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태자태사,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다음 해에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승진했으며,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와 서경유수를 거친 다음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옮겼다. 1012년에는 동경유수를 없애고,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를 둘 것과 12주(州)의 절도사를 5도호(都護) ·75도안무사(道安撫使)로 대체할 것을 건의해 실행되었다.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郎平章事)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차례로 역임하였고, 1019년에 추충좌리동덕공신 청하현개국남(推忠佐理同德功臣淸河縣開國男)으로 봉해졌다. 1021년에는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더해지고 개국백(開國伯)으로 작진(爵進)되었다.
관직도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檢校太師守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에 올라 총재(冢宰: 수상, 으뜸 재상)가 되었다. 이 때 주현의 장리(長吏: 이부의 長) 칭호를 정리하였다. 즉 군 · 현 이상은 호장으로, 향(鄕) · 부곡(部曲) · 진(津) · 정(亭) · 역(驛) 등에서는 장(長)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거란의 동경장군(東京將軍) 대연림(大延琳)이 반란을 일으켜 흥료국(興遼國)을 세우고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국방을 강화하면서 사태를 관망하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1027년에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겸하였으며, 1031년 내사령(內史令)으로 치사(致仕)한 뒤 1041년(정종 7)에 죽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시대 수주최씨가문분석」(박용운, 『사총』 26,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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