 아낀다는 ‘임’ 사이에는 심리적 연상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고전시가에 나타난 임
전 생명적인 애정의 대상인 ‘임’이 우리의 고전시가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그 대상을 상고시대의 「공후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임’은 『고금주』에 한역되어 있는 「공후인」의 ‘공(公)’에 해당된다. 정병욱(鄭炳昱)뿐 아니라 구자균(具滋均)·장덕순(張德順) 등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임’으로 옮겨놓고 있다.
상고시대에 쓰인 다른 자료를 찾을 수가 없으므로 ‘임’이 그 시대에 어떤 형태를 가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작중화자와 상대와의 거리, 그 어휘가 주는 뉘앙스 등으로 보아 ‘임’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마오/임은 그예 물속으로 들어가셨네/원통해라 물속으로 빠져 죽은 임/아아, 저 임은 언제 다시 만날꼬.”(공후인)
이 작품에서 ‘임’과의 이별도, 죽음을 통한 ‘임’과의 새로운 만남도 모두 물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남편을 잃은 아내의 비통함은 스스로를 강물 속에 내던지게 되고, 강물의 묵시적 상징으로서의 재생과 재회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임’은 생명까지 던지는 삶의 집중적인 초점, 그 대상인 것이다.
고구려의 유리왕은 「황조가(黃鳥歌)」에서 꾀꼬리 한 쌍이 울어대는 나무 아래서 ‘임’을 노래한다. ‘외로운 이내 몸’을 ‘암놈 수놈 노니는’ 데에 대립시킴으로써 스스로의 고독을 더욱 심도있게 나타내고 있다. 이 노래에는 ‘임’이라는 어휘는 드러나지 않지만 ‘뉘[誰]’를 ‘어느 임’으로 대치시킬 수가 있다. 신라시대의 ‘임’은 「원왕생가(願往生歌)」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원왕생가」는 그 구조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은 자신의 뜻을 달님에게 비기어 나타낸 것으로 되고, 후반은 영탄으로 시작되는 독백으로 되어 있다. 전반에서의 달은 무량수불전에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인격체로 등장한다.
“이제 서쪽까지 가시어서 무량수 부처님께 알리어 어쭈소서.”라는 달님에의 청원을 빼고 나면 “맹세 깊으신 아미타불을 우러러 두 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하면서 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전갈의 내용이다. 이 시가는 시적 공간이 여간 광대하지가 않다. 아미타불이란 초월자를 향한 미약한 존재자의 탁의(託意)라 청원적인 화법으로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런데 영탄으로 시작되는 후반의 독백은 전반의 화법과는 전혀 다르다. “이 몸을 버려 두고”에서 보는 원망과 “사십팔 대원이 이루어질까?”라는 의문은 그대로 독백이다. 앞쪽의 자기 의식은 뒤쪽에 와서 부처의 권능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다. 내가 감으로써 부처의 대원이 성취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처를 절대시하지 않은 신라인의 사고를 엿보게 한다.
이 시가의 후반에 쓰인 ‘그리는 사람(慕人)’의 ‘임’은 아미타불로 볼 수 있고, 그리는 세계는 서방정토가 된다. 서방정토와 관련되면서도 그곳에서 부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간 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노래로 「제망매가」가 있다. 「원왕생가」의 ‘임’이 무량수불이요, 「제망매가」의 ‘임’은 그 누이라 하더라도 만남의 자리는 다같이 서방정토이다. 신라의 ‘임’은 이렇게 불교와의 관련 위에서 찾아진다.
‘임(主)’이 독립적인 체언으로 쓰여 표기된 것은 고려시대의 「도이장가」에서 처음 찾아진다. 이 작품은 고려 16대 왕인 예종이 공신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 두 장군의 가상희(假像戱)를 보고 지은 추도시이다. 이는 장덕순이 본 대로 “전대의 향가와 고려적 성격을 띤 가요를 연결시키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도이장가」와 더불어 향가의 잔영으로 보는 「정과정(鄭瓜亭)」도 ‘임’에 대한 노래이다. 정서(鄭叙)가 지은 이 노래의 ‘임’은 물론 의종이다. 고려속요를 살피면 「도이장가」와 「정과정」과는 달리 이성을 나타내는 ‘임’이 대부분이다. 그 예로 11연으로 된 「정석가(鄭石歌)」는 그 첫 연과 끝 연을 제하고는 “유덕하신 님 여의아와지이다.”가 끝 행에 오는 반어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임’의 변함 없는 사랑을 읊고 있다. 이별이 없는 사랑을 읊은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와 「이상곡(履霜曲)」, 별한을 읊은 「가시리」, 그리고 다시 모시고 싶은 기원을 읊은 「동동(動動)」도 다 ‘임’을 읊은 노래들이다.
작자가 밝혀져 있는 「도이장가」나 「정과정」의 경우는 다르지만 여타의 속요에서 보이는 고려시대의 ‘임’은 거의 다 이성간의 ‘임’이요, 그것도 속화(俗化)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문자가 없던 이 시대의 속요가 평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오다가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와서야 채록되는, 구전문학적 성격을 띠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조의 경우 정병욱이 엮은 『시조문학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2,376수의 작품 가운데 ‘임’이라는 말이 나타나 있는 시조만 하더라도 평시조 255수, 엇시조 28수, 사설시조 71수 등 모두 354수가 된다. 고시조에는 남녀의 애정을 읊은 것들이 많다. 최남선(崔南善)이 『시조유취(時調類聚)』에서 분류한 바에 의하면 한정류(閑情類)가 281수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남녀류 155수에 상사류 122수와 이별류 48수를 합하면 애정을 주제로 하는 것들이 325수가 되어 이쪽이 더 많은 것으로 된다. ‘임’이라는 어휘가 보이는 시조 354수 중에서 318수라는 대다수가 남녀간의 애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연군의 내용으로 밝혀져 있는 기록이나 작가의 생애, ‘님 향한 일편단심’이나 ‘님 계신 구중궁궐’과 같은 상투어들을 감안해 연군의 시조로 판단되는 것은 31수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 丹心歌」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임’을 향한 충절의 지킴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임을 읊고 있다. 악장은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생겨난 장르로, 그 내용 또한 왕조 이전과 신흥 국가의 왕업을 찬양하는 송가의 성격을 띠고 있어 그 속에 나타나는 ‘임’은 군왕인 경우가 많다.
「용비어천가」·「감군은(感君恩)」 등의 작품이 그 예가 된다. 가사 작품의 경우 채득기(蔡得沂)가 지은 「봉산곡(鳳山曲)」의 ‘임’은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지만, 정철의 「사미인곡」·「속미인곡」, 김춘택의 「별사미인곡」,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안조원(安肇源)의 「만언사(萬言詞)」 등의 ‘임’은 다 임금 쪽이다.
그런가 하면 허난설헌(許蘭雪軒)의 「규원가(閨怨歌)」나 작자미상의 「상사별곡(相思別曲)」·「춘면곡(春眠曲)」·「황계사(黃鷄詞)」·「석춘사(惜春詞)」·「단장사(斷腸詞)」·「관등가(觀燈歌)」·「상사진정몽가(相思陳情夢歌)」·「과부가(寡婦歌)」·「규수상사별곡(閨秀相思別曲)」·「한별곡(恨別曲)」 등의 ‘임’은 연인 쪽이다.
‘임’이 나타나는 가사 작품 중 연군과 애정 쪽의 비율이 약 1:2의 비율이 될 만큼 연군 쪽의 증량을 보게 된다. 이는 충효를 중히 여기는 유교윤리의 영향일 것으로 판단된다. 임동권(任東權)의 『한국민요집(韓國民謠集)』에 수록된 민요는 모두 1만 734수인데, 그 중 ‘임’이 언표에 나타나는 것만도 1,312수나 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임’에의 호소와 그 열도가 얼마나 크고 높은 것인가를 잘 반영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요의 ‘임’은 그 대상이 거의 대부분 이성으로, ‘눕는다’, ‘품는다’, ‘자러간다’ 등으로 표현된 동침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98수나 된다. 민요에 나타나는 ‘임’이 고려속요나 시조에서보다 더 속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대시에 나타난 임
최남선의 「우리 님」은 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3연은 ‘우리 님’이 아닌 것을 읊었고, 후 3연은 ‘우리 님’인 것을 읊고 있다. ‘우리 님’은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 우리의 기림을 받을 사람을 지칭한다. 개인적인 ‘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임’이다. 최남선의 ‘님’은 이러한 인물에 머물지 않고 조국의 강토 곧 산에까지 확대되는데, 「태백산부(太白山賦)」·「태백의 님을 이별함」에서 보는 ‘님’이 곧 그런 것이다.
이러한 신체시는 물활론(物活論)주 01) 적인 사상과 정서에 근거한다. 최남선의 ‘님’이 태백이라면 「님 나신 날」과 「말 듣거라」에서 보는 이광수(李光洙)의 ‘님’은 조국이나 호국신으로 격상되는 것을 보여준다.
창가 시절에 보이지 않던 ‘님’이 최남선과 이광수의 신체시에 와서 소생되는 것은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개화운동의 출렁거림을 지나 조국의 위태를 피부로 느끼면서 그것이 전 생명적인 애정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문화현상은 그것이 처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 발전한다.
신체시 시대에는 국토나 호국신 등의 이념적인 ‘임’이 주로 나타났지만 1920년대에 오면 ‘임’이 보다 다원화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현실의 ‘임’과 조국을 대상으로 하는 이념의 ‘임’뿐 아니라 내세를 염원하는 지향의 ‘임’까지 확대된다.
1920년대에 ‘임’을 노래한 시인들은 주요한(朱耀翰)·박종화(朴鍾和)·김동환(金東煥)·변영로(卞榮魯)·양주동(梁柱東)·노자영(盧子泳) 등 많은 사람을 들 수 있지만 대표적인 시인으로서는 김소월(金素月)과 한용운을 들 수 있다. 김소월이 남긴 유일한 시집은 『진달래꽃』이다. 이 시집에는 127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첫째 항 ‘님에게’에서부터 마지막 항 ‘닭은 꼬꾸요’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여섯 항으로 분류되어 있다. 김소월은 첫째 항 ‘님에게’에 「풀따기」·「산우에서」·「옛이야기」·「님의 노래」·「님의 말씀」·「님에게」 등 현실의 ‘임’을 집중 배치하고, 여섯째 항에 「반달」, 일곱째 항에 「눈」, 여덟째 항에 「새벽」, 열셋째 항에 「삭주구성(朔州龜城)」, 열넷째 항에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열다섯째 항에 「금잔디」를 확산 배치한다.
그리고 아홉째 항 「여름의 달밤」 안에 이념의 ‘임’을 앉히고, 맨 마지막 항에 「닭은 꼬꾸요」라는 한 작품을 놓음으로써 잃어버린 ‘임’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묵시적으로 나타내려 하고 있다.
이인복(李仁福)은 “소월의 역사의식 또는 시대의식을 ‘님’에게 결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를 억지로 뽑아낸다면 일단 다음 두 편의 시가 거론된다.” 하고,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과 「상쾌한 아침」을 들고 있으나 김소월의 역사의식, 시대의식이 나타나 있는 작품은 「오는 봄」·「옷과 밥과 자유」·「물마름」 등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김소월은 ‘임’을 읊은 시인이다. 그는 이념의 ‘임’을 현실의 ‘임’ 곁에 앉히고 조국의 상실을 ‘임’의 여읨으로, ‘오는 봄’을 ‘임’과의 재회의 날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는 서시 「군말」에서 결시 「독자에게」에 이르기까지 9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님’이라는 말이 나타나는 작품은 「님의 침묵」을 포함 46편이다.
서시와 결시를 연결해보면 나라 잃고 헤매는 백성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님의 침묵』을 쓴 것으로, 나라를 찾기까지 당대의 읽을거리에 한하기를 희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와는 달리 실제의 작품을 보면 현실의 ‘임’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고, 이념의 ‘임’이 그 다음이며, 지향의 ‘임’을 읊은 경우가 가장 적다.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던 의도와는 달리 현실의 ‘임’을 그린 애정시가 대다수라는 사실에서 다음 사실을 추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의도대로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시가 있은 다음에 의도를 덧붙였을 가능성이요, 다른 하나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가능성을 들 수 있다.
그가 지도층 승려로서 세론을 의식한 자기 호도일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그가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이라는 점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사랑의 끝판」이 말해주듯 ‘등불을 켜려는’ 의도를 가졌지만 ‘초를 거꾸로 꽂은 것’ 같은 방법을 택한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시 「명상」에서의 ‘님’을 연인으로 볼 때는 한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열반이나 정토를 버리는 결과가 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되나 조국으로 볼 때는 중생구제라는 불법에도 어긋남이 없게 된다. 「명상」의 2연은 같이 살자는 사람들의 붙잡음을 뿌리치고 돌아온 까닭과 그 심경이 반영된다.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지향의 ‘임’보다 이념의 ‘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서 한용운 시의 한 특성을 보게 되며, 그의 종교시가 가지는 한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김소월이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을 동궤에 놓고 읊은 데 대하여 한용운은 현실의 ‘임’과 이념의 ‘임’뿐만 아니라 지향의 ‘임’까지 같은 궤에 놓고 있다.
이들의 시에서 양적으로 보면 현실의 ‘임’이 대다수요, 이것이 시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지만, 1920년대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념의 ‘임’이 더 중요시된다. 왜냐하면 고려 때부터 군왕을 표상하기 시작하던 ‘임’이 신체시에 오면 ‘필요한 사람’이나 ‘국토’ 또는 ‘호국신’ 등으로 변용되다가 이 시대에 와서 잃어버린 조국을 전 생명적 애정의 대상인 ‘임’으로 표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대상황은 더욱 암담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시대상황과 시인들의 의식의 변화 속에서 ‘임’은 또다른 양상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1930년대초 『동광(東光)』에 게재된 신석정(辛夕汀)의 「임께서 부르시면」을 보면 시대의식 같은 것이 없고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있을 뿐이다.
모윤숙(毛允淑)의 『빛나는 지역』, 박용철(朴龍喆)의 『박용철시집』, 이하윤(異河潤)의 『물레방아』 등에서 보이는 ‘님’들도 이런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1938년에 출간된 서정주(徐廷柱)의 『화사집(花蛇集)』과 1939년에 출간된 유치환(柳致環)의 『청마시초(靑馬詩鈔)』를 보면 그 양상이 달라진다.
『화사집』에 수록된 24편의 시 중에 ‘님’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대낮」 한 편뿐이다. 이 시의 배경은 무화과가 있고 뱀이 있는 에덴동산을 연상하게 한다. 끓는 대낮에 웬몸이 다는 과열 상태는 본능적인 것으로 투신함을 의미한다. 파시즘의 강화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서 젊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세계는 육정적 세계로 투신하는 것이었다.
「대낮」뿐 아니라 「맥하(麥夏)」·「입맞춤」·「정오의 언덕에서」·「고을나의 딸」 등에서도 ‘임’의 분신들이 찾아진다. 이러한 ‘임’의 분신들이 본능적 차원에서 노래된 것이 서정주의 ‘임’이자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원초적인 ‘임’이다. 한편, 『화사집』에는 시대의식을 읊은 작품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에는 ‘임’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자화상),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壁), “아름다운 날”(斷片) 등으로 상징화된다.
유치환의 『청마시초』에 수록된 55편의 시 중에는 ‘임’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현실의 ‘임’일 경우 ‘너’(그리움)·‘그대’(병처) 등으로 나타나고 이념의 ‘임’일 경우 “마지막 우러른 태양”(日月), “운표(雲表)에 솟은 그윽한 바비론”(點景에서)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은 시대상황과 언어심리적인 측면에서 해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930년대 후반은 조선어의 말살정책과 더불어 파시즘이 더욱 강화되던 때라 1920년대의 김소월이나 한용운처럼 조국을 ‘임’으로 표상하는 시를 읊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따라서 조국으로서의 ‘임’은 시적인 표현능력의 성숙과 함께 상징의 형태로, 보다 내밀화된 어휘로 변용된다.
이와 같은 경향을 언어심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임’이라는 어휘가 관념적인 것이요, 구체성이 결여된 것이므로 앞 시대 사람들이 즐겨 쓰던 어휘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친밀감을 주는 새 어휘로의 대치를 요구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서정주의 경우에서 보듯 ‘금녀’·‘수나(叟娜)’와 같은 이름의 사용이요, 유치환의 경우에서 보듯 ‘그대’·‘너’와 같은 대명사의 사용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새로운 문맥 속에서 문학언어로서 참신성과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형상화하게 된다. ‘임’이라는 말은 그 내포가 커서 의식의 분화와 더불어 그것이 문학언어로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우리에게는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이념의 ‘임’은 줄고, 현실의 ‘임’은 그대로 있으나 표면에 나타나느니보다 내밀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음악·미술에 나타난 임
민요인 「아리랑」에도 ‘임’은 나타나 있다. 민요뿐 아니라 우리 가곡에도 ‘임’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서구의 민요 형식에 의한 찬송가의 영향을 받고 탄생하는 우리의 가곡은 1920년에 나온 「봉선화」가 그 효시라 할만큼 현대의 것들이다. 가곡의 경우 가사가 주어지고 거기에 곡이 붙여지는 것이 상례이다.
가사는 작곡자가 짓는 경우도 있고 작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는 이미 있는 시를 선택하여 쓰게 된다. 스스로 지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선택하여 쓰는 데도 작곡자 자신의 공감과 선별의식을 거친 것인 데다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곡이 붙여지므로, 그 가곡은 작사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작곡자의 것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가곡에 나타나는 ‘임’은 작사자의 ‘임’이자 작곡자의 ‘임’이면서 그 ‘임’은 가곡을 부르는 모든 이의 ‘임’으로 확대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가곡200곡집』에는 「님이 오시는지」(金圭桓 곡, 朴문호 시) 등 34곡에 ‘님’이 나타나 있어서 17.0%의 비율을 보이고 있고, 『한국가곡전집』에는 124곡 중 「바위고개」(李興烈 작곡·작시) 등 18곡에 ‘님’이 나타나 있어서 14.5%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231가곡집』에는 「봄처녀」(洪蘭坡 곡, 李殷相 시) 등 39곡에 ‘님’이 나타나 있어 16.9%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231가곡집』에는 「봄처녀」 외에도 다음의 작품들에서 ‘님’이 나타나 있다.
「그리움」(홍난파 곡, 이은상 시)·「그리워」(蔡東鮮 곡, 이은상 시)·「옥저」(金世炯 곡, 金相沃 시)·「바위고개」·「꿈」(金聖泰 곡, 金億 역시)·「뱃노래」(趙斗南 곡, 석호 시)·「님이 오시는지」·「떠나가는 배」(卞焄 곡, 楊明文 시)·「기다리는 마음」(張一男 곡, 金敏夫 시)·「석굴암」(李秀仁 곡, 崔載浩 시) 등이다.
위에 보인 작품 중에서 이수인 곡 「석굴암」만이 그 대상이 부처요, 그밖의 것은 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임’은 ‘그대’·‘내 사랑’·‘당신’ 등으로 불린 것까지를 포함하면 거의 대부분이라 이를 만큼 그 양이 증대된다. 가곡에서 이렇게 ‘임’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비교적 앞 세대에 속하는 김억·김소월 등의 민요풍의 시인과 이은상·김상옥 등 시조 시인 및 박화목(朴和穆)·이주홍(李周洪) 등 아동문학을 겸한 문인들의 시를 많이 택한 것도 그 원인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본다.
노랫말이 있는 성악곡의 경우뿐 아니라 기악곡의 경우도 ‘임’은 나타날 수 있다. 작곡가의 전 생명적인 애정의 대상인 ‘임’에 대한 사랑이 창작 정신으로 승화되어 훌륭한 연가나 애국의 노래, 혹은 종교음악을 창출해낼 수도 있다.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화가나 조각가의 ‘임’에 대한 사랑이 예술 정신으로 승화되어 연인의 영상을 작품화하기도 하고, 나라 사랑의 꿈을 그리기도 하며, 훌륭한 종교화를 형상화하게도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임과 한국인의 생활
‘임’은 사랑의 대상이되 평범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전 생명적인 사랑의 대상이다. 이 사랑의 대상이 연인을 포함하는 사랑하는 사람일 때를 현실의 ‘임’이라 하고, 임금이나 조국일 때를 이념의 ‘임’이라 하며, 내세나 종교적 기원의 대상일 때를 지향의 ‘임’이라 하였다. ‘사랑’이나 ‘그대’가 아닌 보다 포괄성을 지니는 이 특수 어휘는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의 것이든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 ‘임’은 결여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세계는 ‘임’과 더불어 있는 누림의 공간이 아니요, 기대와 기원의 세계가 된다. 현실의 ‘임’일 경우 기다림이나 꿈속에서의 누림이 대부분이요, 이념의 ‘임’일 경우 회복의지를 읊은 것이 많으며, 지향의 ‘임’일 경우 내세에 대한 기원이 그 정서의 주조가 된다.
현실의 ‘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사랑[愛]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념의 ‘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충(忠)에 관련되고, 지향의 ‘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기원이나 신앙과 연관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의 ‘임’을 마음에 품고 사랑의 애환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종·이순신(李舜臣) 등의 동상이나 논개(論介)·유관순(柳寬順) 등의 영정 앞에 참배하는 것은 마음속에 그들을 이념의 ‘임’으로 격상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나라 사랑의 숭고한 정신 앞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한편, 교회나 사찰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입석이나 거목 앞에서 기원을 드리는 것은 지향의 ‘임’이 그들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임’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강렬한 정서의 본원인 것같이 보인다. 의식이 고도로 분화되고 정신적인 것이 경시되는 시대풍조에 따라 ‘임’을 잃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으나, 우리 생활의 정신적 지주를 되찾기 위해서도 ‘임’의 회복과 그 보존이라는 명제는 절실한 요청이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물질 자체에 생명 또는 영혼이 있다는 주장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신상철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