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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 / 고풀이
씻김굿 / 고풀이
민간신앙
개념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가리키는 민간용어. 응어리.
내용 요약

한은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가리키는 민간 용어이다. 맺힘과 맺음, 풀림과 풂의 복합적 실체로서 응어리라는 표현도 쓰이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 모호하다. 한은 가장 한국적인 슬픔의 정서로서 우리 고유의 것이다. 한의 원인을 우리 역사와 사회적 위계질서의 형식 등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 또한 분명한 것은 아니다.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종교나 민간신앙 활동을 통하거나 의지적 행동으로 풀어왔는데, 익살과 해학도 한을 푸는 한 방법이었다.

정의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가리키는 민간용어. 응어리.
개설

한 또는 원한의 의미가 무엇인가는 아직도 모호하다. 지금까지 밝혀져서 잠정적으로나마 통용되고 있는 이러한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원한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 속성들 역시 서로 얽혀 있어 그것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맺힘과 풀림의 계기성과 대립의 묶음들로 정리할 수 있다. 원한의 맺힘은 원한의 발생과 생성을 대표한다. 그러나 원한이 발생하고 생성되는 내부에는 맺힘과 맺음이 있다. 맺힘은 타인에 의한 것이고, 맺음은 스스로에 의한 것이다.

이들 원한의 발생과 생성은 모두가 그 전제조건과 그에 처하는 마음의 자세로 분리된다. 전제조건은 한이 발생하거나 생성되는 조건으로, 남이 부여하는 경우와 스스로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타인 · 사회제도 · 환경 등이 한이 맺히게 될 자의 욕구나 의지를 좌절시키고, 그 좌절이 삶의 파국을 초래하는 경우와, 일방적으로 타인에 의하여 삶이 파열을 강요당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의 상처와 아픔은 타(他)에 의한 것이기에 타상(他傷)이다.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 장차 한하고 후회할 행위를 행한 경우이다. 스스로 내는 상처와 아픔이기에 자상(自傷)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원한을 맺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원한이 맺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조건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한이 발생 · 생성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원한의 속성은 앞의 조건에 처하는 사람의 자세가 문제가 된다. 앞의 조건들을 치유하거나 훌훌 털어 버리고 잊는 자세에는 원한이 발생하거나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조건들에 처하여 슬픔 · 후회 · 자책 · 분함 · 억울함 · 원통함 · 저주 · 앙갚음 등을 계속 일으키면서, 이들 감정들을 치유하지도 망각하지도 못하고 편집적이고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태도에서 원한이 발생하고 생성된다. 따라서 원한은 응어리이며, 일부 지방에서는 고(罟, 罛)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이기에, 그 맺히거나 맺는 자에는 살아 있는 자는 물론 죽은 영혼까지도 포함된다.

원한의 속성은 맺힘과 맺음만이 전부가 아니다. 맺힘 · 맺음의 반대쪽에 풀림 · 풂이 있다. 이들 풀림과 풂은 풀림으로 대표되는데, 원한의 소유자는 산 자나 죽은 자를 막론하고 그 원한을 편집적이고 강박적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풀림의 경우는 맺힌 자 스스로가 푸는 것이 아니라, 타(他)에 의하여 풀리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풂의 경우는 맺힌 자 스스로가 푸는 때에 발생한다. 이 풀림이나 풂을 막론하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집착력은 아픔과 상처의 깊이와 응어리의 응집력에 비례하는 것으로, 그 성취 동기의 추진력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풂의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양상을 보인다. 그 첫째는 복수와 같은 것으로, 자신에게 원한을 일으킨 자에게 앙갚음을 행하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는 자신에게 원한을 일으킨 자가 아니라 제삼자에게 행하는 것으로, 원한의 흰 빛 전이(轉移)와 원한의 검은 빛 전이라는 것이다. 원한의 흰 빛 전이는 자신에게 맺히거나 자신이 맺은 원한을 좋은 방향으로 전이하는 경우이다. 이 때의 원한 소유자는 자신과 같은 원한의 소유자나 소유하게 될 자의 편에서, 맺히거나 맺은 원한을 풀어 주거나 원한을 막아 주는 것으로 작용한다.

원한의 검은 빛 전이는 자신에게 맺히거나 자신이 맺은 원한을 나쁜 방향으로 전이하는 경우이다. 이때의 원한 소유자는 풀 대상을 선택하는 데 편집적이다. 어느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자신이 입은 상처와 아픔을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뒤집어씌우는 행동으로 푸는 경우이다.

이러한 맺힘과 풀림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이 맺힌 자의 발생 동인(動因) 중에는 그가 소속된 집단의 의식이 축적된 것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원한은 의식과 무의식에 공유한다. 원한의 복잡성은 수레바퀴에 견줄 수 있다. 안으로 여러 개의 가늠대에 의하여 원형이 지탱되어 있는 것이 곧 수레바퀴가 지닌 구조상의 특색이다.

그 가늠대 하나하나가 각기 그 양 끝에 서로 대립되는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치면, 원한의 복합성이 어연간히 잡힌다. 즉, 대립적 속성으로는 성취 욕구와 파괴 충동, 증오와 사랑, 인내와 자포자기, 열정과 비창 등의 묶음들이 있다. 이로 보아 원한은 정반대의 속성들이 하나로 묶인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정리는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밝혀져 통용되고 있는 원한의 정의와 속성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좀더 심화하고 체계화하여야 할 과제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와 한

정치에서의 원한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치정(治政)의 원리인 원한과 당쟁에 연결된 원한이다. 치정의 원리로 쓰인 원한은 시대별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나타난 한과 원을 보면, 정치 이념의 차원에서 다루되 그것을 언제나 우주론적인 차원과 연관짓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치정의 성패를 원한의 진무(鎭撫:민심을 진정시키고 어루만져 달래는 것) 여부에다 두고 원한으로써 치정의 원리로 삼으면서, 민심의 원한을 천기와 맺어 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민한(民恨)은 천한(天恨)이고, 민원(民怨)은 천기(天氣)의 원 자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과 원의 민기(民氣)가 서리고 서리면 그것이 마침내 천기가 되어 천지의 조화를 깨뜨리고 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늘의 기가 대기(大氣)라면 민심의 기는 소기(小氣)였고, 그 둘은 서로 호응하였다. 따라서 민원은 소원(小怨)이고 그것이 뭉쳐서 천원인 대원(大怨)이 되면 자연의 섭리를 파탄하는 일이 빚어지고, 따라서 정사의 붕괴는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민천합일(民天合一)의 원한이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치자들은 하늘을 두려워하듯이 백성을 두려워하여야 하였다. 따라서 어떠한 정책을 입안하기에 앞서 미리 원한막이, 곧 방한(防恨)을 생각하였고, 이미 일어난 백성의 원한을 푸는 해한(解恨) 내지 치한(治恨)을 생각하였다.

이렇게 원한을 치정의 원리로 삼았다는 사실은, 원한과 관련된 어구들이 조선왕조실록에 쓰이는 문맥에서 쉽게 살필 수 있다. 먼저, 원한과 관련된 어구들에는 신원(伸寃) · 심원(審怨) · 함원(含怨) · 호원(號怨) · 소원(訴寃) · 회원(懷怨) · 원고(怨苦) · 원옥(寃獄) · 원귀(寃鬼) · 원원(寃怨) · 유원(幽怨) · 분원(憤怨) · 원민(寃悶) · 광부원녀(曠夫怨女) · 민원 등이 있다. 이들 원한과 관련된 어구들은 조정에서 천재지변이나 학리(虐吏)들의 문제를 논의할 때 상례처럼 나타난다. 이들 중에서도 백성이나 민심이 문제될 때면, 저들 어구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언급된다.

많은 예들 중에서 원한을 치정의 원리로 생각한 예를 이언적(李彦迪)의 상소문으로 살피면, 보병 수군은 토목에 지치고 징발되어 역사에 종사하는 자들은 땅을 모조리 팔아서 역사에 임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생업이 없으며 그 원망하는 기운이 하늘에 닿았으니, 이렇게 하고서 화기(和氣)가 느껴지고 비 오고 볕 나는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것은 아득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즉, 백성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고, 그 사무친 힘이 하늘의 부조화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허목(許穆)이 그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서 천재란 헛되게 나는 것이 아니니, 원망을 쌓으면 천재가 오고 천재가 쌓이면 앙재가 된다고 한 치정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당쟁과 관련된 원한은 상대 파당에 대한 철저한 보복이며, 상대 파당이 갑이라고 하면, 이쪽에서는 갑론(甲論)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을이라고 주장하는, 파괴와 증오의 원한으로 표현되어 있다.

민간신앙에 나타난 한

민간신앙에서의 원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즉, 무당의 입무식(入巫式) 과정과,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서 저승으로 보내주는 것과, 살아 있는 자의 병이나 살(煞) · 부정 · 동티 등을 치병하거나 예방하거나 풀어 주는 것이다. 무당의 입무식 과정에서의 원한은 무당이 될 자의 원한이 있고, 무신(巫神)의 원한이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무조신화(巫祖神話)이다.

‘본풀이’의 하나인 「바리데기」는 무조신화의 예를 잘 보여준다. 「바리데기」에서 살필 수 있듯이, 무당은 자신이 말려든 한스러운 처지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무당이 되고, 그때 몸에 생긴 힘과 능력으로 남들의 한풀이를 해낼 수 있는 권능을 향유하게 된다.

한에 사로잡히고 그 한을 뚫고 나오는 과정이 곧 성무식(成巫式) 내지 성무 절차에 수반된 시련과 그 극복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입사식이나 성년식 · 취임식 등에서 육체적 시련과 정신적 간난을 넘어서야 하는 과정이 중요한 제의적 뜻을 지니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바리데기’는 버려진 공주가 무신이 되어 가는 과정이며, 그 결과로 해한의 권능을 향유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그대로 무당의 성무 절차에서 발견되고, 나아가 그로써 얻는 권능도 ‘바리데기’의 경우처럼 해한의 권능인다움을 갖추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한이 맺힌 사람들이기에 남의 한을 풀어 주는 구실을 스스로 맡은 해한인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원한은 입무 과정에 필연적으로 작용하며, 그들이 모시는 무신들 역시 원한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무신들이 원한의 소유자임은 상당수의 무당이 모시는 무신들이 최영(崔塋) 장군 · 공민왕 · 임경업(林慶業) 장군 · 사도세자와 같이 비운에 죽은 원한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살필 수 있다.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서 저승으로 보내주는 것을 대표하는 것이 씻김굿고풀이이다. 원한에 사무친 자는 죽어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돈다는 내세관에 기초하여 죽은 자의 천도를 꾀하는 것인데, 씻김굿은 죽은 자의 시신을 씻으며 행하고, 고풀이는 넋이 타고 저승으로 건너갈 ‘넋전’으로 쓰일 광목에 조롱조롱 엮인 고를 푸는 것이다.

이때 씻김과 고풀이는 모두가 이 세상에서 더럽혀지고 맺힌 원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들 더럽고 맺힌 것을 씻고 풀어 주는 것이다. 이는 죽은 자가 이 세상에서 더럽혀지고 맺힌 원한이 있으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돈다는 믿음과, 저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들을 제거해 주어야만 가능하다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죽은 자의 저승길을 인도하는 것이 한풀이이다.

살아 있는 자의 병이나 살 · 부정 · 동티 등을 치병하거나 예방하거나 풀어 주는 데에도 원한의 맺힘과 풀림이 작용한다. 모든 질병이나 탈의 근원이 원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그 근원인 원한이 맺힌 자를 풀어서 병이나 탈을 제거하고 있다. 이는 이미 발생한 병이나 탈에서 볼 수 있는 원한의 맺힘과 풀림이다. 그러기에 ‘살풀이’ · ‘액풀이’ · ‘부정풀이’ 등이 사용된다.

이에 비하여 병이나 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기들을 살에서 지키기 위해 생일날 백살경(百煞經)을 읽고, 신랑 신부의 살막이를 위해 혼인날 아침에 칠살경(七煞經)을 읽으며, 상문살(喪門煞)을 피하기 위해 상가를 갈 때는 그날의 인연과 방향을 보고 시신을 보지 않는 것들을 들 수 있다.

또한 부정과 관련된 신앙은 마을에 초상이 나면 그 마을의 마을굿을 연기하거나 아예 하지 않고, 초상집에 다녀와서는 아이 난 집이나 혼인식에 가지 않는 속신이 있다.

이들 모두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부정을 씻어내는 풀이 전에 방지하는 민간신앙으로, 표면에는 원한의 맺힘과 풀림이 없지만 그 내면에는 사전에 맺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원한의 맺힘과 풀림의 기본 원리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속담 · 설화 · 민요 · 판소리에 나타난 한

한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권력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하층계급이다. 지배층 · 부유층에게는 한은 거의 없고 원만이 있다. 따라서 지배층이나 부유층의 일상이나 예술에서는 한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하층 민중들의 생활예술, 즉 속담 · 설화 · 민요 · 판소리 등에는 처절한 한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들은 이러한 속담이나 설화 · 민요 · 판소리 등을 통하여 마음 깊이 맺힌 한을 풀기도 하였다.

① 속담:속담은 민중의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 속에 한이 배어 있다. 속담에 나타난 한은 주로 여한(女恨)에 관한 것과 가난에 관한 것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은 여한을 나타낸 대표적인 것으로, 여자의 한이 무섭다는 뜻도 담겨 있지만, 그만큼 우리 나라의 여자들에게는 한이 많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고된 시집살이에서의 한과 고부간의 갈등을 한으로 표현한 속담도 많다. ‘시집 가서는 귀머거리 3년이요, 벙어리 3년이라.’,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등이 그것이다.

한의 발생 원인인 가난을 나타낸 속담은 훨씬 많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피죽도 쑤어 줄 것 없고, 새앙쥐 볼가심할 것 없다.’ 등이 그것으로, 이처럼 가난을 표현한 속담이 많다는 것은 민중들의 생활이 얼마나 궁핍했는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속담은 강한 풍자성을 앞세우기 때문에 민요나 판소리처럼 한이 표면에 드러난 경우는 많지가 않다.

② 설화:설화는 신화 · 전설 · 민담 등을 가리킨다. 모두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들로, 그 중 전설이나 민담은 한을 다룬 것들이 많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의 주제는 거의가 권선징악이다. 마음씨 착한 자와 악한 자가 있는데, 처음에는 악한 자가 잘 되지만, 결국은 악한 자는 망하고 착한 자는 잘 산다는 줄거리로 전개되어 있다. 「흥부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민중들은 암암리에 그러한 이야기 속에 자신들의 한을 담았으며, 그것을 남에게 들려줌으로써 한을 풀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가운데는 원귀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그 내용은 주로 한을 품고 죽은 원귀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 원수를 갚는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장화홍련전」형의 설화들이 그것인데, 역시 민중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줌으로써 마음속에 맺힌 한을 풀었다.

민담뿐만이 아니라 전설도 한에 얽힌 것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의 당산 기슭에 있는 별신당의 전설은, 전쟁으로 죽어 땅에 묻히지 못하고 떠도는 원혼들이 한을 품고 마을에 재액을 내려, 별신당을 짓고 위로해 주자 그 재액이 말끔히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또 강원도 강릉시 안인진의 해랑당에는, 상사병에 걸린 처녀가 한을 품고 죽어 마을에 재앙을 내리자 사당을 지어 위로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③ 민요:민요에서는 속담이나 설화에서보다 한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민요는 오랜 세월 동안 민중 속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노래이기 때문에 특별한 수련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 소재 또한 다양하고 감정의 표현도 구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민요는 민중의 생활과 직결된 예술이다. 즉, 노동을 하거나 의식을 하거나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내용은 주로 시집살이, 과부의 설움, 노동의 고됨, 남편의 처첩관계, 시누이 올케 사이의 알력 등 서민생활의 감정을 거리낌없이 나타내는 것들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민담이나 판소리처럼 듣는 사람의 반응에 구애될 필요가 없고, 다만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 여기에 민요의 진솔성이 있으며, 한이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이 가장 절절하게 표현된 민요는 고된 시집살이를 노래한 것들이다.

“잠아 잠아 오지 마라/시어머니 눈에 난다/시어머니 눈에 나면/임의 눈에 절로 난다.”, “논에 가면 갈이 원수/밭에 가면 바래기 원수/집에 가면 씨누 원수/세 원수를 잡아다가/참실로 목을 매어/범든 골에 옇고지나.”

남도지방에서 채집된 이 두 편의 민요에서는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시누이에 대한 증오가 직설적 감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민 여자들의 한은 가난과 과로보다는 시댁 식구들의 학대였다. 역시 남부지방에서 채집된 다음과 같은 민요에도 서민 여자들의 한이 잘 나타나 있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뭘 먹고 날 맹글었나/우리 어매 날 날 적에/죽순 나물 먹었던가/마디마디 육천 마디/마디마다 설움이네.”

그러나 이와 같은 서민 여자들의 한은 모두 근원적 운명론으로 귀착되고 만다. 그들은 원망과 증오와 슬픔과 고됨을 기껏 민요를 노래하는 것으로 참아내야만 했으며, 결코 반사회적 혹은 부도덕적인 방향으로 항거하지는 못하였다.

④ 판소리:예술성이 높은 전통음악 중에서 한을 표현하는 데 가장 가까운 것은 성악곡에서는 판소리, 기악곡에서는 산조(散調)이다.

기악곡 중에서 우리 나라 사람의 전통적 미의식 내지 정서적 특질이 잘 나타나고 있는 산조는 대개 느린 진양조와 보통빠르기의 중모리로 질서 있게 이루어지지만, 특히 느린 진양조가락은 한에 가까운 슬픔의 정서가 많이 담겨 있다. 그것은 산조에 쓰인 음조직의 계면조(界面調)우조(羽調)가락이 뚜렷한 예술의 미적 질서를 지니고 있어 독특한 음조를 맞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조라는 기악 독주곡은 조선 말기에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의 천민에 의해서 전승되어 내려온 민속음악 가운데 판소리 또는 시나위의 음악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형성된 독특한 장르의 음악이다.

사회적으로 천민이라는 신분과 현실적으로 서글픈 인생 경험을 음악이라는 표현수단을 통하여 마음껏 승화시키려는 것이 산조의 내용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다. 즉, 조선시대 전통적 계급사회 속에서 천민이라는 사회의 그늘 아래서 살아야만 했던 슬픈 광대들의 천민의식, 축적된 한이 전통사회의 한계를 뚫고 넘어서려는 가장 강한 의지인 비장감으로 표현되어 민속음악의 내용을 이룬 것이다.

산조의 전 악장을 통하여 주된 줄거리로 이끌어 가고 있는 음악적 내용의 미적 표현은 현실적 슬픔인 한과 한을 극복하려는 비장감을 잘 나타낸 계면조가락으로 나타났다. 성악곡 쪽에서 한을 표현하는 데 가장 가까운 것은 판소리이다. 판소리는 민중이 문예에 굶주리고 있던 18세기에 들어와 천민 · 광대에 의해 창조되었다. 판소리 안에는 경묘한 소탈미와 미묘한 인정 풍속이 담겨 있어, 한문학 때문에 막혔던 민중의 체취와 슬픔과 한이 백화쟁염(百花爭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한 획일성을 가진 봉건문화 속에서 이러한 민중문예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들 천민 광대들은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면 임금의 총애를 받고 어전에 드나드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한몸에 지닐 뿐 아니라, 공경대부의 부름을 받아 수천금을 벌어 가난과 영예의 한을 풀었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한

① 시문학:우리 문학에서 이별의 애한이나 기다림의 정한은 주로 시문학에 나타나고 있다. 시문학에 나타나는 애한이나 정한은 막연한 눈물의 미학으로만 처리되는 것이 아니고, 외로움과 슬픔의 현실에서 체념을 배우며 관용의 인격윤리를 형성하고 있다. 한의 정서가 단순히 상실감(임과의 작별)만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한적 의지관, 즉 생명의 의지, 허무에 대한 의지, 민족적 의지가 담겨 있다.

김상억(金尙億)은 『고전문학과 한』에서 “한국의 문학은 한의 소재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 많다. 한을 떠난 문학은 옛날에는 없었다. 한을 그린 많은 고전문학 작품 가운데서 우리 민족의 한, 즉 동양적 한을 찾아볼 수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 시가문학에 최초로 정한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으로는 「황조가(黃鳥歌)」와 「공후인(箜篌引)」을 들 수 있다. 「황조가」에는 외로움의 탄식이, 「공후인」에는 연민의 정한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의 「심화요탑(心火繞塔)」에는 회한이 있다. 지귀(志鬼)의 마음의 불이 바로 한이다.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던 지귀는 안타까움에 심화가 일어 불귀신이 되었으나, 여왕이 다시는 돌보지 않겠다고 하여 버림받은 화신의 원으로 남았다.

고려가요 가운데서 한사(恨詞)로는 「서경별곡」 · 「가시리」 · 「동동」 · 「정과정」을 들 수 있는데, 「서경별곡」과 「가시리」는 별리(別離)의 한을, 「동동」과 「정과정」은 연모 · 연군의 정한을 읊었다. 「가시리」는 한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한이 체념으로만 끝나지 않고, 돌아올지 어찌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시는 듯 다시 돌아오소서”라고 한 희망이 있다. 그러나 떠난 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 이 기다림의 한은 원으로 바뀔 것이다.

「서경별곡」에서는 여인이 고향과 길쌈, 집까지도 버리고 임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별리의 한에 항거하는 여심을 보여주고 있다. 별리의 부정, 그러나 끝내는 체념의 긍정으로, 한의 강인하고 줄기찬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동동」은 임과 함께 있지 못한 외로움의 한탄이며, 임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애한이다. 또한 「정과정」은 신라 향가 중의 「원가 怨歌」와 그 맥이 통한다. 처음에 임을 그리워 우는 자신을 노출시켜 놓고는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하소연하고 있으며, 다시 임에게 사랑해 줄 것을 애원하고 있다. 원과 한과 희망이 담겨 있는 노래이다.

이상과 같이 별리나 외로움의 한을 노래한 작품들로는 조선시대에 내려와 허난설헌(許蘭雪軒)「규원가(閨怨歌)」와 이매창(李梅窓)의 「이화우 흩날릴 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문학이 주로 한사(恨詞)로만(怨詞의 대립 개념으로) 나타나던 것이,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망국의 한을 느끼게 되었고, 그 뒤 개혁사상이 솟아올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증적인 학풍, 이른바 실학이라는 것이 싹트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관료문학 · 은둔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우리 문학사에서 현실과 역사인식이 요구되었으며, 문학의 현실인식은 이전의 정한의 입장이 원한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국민생활이 파탄하는 가운데에 비로소 문학이 눈을 떴다는 것도 된다.

허균(許筠)은 「노객부원(老客婦怨)」 · 「기견(記見)」 등에서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비운 속에 아무렇게나 방기된 여성의 원한을 그렸으며, 정약용(丁若鏞)은 「기민시(飢民詩)」 · 「애절양(哀絶陽)」 등에서 가난한 백성들의 지방 관리나 아전들을 향한 원한을 읊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시인들이 한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 김소월(金素月) · 서정주(徐廷柱) 등은 고려가요와 접맥된 정한을 노래했으며, 한용운(韓龍雲) · 이상화(李相和) · 이육사(李陸史) · 윤동주(尹東柱) 등은 나라를 빼앗긴 망국한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한용운 등의 시에 나타난 망국한은 절망도 좌절도, 그냥 앉아서 탄식을 한다거나 하는 무책임한 방관이나 숙명론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서 한의 참뜻은 고난에 찬 행동에 대한 부름, 새로운 희망의 의지를 담고 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의 기다림은 허탈상태의 막연한 침묵과 기다림이 아니며 빼앗긴 민족의 주권을 엄숙히 요구하는 것이다.

② 소설:소설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또는 개인과 국가(혹은 민족) 사이에 빚어진 갈등의 심도에 따라 한이 되기도 하고 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갈등의 심도가 낮으면 한이, 심도가 깊으면 원이 되는 것이다. 또한 갈등의 심도가 깊다 할지라도 원이 복수 의지로 발전하지 않고 종교적 해한의 차원에서 극복될 때, 즉 한이나 원이 휴머니즘으로 극복 승화될 때 그것은 화해와 사랑으로 정화된다.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김동리(金東里)의 「형제」는 원한이 복수로 발전하지 않고 휴머니즘적 인간의 사랑으로 극복된 좋은 예이다. 아무튼, 소설은 시에서보다 인간적 갈등의 심도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 원한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타력이나 가학적이 아니고, 자기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후회하고 희구하고 마음 아파하는 데서 생기는 자한(自恨)이나 회한, 정한이 소설작품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시습(金時習)「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김만중(金萬重)「구운몽(九雲夢)」 등은 자한의 소망을 작품을 통해 이루어 본 것들이다.

이와 같은 자한 · 회한 · 정한은 뒤에 김동인(金東仁)「배따라기」이효석(李孝石)「메밀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며, 우리 나라의 서정주의에 가까운 소설들은 모두 이러한 자한 · 회한 · 정한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고대소설에서는 정한보다는 원한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인 원한을 다룬 작품으로는 「운영전(雲英傳)」 ·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 「장화홍련전」 등이 있고, 궁중의 원한이 나타난 궁중소설로는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한중록」, 어느 궁녀의 「계축일기(癸丑日記)」(일명 西宮錄) ·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등이 있다.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결한과 해원이 나타난 작품으로는 허균의 「홍길동전」과 작자 미상의 「춘향전」을 들 수 있다.

또한 민족의 원과 한을 다룬 「임진록(壬辰錄)」은 패배한 민족의 역설적 해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 현대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이광수(李光洙)「무정(無情)」에도 망국한이 보인다. 「무정」은 바로 원한의 소리이다. 일본 헌병에게 잡혀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에게 차입해 줄 것을 사기 위해 박영채는 기생으로 몸을 판다. 그러나 그 몸값을 중개인에게 사취당하고, 대동강에 빠져 자살하려고 한다.

박영채의 자살 기도 동기는 표면적으로는 정절이 깨진 데 있지만, 실제로는 이형식에 대한 우회적 복수에 있다. 국권 상실로 인한 망국한이 박영채에게 투영되어, 냉혹한 사회와 이형식에 대한 박영채의 원한으로 표출된다. 결국 박영채의 원한은 곧 망국한이다.

「무정」의 망국한은 채만식(蔡萬植) · 염상섭(廉想涉)을 거쳐 이무영(李無影) · 심훈(沈薰) · 김유정(金裕貞) · 나도향(羅稻香) · 김동리(金東里) · 박경리(朴景利) 등의 소설에서 나타나며, 1950년대 이후에는 조국 분단의 한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호철(李浩哲)의 「월남한 사람들」, 이문구(李文求)의 「해벽」, 김원일(金源一)의 「노을」, 윤흥길(尹興吉)의 「장마」, 전상국(全商國)의 「아베의 가족」, 한승원(韓勝源)의 「안개바다」, 조정래(趙廷來)의 「인간의 탑」, 유재용(柳在用)의 「누님의 초상」, 현기영(玄基榮)의 「순이 삼촌」 등에 분단의 한, 고향 상실의 한, 동족상잔의 한 등 분단시대 민족의 한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대소설에서와는 달리 신소설 이후의 소설에서는 원한이 복수를 통하여 해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원한의 감정은 복수 의지로 해원되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풀려 소설미학으로 수용되고 있다. 또한 가학자(원한을 준 사람) 쪽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풀어 주려고 한다. 우리의 현대소설에서 원한 감정은 휴머니즘으로 극복되고 있으며, 특히 6 · 25전쟁 소설들은 원한 감정을 화해와 용서로 풀어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 하고 있음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한

한은 가장 한국적인 슬픔의 정서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한은 없고 원(怨, 寃)만 있다. 『논어』 · 『맹자』 · 『대학』 · 『중용』 · 『시경』 등 중국의 고전 속에서는 한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고, 대신 원에 대해서만 나오고 있다. 그리고 몇 권의 인류학 보고서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죽은 사람들의 원한 감정을 기록해 주고는 있으나, 그 역시 한국적인 한의 개념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도 정서의 기조적 특질로서의 동일 개념인 한은 볼 수 없다. 원과 한에 가까운 영어로는 ‘regret(유감)’와 ‘resentment(원망)’ · ‘rancour(敵意)’라는 단어가 있으나, 의미상으로 원과 한과는 거리가 멀다. ‘resentment’는 오히려 원한보다는 분개에 더 가깝고, ‘resentful’ 역시 원통보다는 분통에 가깝다.

중국의 원한은 다분히 현세적 명분론에 치우쳐 있다. 『삼국지』나 『열국지』의 처절한 복수극의 연속은 유교적 현실주의가 복수로 처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에는 원으로 대하라는 공자의 입장은 원풀이, 곧 복수를 효의 명분, 충의 명분으로 삼은 까닭이다.

일본의 원 또한 복수를 통하여 승원(勝怨)이 되고 있다. 일본의 주신구라(忠臣藏)는 원수를 어떻게 갚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아사노(淺野長勳)가 기라(吉良義英)에게 품고 있던 감정은 원이고, 원을 해결하는 최종 수단은 칼이었다. 아사노는 실패하고 막부의 명령대로 실패한 자책으로 할복하여 죽는다. 원은 더욱 확대되어 47명의 의사들이 기라의 목을 잘라 주군의 무덤에 바침으로써 승원이 된다.

서양인들은 어떠한 외부 충격에 납득이 가지 않거나 불만이 있거나 할 때는 그 외부 충격에 대하여 자신을 대립시키는 외향 처리를 잘 하므로 그것이 원으로 남는 경우가 별반 없다.

그런데 왜 한국인에게만 유독 한이 많을까? 한국적 한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불안과 위축의 역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는 내란과 외침과 민란으로 점철되었다. 이처럼 끊임없는 내란과 외침은 백성들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만들었으며, 퇴행적 심리현상을 낳게 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나라 사람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우울증이 심하게 되었다.

둘째, 유교 중심의 사상이 빚은 계층의식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유교적 질서 아래에서는 천민이나 노비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유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은 뿌리 깊은 원과 한을 항시 간직해 왔다.

셋째,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횡포와 인종의 미덕을 강요당한 데서 생기는 여한(女恨) 때문일 것이다.

넷째, 가학적 사대부와 그에 따른 피학적 민중의 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관권 사대부들의 민중 수탈로 인하여 빈부의 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자연히 가진 자를 원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 밖에도 고려 태조 왕건이 새 왕조를 세울 때 가장 저항적이었던 백제지방에 대하여 피해의식을 가지고 인물 등용 등에서 소외한 데서 온 한도 있었다. 그리고 계모와 의붓자식, 의붓형제지간, 이웃과의 이해관계 싸움 등에서 비롯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원과 한도 많이 생겨났다.

이렇게 하여 생긴 한을 우리 민족은 민간신앙을 통하여, 민요와 판소리를 통하여, 종교를 통하여, 또 의지적 행동으로 풀려고 힘썼다. 체념으로 끝나는 무력에 빠지지 않고, 억제로 인한 불안의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복수의 의지인 폭력으로 유발되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한 과정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익살과 해학을 통한 해한이다. 맺힌 한을 푸는 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은 해학을 이용하였다. 그래서 서민들의 일상생활이나 민요 · 판소리 등에는 한과 더불어 항시 건강한 해학이 따라다닌다. 전통 민중예술의 하나인 탈춤에서 말뚝이와 취바리는 웃음과 해학으로 상민들을 신원한다. 또 굿판에서는 무당이 서러운 푸념과 넋두리로 울음바다를 만들다가도 이내 익살과 육담으로 구경꾼들의 허리를 꺾어 놓기도 한다.

판소리의 「심청전」에서는 심청과 그 아버지의 슬픈 이별장면에 뺑덕어미의 익살이 곁들여지고, 「흥부전」에서도 흥부 일가의 가난 묘사에 과장과 익살이 곁들여져 있으며, 「춘향전」에서도 방자의 익살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유달리 여유 · 멋 · 풍류를 즐겼던 것에서도 한과의 상관관계를 추출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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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맥원류(恨脈怨流)』(김열규, 주우사, 1981)
「한(恨)이란 무엇인가」(문순태, 『민족과 문학』 1,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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